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득과 50년 지기… 컴백 시기 묘하네
삼성 측은 계열사별 책임경영체제를 하되 ‘대외적으로 삼성을 대표할 일이 있을 때’ 이수빈 회장이 역할을 수행할 것이라 밝혔다. 이수빈 회장에게 대외용 대표는 그리 낯선 역할이 아니다. 지난 2006년 초 신년하례식 당시 ‘도피성 외유’ 논란에 휩싸여 있던 이건희 회장을 대신해 하례식장 맨 앞자리에 앉아 제일 큰 어른 역할을 했으며 올 초 삼성 특검으로 별도의 그룹 시무식이 열리지 않는 대신 이수빈 회장이 사내방송을 통해 이건희 회장의 신년 메시지를 전달하기도 했다. 이수빈 회장은 지난 2002년 삼성생명 회장직을 맡으며 경영일선에서도 사실상 물러난 상태라 대외활동에 매진할 수 있어 ‘이수빈 역할론’이 줄곧 제기돼 왔다.
당초 비서실과 구조본 재무파트에서 경력을 쌓은 몇몇 계열사 CEO들이 이학수 부회장의 후임이 될 것으로 평가돼 왔다. 그러나 삼성 사태 ‘진앙지’로 지목된 전략기획실이 해체 수순을 밟게 됐고 이학수 부회장이 재무팀 출신이란 이미지가 워낙 강하다는 점이 이수빈 회장을 내세운 배경으로 꼽힌다.
이건희 회장과 이학수 부회장이 물러나는 상황에서 이수빈 회장의 행동반경이 그룹 내 최고참 임원으로서 해온 어른 역할에만 국한될지는 미지수다. 일단 그가 삼성그룹 지배구조 핵심인 삼성생명의 회장직을 맡고 있으며 황태선 삼성화재 사장과 배호원 삼성증권 사장 등이 비자금 의혹 등 물의를 일으킨 데 따라 사임하기로 한 대목이 눈에 띈다. 금융전문 CEO였던 그가 앞으로 삼성이 중점적으로 키우려는 금융부문의 경영공백을 메우는 역할에 주력할 수도 있는 셈이다.
일각에선 이수빈 회장이 포스트 이건희 시대를 열어젖히는 조타수 역할을 할 것으로 보기도 한다. 그는 이건희 회장 취임 초기인 1991년~1993년 비서실장을 지냈다. 이병철 창업회장 사람이었던 소병해 전 실장에 이어 본격적인 ‘이건희 시대’를 알리는 시기에 이 회장 최측근 역할을 수행한 것이다. 2세 경영인의 총수 입성 초기를 닦은 경력은 조만간 ‘대관식’을 치를 것으로 짐작되는 이 회장 아들 이재용 전무에 대한 후견인 역할을 하기에 충분하다는 평이다. 이수빈 회장이 이건희 회장의 서울사대부고 4년 선배라는 인연 또한 그에 대한 이 회장 부자의 신뢰를 두텁게 하는 부분이다.
하지만 위기의 삼성호를 대표할 임시 선장이 된 이수빈 회장의 대외행보가 평탄하기만 할지는 미지수다. 일부 시민단체들이 이수빈 회장이 자신 명의로 삼성생명 지분(3.74%)을 갖고 있는 점을 비판적 시각으로 보고 있는 까닭에서다. 이건희 회장 차명주식 보유문제로 특검 조사를 받은 현명관 전 삼성물산 회장(1.40%)과 이학수 부회장(0.47%)보다 높은 수치로 개인 자격으로는 이건희 회장(4.54%) 다음 가는 지분율이다. 재판 과정에서 이건희 회장 차명주식과 관련해 이수빈 회장이 재판장에 불려나갈 가능성을 전혀 배제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이런 까닭에서인지 재계에선 이수빈 회장이 이명박 대통령의 친형 이상득 국회부의장과 50년 지기라는 점이 주목을 받는다.
이 부의장이 4년 연상이지만 두 사람은 서울대 경제학과 57학번 동기생이다. 학창 시절부터 막역했고 이수빈 회장이 삼성에 들어와 승진 가도를 달릴 때 이 부의장 역시 코오롱에 들어가 샐러리맨 출신 전문경영인이 되는 등 이 부회장의 정치 입문 전까진 비슷한 행보를 그렸다. 최고권력자의 친형이자 정권 창출 일등공신인 이 부의장과 두터운 친분을 쌓아온 이수빈 회장이 위기의 삼성호 순항을 이끌어낼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천우진 기자 wjc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