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뿔소의 ‘굴욕’
▲ 당내에서 홍준표 원내대표의 협상력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이번 입법 전쟁을 통해 가장 많은 카메라 세례를 받은 사람들은 아마 여야의 원내대표들일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그들은 국민들로부터 욕도 가장 많이 얻어먹어야 했다. 평소 강경파로 분류되던 홍준표 대표는 야당과 덜컥 ‘합의’를 해 ‘사쿠라 논쟁’에 휩싸여 있고, 원혜영 대표는 평소의 ‘약골’ 이미지를 벗어던지고 ‘투사’로 거듭나 동료들로부터 호평을 받고 있다. 20일 법안 전쟁을 총지휘했던 여야 원내 사령탑의 손익계산서를 따져보았다.
홍준표 원내대표는 지난해 5월 무투표 합의 추대되는 방식으로 172명 여당 의원들의 ‘반장’으로 뽑혔다. 정치경력 13년의 ‘홍 반장’에게 원내대표 자리는 다시 찾아오지 않을 절호의 기회였다. 그는 한때 정치권의 대표적인 저격수로 이름을 날리며 그 명성을 쌓아나갔다. 하지만 홍 대표는 홀로 다니기를 즐기는 ‘외로운 표범’처럼 당내 계파에 줄을 서지 않았다. 여기에는 홍준표 대표 특유의 자신감과 직선적인 성격, 계파의 수장 말을 고분고분 따르지 않는 반골 기질 등이 그 영향을 미쳤다.
사실 홍 대표는 지난해 한나라당 의원들의 만장일치로 원내 사령탑에 올랐다. 이는 언뜻 보기에 의원들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다르다. 당시 ‘친 이재오 세력’(친이 세력)을 대표해 정의화 의원이 그의 강력한 라이벌로 부상했다.
하지만 막후 해결사를 자처하던 이상득 의원의 ‘중재’로 정 의원은 홍 대표에게 ‘양보’했다. 그런데 그것은 말이 양보였지 실제로는 ‘만사형통’ 이 의원에게 친이 세력이 무력 진압을 당한 셈이었다. 당시 집권 여당의 첫 번째 원내사령탑 배출을 빼앗긴 친이 세력의 앙금은 깊고 뼈아팠다. 이명박 정권 수립의 1등 공신이었던 그들에게 원내대표 자리는 그만큼 상징적인 자리였기 때문이다.
그때부터 이어져온 양측 간의 긴장관계는 이번 법안 전쟁에서 홍 대표가 어떤 합의안을 가지고 와도 ‘묻지마 반대’를 하는 배경이 되었다는 게 정설이다.
한나라당의 한 친박(친 박근혜 전 대표) 의원은 이에 대해 “홍 대표가 어떤 합의안을 가지고 와도 당내 강경파인 친이 세력의 ‘추인’을 받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그들은 사실 합리적인 대안도 없이 ‘묻지마 반대’를 했다고 본다. 타협을 주장하는 의원들을 모두 ‘사쿠라’로 몰아붙이는 일방주의적 태도 때문에 홍 대표도 많이 힘들어했다”라고 말했다.
그런데 홍 대표가 친이 세력에 ‘묻지마 비토’를 당한 연원은 오래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홍 대표는 지난 2006년 4월 이재오 전 최고위원과 서울시장 후보 경선에서 격렬하게 싸운 적이 있었다. 당시 두 사람은 정치적 스타일이 유사하고 지지층마저 겹쳐 치열한 물밑 전쟁을 벌이고 있었다. 맹형규 전 의원(현 청와대 정무수석)과 함께 당내 3선 의원 가운데 선두주자였던 두 사람은 이때부터 차기 주자 자리를 놓고 본격적인 경쟁을 벌였다. 이 때문에 이 전 최고위원은 지난해 그가 원내 사령탑에 올라앉지 못하도록 ‘친이 세력’을 동원해 흔들었던 것이다.
여기에 친이 세력의 대표 주자인 공성진 최고위원도 홍 대표와는 정적 관계다. 두 사람은 지난 2007년 대선을 앞두고 서울시당위원장 자리를 놓고 맞붙은 적이 있었다. 당시 홍 대표는 서울시장 후보에서 낙마한 뒤 정치적으로 방황하다가 서울시당위원장직을 통해 대선에 기여한 뒤 재기를 모색할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친 이명박 그룹’이었던 공 위원은 이재오 전 최고위원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으며 초선으로서 서울시당위원장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당시 공 최고위원은 “홍 대표가 계속 합의 추대를 요구하면 경선도 불사하겠다”라고 맞섰다. 이에 홍 대표는 “초선이 수도 서울의 위원장 자리를 차지하는 건 말이 안 된다”라고 하면서도 자신을 지지하는 세력이 거의 없음을 깨닫고 공 최고위원에게 무릎을 꿇은 바 있다.
이번 입법 전쟁에서 홍 대표는 스스로에게 80점 정도 줄 수 있다고 자평했지만 정작 친이 세력으로부터 비토를 당한 배경에는 이렇듯 양측 사이의 악연이 자리 잡고 있다. 그런데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이에 대해 “홍 대표가 비록 친이 세력과는 정적 관계에 있긴 하지만 그가 차기 주자로서 꿈을 꾸고 있었다면 그들과 적극적인 관계 개선 의지를 보였어야 했다. 최소한 이번 입법 전쟁을 하기 전에 반대를 외칠 것이 뻔한 친이 세력을 묶어둘 전략적 장치를 마련했었다면 그렇게 욕을 먹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사실 당내 세력이 거의 없는 홍 대표에게 이번 입법 전쟁은 ‘나 홀로 전쟁’이었다. 여기에 독선적 성향과 권위주의적 리더십도 그가 당내 91명이나 되는 초선의원들로부터 거의 외면을 당하고 있는 배경이 되고 있다. 한 초선 의원은 “초선들 대부분이 홍 대표에 대해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지 않다. 홍 대표는 의총에 와서 협상 결과를 설명만 할 뿐 ‘무조건 따르라’는 식으로 말을 한다. 독선적인 그의 리더십에 대한 기대는 접었다”라고 말했다. 당내 일각에서는 “그가 3선을 거치면서 저격수 역할만 하면서 비판만 했을 뿐 당을 이끌어본 경험이 없었다는 결정적인 약점이 이번에 그대로 노출된 것이다”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협상력 부재도 홍 대표의 입법 전쟁 성적표를 나쁘게 만들고 있다. 그간 협상과정에서 그와 머리를 맞댔던 자유선진당 권선택 의원은 한나라당 홍준표 원내대표를 두고 “캐릭터가 너무 강해 패를 너무 일찍 까는 스타일”이라고 표현한 바 있다. 홍 대표는 성격이 급하고 직선적인 스타일이라 협상에서 ‘포커페이스’ 역을 해낼 수 없었을 것이라는 얘기다.
홍 대표는 당내 일각에서 사퇴를 요구하는 것에 대해 매우 서운한 반응을 보인다. 일각에서는 그가 이번 협상에서 “172석의 거대 여당이라고 해서 야당을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정국을 끌고 나가게 되면 정부·여당의 불행만 초래한다”라는 소신을 보였기 때문에 극한 대결은 피할 수 있었다는 평가도 내린다. 그럼에도 당내 의원들 중 상당수는 “10년 만에 정권교체를 이룬 한나라당이 폭력과 생떼잡기 전략으로 밀어붙인 민주당에 너무 쉽게 합의서를 써준 것에 대해서는 분명하게 문제를 따져봐야 한다”라며 그의 협상력 부재를 질타하는 분위기다. 이런 비판 때문에 당내 일각에서는 “홍 대표가 2월 임시국회 때까지 여야 쟁점 법안들을 마무리 지으면 그의 진퇴 여부가 다시 불거질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다.
홍 대표는 1996년 서울 송파갑에서 당선된 지 12년 만에 원내 사령탑에 올라 비로소 자기 정치를 해볼 수 있었다. 하지만 그에게 위기는 너무 빨리 찾아왔고 기회는 너무 빨리 멀어져가고 있다. 여야의 ‘법안 전쟁 2차전’은 홍준표 대표를 마지막 정치적 갈림길로 몰아세우고 있다.
성기노 기자 kino@ilyo.co.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