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어지고 깨져도 ‘점프’는 계속된다
▲ 사진제공=SBS | ||
지난 11월 8일 오전 중국 베이징 수도체육관에서 2008-2009 국제빙상경기연맹(ISU) 시니어 피겨스케이팅 그랑프리 3차 대회 여자 싱글 프리스케이팅 최종훈련에 열을 올리고 있던 김연아를 바라보던 매니지먼트사인 IB스포츠 관계자가 의미 있는 한마디를 던졌다.
김연아는 프리스케이팅 연기의 두 번째 과제인 트리플 루프를 완성하려고 빙판 위에서 계속 솟구쳐 올랐지만 그리 만족스러운 표정은 아니었다. 관중석에서 지켜보던 어머니 박미희 씨도 “유달리 루프 점프를 할 때 스케이트 부츠의 상태와 빙질에 민감하다”고 설명했다.
이미 초등학교 시절에 트리플 악셀(공중 3회전반)을 제외한 나머지 5가지 트리플 점프(토루프, 살코, 루프, 플립, 러츠)를 소화했을 정도로 재능이 뛰어났던 김연아는 여자 싱글 선수 가운데 가장 정확한 점프 기술을 구사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유난히 루프 점프의 성공률이 다른 기술에 비해 떨어지는 게 ‘옥에 티’다.
이에 대해 IB스포츠의 구동회 부사장은 “김연아가 트리플 루프 점프를 시도할 때 빙질에 민감하다”며 “주니어 시절과 시니어 무대 첫 시즌에선 아예 프로그램에서 빼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김연아는 지난달 그랑프리 1차 대회에서도 프리스케이팅에서 트리플 루프를 1회전으로 처리하는 실수를 했다. 연습 때 잘되던 점프가 실전에서는 자주 흔들리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 상황이 이러면 포기할 만도 하지만 김연아의 트리플 루프 완성에 대한 고집은 아무도 말리지 못했다.
김연아는 지난 시즌 두 차례 그랑프리 대회에서 가산점을 받으면서 트리플 루프에 성공해 주변을 놀라게 했다. 더 이상 ‘루프 징크스’도 없어지는 듯했다
그러나 지난해 그랑프리 파이널에서 트리플 루프를 뛰다 넘어져 감점을 받았고, 연이어 지난 3월 세계선수권대회에서는 고관절 부상에 따른 부담으로 더블 악셀로 연기를 바꿔야만 했다. 몸 상태만 최상이었다면 징크스에서 탈출할 수 있었지만 두 시즌 동안 이어진 부상은 루프의 완성도를 높이는데 악재로 작용했다.
이번 시즌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1차 대회에서 트리플 루프를 실패했던 김연아는 이번 3차 대회에서 트리플 루프 완성에 공을 들였다. 두 차례 프리스케이팅 연습 시간에서도 성공률을 끌어올리면서 주변의 기대감을 모았다.
하지만 뜻하지 않게 트리플 플립 점프에서 오심에 가까운 ‘롱 에지(Wrong edge)’ 판정이 나오고 트리플 러츠에서 흔들리면서 상황이 꼬이기 시작했다. 김연아는 쇼트프로그램에서 63.64점으로 1위를 차지했지만 59.30점을 얻은 안도 미키(21·일본)와 점수 차가 4.34점밖에 차이가 나지 않으면서 고민하기 시작했다.
결국 브라이언 오서 코치와 김연아는 경기 시작을 앞두고 안정적인 승리를 위해 트리플 루프 대신 더블 악셀을 뛰기로 결단을 내렸다.
IB스포츠의 관계자는 “앞으로도 긴박한 상황에서는 전략적인 선택을 내릴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하지만 김연아의 점프 완성에 대한 고집은 더욱 강해질 것 같다”고 귀띔했다.
이영호 연합뉴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