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호 선장’ 역주행 버릇 위태
▲ 현인택 통일부 장관이 지난 9일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에서 가진 인사청문회에서 장관 후보자 자격으로 회의장에 들어서고 있다. 유장훈 기자 doculove@ilyo.co.kr | ||
실제로 북한은 대포동 미사일 2호 발사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가 하면 최근 들어 서해 북방한계선(NLL) 주변에서 중국 어선들이 사라지는 등 한반도 주변에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는 형국이다. 현 장관은 남북대화 상설기구 설치 등을 통해 북한에 지속적으로 대화를 제의하겠다는 의지를 밝히고 있으나 북한이 현 장관이 주도하는 대북정책에 보조를 맞춰줄지는 여전히 불투명한 상황이다. 현 장관이 험난했던 청문회 파고를 넘어 통일부 사령탑에 올랐지만 그가 이끄는 ‘통일호’의 앞날이 순탄치만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현 장관의 인생 유전과 대북관을 바탕으로 향후 남북관계 기상도를 진단해 봤다.
제주시 출신인 현 장관은 제주 제일고와 고려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한 뒤 고려대 대학원 정치학 석사, 미국 UCLA 정치학 박사 학위를 취득한 보수 성향의 학자로 분류되고 있다.
세종연구소 연구위원을 거쳐 1995년부터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로 활동해 온 현 장관은 17대 대선 과정에서 이 대통령과 인연을 맺었다. 보수 학자로 정치에는 별다른 뜻이 없었던 현 장관은 2006년 12월 당시 한나라당 경선후보였던 이 대통령의 끈질긴 구애로 이명박 캠프에 합류하게 된다. 캠프 합류 후 이 대통령의 외교·안보 분야 ‘과외 선생’ 역할을 맡으면서 이른바 ‘MB 독트린’과 현 정부 대북정책 기조인 ‘비핵·개방·3000’ 구상을 완성하기도 했다.
대선 과정에서 이 대통령의 ‘대북 브레인’으로 자리매김한 현 장관은 인수위 시절 외교통일안보분과위원으로서 실용정부에 걸맞은 남북관계의 기본틀을 만드는 데 기여하기도 했다.
현 장관은 또 류우익 전 대통령실비서실장과 함께 이 대통령의 두뇌집단인 ‘국제전략연구원’(GSI)에서 활약하면서 이 대통령의 각별한 신임을 받아왔다. 현 장관이 이명박 정부 초대 외교통상부 장관 내지는 청와대 통일외교안보수석 물망에 올랐던 것도 그에 대한 이 대통령의 두터운 신뢰가 반영된 것으로 풀이됐다. 이명박 정부 첫 개각 때 권력 헤게모니 싸움에서 밀려 교단에 복귀한 현 장관은 이 대통령의 집권 2기 구상과 맞물려 단행된 1·19 개각을 통해 화려한 부활의 신호탄을 쏘아 올리고 있다.
하지만 현 장관의 앞날은 결코 순탄할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무엇보다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불거진 각종 의혹과 구설수(박스기사 참조)에 대한 국민적 의혹이 완전히 해소되지 않았고 대북 강경 노선을 견지해 온 그의 대북관이 통일부를 이끌고 갈 수장으로 부적합하다는 비판이 끊이질 않고 있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물론 보수 성향이 강한 이회창 자유선진당 총재마저 그의 통일부 장관 임명을 반대한 바 있다.
정세균 민주당 대표는 2월 12일 열린 고위정책회의·중진연석회의에서 현 장관과 원세훈 국정원장에 대해 “허점투성이에 의혹 많은 두 사람이 임명돼서는 안 된다”며 “만약 두 내정자가 임명된다면 앞으로 정부의 정당한 힘(권한행사)에 대해서도 국민들이 쉽게 수긍하지 못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회창 총재도 같은 날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현 장관의 임명 강행에 대해 “탈세니 뭐니 해서 도덕적인 문제가 많았다. 통일부 장관으로 ‘적격자’라고 보기 어렵다”며 임명 철회를 촉구한 바 있다.
야권은 특히 대북 강경 노선을 견지하고 있는 현 장관의 대북관이 가뜩이나 경색 국면을 면치 못하고 있는 현 정부 대북정책을 더욱 꼬이게 할 수 있다는 우려감을 감추지 않고 있다.
야권 의원들은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현 장관이 남북관계 위기의 원인으로 지목받고 있는 ‘비핵·개방·3000’ 구상의 입안자라는 점을 부각시키면서 그의 대북관 및 통일관은 통일부 수장으로 부적격하다는 논리를 펼쳤다.
2월 9일 열린 현 장관에 대한 인사청문회에서 문학진 민주당 의원은 “후보자의 논문·칼럼을 보면 ‘아사 직전인 체제는 유형이 어떻든 대명천지에 같이할 수 없을 것’이라고 했는데 북한 체제를 인정 못하는 것 아니냐”고 따졌고, 같은 당 박선숙 의원도 “6·15, 10·4 선언 이행에 계속 부정적 발언을 하고, 남북관계에 제동을 거는 정책의 입안자인 후보자를 통일부 장관에 내정한 이명박 대통령 인사에 근본적 문제를 제기한다”고 질타했다. 박주선 민주당 최고위원은 대놓고 “대북정책의 원만한 수행을 위해 사퇴하는 것이 옳지 않나”라고 직격탄을 날리기도 했다.
▲ 현인택 장관이 지난해 1월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외교통일안보분과 위원으로 활동했던 모습(위)과 이달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한나라당 구상찬 의원이 현 후보자의 부동산 불법의혹에 대해 질의하는 모습. | ||
여야 의원들의 질타가 이어지자 현 장관은 “‘비핵·개방·3000’ 입안을 내가 주도했다”면서 정면돌파를 시도했다. 그는 “‘선 비핵화 정책’이라고 일부 주장하지만 그렇지 않다”며 “‘비핵·개방·3000’이 모든 세세한 내용을 담은 정책은 아니다.
내용은 대화로 채워질 수 있다”고 해명했다. ‘비핵·개방·3000’이 남북관계를 경색시킨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지적과 관련해 향후 대화를 통해 내용을 만들어가겠다는 대안론을 제시한 것으로 풀이된다.
현 장관이 인수위 시절 ‘통일부 폐지론’을 주창했다는 의혹이 완전히 해소되지 않았고 ‘통일 비전문가’라는 점에서 자질론 시비도 그의 ‘항해’를 가로막는 암초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2월 9일 청문회에서 송민순 민주당 의원은 “지금 정부가 하는 것은 ‘비가 오면 모내기를 하겠다’는 것과 마찬가지다. 비가 안 오면 어떻게 하나”라며 현 장관의 대북관을 강하게 질타했다.
이처럼 현 장관에 대한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불거진 각종 의혹 및 자질론을 둘러싼 정치적 논쟁은 일단 현 장관 취임 이후 점차 수면 아래로 가라앉는 분위기다. 문제는 북한이 현 장관에 대한 부정적 시각을 버리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북한은 1월 30일 현 장관이 통일부 장관으로 내정됐다는 소식을 듣고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 명의로 성명을 내고 강도 높게 이를 비판한 바 있다. 북한은 성명을 통해 “내외의 한결같은 비난 배격에도 불구하고 어리석기 그지없는 ‘비핵·개방·3000’을 철회하기는커녕 그 대결 각본을 고안해낸 악질분자를 통일부의 수장자리에까지 올려 앉힌 것은 우리와 끝까지 엇서 나가겠다는 것을 세계 면전에 선언한 것”이라며 현 장관 인선을 북측의 군사·정치적 대결 조치의 주된 원인으로 꼽았다. 현 장관 인선 배경에 이 대통령의 적대적 대북정책 의지가 투영돼 있는 것으로 북측이 해석하고 있다는 점에서 향후 대북관계가 극도로 냉각될 수도 있음을 예고하는 대목이다.
실제로 북한의 초강성 행보 징후는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북한은 최근 장거리 미사일 ‘대포동 2호’ 발사 준비에 본격 착수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가 하면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은 포 사격 훈련을 참관하는 등 심상찮은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미국과 정보당국 주변에서는 북한이 김 위원장 생일(2월 16일) 직후나 이 대통령 취임 1주년(2월 25일)을 전후로 ‘대포동 2호’를 발사할 것이란 관측이 제기되고 있는 실정이다. 북한은 또 2월 11일 김 위원장의 측근으로 ‘강경파’인 김영춘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을 인민무력부장에 임명하는 등 군 수뇌부 교체작업을 본격화하고 있어 긴장감을 고조시키고 있다.
그렇다면 이 대통령이 야권의 반대는 물론 북측의 반발과 남북관계 경색을 예단하면서도 ‘현인택 카드’를 꺼내든 이유는 무엇일까. 정치권 관계자들은 이 대통령이 그리고 있는 통일외교안보 구상에서 그 해법을 찾고 있다. 이 대통령은 남북관계 및 북한 문제를 외교 일반의 틀 속에서 보려는 경향이 강하다.
이 대통령이 취임 초 정부조직법 개편 과정에서 통일부를 폐지하려 했던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 대통령은 통일부 폐지론이 야권의 반발로 무산되자 외교통인 김하중 전 장관을 통일부 수장으로 발탁한 데 이어 1·19 개각 때 또다시 통일 문제전문가라고 보기 힘든 현 장관을 통일부 장관으로 낙점했다. 외교 보편론 속에서 남북관계와 대북 문제 해법을 찾고자 하는 이 대통령의 복심을 엿볼 수 있게 한다.
현 장관은 대선 경선 때부터 이 대통령의 통일외교안보 분야를 총괄하는 자문 역할을 맡아 왔다는 점에서 누구보다도 이 대통령의 구상을 잘 파악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하지만 야권과 여권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의 이러한 통일외교안보 구상과 현 장관의 대북관이 악화 일로로 치닫고 있는 남북관계를 더욱 꼬이게 할 것이란 다소 회의적인 분석을 내놓고 있다.
현 장관이 2월 12일 취임사를 통해 북측에 ‘대화의 문호’를 활짝 열어놓은 배경에는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는 한반도 위기상황을 타개하는 동시에 국내 정치권의 우려감을 희석시키기 위한 복심이 투영돼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북측의 초강성 행보로 한반도에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는 상황에서 통일부 수장에 오른 현 장관이 위기를 극복하고 남북관계에 해빙무드를 조성할 수 있을지 그의 ‘대북 항해술’에 국민적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홍성철 기자 anderia10@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