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작 2억 때문에…
S 빌라 B 동엔 총 다섯 가구가 있는데 이 가운데 세 곳이 두산가 형제들의 소유다. 101호는 박용오 성지건설 회장의 장남 박경원 성지건설 부회장 명의로 돼 있으며, 102호는 박용곤-용성 형제 공동 명의고 202호는 박용오 회장 소유다. 102호의 경우 원래 박용곤-용오-용성-용현 사형제 공동소유였으나 지난 2007년 12월 박용현 회장이 자신 명의 4분의 1 지분을 박용성 회장에게 2억 7500만 원에 매각했다. 지난해 6월엔 박용오 회장 몫의 4분의 1 지분이 박용곤 명예회장 명의로 넘어갔는데 등기원인은 매매가 아닌 ‘증여’였다. ‘형제의 난’으로 등을 돌렸던 큰형님 박 명예회장에게 서류상으론 돈 한푼 안 받고 지분을 넘겨줬다는 점이 흥미롭다.
그런데 얼마 전 이보다 더 눈길을 끄는 일이 S 빌라 B 동에서 일어났다. 박용오 회장 소유의 B 동 202호에 대해 법원이 가압류 처분을 내린 것이다. 등기부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17일 수원지방법원이 이 집에 대한 가압류 결정을 내렸으며 채권자는 H 캐피탈, 청구금액은 2억 775만 6347원으로 돼 있다. H 캐피탈이 박 회장에게 빌려준 돈을 기한 내에 갚지 못하자 부동산 가압류를 신청, 법원이 이를 받아들인 것으로 보인다. 아무리 두산그룹에서 퇴출됐다지만 중견 건설사 회장님이 2억 원이 조금 넘는 돈 때문에 소유 부동산 등기부에 ‘가압류’ 딱지를 붙였다는 점이 이채롭다.
이 가압류 건 외에도 B 동 202호 등기부엔 여러 건의 근저당권이 설정돼 있다. 2006년 8월 30일자로 된 근저당권 설정의 채무자는 박용오 회장이며 채권최고액은 11억 원이다. 그리고 지난해 12월과 올 3월 두 차례에 걸쳐 ‘두영엠아이’라는 회사가 채무자로 된 근저당권이 설정돼 있다. 채권최고액은 총 86억 원. 법인등기부에 따르면 철강재 판매업 등을 사업목적으로 하는 두영엠아이의 대표이사는 박용오 회장이며 박경원 성지건설 부회장과 부인 서미경 씨가 각각 이사로 등재돼 있다. 이 근저당엔 박경원 부회장 소유 B 동 101호가 공동담보로 설정돼 있다.
▲ 재벌가 인사들이 모여사는 고급 주택가에 위치한 성북동 S 빌라. | ||
B 동 101호 등기부엔 브렌트유화 대표이사인 김 아무개 씨, 등기이사인 윤 아무개 씨가 각각 채무자로 된 근저당권 설정도 나온다. 채권최고액은 각각 4억 2000만 원과 1억 8000만 원. 브렌트유화 법인등기부엔 박용오 회장 일가 이름이 등장하지 않는다. 다만 이 회사 대표 김 씨는 박경원 부회장의 오랜 측근으로 알려져 있다. 등기부에 나오는 김 씨의 주소지가 한때 박용오 회장 명의 B 동 101호였다는 점도 눈길을 끈다.
이런 가압류나 근저당은 두산그룹에서 퇴출된 박용오 회장 일가의 현 상황을 보여준다. 그러나 사업하는 사람들에겐 부동산을 담보로 금융권 자금을 끌어다 쓰는 것은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일이다. 고 정주영 명예회장이 ‘왕회장’이 된 이후에도 청운동 자택엔 오랫동안 여러 건의 근저당이 설정돼 있을 정도였다. 어쨌거나 지난 2005년 두산그룹에서 퇴출돼 절치부심해온 박용오 회장은 지난해 3월 성지건설을 인수하면서 회장직에 올랐고 아들 박경원 부회장과 함께 경영을 진두지휘하고 있다.
박용오 회장은 성지건설을 인수하면서 10대 건설사 진입을 목표로 내걸었다. 그런데 지난해 건설경기 침체 한파 때문인지 성지건설의 지난해 당기순이익은 2007년에 비해 80% 이상 하락했다. 올 초 성지건설 창업 40주년을 맞아 제2의 도약 의지를 담은 새 CI를 발표하면서 내부 혁신과 변화를 지속적으로 추진 중인 박용오 회장 부자가 당초 목표인 10대 건설사 진입을 통해 구겨진 자존심을 되살릴 수 있을지 궁금하다.
천우진 기자 wjch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