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민섭 기자의 연예편지 스물네 번째
아무리 연예계 스캔들 음모론이 사실일 지라도 지금 상황은 그 어떤 연예인 스캔들로도 덮어버리기가 힘들다는 게 연예관계자들의 중론입니다. 그만큼 ‘박근혜 최순실 게이트’가 엄청난 폭발력 갖고 있습니다. 어지간한 이슈는 모두 빨아들려 버릴 만큼 강력해 마치 ‘이슈의 블랙홀’ 같습니다. 5년 동안 두 번의 이혼 소송 끝에 나훈아가 결국 이혼하게 됐습니다. 연예계에서 엄청난 파급력을 가진 이슈지만 별다른 대중의 관심을 받지 못한 채 사그라졌습니다. 한국에선 가장 큰 스포츠이벤트 가운데 하나인 2016 한국시리즈 역시 평소에 비해 큰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있고, 올해 할로윈데이에 가장 화제가 된 주인공이 최순실 코스프레를 한 남성이었을 정도입니다.
그렇지만 ‘연예계 루머’의 힘은 그리 가볍지 않습니다. ‘최순실 박근혜 게이트’ 만큼 막강한 이슈 앞에선 연예계 루머도 별다른 힘을 쓰지 못할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었지만 점차 상황이 달라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번에도 하나의 연예계 루머가 고개를 들고 적극적으로 ‘최순실 박근혜 게이트’의 물타기를 시도 중입니다. 강력하진 않아도 나름 분전하고 있습니다.
그 희생양은 박해진입니다. 그가 고영태와 친분이 있다는 게 의혹의 포인트이며 이들이 함께 호스트바에서 호스트로 일했다는 게 루머의 본질입니다. 우선 팩트부터 확인합니다. 박해진과 고영태의 연결고리는 한 장의 사진에서 시작됩니다. 14년 전 쯤에 박해진과 고영태 등 4명이 함께 찍은 사진으로 해당 사진은 합성된 게 아닌 실제 촬영한 사진이라는 부분은 박해진 측에서도 인정한 사실입니다.
당연히 함께 찍은 사진이 존재하는 만큼 박해진과 고영태가 친분이 있다는 부분은 유추가 가능한 의혹입니다. 여기에 박해진이 데뷔 전에 고영태 등과 함께 호스트로 일을 했으며 당시 촬영한 사진이라는 루머가 더해졌습니다.
이에 대해 박해진의 소속사인 마운틴 무브먼트 엔터테인먼트는 해당 사진을 “당시 유행하던 설정샷을 찍은 것일 뿐”이라고 밝혔습니다. 고영태와는 연락처도 근황도 알지 못하는 사이라고 밝혔으며 문제의 사진에 고영태가 함께 찍혀있었다는 사실 조차 인지하지 못했다고 덧붙였습니다. 함께 사진을 찍었다는 점에서 어느 정도 친분이 있다는 부분은 추정이 가능합니다. 그렇지만 14년 전의 사진일 뿐, 그 이후에는 전혀 연락을 하지 않고 지내온 관계로 근황조차 몰랐다는 게 박해진 측의 설명입니다. 누구나 그렇지만 10년도 더 지난 추억 속의 사진에 등장하는 인물과 모두 연락을 하며 근황을 파악하고 지내는 이는 거의 없을 것입니다. 그렇게 박해진과 고영태는 과거 잠시 인연이 있었던 관계 정도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그리고 이번 사안에서 박해진과 고영태의 친분을 그리 중요한 포인트도 아닙니다.
핵심은 이를 기반으로 한 루머, 데뷔 전 박해진이 호스트로 일했으며 당시 고영태와 알게 됐다는 부분입니다. 그런데 사실 이 부분은 이미 ‘사실무근’으로 검증이 끝난 부분입니다. 만약 ‘최순실 박근혜 게이트’가 불거지면서 고영태에 세간의 관심이 집중되는 상황에서 문제의 사진이 처음 공개된 것이라면 여기서 태동한 루머도 꼼꼼히 따져볼 가치가 있을지 모릅니다. 요즘 상황에서 그걸 따져보는 게 무슨 의미가 있다 싶기는 하지만.
그렇지만 문제의 사진은 이미 지난 2011년에 한 차례 화제가 됐던 사진입니다. 당시 명백한 합성 사진 한 장을 포함해 총 4개의 사진이 온라인을 통해 확산됐고 이를 바탕으로 박해진 호스트 루머가 한 차례 화제가 된 바 있습니다. 당시 박해진 측은 문제의 루머가 사실이 아니라고 해명했습니다. 또한 이를 보도한 매체는 박해진 측의 고소고발로 인해 처벌을 받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해당 사진을 둘러싼 루머는 사실무근으로 밝혀졌으며 잠시 훼손됐던 박해진의 명예가 이미 회복됐습니다.
그 당시엔 박해진과 함께 사진에 등장하는 인물이 누군지 알 수 없었기에 그리 화제가 되지 못했고 박해진 측 역시 거기에 고영태가 있었는지를 크게 신경 쓰지 않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5년여의 시간이 흘러 고영태가 관심의 중심에 서면서 다시 한 번 ‘그때 그 사진’이 화제가 됐고 ‘잊혀진 루머’까지 다시 되살아난 것입니다.
박근혜 대통령 비선실세 의혹을 받고있는 최순실씨가 31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에서 피의자 신분으로 출석하고 있다. 고성준 기자
다시 ‘최순실 박근혜 게이트’로 돌아옵시다. 사실 그 내용이 너무 방대합니다. 거기서 파생된 너무나 작은 이야기, 소위 말하는 가십거리가 바로 박해진 관련 루머입니다. 백번 양보해 루머가 사실이라고 해도 전체적인 게이트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0.001%도 되지 않는 작은 내용인데 그 조차 이미 수년 전에 해당 루머는 사실무근으로 밝혀졌습니다. 0.001%의 비중도 되지 않는 내용으로 그 조차도 사실이 아닌 박해진 관련 얘기에 대한 세간의 관심도는 꽤 높습니다. ‘최순실 박근혜 게이트’에 대한 세간의 관심을 완전히 돌려버릴 만큼의 영향력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 관심을 분산시키는 ‘물타기’ 역할은 분명하게 해냈습니다.
정치권 이슈는 종종 엄청난 임팩트를 선보이곤 합니다. ‘세월호 사건’이나 이번 ‘최순실 박근혜 게이트’가 그렇습니다. 그렇지만 이슈가 진행되며 세부적인 내용으로 들어가면 점차 대중의 관심도가 떨어집니다. 게다가 이런 대형 이슈는 거듭해서 새로운 이슈와 의혹이 기존의 이슈와 의혹을 가리는 경우도 많습니다. 이번 ‘최순실 박근혜 게이트’ 역시 JTBC가 입수한 ‘최순실 파일’을 통해 최순실 씨가 박근혜 대통령의 연설문을 미리 받아보고 수정했다는 메가톤급 이슈가 세간을 강타하면서 전국민의 관심사가 됐습니다. 이후 언론은 연일 거듭해서 단독과 특종 보도를 쏟아내고 있고 이로 인해 새로운 이슈와 의혹이 쌓여가고 있는 추세입니다.
그런데 대중은 어느새 관심의 끈을 놓아 버립니다. 연일 새로운 이슈와 의혹이 쌓여가다 보니 일반 대중들은 이를 계속 따라가기가 버겁습니다. 엄청난 충격과 분노로 시작된 관심이 서서히 사그라지고 나중에는 평소 시사와 정치에 관심이 많았던 이들을 중심으로 이슈가 재편됩니다. 그러는 동안 본질은 모호해지고 각자의 정치적 색깔에 따라 논쟁만 가열되는 상황으로 흐르다 흐지부지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전국민을 집단 우울증에 걸리게 만든 세월호 사건 역시 그런 수순을 밟았습니다.
반면 연예계 이슈는 충격적이면서도 다가가기 쉽습니다. 그러다 보니 늘 연예계 이슈는 대중 친화적입니다. 그러다 보니 정권 차원에서 위기가 될 이슈가 불거지면 연예계 이슈로 대중의 관심을 돌리려 한다는 음모론까지 제기되곤 하는 것입니다. 이번에도 그렇습니다. ‘최순실 박근혜 게이트’를 덮을 만큼 대형 연예계 이슈는 아닐 지라도 박해진을 둘러싼 소소한 루머 하나가 어느 정도는 이번 게이트에서 물타기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습니다.
박해진을 둘러싼 루머의 최대 피해자는 5년여의 간격을 두고 같은 루머로 두 번 마음고생을 해야 하는 박해진입니다. 그리고 최대 수혜자는 당연히 최순실 씨와 그 측근들입니다. 자신들을 향해야 할 국민의 관심을 조금이나마 덜어준 고마운 루머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지금 이 순간 우리가 박해진의 루머에 관심을 갖는다면 이는 최순실 씨를 도와주는 게 되고 맙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닙니다. 박해진 루머의 시시비비에 관심을 기울일 틈이 없습니다. 이번만큼은 조금 지루하고 때론 어려울 지라도 ‘최순실 박근혜 게이트’에 관심을 갖고 집중해야 합니다. 매일매일 새롭게 등장하는 관련 이슈에 관심을 갖고 제기되는 각종 의혹의 시시비비에 집중해야 합니다. 박해진의 루머까지 신경 쓰며 최순실 씨를 도와줄 까닭이 전혀 없습니다. 그만큼 ‘최순실 박근혜 게이트’가 국가적으로 매우 중대한 현안이기 때문입니다.
신민섭 기자 lead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