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시느냐 마느냐 달콤한 ‘독배의 유혹’
▲ 신당 새 대표에 ‘손학규 추대론’이 일고 있는 가운데 그의 정치행보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사진은 지난 12월 20일 대통령 선거 선대위 해단식에 참석한 손 전 지사.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 ||
손 전 지사가 신당 내 계파 갈등의 ‘태풍의 눈’으로 급부상한 것은 초선들의 반란이 시작됐던 지난 연말로 거슬러 올라간다. 구랍 25일과 27일 문병호 의원 등 초선의원 19명 모임은 현 지도부의 즉각 사퇴와 참여정부에서 요직을 지낸 인사들의 백의종군을 거듭 촉구하면서 대대적인 인적쇄신론에 불을 지폈다. 인적쇄신 대상은 참여정부에 참여했던 총리와 장관, 당을 이끌었던 당 의장과 원내대표로 구체화했다. 사실상의 ‘살생부’로 이들의 주장대로라면 대선후보였던 정동영 전 장관을 비롯해 10여 명이 넘는 중진들이 대거 물갈이 대상에 포함된다.
이는 역으로 손 전 지사만이 침몰 위기에 처한 신당을 구할 유일한 대안이라는 복선이 깔려 있다. 새 지도부 구성 문제와 관련해 ‘손학규 추대론’이 급부상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합의 추대냐 경선이냐를 놓고 계파간 힘겨루기가 고조되고 있는 상황에서 당 쇄신위는 3일 ‘당 대표 합의추대’를 골자로 하는 쇄신안을 발표해 갈등 불씨에 기름을 부었다. 나아가 당 규율을 해친 인사에 대한 엄중 문책과 비리·부정 등 구시대 정치행태로 국민의 지탄을 받은 인사의 후보군 제외 등 인적 쇄신안도 내놓았다. 사실상 참여정부와 열린우리당, 신당의 전 지도부들을 배제하는 대신 손 전 지사 추대를 염두에 둔 듯한 쇄신안이었다.
인적쇄신 대상으로 지목된 중진들과 경선을 주장하고 있는 계파들이 거세게 반발하고 나선 것은 어쩌면 당연한 생존 본능일 수 있다. 경선만이 유일한 해법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정대철 상임고문은 이날 오전 최고위원회의에서 “비민주적으로 당 대표를 봉헌하는 식으로 쇄신안을 만들면 되느냐”며“경선하자는 사람을 놓고 경선하지 말자고 하는데 당이 제대로 가겠느냐. 당 깨진다”고 격노했다.
천정배 의원은 “합의 추대로 구성된 지도부가 강력한 리더십을 가지고 쇄신을 이끌어낼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반발했고 정 전 장관과 가까운 김한길 의원도 “합의추대는 봉합론에 불과하다”는 반론을 펼쳤다. 또 대선 과정에서 정 전 장관을 지원했던 염동연 의원은“당원 의사도 묻지 않고 합의추대를 하면 당은 파국으로 몰릴 것”이라고 경고하고 나섰다.
반면 손 전 지사 추대를 주장해온 수도권 초·재선과 386의원들은 당 쇄신안을 지지하며 ‘손학규 추대론’확산에 주력하고 있는 모습이다. 최재성 의원은 “경선하자는 일부 주장 때문에 완벽한 합의가 어렵지만 합의추대에 대한 지지가 압도적으로 많다”며“합의추대안이 중앙위에서 통과되리라고 본다”고 강한 자신감을 보였다.
이처럼 새 지도부 인선 방식을 놓고 계파간 대립이 심화되고 있는 가운데 인적쇄신론에 불을 지핀 초선 모임은 쇄신위가 내놓은 방식에 조건부 수락 입장을 밝혀 극적인 타협 여지를 남겨놓고 있다. 초선 모임을 이끌고 있는 문병호 의원은 4일 한 라디오 프로에 출연해 “손 전 지사가 전면적인 혁신 작업의 기치를 내건다면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신당 창당과 대선 과정에서 외부인사 영입작업이 순탄치 않았다는 상황 인식과 전대 일정(2월3일) 등을 감안하면 경선을 통한 지도부 선출은 시간적 한계가 있다는 현실론이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는 합의추대 대상으로 손 전 지사가 유력하게 부상하고 있다는 점에 미뤄 이들 초선들도 ‘손학규 추대론’에 무게중심을 이동하고 있는게 아니냐는 관측을 낳고 있다.
이처럼 지도부 인선 방식과 당권을 놓고 계파간 갈등이 첨예하게 맞서고 있는 가운데 손 전 지사의 선택과 정치행보에 정치권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손 전 지사는 추대론을 둘러싼 당내 갈등이 불거진 이후 언론과의 접촉을 피하며 장고에 들어갔다. 손 전 지사가 중요한 정치적 기로에서 잠행을 하고 있는 것은 이번이 세 번째다. 한나라당 경선을 포기하고 탈당을 결심하는 과정에서 또 신당 경선 과정에서 조직·동원선거에 불만을 품고 잠시 이탈한 뒤 다시 복귀할 때 그는 잠행을 통한 장고에 들어갔었다.
하지만 손 전 지사가 어떤 선택을 하든 이번에도 그 여정이 순탄치 않을 것이란 관측이 우세하다.
반면 일부 측근들은 합의추대 카드에 독이 숨겨져 있다고 해도 독배를 마시는 심정으로 승부수를 띄워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가뜩이나 당내 기반이 취약한 손 전 지사가 범여권에 뿌리를 내리고 차기 대권을 다시 키워나가기 위해서는 꽃길이 아닌 가시밭길도 마다하지 말아야 한다는 논리다. 특히 총선을 전후해 신당이 사분오열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에서 비주류로 망망대해를 표류하는 것보다는 한시적 당권이라도 움켜쥐고 미래를 설계하는게 낫다는 고육책도 깔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