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최고의 숙제 풀고 “신고합니다!”
▲ 프로농구 우승과 결혼 그리고 입대까지. 숨 가쁜 스케줄을 소화하고 있는 양동근의 얼굴에서 ‘승자’만의 여유로움이 느껴진다. 오른쪽은 이제 아내가 된 여자친구 김정미 씨와 함께(연합뉴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6개월가량의 대장정을 끝내고 챔피언결정전 7차전까지 치러낸 양동근의 몸과 마음은 한마디로 ‘넉다운’이다. 더욱이 인륜지대사인 결혼식을 코 앞에 둔 상태에서 우승 뒤풀이를 하러 다니는 심경이 결코 편치만은 않을 것이다. 5월 6일 웨딩마치를 올리고 5월 14일 상무에 입대하는 ‘환상적인’ 스케줄도 그의 부담을 배가시켰다. 그래도 이 남자는 유쾌하게 웃어 제쳤다. 시원스런 목소리에 거침없는 웃음으로 온몸에 덕지덕지 묻어 있는 피로와 피곤함을 떨쳐내려 애썼다.
‘악바리’ ‘바람의 파이터’ ‘모비스의 심장’ 등 다소 쎈 별명들로 이미지화돼 있는 양동근은 올시즌 모비스를 통합우승으로 올려놓고 정규리그와 플레이오프 통합 MVP에 오르는 등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다. 결혼식 전 예비 신부에게 우승 반지를, 군 입대 전 부모님께 우승 반지와 함께 보너스를 선물로 안긴 ‘퍼펙트한 시나리오’의 주인공 양동근과 가볍게 취중토크를 나눴다.
지난 5월 3일 양동근을 만난 시간이 저녁 7시였다. 출출할 것 같아 야외에 마련된 고깃집을 찾았고 고기와 함께 자연스레 소주 한 병도 곁들여졌다. 동석한 모비스 관계자와 함께 우승 축하주, 결혼 축하주를 차례로 주고받았지만 새신랑이 될 사람의 컨디션 조절(?)을 위해 술은 한 병으로 만족해야 했다.
농구계에서 ‘이기적인 몸매’로 소문난 몸짱, 얼짱 양동근이 유부남이 되기 직전 가진 인터뷰를 정리해 본다.
―지금 정신없죠? 실제로도 정신이 없어 보여요.
▲마음만 급해요. (챔피언결정전) 5차전 때 끝냈으면 지금쯤 인사 다 드리고 편하게 결혼식을 준비했을텐데 저 때문에 5, 6차전을 망치고 7차전까지 가는 바람에 (준비할) 시간이 줄어들었어요. 지난해 8월 WBC(월드바스켓볼챌린지) 이후부터 도하아시안게임과 올시즌까지 단 하루도 쉼 없이 달려온 것 같아요. 그러다 모든 일정이 스톱되니까 긴장이 풀려서인지 코감기까지 걸렸어요.
―인터뷰를 하고 있는 것 자체가 미안할 정도네요.
▲어휴 그렇지 않아요. 이런 인터뷰, 아무나 하는 것 아니잖아요. 오히려 제가 감사해야죠.
―립 서비스라도 그렇게 말씀해 주셔서 고마워요. 이번 시즌 가장 힘들었던 게 뭔가요.
▲6라운드 초반이 고비였어요. 저도 그렇고 팀도 힘들어 했죠. 분위기가 가라앉았는데 쉽게 업이 되지 않더라구요. 사실 누구의 도움을 기대할 수는 없어요. 제가 잘 알아서 풀어가야 해요. (어떻게 풀어가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말씀드리면 ‘재수없다’고 생각하실텐데…. 책 읽는 걸 좋아해요. 특히 이우혁 작가가 쓴 <치우천황기>를 아주 재미있게 읽었어요. 이우혁 작가 아시죠? <퇴마록>쓰신 분 있잖아요. <퇴마록> ‘국내편’부터 ‘말세편’까지 19권을 모두 6번이나 다시 읽었어요. 이게 스트레스 푸는 데 최고예요.
―챔피언결정전 7차전까지 치르면서 기복이 좀 있었어요. 사실 기복이 없다면 사람이 아니겠죠?
▲5차전까지만 해도 컨디션 최고였어요. 그런데 연장까지 가서 지는 바람에 분위기가 급 다운됐죠. 그날 잠을 못 이뤘어요. 너무 화가 났고 아쉽기도 했구요. 우승해서 결혼도 해야겠는데 ‘혹시나’ 싶은 불안감이 엄습했죠. 하지만 단 한 번도 질 거란 생각은 해보지 않았어요.
―소속팀뿐만 아니라 다른 팀 선수들의 칭찬이 자자해요. 포인트가드로서 실력이 너무 빼어나다는 거죠.
▲(웃으면서) 제가 그동안 깔아 놓은 게 많거든요. 그래서 형들이 제 얘길 잘 해줘요. 모난 행동 안 하려고 노력했어요. 또 그런 점을 좋게 봐주신 분들도 많았구요. 운동은 자신감이 굉장히 중요한 것 같아요. 왜 ‘운칠기삼’이란 말 있잖아요. 전 운이 90% 이상은 된다고 생각해요. (너무 겸손한 멘트라는 지적에) 절대 가식 아니에요. 운때가 잘 맞았어요. 게다가 주변 환경과 동료 선수들과의 호흡이 절묘했죠. 물론 프로 초반에 개인 훈련을 통해 슈팅가드에서 포인트가드로의 보직 변경에 적응하려 노력했지만 제 노력은 지금 이룬 것에 비하면 10%도 채 안 될 거예요.
▲ 양동근은 ‘이기적인 몸매’로 유명하다. 화보촬영 땐 동료들 중에서 유일하게 상반신 누드를 촬영했다. 여자친구가 본인 탓에 눈이 높아졌다고. 이 대목에서 모두 “하하하!”. | ||
▲아주 아주 멋진 친구예요. 전 패스를 못하고 시야가 좁은 단점이 있어요. 하지만 윌리엄스는 그 반대거든요. 제가 윌리엄스의 발에 패스를 해도 그걸 받아서 슛으로 성공시키는 스타일이에요. 사석에서 자주 같이 밥을 먹었는데 그때마다 윌리엄스는 절 추켜세우느라 정신이 없어요. 넌 최고의 친구고 널 만난 게 나한테는 최고의 행운이고 이번 우승은 너로 인해 만들어질 수 있을 것이라는 주옥같은 레퍼토리를 들려줬어요. 파트너를 최고의 선수로 만들어주고 인정하면서 자신을 한껏 낮추는 선수죠. 용병 중에 그런 마인드를 가진 선수 없을 걸요? 제 결혼식 전에 출국할 예정이던 윌리엄스에게 졸랐어요. 파트너의 결혼식은 보고 가야 한다구. 다음 시즌부터 용병들의 드래프트가 시행되면 윌리엄스가 계속 우리 팀에 남을지 어떨지는 아직 미지수예요. 하지만 그 친구는 제가 모비스에 있는 한 꼭 이 팀에 있을 것이라고 약속했어요. 꾹 믿고 있습니다.
―챔프전에서 우승은 어느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또 다른 감동일 거예요. 반복되는 멘트일 수도 있는데 다시 한 번 우승 소감을 복기해 본다면?
▲유재학 감독님이 7차전 시작하기 전에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영웅이 되든 역적이 되든 모든 건 너희들 하기 나름이다. 하지만 역적보단 영웅이 되기 위해 오늘 우리 자신을 불살라 보자”라구요. 저만 잘 한 게 절대 아니에요. 음지에서 싫은 내색하지 않고 그 자리를 지켜준 선수들의 힘이 더 컸어요. 우승이 확정된 후 한 명씩 껴안는데 정말 눈물이 마구 나더라구요. 가슴 뭉클한 감격시대를 연출했던 거죠.
―몸매 얘길 안 할 수가 없어요. 선수들 사이에선 ‘양동근의 몸=이기적인 몸매’라고 하던데 자신도 그렇게 생각해요?
▲제가 봐도 좋은 것 같아요. (기자가 눈을 흘기자) 하하 근데 팔뚝은 얇은 편이에요. 옷 입고 있으면 잘 몰라요. 벗으면 제 진가가 나타나죠. 지난해 말, 어떤 계기가 돼서 선수들과 함께 화보 촬영을 하게 됐어요. 그때 사진을 일본 작가가 찍었는데 ‘쫄티’를 입은 선수들을 쭉 훑어보다가 절 지목하고선 옷을 벗어보라고 하시더라구요. 몸매가 예술이라면서요. 그때 저만 상반신 누드를 찍었어요. 창피했냐구? 아뇨. 너무 기분 좋았는데요. 촬영 당시에는 기분이 좋았는데 그 사진이 코엑스 전시장에 걸리고 소속팀에서 브로마이드로 만들어 뿌리며 엄청 창피해졌죠. (옆에 있는 구단 관계자에게) 제발 그런 것 좀 하지 마세요^^. 덕분에 별 얘기 다 들었어요. 어떤 선수는 제 가슴이 너무 처졌다고 놀려대질 않나, 또 다른 선수는 꼭지가 너무 돌출댔다고 뭐라고 하구…. 에구 말 마세요.
―여자 친구, 아니 예비 신부가 좋아했겠어요.
▲전혀 반응 없던데요? 하긴 그 친구는 대학 1학년 때부터 제 몸을 봤으니까요. (갑자기 정색하며) 아니 수영장에서요. 오해하실까봐… 하하. 제 여자친구는 남자들 배 나오는 걸 이해 못하는 사람이에요. 저 때문에 눈이 높아져서…. 죄송합니다^^:;
▲ 지난 1일 프로농구 챔피언결정전 7차전 울산 모비스와 부산 KTF의 경기에서 양동근이 슛을 쏘는 모습. 그는 정규리그와 플레이오프 통합 MVP에 오르는 등 물오른 경기감각을 보여주고 있다. 연합뉴스 | ||
▲체력이 좋다는 얘기죠? 어렸을 때부터 키가 작아서 뛰는 것만큼은 남에게 지지 말자고 생각했어요. 중학교 1학년 때 키가 138cm였어요. 동료 선수들이 170cm를 넘어섰을 때 전 ‘난장이’나 마찬가지였죠. 키가 작아서 그런지 농구를 포기하라는 얘기 정말 많이 들었어요. 그런데 제가 한 오기 하거든요. 작은 키를 커버하려면 스피드와 체력이 절대적이더라구요. 그때부터 집중적으로 그 부분에 투자를 하게 됐죠.
―대학 입학 전에 불러주는 대학이 없었다면서요? 한양대에 막차 탔다는 것도 사실인가요?
▲네. 진짜 그래요. 설령 대학에 못 들어갔다고 해도 크게 낙담하지 않았을 거예요. 어떤 형식으로든 농구를 했을 테니까요. 한양대에 어렵게 들어가긴 했지만 생활이 힘들지는 않았어요. 워낙 좋은 스승을 만났고 그 테두리 안에서 양동근이 새롭게 성장할 수 있었죠. 전 위기를 위기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위기가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제 삶을 통해 체험해 왔으니까요.
―여자친구, 아니 이 신문이 나올 때 쯤이면 아내가 돼 있을 김정미 씨 얘기를 해볼 게요. 언론에 김정미 씨가 자주 노출됐어요. 그러다보면 이런저런 소문들에 휩싸일 법도 한데 어땠나요?
▲전 숨기는 연애가 싫었어요. 대학 1학년 때 만나 7년째 사귀고 있는데 그리고 그 사람이랑 결혼할 건데 굳이 숨길 이유가 없잖아요. 소문이요? 전 신경 안 써요. 인터넷 악플도 읽어보고 잊어 버려요. 힘들었다면 여자친구가 더 힘들었겠죠. 그래도 저보다 더 강단이 있는 친구라 저한테 내색한 적 없었어요. 저희가 호텔에서 결혼하거든요. 남들이 욕할지 몰라요. 호화 결혼이라면서. 솔직히 진짜 무리해서 하는 거예요. 그런데 신부를 위해 그것만큼은 해주고 싶었어요. 2년 동안 남편 없이 혼자 지내야 하니까 신부에게 선물로 대신한 거예요. 너무 뭐라고 하지 않으셨음 좋겠어요.
―부모님이 힘들게 뒷바라지 하셨다면서요?
▲저 이 얘기하면 눈물나는데…. 대학 1학년 때 집안끼리 안 좋은 일이 생겨서 부모님이 참 힘든 생활을 하셨어요. 제가 좀 더 크고 어른이었다면 부모님을 도와드렸을 텐데 그저 지켜만 보고 있었거든요. 어찌나 가슴이 아프던지. 그래도 대학 1학년 때 신인상 받고 그 상처를 조금이나마 치유하게 됐죠.
양동근은 ‘어머님과 장모님 치아가 안 좋아서 치료를 해드려야 하는데 그냥 군대에 가게 돼 죄송하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두 분의 좋지 않은 치아가 걸리는지 ‘이 해드려야 하는데…’를 계속해서 반복했다. 신혼여행에서 돌아오면 곧장 상무에 입대하는 처지라 양동근은 결혼 예물이나 혼수 등을 거의 준비하지 않았다고 한다. “결혼 반지랑 시계만 있으면 되는 거 아니냐”면서 말이다. 역시 ‘나이스 가이’다.
이영미 기자 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