“10%의 가능성만 보여도 협상할 것”
▲ 지난 12일 한나라당 신임 원내대표로 선출된 이재오 대표는 반박 진영의 기대를 채우고 친박 진영의 의심을 달래는 등 두 마리 토끼를 잡아야 하는 상황이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이재오 신임 원내대표는 12일 선출 직후 가진 기자 간담회에서 “기자 여러분들도 내가 될 줄 꿈에도 몰랐을 테지만 (나는) 안 된다는 생각은 안 했기 때문에 별로 그렇게 의외로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말문을 열었다. 그의 당선에 대해 고개를 갸웃거리던 김무성 의원 대세론자에 대한 통쾌한 ‘일성’이었다. 서울시장에 출마하기로 했다가 갑자기 말을 바꿔 타 보기 좋게 원내대표에 오른 그의 작은 이변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먼저 인간적 측면에서 보자. 그는 당내에서 부지런하기로 둘째 가라면 서러워할 정치인이다. 새벽 5시30분에 일어나 은평구 구석구석을 자전거로 돌아다닌다. 야구모자 푹 눌러쓰고 14년째 해오는 지역구 관리 방법이다. 국회에서 청소를 하는 아줌마들은 가장 변하지 않는 정치인으로 이재오 의원을 꼽는다고 한다. 물론 이 의원도 그들의 이름을 일일이 외울 정도로 살갑게 대한다고.
‘의원 이재오’의 이런 근면성과 겸손한 인간성이 이번 원내대표 경선에서도 빛을 발했다는 데 이견은 없다. 그는 선거운동 기간이 3~4일밖에 없었고 본인이 직접 출마 의사도 표명하지 않아 본격적인 표밭갈이를 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니었다. 하지만 그는 지역구를 돌 듯 의원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직접 설명했다.
“그냥 열심히 전화하고 의원실 직접 찾아가 내 충정을 이야기했다. ‘서울시장 경선도 당 대의원들의 흐름을 봐서는 내가 될 가능성이 높았지만 그것을 접고 왜 이렇게 나왔겠느냐’며 동료 의원들을 설득했다. 당의 어려운 상황이 나를 대표로 원했다고 생각한다. 또한 그동안 갈고 닦은 인간관계도 작용하지 않았겠느냐. 16대 때 직선 총무를 했고 이번에 또 원내대표를 했으니… 야당사에 두 번 대표를 한 사람은 나밖에 없을 것 같다.”
이재오 승리의 이면을 ‘정치적’으로 분석해보면 박근혜 대표의 사학법 장외투쟁 장기화에 대한 한나라당 의원들의 회의감 표출이라는 해석도 있다. 또한 김무성 의원이 당선되면 박근혜 대표의 단일체제가 굳어지는 것을 부담스러워했다는 것으로도 풀이된다. 하지만 한나라당 한 의원은 “무엇보다 이 의원의 대여 투쟁력과 전략가로서의 자질이 높게 평가된 것으로 본다. 초선 의원들이 두 후보를 모아놓고 이례적으로 정견 발표를 들어보았는데 김 의원의 전략 마인드가 떨어졌다. 그것이 가장 큰 이변의 요인이다”라고 밝혔다.
하지만 이 신임 원내대표에게는 승리에 도취되어 있을 시간이 없다. 이 원내대표는 그동안 ‘반박’의 대표 주자로 인식돼왔기 때문에 향후 박근혜 대표 주도의 사학법 강경 노선에도 변화가 있을 것이라는 의원들의 기대감을 충족시켜줘야 한다. 한편으로는 박 대표와 갈등을 빚지 않겠다고 경선 과정 내내 약속을 해왔기 때문에 ‘박심’을 거스르면서까지 여당과 타협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공약’도 만족시켜야 한다. 이렇게 될 경우 이 대표가 자칫 강·온 사이에서 운신의 폭이 좁아질 위험성도 있다.
─이번 대표 당선을 사학법 투쟁에 대한 당내의 변화 욕구로 보나.
▲우리의 처음 목표는 사학법 원천 무효였다. 하지만 지금은 내가 재개정이라는 뚜렷한 목표를 제시했으니 재개정에 주안점을 둘 것이다. 재개정 안을 만들어서 여당과 협상을 해나갈 것이다. 하지만 재개정을 하기 위해서는 현 정권의 실정에 대해 총체적으로 투쟁 강도를 높여나갈 것이다. 당장 회군 그런 것은 없다.
─여당이 재개정 의사를 전혀 가지고 있지 않다면.
▲그런 의사를 갖도록 투쟁의 수위를 높이는 것이다.
─정권 차원의 규탄은 어떤 게 있나.
▲X파일 문제, 황우석 문제, 윤상림 게이트 문제 등 여러 가지가 있다. 이런 실정에 대해 정부의 총체적인 책임론을 거론하는 것이다. 이 문제와 관련해 전국 동시 다발 장외집회도 열 예정이다.
─황우석 문제는 어떻게 보나.
▲그 문제는 특히 황우석 관련 주식에 대한 비리를 집중적으로 살펴볼 것이다. 황 박사 관련 주식의 거래 과정과 많은 이득을 챙긴 사람들의 돈이 정부로 흘러들어갔는지도 조사해볼 것이다. 국정조사도 물론 할 계획이다. 정부나 열린우리당이나 마냥 이 문제에 대해 모르겠다고 하는데 그 돈이 어디로 갔는지 보면 책임도 물을 수 있을 것이다.
─이 대표의 장외투쟁 병행으로도 협상 타결이 안된다면.
▲국회는 문 닫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협상이라는 것은 90%의 불가능과 10%의 가능성을 두고 들어가는 것이다. 10%의 가능성만 있어도 협상에 들어가야 한다. 야당 원내대표는 바로 그런 점을 해낼 수 있어야 한다. 90% 불가능하다고 하지만 10% 가능하다고 하면 그 10%를 보고 협상을 해야 하는 것이고 90%의 불가능성을 보고 투쟁을 강화하는 것이다.
▲ 원내대표 선거가 끝난 뒤 자리를 함께한 이재오 한나라당 신임 원내대표와 박근혜 대표(사진위). 아래는 지난 2002년 서울시장 선거 당시 이명박 서울시장 후보와 이재오 의원의 다정한 모습. | ||
▲그동안에 우리가 재개정안을 만들어서 협상을 할 것이다(이 대목에서 이 대표가 빠른 협상을 할 것이라는 취지의 발언을 한 것으로 보아 사학법의 장기적 투쟁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견해로 읽혔다).
─노무현 정권 차원의 규탄 투쟁은 박 대표와 조율이 이루어진 부분인가.
▲박 대표에게 말을 했고 그 부분은 두 사람이 합의할 문제다. 원내 전략은 내 책임이라고 하더라도 당 총괄 책임은 박 대표에게 있으니 당 대표와 당연히 합의를 해야 한다.
─박 대표와 호흡은 잘 맞을 거라고 보나.
▲투톱이라고 해서 서로 투톱 행세를 하면 당이 안 되는 것이다. 서로 양보도 하고 배려도 하고 그래야 한다. 정 어려움이 있으면 내가 양보를 해야지. 원내대표가 원내 전략을 맡고 있고 당 서열도 2위이지만 당 운영을 총괄하는 대표를 존중해야지.
─열린우리당에서는 이 대표가 국어교사를 했던 경력 때문에 학교 사정을 잘 알고 있다고 말한다. 그래서 이번 사학법 개정도 원만하게 협의를 이끌어낼 것으로 보는데.
▲그래서 내가 재개정 안에 대해서 사립초·중·고와 대학교를 분리하자는 로드맵을 제시한 바 있다. 열린우리당이 내가 말한 것에 대해 믿고 내가 그 사람들을 믿으면 잘 될 것이다.
이 원내대표는 여당과 사학법 개정 합의를 이끌어내기 위해 정권 규탄대회를 병행하겠다고 선언한 바 있다. 이에 대해 일부에서는 이 대표가 정권 규탄을 매개로 국회 등원의 명분을 쌓으려 하지 않겠느냐는 해석도 하고 있다.
그의 대성고 국어교사 시절 제자였던 열린우리당 노웅래 의원도 이에 대해 “이 대표가 노무현 정권의 실정에 대해 규탄 대회를 한다고 하는데 그것 자체가 국면을 전환하려는 것으로 본다. 새로운 계기를 통해서 명분을 쌓은 뒤 국회로 들어올 것 같다”고 밝히면서 “이 대표는 국회 문광위에서도 여야가 첨예하게 맞설 때 어른으로서 돌파구 역할을 많이 했다”며 기대를 표했다.
이 대표는 장관 인사청문회도 회피해선 안 된다고 선언한 만큼 당분간 강·온 양동작전을 구사할 것으로 보인다. 이를 통해 여당과 현안에 대한 일괄 타결을 시도해 경색 국면을 탈출한다는 복안이다. 하지만 박 대표가 사학법 문제를 이념적으로 계속 접근할 경우 여당과의 협상력을 위축시켜 이 대표의 정치력도 한계에 처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이명박 서울시장과 손학규 경기지사가 당으로 복귀한다면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
▲그 사람들이 당에 들어오면 뭐 할 일이 있겠나. 그냥 당원이지(허허). 와서 사무총장 하겠나 원내대표 하겠나. 당 고문은 하겠지만. 박 대표도 그만두면 당 고문이지. 그 분들이 마음놓고 경선에 임하도록 당을 공평 무사하게 만들어 줄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의 탈당 발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안하리라고 본다. 정치적 이슈를 선점하기 위해 그가 항상 던지는 카드에 불과하다. 실제로 탈당이 이루어지기 어렵다. 자기가 또 다른 당을 만들어야 하고 그 당에 대한 국민적 지지도가 얼마인지도 모르는데 위험성이 너무 크다. 그냥 한번 정치적 제스처를 써보는 것에 불과하다.
─노 대통령이 정계개편 의도를 가지고 한나라당을 깨기 위한 전략을 쓰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있는데.
▲그런다고 한나라당이 깨지나. 열린우리당은 당을 쪼개서라도 새로 창당을 할 가능성과 그런 권력이 있지만 한나라당은 야당인데 흩어지면 망한다. 한나라당이 흩어지기를 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분열 가능성은 없다.
─이 시장과 실제 가까운가.
▲서울시 선거대책본부장과 직무인수위원장 등을 맡으면서 가까워진 게 사실이다. 당내에서 가장 가깝고 잘 안다. 하지만 그것은 사적인 관계다. 지금 나는 공적인 자리인 당 대표에 있다. 공적인 자리에 있는 사람이 사적인 관계를 앞세우면 안 된다.
─이 시장에 대한 평가는.
▲추진력이 있고 아이디어도 많고 좋은 분이다. 이 어려운 시기에 지도자가 갖추어야 할 덕목을 골고루 갖추고 있다.
─서울시장 후보를 향해 뛰다가 방향을 틀었는데 시장 적임자는 어떤 점을 지녀야 한다고 보나.
▲그냥 인기가 좀 있다거나 정치를 좀 했다거나 이런 것을 가지고 적임자라고 말할 수 없다. 서울시에 대한 깊은 연구와 이해가 있어야 한다. 서울시 전체에 대해 나름의 계획이 있어야 한다. 연구팀이 써준 것이 아니라 자기가 실제로 발로 뛰면서 이뤄낸 서울에 대한 총체적인 이해가 있어야 한다. 공무원들이 갖다주는 서류만 결재하는 시장이 아니어야 한다.
─한나라당에 그런 적임자가 있나.
▲잘못 말하면 싸움 난다.
성기노 기자 kin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