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거티브’에 강해야 본선서도 이긴다
▲ 여전히 지지율이 5%에도 미치지 못하지만 본선 경쟁력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손학규 전 지사. 그는 “때가 되면 바람이 불 것”이라며 ‘손풍’을 자신하고 있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손 전 지사는 “때가 되면 바람이 불 것”이라고 ‘손풍’을 장담하고 있다. 대선까지 남은 기간은 이제 11개월 남짓. 과연 그의 말대로 ‘손풍’이 불어올지는 알 수 없으나 ‘본선 경쟁력’만은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것으로 평가받고 있는 그의 잠재력은 충분해 보인다.
각종 신년하례회만으로도 스케줄이 빠듯한 손 전 지사는 지난 12일 아침 시간을 내어 기자를 만나 주었다. 인터뷰 중 손 전 지사는 정치 현안에 대해서는 목소리를 높이면서도 아내 이윤영 씨 얘기가 나오자 “내가 아내에게 불러주었던 노래”라며 즉석에서 노래 한 소절을 흥얼거리기도 했다. 정치인으로서 ‘감정 표현’에 솔직한 것은 때로 흠이 되기도 할 터이지만 그가 풍겨내는 분위기는 민생 현장에서 보여주었던 친근감 그 자체였다. 서울 서대문에 위치한 손학규 전 지사의 캠프 사무실. 약속시간 9시를 정확하게 맞춰 기다리고 있던 그는 소탈한 웃음으로 기자를 맞이했다.
테이블을 두고 가까이 마주앉은 손학규 전 지사는 공식석상에서보다 훨씬 부드러운 인상이었다. 손 전 지사는 기자의 명함을 받아들더니 유심히 살펴보며 답변 중간 중간 이름을 직접 부르기도 했다. 여러 번 악수를 청하는 그의 손에선 힘과 부드러움이 동시에 느껴졌다. 정치인들의 인터뷰 스타일은 제각각인데, 그와 대화를 나누는 동안 친근감 면에서는 매우 높은 점수를 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손학규 전 지사의 사무실은 다른 한나라당 주자들의 캠프에 비해 다소 좁아 보였지만 그 안에서 느껴지는 열기는 그에 못지않았다. 편한 분위기 속에서 시작된 인터뷰는 ‘정치 현안’에 대한 다소 뜨거운 사안으로부터 시작됐다.
―노무현 대통령의 개헌 제안 이후 정치권이 시끄러운데 먼저 이에 대한 의견을 듣고 싶다.
▲지금 개헌을 논할 때가 아니다. 오해 살 일은 하지 말아야 한다. 배나무 밑에선 갓끈을 고쳐 매지 말아야 한다는 말도 있지 않나. 대선이 12월19일이지만 본격적인 후보자 선출은 빠르면 6월부터 시작될 텐데 지금 개헌안을 내놓는 일은 오해를 불러일으키기 충분하다.
―노 대통령이 최근 거센 언행을 이어가고 있는데.
▲대통령이 국민을 안심시키고 우리 국정이 안정돼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해주었으면 한다. 정치적인 돌출 발언보다는 산업현장에 가서 노동자들, 기업인들과 대화를 하고 격려해주어야 한다. 노무현 대통령도 국민들의 생활 속에 들어가서 조그마한 것이라도 민생문제를 해결해 주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노 대통령이 임기단축은 없을 것이라고 못 박았으나 하야 등 제2의 카드를 예상하는 분석이 많다.
▲그러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대통령이라는 자리는 국민들의 염원이 담긴 신성한 자리다. 이 신성한 직을 겸허한 마음으로 수행하기를 바라고 있다.
정치권 일각에서 노무현 대통령의 개헌제안은 이미 예견됐던 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개헌의 필요성을 논하기에 앞서 시기적 상황으로 인해 노 대통령의 개헌 제안은 ‘정략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것이 현실. 손학규 전 지사 역시 “정략이 없다고 하지만 이미 대통령은 양치기 소년이다. 아무도 진정성을 믿지 않는다”는 쓴소리를 내놓았다. 노 대통령이 “야당들이 개헌의 전제조건으로 탈당을 요구할 경우 고려할 수 있다”고 한 발언에 대해서도 그는 “그 발언 자체를 이해할 수 없다. 탈당을 개헌의 조건으로 하는 것은 부적절하며 더구나 임기 단축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 어떻게 조건이 되느냐”고 응수했다.
―개헌과 관련해 손 전 지사는 ‘국민이 원할 경우 대통령 당선 이후 임기를 줄여 대선과 총선시기를 맞출 수 있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는데.
▲ 지난 8일 ‘희망모임’이 주최한 대선주자 워크숍에 참석한 원희룡 의원 손학규 전 지사 이명박 전 시장(왼쪽부터). | ||
―원희룡, 고진화 의원 등 개헌에 대해 당의 의견과 반하는 찬성의견을 내세우는 이들에 대해 어떻게 평하나.
▲젊은 사람들이 우리 당에 좀 더 진보적이고 개혁적인 경향을 끌어들이겠다는 것 자체는 한나라당을 위해 도움이 되고 나를 위해서도 도움이 되는 것이라 본다.
손 전 지사는 ‘복잡하게 흘러가고 있는 여권의 정계개편 상황’에 대해 “한나라당은 여당 사정에 끌려가서는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한나라당이 국민들로부터 수권정당으로서 신뢰를 받도록 해야 할 텐데 지금 한나라당은 너무 인물 중심”이라고 덧붙이기도 했다.
―<일요신문>이 국회의원 보좌진 192명을 상대로 한 신년특집 설문조사 결과, ‘바람직한 대통령감(호감도)’를 묻는 질문에서는 높은 지지율(19.2%)을 보였으나 ‘당선가능성’ 면에서는 3.1%를 기록하는 데 그쳤다. 이는 김근태 의장(3.6%)에 비해서도 낮은 수치다.
▲보좌진들도 정치 일선에 계신 분들이라 정치를 현재의 세력 측면에서 보는 경향이 강하지 않겠나. 그러나 정치는 생물이다. 세력도 얼마든지 가변적이라고 본다. 큰 세력도 무너질 때는 허망하고 작은 세력도 단시간 내에 크게 일어설 수 있다.
―한편 한나라당과 열린우리당 보좌진 모두 손 전 지사에 대해 높은 지지를 보냈다. 또한 열린우리당 내에서는 손 전 지사의 정체성이 오히려 여권과 더 잘 맞는다고 분석하는 이들도 있는데 이런 상황으로 인해 여권과의 연대 가능성 얘기도 흘러나온다.
▲여권이 나의 개혁성을 인정해 주는 측면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의 개혁은 시장이해에 기초한 개혁이다. 현재 여권의 마구잡이 개혁과는 다르다. 나는 낙관적인 자세로 한나라당 경선에 임할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을 둘러싼 주변과 여권이 시끄럽게 돌아가고는 있으나 한나라당 입장에서는 당내 경선을 통한 후보선출이 무엇보다 중요한 사안이다. 지난해 말 한나라당 지도부와 대권주자들이 간담회를 갖고 공정하게 경선을 치를 것과 경선결과에 승복할 것을 약속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 자리에서 손 전 지사는 “경선이 시작되기도 전에 일부 최고위원이 줄 세우기에 앞장서는 현실에서 강재섭 대표가 단합을 강조하는 것이 진정한 의미가 있는지 의문”이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이재오 최고위원이 이명박 전 시장을 돕고 있는 것을 대놓고 비판한 것이었다. 또한 손 전 지사는 “당 지도부가 국회의원과 당원협의회 위원장, 광역·기초의원까지 줄 세우기를 강요하는 구태정치를 하고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공정한 경선이 가능할 것인지에 대해 손 전 지사는 매우 걱정하는 눈치였다.
―누군가 만약 경선에 불복하거나 탈당하는 일이 생길 경우를 예상하고 있나.
▲경선에 승복하겠다, 탈당 안 하겠다 무수한 서약서도 쓰고 선서를 하지만 그건 다 의미가 없다. 그런 얘기를 한다는 것 자체가 아직 우리나라 정치가 성숙하지 못했다는 증거다. 나는 내 입을 보지 말고 눈을 보라고 얘기한다. 내가 지금까지 살아온 행적을 보고 내가 이뤄놓은 실적을 보라고 말이다. 정치인들이 아무리 탈당 안한다, 승복한다고 얘기 하면 뭐하나. 그건 언제든지 뒤집을 수 있는 말이다. 언제든 뒤집을 수 있는 얘기에 대해 굳이 그렇게 자리를 만들어 얘기한 건 사실 아무 의미가 없다. 그건 세리머니를 위한 세리머니일 뿐이다.
―본선 경쟁력이 높은 인물로 평가받고 있지만 당내 경선에서 이길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중요한 것은 12월 19일에 있는 본선에서 누가 이길 것인가에 관한 것이다. 지역정당으로 남아있는 한나라당을 누가 통합시킬 수 있는지에 대한 논의가 절실하게 진행된다면 누가 나가야 마땅한지 답이 나올 것이다. 한나라당이 두 번이나 대선에 패배했는데 이번엔 꼭 이겨야 하지 않겠나. 내가 후보가 된다면 본선 승리는 확실하다. 그게 바로 내 역할이라고 생각하고 반드시 그렇게 되도록 노력할 것이다.
―‘선거일 6개월 전’으로 규정된 한나라당의 대선후보 경선 시기에 대해 여권의 공격 가능성 등을 이유로 늦추는 게 좋다는 의견도 있는데.
▲시기를 개별 후보의 유 불리 때문에 바꾸려 한다는 오해를 일으키면 안 된다. 대선 승리를 위해 어떤 시기가 적절할지 당이 결정할 것이다. 다만 여당의 후보선출이 지체되니까 거기에 맞추자는 것은 일리가 있어도 네거티브가 걱정이라는 의견은 궁색하다. 어떤 네거티브에도 끄떡없는 후보라야 한다.
또한 손학규 전 지사는 현재 한나라당에 대한 압도적인 지지가 계속되진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불과 몇 % 싸움이 될 것”이라는 것의 그의 전망. 그렇다면 더구나 한나라당 입장으로서는 후보단일화가 절실한 문제다.
―후보단일화를 위해 이명박 전 시장이나 박근혜 전 대표와 연대할 의향은 없나.
▲지금 그런 얘기를 할 때가 아니다. 연대다 뭐다 얘기가 나오지만 그런 공학적인 접근보다는 나라를 위해 누가 나서야 하는지 생각해야 한다고 본다.
―민심대장정은 손 전 지사의 대표적 브랜드가 되었다. 민심대장정의 순간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을 꼽아 달라.
▲경북 영주에서였는데 한 선술집에서 젊은 건설노동자 한 분이 나한테 와 막걸리를 따르면서 이렇게 말했다. ‘저희는 다른 소망이 없습니다. 매일 매일 일거리만 있다면 원이 없겠습니다.’ 울먹이면서 그렇게 말하는 이 젊은이들에게 일자리를 만들어주는 것 이상의 가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청년은 대학을 졸업한 지 여러 해가 됐는데 취직이 하도 안돼서 고향에 내려가 조선소의 용접공으로 입사원서를 냈는데 떨어졌다고 하더라. ‘고등학교 졸업장만 내지’ 그랬더니 그건 또 허위사실 기재라서 발각되면 퇴사조치 된다고 하더라. 학교졸업장이 이렇게 멍에가 되어서야 되겠나.
손학규 전 지사와 얘기를 나누는 내내 그의 ‘민생 걱정’은 끝없이 이어졌다. “난 농민들과 막걸리잔을 기울이는 대통령이 되고 싶다”는 손 전 지사는 만약 자신이 대통령이 되더라도 ‘민심대장정’과 같은 현장방문을 계속 할 것이라고 말했다.
조성아 기자 lilychic@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