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 움직이는 ‘지하’의 힘
▲ 지난 22일 손 전 지사와 만난 김지하 시인.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하지만 그가 탈당을 결행하기로 결심한 것은 최소한 지난해 말이나 올해 초라는 게 그의 측근들 전언이다. 그와 가까운 한 관계자는 이에 대해 “손 전 지사는 조직도 없고 자금도 없다. 그래서 지난해 민심대장정을 통해 맨손으로 한번 지지도를 끌어올려 보려 했다. 국민 속으로 다가가는 새로운 정치실험이기도 했다. 하지만 민심대장정이 끝난 뒤 올해 초가 되어도 지지율은 정체를 거듭했다. 그때부터 손 전 지사 주변에서는 뭔가 대책이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가 많이 나왔다”고 밝혔다.
손 전 지사는 자신과 가장 가까운 측근들과는 거취 문제를 긴밀하게 협의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진다. 그들의 반대가 뻔했기 때문이다. 그는 시인 김지하 씨로 대표되는 자신의 주변 지지그룹을 통해 탈당과 관련한 조언을 청취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때 김지하 씨의 측근들도 광범위한 의견 청취를 통해 손 전 지사에게 “뭔가 획기적인 행동을 할 때”라며 탈당에 무게를 실은 조언을 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손 전 지사는 탈당 선언 일주일 전에 김지하 씨의 일산 자택을 전격 방문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김 씨의 한 측근은 이에 대해 “저녁에 김지하 선생을 방문해 약 3시간 동안 머물렀다. 그때 이미 손 전 지사는 나름대로 결심을 하고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김지하 선생을 만나 최종 결심을 한 것 같다. 손 전 지사는 김지하 선생과 토론하면서 두 사람이 ‘문예부흥’을 화두로 의견 일치를 보았다. 김지하 선생은 손 전 지사 개인을 지지하는 게 아니라 그와 측근들의 사상과 정책을 지지하는 것이라고 했다. 손 전 지사가 김지하 선생의 ‘문예부흥’을 가장 잘 꽃피워줄 것으로 기대한다고 했다. 이 자리에서 손 전 지사가 최종 결심을 한 것 같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김지하 씨는 손 전 지사의 탈당을 적극 권유했다는 주변의 의혹에 대해 “내가 그렇게 가볍지 않다. 탈당은 큰 사건이고, 본인이 알아서 할 문제지 내가 이래라 저래라 할 수 없다. 후배지만, 그런 말 듣고 움직일 사람도 아니고”라며 부인한 바 있다.
손 전 지사는 3박 4일의 강원도 ‘구상’을 끝낸 뒤 탈당 선언을 했다. 그리고 곧바로 김 씨에게 전화를 걸어 자신의 결심을 밝혔다고 한다. 이에 김 씨는 손 전 지사에게 “고뇌에 찬 결정이다. 고마운 일이다. 좌와 우의 피비린내 나는 역사에서 그 험한 중도의 가시밭길을 가는 것이다. 집으로 왔으면 모셔놓고 절이라도 했을 것”이라며 손 전 지사에 대한 넘치는 애정을 보여주었다고 한다.
한편 손 전 지사의 강원도 구상 때 기자들은 그를 찾기 위해 전국의 유명한 산사에는 거의 모두 전화를 걸어보는 등 한동안 야단법석을 떨었다고 한다. 하지만 손 전 지사는 수행비서도 두 차례 바꾸며 ‘도망’다니는 동안 철저하게 기자들을 따돌리는 등 양측의 숨바꼭질은 계속됐다. 이 과정에서 강원도 지역기자들이 강원지방경찰청 정보과 형사들을 통해 손 전 지사의 검정색 SUV 차량 행적을 추적해 그가 백담사에 있는 것을 알아냈던 것으로 알려진다. 한편 청와대는 손 전 지사가 강원도의 절로 잠행을 했을 때 ‘탈당을 할 수도 있다’는 보고를 이미 받았던 것으로 알려진다. 노 대통령의 첫 반응은 알려지지 않았다. 청와대는 국정원과 경찰을 통해 손 전 지사의 움직임을 시시각각 보고받았던 것으로 알려진다.
성기노 기자 kin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