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순 맞은 재계수장 집안싸움 망신살
▲ 강신호 회장이 아들 문석 씨와 3월 동아제약 주총에서 지분대결을 펼칠 예정이어서 재계의 이목을 끌고 있다. | ||
그가 이끄는 동아쏘시오그룹은 매출액 5000억 원대의 동아제약이 주력인 중견그룹이지만 그는 4대그룹 총수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전경련 회장직을 연임하며 경제계 리더로 활동하고 있다. 선친인 강중희 회장이 설립한 동아제약이지만 수십년째 현금자판기 노릇을 하는 ‘박카스’(61년 출시)를 만들어 67년부터 동아제약을 국내 제약업체 매출 1위에 오르게 한 뒤 지금도 그 정상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바로 그의 수완 덕분이라 할 수 있다.
이렇듯 그는 재복에 명예운, 공부운, 건강, 게다가 부인 둘에 슬하에 아들 넷에 딸 넷을 둘 정도로 다복하다. 그런데 다 좋을 수는 없나 보다. 그가 말년에 망신살이 뻗치고 있다.
배다른 형제 사이인 그의 둘째 아들 강문석 수석무역 대표와 넷째 아들 강정석 동아제약 전무 사이에서 동아그룹의 경영권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문제는 그가 첫 번째 부인 박정재 씨의 아들인 강문석 대표를 동아제약 대표에 앉혔다가 ‘실적부진’을 이유로 임기만료 이전에 ‘해고’하는 강수를 뒀다는 점이다. 게다가 문석 씨가 물러난 이후 강 회장은 둘째 부인 최 아무개 씨 소생인 정석 씨를 중용하기 시작했다. 이어 강 회장의 호적서류상의 부인 박 씨가 이혼소송을 냈고 박 씨의 친아들 문석 씨는 동아제약 주식을 꾸준히 사들여 공식적인 부친의 지분을 넘어서는 등 집안 갈등은 스케일이 달라졌다.
얼핏 큰집 소생 아들과 작은 집 소생 아들 간, 본부인과 두 번째 부인 간의 갈등으로 비치던 이 문제는 ‘주식 매집’과 ‘적대적인 인수합병’ 가능성이 거론되면서 증권가 이슈로 떠올랐다. 여기에 동아제약 출신 전문경영인과 한미약품 등 동아제약 주식에 투자한 기관투자가들이 가세하고 국세청의 세무조사 소식까지 더해지면서 돈과 형제가 갈등, 경영권싸움이 가세한 왕실드라마에 버금가는 ‘스캔들’로 비화하고 있다.
지난 2월 1일 강문석 수석무역 대표는 동아제약 대주주 자격으로 오는 3월에 개최될 동아제약 정기주총에 10명의 이사를 추천하겠다고 ‘통보’했다. 이 명단에는 지난 2004년 12월 등기이사직에서 축출된 강 대표 자신과 2006년 3월 동아제약 대표이사를 그만두고 강 대표 진영에 합류한 유충식 전 부회장이 포함돼 있다. 대신 현재 이사직에 올라있는 강정석 전무는 빠져있다. 강 전무는 강 대표의 퇴임 이후 동아제약의 새로운 후계자로 각광받고 있다. 강 대표가 강 회장에게 통보한 핵심은 ‘동생은 빼고’인 셈이다.
이 통보가 가기 직전인 1월 25일 강신호 회장과 강문석 대표 부자는 서울 용두동 본사에서 만나 포옹을 하는 등 ‘화해를 한 것’ 같은 모습을 보였고 강 회장은 ‘잘될 것’이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하지만 결국 그날 두 사람의 회동은 전경련 회장 선출을 앞둔 강신호 회장의 난처한 입장을 고려한 강 대표의 여론무마용 ‘선처’였던 셈이다. 결국 양 진영의 타협 없이는 3월 주총에서 ‘부자간 표대결’이란 비극을 피할 수 없게 됐다.
부자 대결의 비극은 강 회장 가족사에 뿌리를 두고 있다(<일요신문> 2005년 1월 2일자 659호, 2006년 7월 30일자 741호 참조).
강 회장은 4남 4녀를 뒀는데, 장남(의석)과 차남(문석)의 모친(박정재)과 삼남(우석) 사남(정석)의 모친(최 씨)이 다르다. 강 회장은 지난 70년대부터 박정재 씨와 사실상 별거에 들어갔고 강정석 전무의 생모인 최 씨와 함께 생활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 씨는 호적상 부인이었고 실생활이나 회사행사 등 각종 모임에 강 회장은 최 씨와 동반 참석했다. 일종의 역할분담이었던 셈이다.
하지만 이런 구도는 2004년 강문석 대표가 동아제약 대표이사직에서 전격적으로 밀려나면서 깨졌다. 박정재 씨는 이혼소송을 제기하고 자신이 대주주인 수석무역 대표로 아들 문석 씨를 불러들였다. 이어 박 씨 측은 동아제약 주식 매집에 들어갔다.
그 결과 현재 동아제약의 지분구도는 강 회장 측이 6.94%, 강 대표 측이 14.71%로 직계지분만 놓고 보면 강 대표 측의 ‘복수극’이 성공할 가능성이 커 보인다. 하지만 증권가에선 동아제약 주주 명부에 갑자기 등장한 한미약품(6.27%), 미래에셋자산운용(8.42%), KB자산운용(4.78%) 등 기관투자자들의 동향이 경영권 향방을 좌우할 것으로 보고 있다.
때문에 양쪽에선 우호세력 포섭에 열을 올리고 있다. 주총에서 표 대결에 질 경우 강 회장은 이름뿐인 회장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강 회장은 누구를 후계로 삼겠다고 구체적으로 언급한 바 없다. 다만 행동으로 강문석 전 동아제약 대표이사의 경영실적을 문제 삼아 그를 해임시켰다. 의약분리 실시 이후 잠깐 특수를 누린 뒤 매출부진이 계속되고 있는 책임을 그에게 물은 것이다. 하지만 강 대표는 이번 지분 매입 전쟁을 시작하면서 “동아제약이 발전하려면 경영권이 안정돼야 한다”는 논리를 내세웠다. 또 “주주총회에서 대결상대는 아버지가 아닌 이복동생인 강 전무다. 동아제약 발전을 위해 경영능력이나 현재의 인적 네트워크 등을 종합할 때 누가 나은지는 주주와 종업원이 잘 판단할 것”이라며 자신이 부친과 대결하는 ‘패륜아’가 아니라 ‘능력이 모자라는 동생’을 퇴출시키기 위한 것이라는 ‘명분’을 내세우고 있다.
하지만 이 부분에 대해 강 회장은 입을 다물고 있다. 부자간 지분 매집 경쟁이 공론화된 이후인 지난해 3월 그는 한 인터뷰에서 후계자에 대해 이렇게 언급했다.
“고생을 해야 사람이 되는 것인지 선천적으로 그런 성격을 타고 나는 것인지 모르겠어요. 어쨌거나 사장 자격이 있는 사람이 사장을 맡아야지요. 공사를 구분 못하거나 낭비벽이 있는 사람은 사장 자격이 없지요. 회사 돈과 주머니 돈을 구분할 줄 알아야 해요. 사장 자격이 없는데도 아들이라고 해서 회사를 맡으면 되겠습니까.”
▲ 아들 문석 씨. | ||
그는 “회사는 전문 경영인에게 맡기고 아들에게는 맞는 일을 찾아주는 것이 아들을 위해서도 좋지 않을까요. 나중에 회사가 망하는 것보다는 그게 낫지요. 큰 회사를 맡을 능력이 없는 아들에게는 작은 회사를 떼주거나 개인 사업을 하도록 도와주는 게 좋아요”라고 자신의 후계관을 분명히 했다. 그래서인지 두 사람의 생각 차이는 좀체 좁혀지지 않고 있다.
지난 1월 25일 오후에 있었던 부자 포옹 이벤트에서도 둘이 만났지만 어떤 합의도 이뤄지지 않았다. 강 회장과 강 대표가 포옹하는 ‘감격’적인 장면이 있다고 공개했지만 발표는 일방적으로 강 회장 쪽에서 했고 강 대표는 지하주차장을 통해 기자들을 따돌렸다. 대신 혼자 나타난 강 회장은 “다른 사람이 네가 일 잘한다 하면 아버지도 기분이 좋다. ‘좋은 평가를 얻어라’, ‘정직해야 한다’, ‘남을 먼저 생각하고 보살펴야 한다’고 충고했다”고 전했다. 아직 강 회장 입장에서 ‘강 대표가 일 잘한다’는 소식을 듣지 못했다는 얘기에 다름 아니다. 강 회장은 아직도 강 대표의 ‘능력’을 불신한다는 얘기다.
사실 강 회장은 포옹 이벤트 이전인 지난 22일 강 대표가 유충식 전 부회장을 끌어들여 지분을 14.71%까지 끌어올렸다는 소식을 듣고 “사람이 먼저 되고 난 다음에 경영을 하면 그 회사도 잘되는 것”이라며 문석 씨를 나무랐다. 결국 양측의 분위기는 주총 표대결이라는 진검승부 쪽으로 치닫고 있다.
강 회장 쪽에선 한미약품이나 미래에셋자산운용 등 기관투자자를 우호지분으로 끌어들이겠다는 복안을 갖고 움직이고 있다. 강 회장은 이를 어느 정도 확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강문석 대표는 ‘아버지에게 대드는 아들’이라는 이미지를 주지 않기 위해 이번 대결을 부자 대결이 아닌 이복형제 대결로 몰고 가려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강 회장은 이번 주총에서 강 대표의 승리를 인정하게 된다면 사실상 동아제약 경영일선에서 물러날 수밖에 없다.
게다가 강 회장은 이미 수차에 걸쳐 강 대표의 능력과 됨됨이에 대한 부정적인 발언을 해오고 있다. 부자가 만났지만 이런 평가와 인식은 달라지지 않고 있다. 부자전쟁이 후유증 없이 끝날 수 있을지 재계가 주목하고 있다.
프로필
1927. 5.13 경북 상주 출생
양정고 졸업
1952. 2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졸업
1955. 3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대학원 (의학석사)
1958. 8 독일 프라이부르크대학 (의학박사)
1966. 12 제16대 한국청년회의소 중앙회장
1967. 동아제약 상장
1971. 5 전국경제인연합회 이사
1974. 7 서울대학교동창회 부회장
1975. 2 동아제약주식회사 대표이사 사장
1977. 8 상주고등학교 재단이사장(현)
1981. 7 동아쏘시오그룹 회장(현)
1983. 2 서울대학교 의과대학동창회 회장
1983. 2 한국경영자총협회 부회장
1987. 2 한국제약협회 회장
1987. 5 재단법인 수석문화재단 이사장(현)
2000. 3 서울대학교 총동창회 고문 (현)
2004. 2.29대 전경련 회장
2005. 2.30대 전경련 회장(현)
김진령 기자 kj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