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드보다 ‘다양성’ 선택한 원칙주의자
▲ 이용훈 대법원장 | ||
이 대법원장을 말할 때 가장 먼저 거론되는 것은 노무현 대통령과의 ‘코드’다. 지난해 11월 그의 첫 대법관 인선은 ‘충격’으로 다가올 만큼 상당히 파격적이었다. 법원이 술렁이기 시작했고, 한 보수성향의 원로 변호사는 “우려했던 대로 이 대법원장은 노 대통령이 보낸 전령사”라고 원색적인 비난을 하기도 했다.
이번 두 번째 대법관 인선 역시 상당히 파격적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했다. 하지만 이 대법원장은 내부의 목소리와 외부의 분위기에 상당히 민감했다. 파격보다는 안정을 택했다는 것이 이번 인선을 바라보는 법조계의 대체적인 반응이다. 무엇보다 현 정부의 ‘코드’ 시비에서 벗어나려는 의도가 엿보인다는 평가도 나온다. 주변에서는 그에 대해 “역대 대법원장 중 가장 힘 있고 대중적인 대법원장이 될 것”이란 전망도 나오고 있다. 지금의 단계는 그 과정이라는 얘기다.
지난 2004년 대통령 탄핵 재판 당시 이 대법원장(당시엔 변호사)이 대통령 측 변호인단에 가담하자 주변에서는 두 사람의 관계가 오래전부터 친분이 있는 것으로 보기도 했다. 하지만 실제적으로 노 대통령과 이 대법원장은 특별한 인연이 없는 단지 법조계 선후배 사이일 뿐이라는 것이 정설이다.
이 대법원장은 1962년 고등고시 사법과 15회에 합격, 이후 육군 법무관을 거쳐 오랜 기간 판사의 길을 걸었고, 노 대통령은 75년 사법고시 17회에 합격해서 잠깐 판사의 길을 걷다가 곧 변호사로 전환했다.
이 대법원장이 당시 변호인에 가담한 것은 청와대 측의 요청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대법관을 지낸 오랜 경륜이 필요했던 것이다. 하지만 두 사람은 그전까지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었다. 이 대법원장 역시 “법률가로서 일생에 한번 맡기 어려운 사건이라는 생각에 응한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 대법원장은 판사 시절, 법원의 핵심요직으로 일컬어지는 법원행정처 조사국장, 행정처 차장 등 정통 엘리트 코스를 거친 유망주였고, 94년 YS 정권 시절에 대법관에 임명됐다. 98년 DJ 정권이 출범하면서부터는 중앙선거관리위원장을 겸임했다.
99년 9월 대한변협이 2명의 대법원장 복수 후보를 추천, 대통령에게 제시하는 과정에서 그는 최종영 대법원장과 경합했다. 당시 이 대법원장은 재야 법조계의 양대 축이었던 대한변협과 민변 및 시민단체에 의해 동시에 거론될 정도로 유력인사였다. 참여연대가 추천한 대법원 후보에도 그는 2순위에 올랐다. 이 대법관은 2000년 헌법재판소장 인선 물망에도 거론된 바 있다.
하지만 모두 쓴 잔을 마셨다. 전남 보성 출신으로 광주일고를 나온 그는 DJ 정권에서 오히려 지역 역차별을 받았다는 동정을 사기도 했다. 항간에서는 선관위원장을 맡으며 지나치게 원리원칙을 강조하는 그의 성향이 DJ 정권 실세들에게 부담이 됐을 거라는 얘기도 흘러나왔다.
그는 이념적 성향을 똑 부러지게 보수와 진보의 이분법적으로 구분하는 것을 찬성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그래도 법조계의 대표적 진보 인사로 알려져 왔다. 사법부의 목소리를 제대로 펴기 힘들었던 유신 계엄령이 선포된 시절 그는 지법판사로 근무하면서 ‘시국사건 피고인에게 검찰의 구형대로 징역 2년 이상을 선고하라’는 계엄당국의 지시를 정면으로 거부하며 징역 6월을 선고하기도 했다. 이후 그는 한동안 형사재판에서 소외된 채 민사재판만 맡기도 했다. 93년 법원행정처 차장을 맡으며 사법제도 개혁을 진두지휘하기도 했다.
그는 현재 법조계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사형 제도에 대해서도 반대 입장을 분명히하고 있다. 그가 밝히는 대체 법안은 종신형 제도. 진정한 의미의 종신형 제도가 없기 때문에 무기징역이 아닌 종신형으로 사형제도를 대체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는 셈이다. 간통죄 폐지 문제에 대해서도 그는 상당히 탄력적인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 대법원 전경 | ||
하지만 가치관에 있어서는 또 문득문득 보수 성향을 드러내기도 한다는 평. 일례로 그는 후배 법관들이 “밖에서 다양한 사람들과 만나고 다양한 경험을 해봐야 판결에도 도움이 된다”고 하소연하자 “재판 기록을 통해 세상 경험을 다 체험할 수 있다”며 재판기록을 열심히 공부할 것을 강조했다는 후문이다. 그는 “교양을 쌓기 위한 사회적 경험은 몰라도 그 이상의 경험은 판사로서 할 시간도 없고 능력도 없는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이 대법원장의 성격은 직선적이거나 다혈질이진 않지만 원칙이 분명한 만큼 좋고 나쁨이 얼굴에 그대로 드러난다고 한다. 그 일례를 알 수 있는 사례가 있다. 지난해 9월 헌정 사상 처음으로 대법원장에 대한 인사청문회가 열렸다. 이때 야당 의원들은 현 정부의 코드 인사를 거론하며 이 대법원장을 몰아붙였다. 가장 집요하게 물어본 것은 강남 재개발 아파트 투기 의혹이었다. 야당 의원들의 질문 공세가 거세질수록 “잘 살펴보면 알겠지만 절대 투기가 아니다”라고 거듭 항변하던 이 대법원장도 표정이 일그러졌다. 이때 뒷자리로부터 쪽지 하나가 그에게 건네졌다. 뒤에서 배석해 있던 후배 판사들이 건넨 것으로 ‘표정을 풀라’는 주문이었다. 생방송 중이었기 때문이다.
대법관 인선 때마다 주목을 받은 것 역시 현 정권과의 코드 문제였다. 지난해 11월 첫 대법관 인선 과정에서 이 대법원장이 박시환 변호사와 김지형 판사를 전격 발탁하자 고위 법관들의 줄사표가 이어졌다. 특히 두 사람은 사시 21회 출신이어서 법원 주변에서는 ‘법원 질서의 파괴’라는 극렬한 반발도 잇따랐던 것.
더군다나 박 변호사와 김 판사는 공교롭게도 천정배 법무장관이 사전에 대법관 후보로 언급한 인사들이어서 일부에서는 이 대법원장과 현 정부의 교감을 강도 높게 비난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이 대법원장은 “대법관 중에 비서울대 출신이 한 명도 없다는 점을 감안, 김 대법관을 선택한 것이고 박 대법관은 시민단체와 민변 등에서 상당한 지지를 받는 인사였다”고 그 배경을 설명한 바 있다. 그는 “박 대법관을 천 장관이 언급한 것은 이해가지만 개인적으로도 김 대법관을 언급한 것은 좀 의외였다”고 덧붙였다.
그는 지난해 11월의 대법관 인선 과정에서 의외로 비난 여론이 많아지자 나름대로의 대법관 인선 원칙을 밝히며 향후 2006년 7월에 있을 신임 대법관 인선 과정에 대한 청사진도 미리 밝힌 바 있다. 한 시사 월간지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대법관은 지역·출신학교·연령이 다양해야 한다. 40대가 보는 시각과 60대가 보는 시각이 각각 다르기 때문이다. 40대인 김지형 대법관을 제청한 것은 그래서다. 학계 인사도 필요하다. 일부에서는 검찰 출신은 필요 없다고도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검찰의 생각도 중요하다. 모든 것이 포괄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지금껏 기수 순으로 내려가는 식으로 대법관을 선발했지만 대법원이 정책법원이 돼서 법리해석의 원칙을 국민 앞에 세우는 기관이 되려면 시니어 법관들만 선발해선 안된다. 대법관에게 필요한 우선적 자질은 전문적인 법률지식과 합리적 판단력, 그리고 인품이다. 하나 더 덧붙인다면 다양한 경험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그는 현 정부와의 교감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여지껏 재판에 관해 정치권으로부터 한 번도 얘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대법관 제청 과정에서 이견이 있을 순 있겠지만 그것을 극복해나가는 것이 대법원장의 몫”이라고 분명히 했다.
측근에 따르면 이 대법원장은 이번 대법관 인선 이후 더 큰 고민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에는 학계와 민변 등 진보적 성향의 재야 법조계에서 아쉬움을 표하는 목소리가 많이 들려오기 때문. 이에 대해 김종훈 대법원장 비서실장은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현재 대법원장은 ‘학계 인사가 제청 대상에 오르지 못한 것은 누구보다 나 자신이 가장 안타깝게 생각한다’는 입장”이라고 밝혔다. 사법부의 수장으로서 어느 한 쪽의 목소리에만 치우칠 수 없는 고충을 이해해달라는 뜻으로 받아들여졌다. 다음은 김 실장을 통해 들어본 이 대법원장의 이번 제청 인선에 대한 입장이다.
―이번 대법관 임명 제청에 대해 재야법조계와 학계에서 아쉬워하는 목소리가 많은데.
▲우리도 아쉽다. 대법원장께서도 상당히 아쉬워하고 계신다.
―당초 이 대법원장도 학계 인사 발탁 가능성을 제시하지 않았나.
▲그렇다. 그래서 아쉬움이 많다는 거다. 안배를 고려할 항목이 너무 많다. 비단 학계뿐만 아니라 지방법원, 검찰, 여성, 연령, 학맥 등 전체적으로 다양화를 꾀하다 보니 그렇게 된 것으로 이해했으면 한다. 학계 인사라고 해서 또 완전한 학계 인사도 드물고, 그에 따른 자격이나 여러 가지 고려 요소가 많다.
―일각에서는 일선 판사들의 내부 동요를 지나치게 의식한 나머지 너무 내부 눈치를 본 것이 아닌가 하는 시각도 있는데.
▲전혀 아니다. 내부 동요도 없으므로 의식할 필요도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지난해 11월의 대법관 임명이 너무 파격적으로 가다보니 이번에는 안정적으로 갈 것이라는 예상도 나왔는데
▲지난해 제청건과는 별개다. 그땐 그때대로 대법관의 다양화를 꾀한 것이고 이번에는 또 이번대로 다양화를 꾀한 차원이다.
―이번 인사가 안정적 기조로 가다보니 전체적으로 보수적 성향이 강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그렇게 이분법적으로 바라볼 상황은 아니다. 반드시 학계인사라고 해서 진보적이고 법원 내부 발탁은 보수적이라는 잣대도 잘못된 것이다. 또 대법관은 전체를 아우러는 다양한 경력과 소신의 소유자여야 하기 때문에 이념적 성향을 따지는 것은 옳지 않다고 본다.
감명국 기자 km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