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시너지’는 없고 어깨만 뻐근한 겨
▲ 친노 대표주자인 이해찬 전 총리는 참여정부의 공과에 대해 국민들에게 수긍할 만한 답변을 내놓아야 한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지난 9월 27일 대통합민주신당의 광주·전남 경선 합동연설회장에서 내놓은 이해찬 전 총리의 발언이다. 최근 토론회 등을 통해 ‘버럭해찬’이라는 별명을 다시 상기시키고 있는 이 전 총리는 이날 정동영 전 열린우리당 의장과 손학규 전 경기지사를 상대로 공격을 쏟아내며 각을 세웠다.
대통합민주신당 경선이 과열되면서 후보 간 비방전의 수위도 점차 높아지고 있다. 초반 경선 4연전에서 정동영 전 의장이 ‘예상외의 1위’를 기록하자 ‘대세론’을 주장하던 손학규 전 지사는 잠적 소동을 벌인 뒤 경선대책본부와 선거캠프 해체라는 초강수를 두면서 맞대응하고 있고 ‘친노 후보’ 단일화에 성공한 이해찬 전 총리는 그 여세를 몰아 두 사람 모두를 잡겠다는 각오다.
경선 초반 이 전 총리의 지지세가 미약했던 게 사실이다. 그러나 한명숙 전 총리와의 후보단일화를 먼저 성사시킨 데 이어 유시민 전 장관까지 경선에서 사퇴하고 이 전 총리를 지지하면서 기세가 올랐다. 이 전 총리의 선거캠프에 대해 언론에서는 ‘친노 드림팀’이라는 수식어까지 붙이기도 한다. 하지만 친노 후보 단일화 이후 선두 탈환을 노리고 있는 이 전 총리 측의 바람과는 달리 아직까지 후보 단일화의 효과는 기대한 만큼 크게 나타나지 않고 있다는 분석이다. 단일화 후 처음 치러진 광주·전남 경선에서 3위로 처졌으며 승리를 장담하던 부산·경남 경선에서도 2위에 그쳤기 때문이다. 친노 대표주자로 나선 그가 과연 대통합민주신당 대선후보로서 범여권 단일후보로 선출돼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와 대결을 펼칠 수 있게 될까.
“참여정부에 대해 실정이라 단정해선 안 된다. 다만 공과를 모두 끌어안겠다는 입장이다.” ‘친노 대표주자’가 된 이해찬 전 총리의 정치적 입장은 한마디로 이것이다. 참여정부에서 국무총리를 지낸 그로서는 자신에 대한 평가는 참여정부에 대한 비판적인 평가와 맞물려 있다. 이 전 총리는 친노 대표주자로서 노무현 대통령의 전폭적인 지원을 기대할 수도 있지만 노 대통령에 대한 국민들의 냉소적인 시선을 어깨에 짊어지고 가야하는 입장이다. 타 후보와의 토론회에서도 이 전 총리는 이 ‘약점’을 종종 공격받고 있다. 더구나 한명숙 전 총리와 유시민 전 장관까지 ‘한 배’를 탄 지금 이 전 총리는 참여정부의 공과에 대한 국민들이 수긍할 만한 ‘마땅한’ 답변을 내놓아야 한다. 이 전 총리 측은 이에 대해 “성공한 측면도 있고 실패한 부분도 있다. 역대 어느 정부보다 깨끗한 정치를 했으며 경제 부분도 코스피 지수 2000을 넘나들 정도로 IMF 이후 무너졌던 경제가 살아나고 있다”는 항변을 하고 있다. “참여정부의 정책 방향에 대해 국민들이 제대로 평가하지 않았다”며 ‘소통 부재’도 이유로 내세우고 있지만 아직 국민들 속으로 파고 들어가고 있지는 못하다.
그런 가운데 한나라당 의원들이 대통합민주신당의 대선 예비후보 중 가장 껄끄러운 상대로 이 전 총리를 가장 많이 꼽았다는 지난달 18일의 한 조사 결과는 어떤 의미에서는 이 전 총리의 강점을 가장 잘 설명한 것이기도 하다.
이 전 총리의 강점은 그가 충청권 출신이라는 것과 노무현 대통령의 직접 지원을 받는 친노 후보라는 점이다. 대선의 지렛대가 될 가능성이 높은 충청을 연고지로 한 이 전 총리가 범여권 후보가 될 경우 이른바 호남·충청권 대 영남의 동서벨트 대결 구도가 형성될 수 있다. 또 노 대통령이 아무리 레임덕현상에 빠져 있어도 ‘살아있는 권력’의 적극적인 지원을 무시할 수 없다. 이 전 총리 측의 한 의원은 “국민의 정부와 참여 정부에서 요직을 두루 거친 이 전 총리는 노 대통령과 김대중 전 대통령의 지지를 동시에 받을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이 전 총리가 상당히 논리적, 공격적이며 토론에 강하다는 점도 장점이다. 총리 경험을 통해 국정 수행 능력을 쌓았다는 것도 무시못할 대목이다.
이 전 총리의 꼼꼼함은 유명하다. ‘숫자해찬’이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로 각종 통계수치를 정확히 꿰뚫고 있다. 총리직을 수행할 당시 수첩 세 개를 들고 다니며 여러 가지 현안을 빠짐없이 챙겼던 그는 대선 후보 토론회에서도 타 주자들이 구체적인 수치에 대해 잘못된 내용을 얘기할 때마다 곧바로 ‘지적’하기도 했다. 손학규 전 지사는 이후 “수치 이야기는 이해찬 후보에게 물어보라”고 언급했을 정도. 이 전 총리도 생방송 토론회 도중 직접 양복 안주머니에 있는 수첩을 꺼내 보이며 자신의 꼼꼼한 성격을 ‘자랑’한 바 있다.
이 전 총리는 추석 전 벌어진 제주 울산 충북 강원 경선에서 3위에 그쳤다. 그러나 유시민 전 장관의 사퇴로 친노후보 단일화가 이루어진 후에 실시된 강원 경선에서 1위를 차지해 한껏 고무된 표정이다. 추석 전 ‘주말 4연전’ 결과 정 전 의장은 모두 1만 3910표(43.2%)를 얻어 9368표(29.1%)의 손 전 지사를 제치고 1위로 나섰다. 8925표(27.7%)를 얻은 이 전 총리는 종합 전적에서 비록 3위에 그쳤지만 유시민 전 장관이 ‘친노 단일화’를 선언한 뒤에 벌어진 강원 경선에서 2751표로 1위로 올라서 종합 전적에서 2위인 손 전 지사에게 443표차로 따라붙었다. 유시민 전 장관이 후보 사퇴 전 제주·울산에서 얻은 2890표를 이 후보 표에 포함시킨다면 2위인 셈이다. 광주·전남 경선에서는 3위에 그쳤지만 부산·경남 경선에서는 근소한 차이로 2위를 차지, 앞으로 단일화의 효과가 점점 더 크게 나타날 것으로 자신하고 있다.
▲ 이해찬 전 총리(왼쪽)와 유시민 전 장관. | ||
이 전 총리 캠프는 공동선대위원장을 맡고 있는 한명숙 전 총리와 유시민 전 장관, 신기남 전 의장의 지지층을 흡수한다는 전략을 세우고 있지만 유 전 장관이 이해찬 캠프의 선대위원장을 맡고 있는 것에 대해 타 주자들의 ‘견제심리’도 적지 않다.
애초부터 ‘정치적 사제관계’로 불리는 유 전 장관이 이 전 총리와 맞서 대선 주자로 나설 때부터 국민의 시선을 끌기 위한 ‘쇼’가 아니냐는 소리가 없지 않았다. 또 유 전 장관의 누나인 유시춘 씨가 이해찬 캠프에 합류했다는 소식이 들렸을 때 결국은 유 전 장관도 이 전 총리를 돕게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기도 했다. 두 사람의 남다른 행보가 관심을 끌고 여기에 ‘노심’이 개입돼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더해지면서 이 전 총리에 대한 견제심리가 더해지고 있는 것이다. 정 전 의장이 “이 후보가 초반엔 안 그랬는데 유시민 의원이 선거대책위원장을 맡더니 기조가 ‘이반유반(李半柳半·이해찬 반, 유시민 반)’으로 바뀌었다”고 비꼰 것도 이런 점을 지적한 것이었다.
이해찬 전 총리도 이를 의식한 듯 유시민 전 장관과의 ‘관계’에 대해 홈페이지에 직접 글을 올려 소회를 밝혔다. 이 전 총리는 “나는 후배 시민이의 거침없음과 번뜩이는 감수성을 사랑했고 유시민 후보는 선배 이해찬의 날카로움과 뚝심을 자랑했던 것 같다. 노무현 대통령을 지키기 위해 같이 싸우고, 수구 언론과 싸우고, 한나라당과 싸우면서 함께 걷는 길은 낙이 없어도 함께 걷기 때문에 즐거운 길, 그것이 저와 유시민 후보가 함께 걸어온 길”이라며 후보단일화의 ‘배경’에 대한 설명을 내놓았다.
현재 이 전 총리 진영에는 참여정부에서 요직을 지낸 많은 인사들이 포진해 있다. 최근에는 현직 환경부 장관이 사표를 내고 이 전 총리 캠프에 몸을 실었다. 친노인사들의 모임인 참여정부평가포럼도 이 전 총리를 지지한다.
‘친노 주자’라는 타이틀과 함께 대선주자로서 이 전 총리가 가진 몇 가지 극복해야 할 사안이 있다. 우선 그가 대중적 호감도가 낮다는 점이 큰 핸디캡 중 하나다. ‘인상이 무섭고 딱딱해 보인다’는 평가를 듣고 있는 이 전 총리에 대해 캠프 내에서도 ‘많이 웃으라’는 주문을 수차례 권했다고 한다. 이 전 총리도 방송 토론회에서 “안경을 바꿔보라고도 해서 바꾸었는데 알아보지를 못한다”며 ‘이미지 메이킹’을 위해 남다른 노력을 하고 있음을 밝히기도 했다. 또 한 인터뷰에서는 “어렸을 땐 예쁘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이 전 총리의 골프파문도 두고두고 그의 발목을 잡고 있다. ‘3·1절 골프파문’으로 총리직까지 사퇴해야 했던 이 전 총리는 네티즌들로부터 ‘골프해찬’이라는 별명까지 붙여졌을 정도다. 그는 이 점에 대해 공격받을 때마다 사죄를 하고 있으나 한 인터뷰에서는 “언론이 너무 (나를) 흔들었다”고 언급했을 정도로 언론에 대해 상당한 ‘서운함’도 남아있는 듯하다. 이 전 총리는 골프파문으로 인해 정 전 의장과도 ‘껄끄러운’ 관계를 만들었다. 이 전 총리가 골프파문으로 총리직에 대한 사임 압력을 받고 있던 당시 열린우리당 당의장에 복귀한 정 전 의장은 5·31지방선거에 미칠 파장을 고려해 노 대통령에게 이 총리 사임을 건의했었다.
이 전 총리는 한나라당의 이명박 후보에 대해 “권투로 말하면 플라이급이나 라이트급밖에 안 된다”며 “열린우리당 후보들은 최소한 미들급은 된다. 한방이면 그냥 간다”고 주장했다. 또 “선거를 많이 기획해 봐서 아는데, 이런 정도의 상황은 2002년 대선 때보다 훨씬 쉽다”고 말하기도 했다. 과연 이 전 총리가 험난한 당내 경선을 이겨내고 한나라당 이 후보를 ‘한방에’ 보낼 수 있을지 궁금하다.
조성아 기자 lilychic@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