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카로운 ‘이빨’이냐, 부드러운 ‘입술’이냐
▲ 홍준표 원내대표. | ||
홍준표 의원에게 153석 집권 여당의 원내대표 ‘감투’는 남다른 의미가 있다. 그는 지난 2002년 정책본부장, 2003년 전략기획본부장, 2005년 혁신위원장, 2007년 클린위원장 등을 역임했지만 모두 당 3역이 아닌 일종의 ‘한직’이었다. 그런 그가 원내대표라는 감투를 쓴 것은 그동안 비주류로서 당했던 멸시와 천대를 날려버리는, 자신에게는 기분 만점의 ‘벼슬자리’임에 틀림없다.
그는 4선 고지에 오르는 동안 재산 문제 등에 대해 비교적 철저하게 자기관리를 해왔다. 이런 ‘깨끗한 도덕성’은 그의 거침없는 언행에 대한 일종의 면죄부 역할을 해주었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가끔 도가 넘는 언행이 정치권을 돌고 돌아 권력자의 귀에 들어가면서 ‘홍준표는 믿지 못한다’라는 ‘주홍글씨’를 새기게도 했다. 그래서 ‘모래시계 검사’로서 ‘저격수’ 역할을 톡톡히 해왔지만 ‘윗사람’들로부터 “통제가 어렵다”라는 인상도 동시에 심어주었던 것이다.
그런 그가 18대 국회에서 153석의 거대 여당 초대 원내대표에 올랐다. 여기에는 이명박 대통령과의 남다른 ‘인연’과 홍 대표의 심경 변화가 자리 잡고 있다. 두 사람은 지난 1999년 선거법 위반으로 의원직을 상실한 뒤 미국 워싱턴에서 이웃으로 살면서 친해졌다. 8개월간의 워싱턴 생활에서 두 사람은 거의 매일 만나다시피 하면서 재기를 다졌다. 둘은 그렇게 ‘형님, 아우’가 됐다. 또한 이 대통령이 고려대 경영학과 61학번이고, 홍 대표가 법대 72학번이었던 점도 ‘형님, 아우’ 관계를 더욱 앞당겼다.
홍 대표가 지난 4월 말 청와대에서 열린 18대 총선 당선자 모임에서 이 대통령에게 ‘폭탄주’를 만들어 주고 ‘형님’으로 불렀다는 소문이 퍼진 것도 ‘고대 막걸리’ 관계라는 독특한 정서가 있었던 것으로 볼 수 있다(홍 대표 측은 일부 언론에 폭탄주 이야기가 나가자 “이명박 대통령이 ‘당신은 왜 한잔 안 주느냐’고 해 소주를 한잔 따랐을 뿐”이라는 반론문을 보내기도 했다). 이 대통령은 최근 홍 대표와 임태희 정책위의장을 청와대 인근 안가로 부부동반으로 초청해 각별한 신임을 보여준 바 있다.
그런데 두 사람의 관계는 ‘애증’이 교차하며 변곡선을 그렸다. 홍 대표는 이 대통령이 당내 경선에 도전하기 전, 박근혜 전 대표와 대립각을 세우는 ‘이명박 맨’ 그룹이었다. 하지만 지난 2006년 서울시장 경선 과정에서 이 대통령이 막판에 오세훈 서울시장을 밀었다는 얘기가 퍼지면서 두 사람의 관계에도 금이 가기 시작했다. 홍 대표는 그것을 회고하면서 “지난 1999년부터는 이명박 시장을 도와주면서 총대 메는 일을 가끔 해왔는데 이번 지방선거를 거치면서 이제는 누구를 위해 총대 메는 정치는 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라며 이 대통령에 대한 배신감을 드러낸 바 있다. 그 뒤로도 그는 ‘친박(친 박근혜 전 대표) 성향’을 드러내면서 이 대통령과 맞서기도 했다. 그후 이 대통령 측에서 홍 대표와의 관계복원을 시도했지만 홍 대표의 배신감은 아리고 쓰려 그마저도 여의치 않았다.
▲ 이명박 대통령. 캐리커쳐=장영석 기자 zzang@ilyo.co.kr | ||
여기에 이 대통령도 ‘워싱턴 동기’와 고대 후배라는 본능적 신뢰감을 바탕으로 홍 대표에게 기회를 한번 준 것으로 볼 수 있다. 앞서의 전략 관계자는 이에 대해 “이 대통령으로서는 18대 초반에 국회의 체계적인 지원을 받아야 한다. 이런 점에서 성격이 괄괄하고 전투력이 있는 홍 대표를 내세워 강력한 친정체제를 만들 필요가 있다. 물론 여기에는 이 대통령이 ‘튀는’ 홍 대표를 적당하게 컨트롤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바탕이 되고 있다”라고 말했다.
‘무책임한’ 비주류에서 ‘무한책임’을 가진 주류로 합류한 홍준표 원내대표. 그는 취임 전부터 ‘광폭행보’를 보이며 정치복원을 외치고 있지만 앞길은 순탄치 않을 전망이다.
먼저 친박그룹 복당 문제를 두고 벌써부터 강재섭 대표와 그 시기를 두고 이견을 노출하고 있다. 한나라당의 한 최고위원은 이에 대해 “대외적인 문제는 대표의 영역으로 존중해야지 원내대표가 너무 나서면 대표와 권한 충돌이 생길 수 있다”라고 말했다. 당에선 원외가 되는 박희태 전 의원이 대표가 될 경우 ‘원내 중시’를 외치는 홍 대표가 독주할 수도 있다는 예상도 나온다.
국회 개원 협상과 미국 쇠고기 수입 개방 파동과 관련해서도 야당인 통합민주당과의 협상력이 요구된다. 한 서울 지역 의원은 이에 대해 “야당 쪽과의 협상이 교착상태에 빠지면 홍 대표에 대해 냉소적인 분위기가 흐를 수 있다. 문제가 꼬이고 막혔을 때 어떻게 할지 좀 더 지켜봐야 한다”라고 말했다.
홍 대표가 이재오 전 의원 등 친이(친 이명박 대통령) 주류의 실세들이 물러난 상황에서 청와대의 ‘친정체제’ 구축의 핵심포스트가 될 것이라는 예상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난마처럼 얽힌 당 안팎의 현안을 해결하기 위해선 그가 본능적으로 뿜어져 나오는 오버 기질을 자제하고 진지한 자세로 대야 관계를 펼쳐야만 뭔가 성과가 있을 것이란 게 주변의 충고다.
성기노 기자 kin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