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카로운 ‘이빨’이냐, 부드러운 ‘입술’이냐
▲ 원혜영 원내대표 | ||
18대 국회의 제1야당 초대 원내대표로 노무현 전 대통령과 통추 활동을 같이 했던 원혜영 의원이 당선되면서 “민주당이 돌고 돌아 다시 열린우리당이 된 것이 아니냐”라는 말도 나오고 있다. 물론 현재의 민주당 정체성은 2004년 집권여당이었던 열린우리당과는 많은 차이가 있다. 그럼에도 대표적인 ‘노무현 맨’이었던 원혜영 의원이 18대 국회 초대 원내대표가 되면서 민주당도 어떤 식으로든 노 전 대통령의 영향력 아래에 들어갔다고 보는 시각이 적지 않다. 특히 쇠고기 파동 등과 관련해 이 대통령과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노 전 대통령으로서는 친노(친 노무현 전 대통령) 직계인 원 대표를 대리인으로 앞세워 다시 한 번 ‘맞장’을 뜰 수도 있다.
그런데 원 대표 자신은 남들이 ‘노무현 맨’이라고 부르는 것에 대해 어색해하고 쑥스러워하는 편이다. 그는 이에 대해 “노 전 대통령의 측근 열 손가락 안에 들지도 못할뿐더러 개인적으로도 잘 보좌하거나 의논하는 관계가 아니다”라고 말한 바 있다. 그럼에도 원 대표를 오랫동안 알고 지낸 인사들은 하나같이 “원 대표만큼 노 전 대통령과 정치적·정책적 코드가 맞는 정치인도 드물다”라고 입을 모은다. 노 전 대통령이 재임 때 의욕적으로 추진했던 다면평가제를 원 대표는 부천시장으로 재직할 때인 1998년 10월부터 이미 실시했었다. 그리고 원 대표는 부천시장으로 있을 때 수요자 중심의 행정과 지방분권 등을 외쳤는데 이는 노 전 대통령의 재임 중 핵심과제이기도 했다.
원 대표의 행보에 노 전 대통령 그림자가 드리울 것이라는 예상은 두 사람의 오래된 정치적 인연을 통해서도 확인된다.
두 사람의 인연은 원 대표가 지난 1991년 2월 재야민주연합 이름으로 유인태 의원 등과 함께 ‘꼬마 민주당’에 합류하면서부터 시작됐다. 이후 두 사람은 1995년 통추 결성, 1997년 국민회의 입당 등 중요한 정치적 갈림길마다 같은 선택을 했다.
특히 원 대표는 노 전 대통령이 지난 1993년 설립한 ‘지방자치연구소’에 물심양면으로 참여하는 등 일찍부터 노 전 대통령의 대권 준비를 도왔다. 원 대표가 14대 국회의원을 지낸 뒤 15대 총선에서 낙선해 원외에 있다가 1998년 부천시장 선거에 출마하는 데도 노 전 대통령의 영향이 컸던 것으로 알려진다. 그는 이에 대해 “당시 주변에서 ‘왜 격이 낮은 시장 선거에 나가느냐’고 많이 반대했는데 노 전 대통령은 ‘시정을 경험하는 게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강하게 권유했다”라고 회고한 바 있다.
정치권에선 “원 대표는 노 전 대통령이 2003년 집권하면서 측근들 중 가장 믿는다는 비호남 출신 인물 3인방(김병준 전 청와대 정책실장, 유인태 전 의원, 원혜영 대표) 가운데 한 사람이다”라는 말이 나돌 정도로 그에 대한 노 전 대통령의 신뢰는 무한대라고 한다. 그래서 참여정부 초대 내각 인선 때 원 대표는 가장 유력한 행정자치부 장관 후보였다.
▲ 노무현 전대통령. 캐리커쳐=장영석 기자 zzang@ilyo.co.kr | ||
그런데 원 대표가 노 전 대통령으로부터 정책 방면에는 영향을 받을 수 있지만 두 사람의 정치 스타일은 극과 극이다. 노 전 대통령이 과감한 승부수로 정국 반전을 꾀하는 스타일이라면 원 대표는 유연하고 타협을 중요시한다. 그와 친분이 있는 한 의원은 “‘통추 출신인 원 대표는 개혁성향에 있어서는 그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으면서도 당내 여러 주장을 객관적으로 수렴, 통합해 내는 능력도 탁월하다. 그리고 원칙은 지키되 사고방식이 유연해 대여 관계도 무리 없이 끌고 갈 것이다. 꼼꼼한 성격이라 세심한 부분까지 조율을 잘할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그런데 “여야에 어떤 적도 없다”라는 평을 정도로 ‘두루뭉수리하다’는 평을 듣는 원 대표가 81석의 ‘미니’ 야당의 원내대표로서 어울리지 않는다는 평가도 나온다. 이에 원 대표는 자신이 3번의 학사 징계와 2번의 투옥 경험이 있는 ‘긴급조치 세대’라는 투쟁 경력을 적극 부각시키며 강성 이미지 쌓기에 열을 올리고 있다. 그럼에도 원 대표는 원내 전투를 지휘할 ‘감’으로는 부족하다는 평가도 계속 나온다.
민주당의 한 관계자는 이에 대해 “원 대표는 자신의 주장을 관철해나가기보다 타협해 같이 나가려는 스타일이다. 유연해 보이지만 홍준표 대표에 비하면 색깔이 없어 자칫 그에게 휘둘릴 가능성이 크다. 그럼에도 민주당이 그를 선택한 것은 정체성이 다른 여러 계파가 혼재해 있는 지금의 민주당을 무리 없이 이끌어 당을 우선 착근시킬 수 있고, 이명박 정권과도 초기에는 적당히 타협해 정국을 이끌어나가려는 분위기가 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원내대표는 노 전 대통령의 대리인이 되었으니 향후 당권은 김대중 전 대통령의 대리인 격인 추미애 의원이 될 가능성이 커졌다”라는 해석이 나온다. 이렇게 되면 ‘부드러운’ 원 대표는 당 내에서는 당권을 쥔 강성의 추미애 의원과 경쟁을 해야 하고 밖으로는 ‘이빨’로 불리는 홍준표 대표와 맞서야 하는 이중고를 겪을 수도 있다. 과연 원 대표는 과거 민주화 투쟁 경력을 살려 두 곳의 ‘전장’에서 모두 승리를 거둘 수 있을까.
성기노 기자 kin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