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읽어도 그만… ‘본게임 앞두고 몸풀기용’
안희정 충남지사의 저서 ‘콜라보네이션’ 표지.
김부겸 의원도 곧 경제철학서를 낼 계획이다. 김 의원은 20대 총선 직전 팝 칼럼니스트 김태훈과 함께 <공존의 공화국>을 출간했다. 김 의원실 관계자는 “가제는 ‘약탈의 경제를 넘어서 공존의 경제로’다. 11월 중하순에 책이 나온다. 대선주자로서 집권 철학과 경제정책을 책으로 보여주겠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대권잠룡들이 경쟁적으로 책을 발간하는 까닭은 뭘까. 민주당의 한 보좌관은 “책 출간은 곧 ‘조직’이다. 차기 대선 주자들이 책을 내면 북 콘서트가 가능하다. 전국을 돌면서 조직을 점검하는 것이다. 대통령의 조건은 스토리, 마니아, 확장성이다. 김 의원과 안 지사는 스토리와 확장성이 있는데 마니아가 없다. 마니아가 없으면 조직 싸움에서 밀리기 때문에 책에 목을 매는 것”이라고 했다.
손학규 전 민주당 고문 역시 정계 복귀와 동시에 책을 내놓았다. 책 제목은 <나의 목민심서-강진일기>다. 약 2년의 칩거 생활 동안 손 전 고문이 쓴 일기들을 엮은 책이다. 정치권 관계자는 “손 전 고문이 자신의 정계 은퇴 번복을 정당화할 수 있는 근거들을 책에 녹여냈다. 민주당 쪽에서 문재인 전 대표가 독보적인 1위를 하는 상황이다. 손 전 대표는 페이스 메이커에 불과하다. 이를 만회할 만한 자신의 비전을 명확히 알릴 필요가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서점가에선 대권잠룡들의 이른바 ‘저서 정치’를 향해 냉담한 시선을 보내고 있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9월 24일 발간한 책 <박원순과 도올, 국가를 말하다>의 성적표는 참담한 수준이다. 네이버 등 대형 포털사이트에서 책에 평점 자체를 부여한 누리꾼들이 없어 평점은 ‘0점’을 기록했다. 독자 리뷰 개수도 전무하다.
책 발간 당시 박 시장과 도올의 북콘서트는 화제를 일으켰다. 하지만 책을 찾은 독자들이 거의 없었던 셈이다. 책을 펴낸 통나무출판사 관계자는 “그리 인기 있는 책은 아니다. 요즘 워낙 책이 잘 안 팔린다. 심지어 초판이 1000부 미만인 경우도 있다. 박 시장 책은 초판이 3000부 정도 출고됐는데 특별히 많이 인쇄하지 않은 책”이라고 밝혔다.
출판업계에서는 대권잠룡들의 책 출간에 대해 회의적인 목소리가 나온다. 출판업계 관계자는 “어느 정도 ‘네임밸류’가 있어 인기가 많으면 상관없다. 초대형 베스트셀러가 아니어도 정치에 관심이 있는 분들이 찾으면 의미가 있는 책이다. 하지만 시장성에 물음표가 찍히는 주자들도 있다. 출판사 입장에서 매력이 없다는 뜻”이라고 귀띔했다.
국정감사 이후 급부상하고 있는 이재명 성남시장 측의 사정도 다르지 않다. 이 시장은 다니엘 라벤토스 교수가 쓴 <기본소득이란 무엇인가>의 한국어본 번역에 참여했다. 책은 10월 10일에 출간됐지만 독자들의 리뷰를 거의 찾아볼 수 없고 평점도 6점에 불과했다. 한 독자는 “좀 어렵게 쓰여 읽히지 않는다. 이 책보다는 좀 더 쉽고 간단하게 이해할 수 있는 다른 책들을 사람들에게 추천하겠다”는 서평을 남겼다.
이 시장 측은 “기본소득은 아무래도 우리나라에서 생소한 개념이다. 어렵게 읽힐 수 있는 부분이 있다. 하지만 이 시장은 청년배당을 실제로 집행하면서 기본소득에 대한 어젠다를 한국사회에 던졌다. 책에는 기본소득 개념 자체에 대한 의미 있는 부분들이 적지 않다”고 전했다.
오세훈 전 서울시장은 9월 12일 <왜 지금 공존과 상생인가>라는 책을 출간했다. 오 전 시장은 책에 대해 “억척스럽고 치열하게 경쟁해서 위대한 대한민국을 만들었다. 하지만 과정 속에서 뒤처지고 상처를 입은 사람들이 성취를 부끄러워하고 있다. 지난 1년간 청년들과 대화하고, 기성세대들과 이마를 맞대며 치열하게 토론한 결과를 나름대로 정리했다”고 설명했다.
오 시장은 당찬 포부를 밝혔지만 서점가의 반응은 미지근하다. 오 시장의 책이 출간된 뒤 약 한 달이 넘었지만 교보문고와 영풍문고 일부 지점에서는 오 시장의 책을 찾아 볼 수 없다. 10월 26일 현재 교보문고 광화문 지점에 17권이 재고로 남아있을 뿐이다. 다른 전국 29개의 다른 지점은 책의 재고가 없는 상황이다.
교보문고 관계자는 “보통 신간 서적은 지점마다 한 권씩 다 들어가는데 한 권도 안 들어갔다. 이 책은 판매하고 싶은 지점에서 주문판매하는 방식이다. 각 지점에서 신청을 안 했다. 그만큼 수요가 없다는 뜻”이라고 밝혔다.
오 시장이 7월 25일 출간한 <왜 지금 국민을 위한 개헌인가>도 비슷하다. 교보문고 광화문 지점 외에는 서점가에서 책을 찾는 것이 어렵다. 오 시장 책이 인기가 없다는 뜻다. 오 시장 측근은 “오프라인 매장이 아닌 온라인에선 전부 주문이 가능하다. 책을 시중에 팔려고 낸 책은 아니다. 정책적인 고민이나 생각들을 정리해서 알리려고 냈다”고 밝혔다.
대선주자들의 저서 전쟁에 대해 전문가들도 비판적인 시선을 보내고 있다. 전계완 정치평론가는 “책 출간을 스포츠로 비유하자면 육상 선수가 본격적으로 경기에 나서기 전에 준비운동으로 운동장 하루에 열 바퀴 식 도는 것이다. 책을 출간 한다고 특별히 효과가 없는데 차기 대선 주자들이 안 하면 안 되는 것처럼 느끼고 있다. 단순히 책이 좋다고 대권을 거머쥘 수는 없다”고 말했다.
최선재 기자 s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