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래 안전성 100% 자랑…기업들 불법 자금 이동에도 활용 가능성
‘하왈라’는 신뢰라는 의미의 아랍어다. 원래 명칭은 ‘훈디’로, 이슬람 형제라는 믿음 아래 행해지는 이슬람권의 전통적인 금전 거래 방식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은행을 거치지 않는 사설 외환 송금 시스템이다.
이 시스템은 과거 실크로드 교역을 했던 이슬람 상인들이 사막의 도적들로부터 재산을 보호할 목적으로 처음 고안했고, 시간이 지나며 꾸준히 발전했다. 현재 이 하왈라 시스템은 ‘환전상’이라는 이름으로 통용된다. 약간의 수수료만으로 세계 어느 곳으로든 외환 송금이 가능한 것으로 유명하다.
하왈라 시스템은 서구식 은행을 거부하는 일부 이슬람권의 경제 현실과 맞물려, 조직망이 전 세계에 걸쳐 폭넓게 퍼져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하왈라 시스템은 중동 지역 고유의 경제 시스템으로 문화적 존중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하지만 문제는 이 사설 외환 거래 방식이 전통과 문화와는 관계없이, 국제적인 환치기 수법으로 악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하왈라는 이슬람권에서 음성자금 이동의 중요한 수단 중 하나로, 파키스탄에서만 연간 50억 달러(5조 6000여 억 원) 이상이 이를 통해 움직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 목숨을 건 ‘신뢰’가 기반
국내‧외 금융 거래는 은행계좌를 통해 이뤄진다. 외환거래법과 관세법 등으로 은행을 거치지 않는 검은돈의 흐름과 그 수법은 강력히 규제되고 있다. 반면 하왈라 시스템은 전신환 등 기존 은행 시스템을 이용하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상당히 간단한 원리로 작동한다.
만약 한국에서 개인이나 업체가 하왈라 업자에게 해외 송금을 의뢰할 경우, 업자는 돈을 건네받은 뒤 비밀번호를 부여한다. 이후 한국 하왈라 업자는 돈을 받을 수취인이 위치한 국가의 또 다른 하왈라 업자에게 돈을 지급하라고 연락한다. 연락 수단은 팩스나 이메일, 전화 등이다.
이 과정에서 담보 설정이나 개인 신상에 대한 확인 및 서류 작성은 필요 없다. 업자나 시기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 개인은 원금의 0.03%, 업체는 2% 정도까지의 송금 수수료만 뗄 뿐이다. 한국의 하왈라 업자로부터 통보를 받은 해외 하왈라 업자는 현지 화폐로 수취인에게 비밀번호를 확인한 뒤 돈을 건네준다. 거래가 완료되면 비밀번호를 비롯한 기본 기록마저 모두 폐기된다. 결국 하왈라 이용자는 송금 흔적을 남기지 않으면서도, 적은 비용으로 거래를 할 수 있다.
이처럼 단순한 원리로 작동되는 거래 방식이지만, 문제가 생겼을 경우 나름의 ‘엄격한’ 대비책이 있다. 먼저 하왈라의 거래 안전성은 거의 100%에 달한다. ‘신뢰’라는 이름의 거래 시스템이 의미하듯, 거래가 이행되지 않았을 경우 ‘목숨을 잃는’ 등 강력한 보복이 뒤따르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하왈라 조직 단속 경험이 있는 세무당국과 경찰 관계자들은 “거래를 증명하는 서류 이상의 강제성과 보안성, 안정성은 여기서 비롯된다”고 입을 모았다.
또한 송금 시스템을 운영하는 과정에서 국가별 하왈라 업자들 사이에 송금액 차이가 날 경우에는 기발한 방법으로 채권-채무 관계를 정리한다. 한쪽은 주로 입금만 돼 돈이 쌓여가고 한쪽은 지급만 이뤄지는 상황이 대표적인데, 만약 한국 내 하왈라 업자가 계속 송금을 요청하고 특정 국가 하왈라 업자에게서는 돈이 인출돼 지급되는 경우가 많아 한국 업자가 채무를 지고 있다면, 한국 업자는 채무 금액에 해당하는 물품을 구매해 현지 수입업자에게 보낸다. 그러면 이 업자가 돈을 받아야할 특정 국가 하왈라 업자에게 지불하고, 결국 채권채무 관계는 상계 처리된다. 두 조직 사이에서는 이른바 물건으로 빚을 갚는 ‘땡처리’가 이뤄지는 셈이다.
# 세계적 단속에도 여전히 건재
이런 방식으로 행해지는 하왈라 시스템이 전 세계적으로 공론화된 것은 지난 2001년 미국 9·11 테러 이후부터다. 미국이 알카에다 등 테러 조직의 자금이 하왈라를 통해 송금된다는 사실을 밝혀내고, 주요 동맹국에 하왈라 조직의 실태 파악과 단속을 요구하면서 각국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었다. 미국 국무부는 지난 2005년 ‘국제 마약 거래 규제 전략 보고서’에서 ‘한국에는 3만여 명으로 추정되는 중동 출신 노동자들이 거주하고 있고, 이들이 벌어들인 돈을 본국으로 송금하기 위해 하왈라 시스템이 가동되고 있다’고 밝혔다. 실제로 1년 뒤인 지난 2006년에는 수백억 원대의 불법 송금을 알선한 국내 하왈라 조직이 경찰에 검거됐다. 지난 2008년 11월 경찰청 국제범죄수사대가 적발한 하왈라 조직은 국내 수출업체의 수출 자금으로 위장해 파키스탄으로 환치기를 했다. 당시 경찰청이 적발한 하왈라 조직원은 50여 명, 불법 송금된 것으로 추정한 금액만 1000억 원대에 달했다.
그동안 국내에서 대규모 하왈라 조직이 검거되고 그동안 하왈라 시스템을 이용해왔던 불법 체류 외국인 노동자 문제가 해결 기미를 보이면서, 국내 하왈라 시스템은 약화되었으리라고 추정돼 왔다. 하지만 최근 하왈라로 환치기를 해온 일당이 경찰에 붙잡히면서 여전히 국내 하왈라 시스템이 건재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들은 중국과 네팔 국적의 유학생 등으로, 지난 2011년부터 5년 간 국내에 거주하는 외국인 근로자에게 해외 송금 의뢰를 받은 뒤 앞서의 ‘땡처리’ 방식으로 화장품을 밀수출해 환전했다. 이들이 불법 환치기한 금액은 520억 원에 달한다. 그동안 경찰에 적발된 대규모 하왈라 조직처럼 의뢰 모집책과 중간책 등의 역할 분배도 이뤄지고 있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 기업의 사업 이익 확보에도 침투
이 같은 하왈라 시스템은 국내 일부 기업에까지도 파고들었다는 증언도 나온다. 이에 대해 “중동 지역과의 무역 거래를 위해서는 불가피하다”는 명목으로 하왈라를 이용하는 것은 물론, 리베이트 자금과 비자금 통로로도 활용하고 있다는 의혹도 제기된다.
이에 관련해 국내의 한 대기업 임원은 “하왈라는 소액을 쪼개서 보내야 하지 않느냐. 상당히 번거로운 작업이라 생각해본 적도 없다”고 잘라 말했지만, 일부 중동 지역 사업가들의 말은 다르다. 이들은 “중동 지역과의 무역 거래에서 하왈라 시스템을 통한 송·출금은 최근에도 익숙한 방식”이라면서 “단순히 비자금을 챙기거나 리베이트를 하는 게 아니라 하왈라를 이용해 다양한 방식으로 사업 이익을 챙긴다”고 주장했다.
이들의 설명에 따르면 기업이 관세청 등에 수출입 신고를 할 경우 신고 금액을 실제 금액과 비교해 축소 신고하는 관행이 일부 존재한다. 업계에서는 ‘언더밸류’라고 부르는데, 실제 수출입 금액에서 신고 금액을 뺀 나머지 자금에 대해서는 하왈라를 통한 환치기 수법이 이뤄진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한 세무 당국 관계자는 “하왈라 시스템이 기업 불법 자금 이동으로 활용될 수 있는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 자금을 쪼개서 환치기 방법으로 보내면 돈 흐름을 쫓기가 힘들어지기 때문”이라면서도 “다만 테러조직에 하왈라 자금이 유입되는 정황이 포착되면서 세계적으로 단속이 강화된 상태다. 국내에서도 수사당국이 예의주시하고 있기 때문에 쉽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문상현 기자 m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