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성·조양호 혼쭐 ‘오비이락도 한두번이지…’
횡령과 직권남용 혐의로 수사의뢰 된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6일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에서 피의자 신분으로 출석하고 있다. 우병우·이석수 특별수사팀은 이번 소환조사를 통해 우 전 수석을 둘러싼 의혹 규명에 나설 전망이다. 사진공동취재단
앞서 검찰은 2015년 5월 이명박정부 당시 청와대 교육문화수석을 지낸 박 전 총장을 특정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위반(뇌물) 등 혐의로 구속기소했다. 박 전 총장은 교육문화수석으로 재직하면서 중앙대에 특혜를 주는 대가로 중앙대 이사장이던 박용성 전 두산그룹 회장에게 뇌물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10일 대법원은 박 전 총장과 박 전 회장에게 각각 유죄를 확정 판결했다. 그런데 이 사건 막후에 최순실 씨가 있었다는 주장이 새롭게 나온 것이다.
사정기관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2014년 9월 최순실 씨의 딸인 정유라 씨는 중앙대 수시모집 전형에 지원했다가 탈락했다. 중앙대는 자체 심사 과정에서 공표된 모집 규정에 따라 정 씨의 ‘아시안게임 승마 단체전 금메달 수상 실적’을 반영하지 않았다. 이후 정 씨는 이화여대에 입학했고, 새 학기가 시작되자 중앙대는 검찰 내사 끝에 이사장이 법정에 서게 됐다. 우 수석의 장모 김 아무개 씨는 이화여대에 1억 원의 발전기금을 기탁한 것으로 전해진다.
앞의 사정기관 관계자는 “(사안의 무게와 시점 등을 고려할 때) 관련 내사 지시가 다소 뜬금없긴 했다”며 “이 무렵 (윗선 지시로) 여러 사건들에 대한 정보 수집이 이뤄졌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가 말한 사건 가운데는 ‘대한체육회 비리 의혹’ 수사가 포함돼 있다.
박용성 전 두산그룹 회장(왼쪽)과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이 무렵 문화체육관광부는 대한체육회 등 체육단체 통합을 추진하는 한편, K스포츠재단 설립과 관련한 실무 준비에 착수했다. 최순실 씨와의 커넥션 의혹이 제기된 김종 당시 문화체육관광부 2차관은 최 씨의 지시를 받고 이들 사업을 총괄한 것으로 전해진다. 지난해 기자와 만난 한 체육계 관계자는 “김 차관이 김 회장을 압박해 (반대하던) 체육단체 통합안에 사인하게 했을 뿐 아니라 대한체육회 내부에도 자기 사람들을 밀어 넣어 조직을 장악하려 했다”고 말했다. 김 전 차관은 기자와 통화에서 “전혀 사실무근이며 인사 개입은 말도 안된다”며 “체육단체 통합은 정부가 제안하지 않았다는 것을 국회가 잘 알 것”이라고 반박했다. 김 전 차관은 또 최순실 씨와 관계에 대해서는 “법정에서 다 말할 것”이라고 밝혔다.
불과 두 달 사이 검찰로부터 연이은 ‘간접 수사’를 받은 두산그룹은 같은 해 미르·K스포츠재단에 11억 원을 출연했다. 같은 시기 수사 선상에 오른 대기업은 두산뿐이 아니다.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은 지난 5월 평창동계올림픽 조직위원회 운영 문제 등과 관련해 ‘최순실 사단’과 갈등을 빚다가 사퇴 권고를 받고 조직위원장직에서 물러났다. 한 달 뒤 검찰은 한진그룹 본사와 대한항공 본사 등을 압수수색하고 문희상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처남 취업 청탁 의혹 등과 관련한 수사에 착수했다. 이 사건으로 조 회장은 검찰로 불려가 조사까지 받았지만 결국 무혐의 처분됐다. 한진그룹은 미르·K스포츠재단에 10억 원을 출연했다.
2015년 3월 시작된 포스코 수사에도 ‘최순실 사단’이 개입했다는 의혹이 제기된다. CF감독 차은택 씨는 2015년 1월께부터 포스코계열 광고회사 포레카를 뺏기 위해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 등과 공모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당시 이들은 포스코 경영진과 접촉해 ‘광고회사를 넘기지 않으면 포스코가 사정대상에 오를 수 있다’는 등의 말로 겁박했다고 전해진다. 실제 포스코는 6개월이 넘는 기간 동안 수사를 받았으며, 미르·K스포츠재단에는 49억 원을 냈다. 이 수사 역시 ‘윗선’의 급박한 결정에 따라 이뤄졌다는 증언이 나온다.
최순실 씨의 최측근이자 문화계 황태자로 불리던 차은택 씨가 8일 오후 중국 칭다오에서 인천공항을 통해 귀국 후 서초구 서울중앙지검으로 압송되고 있다. 박정훈 기자.
현재 검찰은 이른바 ‘최순실 게이트’와 관련한 수사를 진행하면서 우 전 수석의 직무유기 혐의 등도 함께 들여다보고 있다. 그러나 이들 수사를 책임질 검찰이 얼마 전까지도 최 씨의 ‘입김’에 휘둘렸다는 증언이 나온 것이어서 추가적인 정황이 확인될 경우 적잖은 파장이 예상된다.
검찰 고위 관계자는 “하명 수사는 전혀 사실이 아니며, 검찰은 민정수석실의 지휘를 받는 조직이 아니다. 단순히 시기가 겹친다고 해서 의혹을 제기한다면 세상에 의혹이 아닌 것이 없다. (최 씨 등이) 사건에 어떻게 개입했는지 구체적이고 명확한 증거가 있으면 우리에게도 좀 알려 달라. 관련 수사들은 시기가 무르익어 수사팀의 자체적인 판단 하에 시작된 것으로 안다. 정치적인 의도는 없다”고 말했다.
강현석 기자 angeli@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