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과 일 둘 다 잡은 ‘브라운관의 여왕’
▲ 드라마 <내 남자의 여자> 제작발표회 현장에서 김희애. 어떤 파격 변신이라도 어색하지 않게 자신만의 색깔을 만들어내는 그녀는 역시 연기의 여왕답다.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 ||
# CF 스타 출신 배우
김희애가 연예계에 데뷔한 것은 그가 제일모직 CF 모델이 된 82년으로 당시 혜화여고 1학년이었다. 여고시절 CF 모델로 활동하며 얼굴을 알리기 시작한 김희애는 85년에는 당대 최고의 CF로 꼽혔던 한국화장품 CF 전속 모델이 됐다.
연기 데뷔작은 83년 영화 <스무 해 첫째 날>이지만 배역이 작았고 본격적인 연기 활동은 고교 졸업 이후인 85년부터 시작됐다. 중앙대 연극영화과에 입학한 뒤 영화 <내 사랑 짱구>와 <불의 회상> 등에 주연 배우로 출연했다.
비슷한 시기 MBC <베스트극장>과 KBS <전설의 고향> 등의 단막극을 통해 브라운관에서도 활동을 시작한 김희애는 86년 KBS 일일드라마 <여심>에 여자 주인공으로 캐스팅돼 화제가 되기도 했다. 당시 일일드라마의 폭발적인 인기를 감안할 때 CF를 통해 얼굴을 알린 신예가 주인공이 된 것은 상당한 화젯거리였다. 제작진의 기대에 부응한 김희애는 <여심>을 통해 KBS 연기대상과 백상예술대상 신인상을 수상했다.
요즘은 김희애처럼 CF를 통해 스타로 발돋움하는 이들이 많다. 김아중 이하나 김선아 등이 대표적인데 당시만 해도 CF 모델이 배우로 성공하는 사례가 흔치 않았다. 공중파 방송국 공채 출신 탤런트들이 득세하던 시기에 혜성처럼 나타난 CF 출신 스타였던 셈. 이후 최진실과 이영애 등이 김희애의 뒤를 이어 CF 출신 스타의 계보를 이었다. 결혼과 이혼을 거치며 공백기를 가졌던 최진실은 요즘 일일드라마 <나쁜여자 착한여자>에서 열연을 펼치고 있으나 예전의 인기에는 못 미치고 이영애는 여전히 톱스타의 반열을 지키고 있으나 김희애처럼 활발한 활동을 보여주진 못하고 있다.
# 안방극장 간판스타
영화를 통해 연기 활동을 시작한 김희애는 <여심> 이후 드라마에 집중하며 90년대 초반을 대표하는 브라운관 간판스타로 성장했다. 91년과 93년에는 MBC 연기대상과 백상예술대상을 동시 석권하는 영예를 누렸다. 시청자들이 지금도 기억하는 김희애의 대표 드라마인 <아들과 딸> <폭풍의 계절> <까레이스키> 등이 바로 이 시기에 방영된 작품들이다. 잠시 영화계에서도 화제가 되기도 했는데 최근 드라마로 리메이크된 <101번째 프러포즈>에 출연해 좋은 성적을 올리기도 했다.
▲ 불륜녀로 분한 드라마에서 망가진 모습. | ||
특이한 부분은 김희애는 소속사의 힘을 빌지 않고 스타의 반열에 오른 연예인으로도 분류할 수 있다는 점이다. 당시 활동하던 브라운관 간판스타의 대다수가 연예기획사 소속이었던 데 반해 김희애는 데뷔 시절부터 결혼까지 10여 년 넘게 어머니가 실질적인 매니저로 활동하며 그를 도운 것. 90년대 연예계에서 김희애의 모친은 김혜수 오연수의 모친과 함께 ‘3대 어머니 매니저’로 유명세를 떨쳤을 정도다.
# 재벌가로 시집간 스타
90년대 중반 방송계는 ‘3대 브라운관 간판스타 시대’에서 ‘전국 시대’로 넘어갔다. 90년대 초반부터 인기몰이를 시작한 김혜수 최진실 오연수 하희라 고현정 심은하 등이 대거 톱스타의 반열에 오른 것. 김희애가 한창 브라운관에서 활동하던 90년에서 96년 사이는 그 유래를 찾아보기 힘든 드라마 전성시대로 역대 시청률 상위 10위권 드라마 가운데 절반 이상이 당시 방영된 드라마일 정도다.
드라마 전성시대를 대표하는 여배우로 왕성한 활동을 보이던 김희애는 96년 돌연 결혼을 발표했다. 상대는 당시 ‘한글과 컴퓨터’ 대표였던 이찬진 드림위즈 대표로 벤처 열풍이 한창이던 그 시절엔 상당히 충격적인 뉴스였다. 벤처 열풍이 워낙 거세 잘나가는 벤처기업 CEO면 재벌급으로 구분되던 시절이라 당시 연예계에선 삼성가로 시집간 고현정도 부럽지 않은 혼처라는 얘기까지 나돌았을 정도다.
▲ 드라마 포스터 촬영 모습. | ||
그런데 김희애는 3년 반 만인 99년 4월 MBC 일일드라마 <하나뿐인 당신>으로 연예계에 컴백했다. 한 해 먼저 결혼한 고현정은 물론, 이후 재벌가와 결혼한 이지은 한성주 등이 결혼 이후 연예계를 떠났던 데 반해 김희애만 유일하게 연예계 복귀를 선언한 것이다. 이후 고현정 역시 연예계로 돌아와 톱스타의 면모를 되찾았으나 이혼 이후 컴백이라는 점에서 김희애와 차이점을 갖는다.
# 김수현의 페르소나
제2의 전성기를 보내고 있는 김희애는 이제 대한민국 최고의 드라마 작가로 꼽히는 김수현의 ‘페르소나’(분신) 자리를 굳힌 듯 보인다. 물론 그 과정이 순탄했던 것은 아니다.
99년 <하나뿐인 당신>으로 컴백했던 김희애는 다시 연기 활동을 중단하게 된다. 벤처 열풍이 잦아들면서 유명 사업가의 아내, 두 아이의 엄마로 돌아온 김희애가 가정주부로서의 삶에 더 큰 애착을 보인 것.
다시 연기활동을 재개한 것은 2003년 초. 유동근 엄정화와 호흡을 맞춘 <아내>를 통해 시청자들에게 호평을 이끌어낸 김희애는 같은 해 10월 드라마 <완전한 사랑>을 통해 비로소 ‘김수현 사단’에 합류하게 된다. 이후 김희애는 <부모님 전상서> <눈꽃>(김수현 작가가 대본을 쓰진 않았지만 그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드라마임) 등에 연이어 출연하며 김수현의 새로운 페르소나로 거듭났다. 그리고 현재는 <내 남자의 여자>를 통해 파격적인 불륜 연기를 소화해내고 있다.
이처럼 김희애는 활동 시기에 따라 다양한 분류가 가능한 여배우지만 같은 부류로 분류된 동료 연예인과는 또 다른 형태로 연기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그러고 보면 김희애는 이런 분류 어디에도 포함되지 않는 여배우인지도 모른다. 끊임없이 변화를 추구한 그의 열정이 지금의 김희애를 만든 게 아닌가 싶다.
신민섭 기자 lead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