밭갈이는 덩치로 하는 게 아냐
▲ 강기갑 의원이 당선이 확정되자 지지자들과 함께 선거 사무실에서 기쁨을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 ||
4·9 총선에서 이명박 대통령의 핵심 측근이자 한나라당 공천을 주도했던 이방호 사무총장을 상대로 대역전극을 연출한 강기갑 민주노동당 의원(55)이 던진 일성이다. ‘사천 돌풍’의 주역으로 18대 총선 최고의 스타로 부상한 강 의원은 <일요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사천 시민도, 나도, 대한민국도 많이 놀랐다”는 벅찬 당선 소감으로 말문을 열었다.
한나라당 텃밭에서 여권 실세를 누르고 당당히 재선에 성공한 강 의원은 “350만 농어민의 기대와 정치개혁을 바라는 전 국민의 염원, 그리고 서민경제를 살리라는 시대적 소명을 어깨에 지고 흔들림 없는 한 길을 가겠다”는 당찬 포부를 피력했다.
강 의원은 총선 이후 더욱 바쁜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 ‘기적’을 도운 사천 시민들을 찾아 당선 인사를 하는 데도 시간이 부족한데 방송 토론회와 각종 언론에서 인터뷰 요구가 쇄도하고 있어 하루 24시간이 숨 가쁠정도다. 총선 후 이틀째 되던 날(11일)에는 고향인 사천에서 강행군을 견디다 못해 과로로 쓰러져 몸져눕기도했다.
농민운동가 출신으로 전국농민총연맹의 추천을 받아 17대 국회에서 민노당 비례대표로 정치권에 입문한 강 의원은 두루마기와 긴 수염, 고무신이 트레이드마크인 정치인이다. 한·미 FTA 등 현안이 불거질 때마다 그는 농민의 목소리를 담기 위해 때론 단식으로 때론 저돌적 행동으로 세간의 주목을 받아왔다.
그가 ‘사천의 이변’을 연출한 것을 두고 주변에선 “강기갑의 정열이 이방호의 간판을 눌렀다”고 말한다. 차가운 셈법이 지배하는 정치판에서 과연 무엇이 그를 ‘뜨거운 사람’으로 자리하게 했던 걸까.
고향인 경남 사천에서 농고를 졸업한 강 의원은 과수원 경영과 축산업 등 평생 농민운동을 벌여왔다. 수녀인 누나의 영향으로 가톨릭 신자가 된 그는 6년여 동안 수도자의 길을 걷다 다시 귀농한 뒤 가톨릭 농민회장, 전국농촌총각결혼대책위원장, 전국농민회총연맹 부의장 등을 지내면서 활발한 농민운동을 전개했다. 2004년 민주노동당 입당과 함께 정치 입문해 국회 농림해양수산위원, 윤리특위위원, 농어업 회생을 위한 의원연구모임 등에서 활동하면서 국정감사와 대정부질문 등에서 톡톡 튀는 발언과 정곡을 찌르는 질문으로 피감기관을 바짝 긴장시키기도 했다.
몸으로 실천하는 의정활동을 해온 강 의원이지만 그가 이번 총선에서 고향인 경남 사천에 출사표를 던지자 당 내부에서조차 ‘무모한 도전’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사천은 전통적으로 보수성향이 강해 한나라당 텃밭으로 분류됐던 곳이기 때문. 더군다나 이 지역은 3선을 노리는 여권의 실세 이방호 사무총장이 버티고 있었다는 점에서 ‘골리앗과 다윗의 싸움’으로 비유되기도 했다.
하지만 강 의원은 모두가 불가능하다는 판세 분석에도 불구하고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선거기간 내내 사천에 머물면서 ‘오만한 권력에 대한 사천시민의 심판론’을 기치로 밑바닥 표심을 파고들었다. 하루아침에 기적이 일어난 게 아니라 치밀하고 소리 없이 대이변을 준비해 왔던 것이다.
실제로 강 의원은 “오만한 권력에 대한 시민들의 준엄한 평가였다”고 당선 소감을 밝히면서 “한나라당의 공천 잡음과 중앙을 향한 권력이 지역민들에게 피로감을 준 것 같다”고 승리 요인을 분석했다.
‘대역전극을 연출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강 의원은 “사천 시민들의 한결같은 애정과 관심, 그리고 격려”라고 한껏 몸을 낮췄다.
“지난 4년간 사천의 200여 곳을 돌며 의정보고를 했다. 어떤 곳은 그 마을이 생기고 나서 국회의원이 처음 방문했다며 좋아하셨다. 국회는 국민의 대변자다. 국민들의 실생활을 제대로 파악해야 한다. 그런 바닥정치가 원동력이었다고 본다. 그리고 전국의 많은 농어민, 학계 등의 지원도 큰 몫을 했다. 태안, 부안, 구례, 남해 등 여러 곳에서 정말 많은 분들이 자원해서 사천을 찾았다. 그런 열망이 모여 이루어낸 성과다.”
‘선거기간 중 가장 힘들었던 점’에 대해서 그는 “선거 양상이 초박빙으로 부상하면서 흑색선전, 색깔론, 근거 없는 비방 문자 등이 나돌았던 것”이라며 “하지만 현명한 유권자들은 21세기를 살고 있었고 낙후된 선거전략은 시민들의 외면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강 의원은 또 “시장에서, 거리에서, 부두에서, 일터에서 만났던 서민들의 땀방울과 웃는 얼굴들이 기억에 남는다”며 “악수를 하려고 하면 손이 더럽다며 당황스러워하던 어머니들의 그 거친 손을, 나 역시 농민의 손이라며 꼭 잡았다”고 회고하기도 했다.
강 의원은 총선전 진보진영의 분열과 관련 “진보세력이 덜 성숙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대선 참패를 두고 대응 방안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서로 입장이 달랐다. 하지만 큰 틀에서 우리는 함께 가야 할 동지다. 많은 교감과 대화를 위해 크게 단결할 것이다”고 말해 향후 진보진영의 대통합을 추진할 것임을 시사했다.
이번 총선을 통해 ‘여대야소’ 정국이 도래한 것에 대해 강 의원은 “결국 국민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에 대한 분명한 분석과 서민경제를 살리는 길에 대한 분명한 원칙이 있어야 한다”며 “서민, 노동자, 농민을 위한 길에 이해와 요구가 같다면 함께할 것”이라며 민주당 등 야당과의 정책적 연대 가능성을 열어 놨다. 그는 특히 “독주하는 오만한 권력에 대한 비판과 견제, 행정부의 실정에 대해서도 더욱 세밀하게 눈뜨고 감시하는 것에 연대할 것”이라며 다부진 의정활동 계획도 밝혔다. 강 의원은 “시민 여러분께서 주신 한 표 한 표는 오만한 권력에 대한 심판이자, 희망의 사천, 일하는 사람이 잘사는 세상을 열라는 엄중한 주문”이라며 “혼신의 힘을 다해 어머니의 마음과 같이 지역민을 진정 보살필 줄 아는 ‘섬김의 정치’로 보답하겠다”는 포부를 피력하기도 했다. 지난 2004년 처음 국회에 입성했을 때 강 의원은 자신의 홈페이지에 이런 말을 남겼다. ‘그날은 한 명의 농민이 국회에 입성한 날이었지만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작은 힘이 시작된 날이었습니다.’ 이제 강 의원은 국회의원으로서 또 다른 4년을 열어가게 됐다. 앞으로 강기갑의 작은 ‘세상 바꾸기’가 어떻게 펼쳐질지 지켜보는 것도 유권자들의 몫이 아닐까 싶다.
홍성철 기자 anderia10@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