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루자 명단 떠돌아…‘떨고 있는 이들 있다’
수백억 원대 회삿돈을 가로챈 혐의를 받는 해운대 엘시티(LCT) 시행사 실소유주 이영복(66) 회장이 지난 12일 부산지검을 나와 구치소로 향하고 있다. 법원은 “범죄사실이 소명되고 증거를 인멸하거나 도주할 우려가 있다”며 검찰이 청구한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연합뉴스
검찰이 비자금의 용처를 파악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연루된 이가 누구인지에 관심이 쏠린다. 비록 이 회장이 입을 굳게 닫을 것이라고 입장을 보였지만 ‘돈의 흐름’이란 증거 앞에 그의 묵비권이 지난 다대·만덕사고 당시와는 달리 무력화될 가능성이 크다는 게 중론이다. 이와 맞물려 인허가 과정에 하자가 있다고 판명되면 사업자체가 취소되거나 축소될 수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 “나 지금 떨고 있니?”
현재 부산지역에는 엘시티 사건에 여야 유력 정치인들이 대거 연루됐다는 확인되지 않은 말이 떠돈다. 이는 연루 대상이 인허가 당시에 연관 있는 부산시·해운대구 등의 기관과 정치권 등에 머물 것이란 당초 전망을 훨씬 웃도는 것이어서 주목된다. 특히 박근혜 대통령이 파국을 치닫는 현 상황 속에서도 이례적으로 해당 사건에 대해 강력한 수사 지시를 내리면서 이와 같은 억측이 빠르게 번지고 있다.
우선 17일 현재까지 밝혀진 사실에 따르면 전·현직 부산시장 누구도 이른바 ‘합리적 의심’이란 단어 앞에 자유롭지 못한 처지다. 부산시 정기룡 경제특보가 2010년부터 2012년까지 엘시티 PFV의 사장을 지낸 사실이 최근 행정사무감사를 통해 새롭게 부각되면서 이와 같은 의혹이 더욱 무게감을 얻고 있다.
정기룡 부산시 경제특보는 부산시 정보단지개발팀장으로 재직하며 센텀시티를 기획했고 정책개발실장 재직 시엔 시정 경영전략 수립이나 비즈니스 엔지니어링을 도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 특보는 2010년부터 2012년까지 설계와 마케팅을 주로 담당한 엘시티 PFV 사장을 지낸 이후 2014년 지방선거 당시 부산시장에 도전장을 낸 서병수 캠프에 합류했다. 당선 이후 서병수 시장은 경제특보를 신설하고 그에게 자리를 맡겼다.
엘시티와 관련한 정 특보의 이력은 부산시 전·현직 시장 모두를 곤란에 빠뜨리고 있다. 정 특보는 허남식 전 시장 재임 시절에는 부산시 사업개발 관련 핵심부서와 엘시티에서 잇달아 근무했다. 이후엔 엘시티 사업 인허가 당시 해당 지역구 국회의원이던 현 서병수 시장의 최측근을 자임하고 있다.
논란이 일자 정기룡 특보는 17일 오전 기자회견을 자청해 “엘시티 재직 당시 사업개발에만 관여했을 뿐이다. 기술직에서 주로 담당한 인허가와 관련한 사항과는 무관하다”고 해명했다.
아직까지는 설에 불과하지만 전·현직 시장 두 명 외에 엘시티 인허가 당시 해운대구청장이던 새누리당 배덕광 의원과 부산지검장을 지낸 변호사 A 씨의 이름도 나돈다. 부산지검과 부산고검의 고위직을 거친 법조인 출신 유력인사들도 함께 거론된다. 여기에 부산 출신 여야 대권주자의 주변 인사를 비롯, 친박계 부산 인사, 최근 최순실 게이트 특별검사로 거론되는 인사까지 포함된 연루자 명단이 떠돌고 있는 형국이다.
중앙 정치권도 의혹의 불길에다 기름을 들이부었다. 국민의당 박지원 비상대책위원장은 16일 “엘시티 사업의 책임시공을 맡은 포스코건설이 열흘 만에 대규모 대출을 받았는데, 여기에 박 대통령의 측근이 개입했다는 제보를 받았다”고 밝혔다. 청와대가 즉각 “근거 없는 정치공세”라며 대응했지만 의혹은 꼬리를 물며 더욱 커지고 있다.
부산 해운대해수욕장 해변에 101층 복합시설 1개동과 85층 주거시설 2개동으로 구성된 엘시티(LCT)를 건립하는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연합뉴스
# “공사비 충분, 책임준공” VS “인허가 하자 시 사업취소 우려”
엘시티는 현재 아파트의 경우 분양률이 87%, 레지던스가 50% 가까이 되면서 공사비는 충분히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이 계약금이 신탁회사에 안전하게 보관된 것으로 전해지면서 사업 추진에는 일단 이상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시공사인 포스코건설도 책임준공을 약속했다. 이는 시행사에 문제가 생겨도 시공사에서 건설을 완료하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구속된 이영복 회장이 “분양이익이 나면 금전적인 혐의는 다 해결되는 상황”이라고 진술한 점도 준공에 대한 불안감을 잠재우는 데 일조하고 있다.
하지만 엘시티에 대한 인허가 비리가 사실로 판명될 경우 사업 자체가 무산될 수도 있다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적법한 절차 위에서 진행된 사업이 아닌 만큼 수사 결과에 따라 사업이 축소되거나 중단될 수가 있다는 얘기다.
법무법인 인화국제법률사무소 황주환 변호사는 “엘시티는 인허가 과정에서 환경영향평가는 전혀 없었고 교통영향평가도 한 번만 열린 채 심의를 통과했다. 엘시티 인허가 과정에서 심각한 하자가 있다면 사업 자체를 취소하거나 주거시설을 지을 수 없도록 인허가가 변경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이런 우려와 수사진행 상황 등이 복합적으로 맞물리면서 현재 시장은 완전히 얼어붙었다. 지난 7월 엘시티 사업에 대해 검찰이 수사를 시작한 이후 아파트 분양권 거래가 급감했다. 지난해 10월부터 지난 6월까지 분양권 거래건수는 총 214건으로 월 평균 23.77건이었다. 하지만 지난 7월 12건으로 반으로 토막 난 이후 8월 6건, 9월 3건, 10월 2건 등으로 거래가 크게 줄었다.
한편, 검찰 수사를 지휘하는 입장에 있는 법무부가 엘시티 사업에 특혜를 준 게 아니냐는 논란도 때마침 불거져 파문이 확산되고 있다. 법무부가 지난 5월 부처 협의를 통해 엘시티 부지의 투자이민제 지역 지정을 2023년까지로 5년 연장해준 사실이 뒤늦게 알려진 것이다.
투자이민제 지역에 5억 원 이상 투자한 외국인에게는 거주 자격이 주어지고, 5년 이상 이를 유지하면 영주권까지 부여된다. 그만큼 외국인에게 투자를 받기가 쉬워져 그 자체로 특혜라는 지적을 받는다. 엘시티 부지는 2013년 5월 5년 기한으로 투자이민제 지역으로 지정됐다. 기한이 2018년까지인데 따라 법무부가 시효연장을 결정할 당시엔 시효가 아직 2년이나 남은 상태였다.
특히 전국적으로 투자이민제 지역으로 지정된 건 전국적으로 7곳뿐이며 이 가운데 민간 건물은 엘시티가 유일하다. 실제 엘시티는 투자이민제 지역 지정 직후에 중국 대형 건설사와 시공계약을 체결했다. 이를 토대로 외국인을 상대로 150억 원에 이르는 분양수익을 올렸다. 이는 또한 이영복 회장의 로비가 전 방위에 걸쳐 이뤄졌다는 것을 나타내는 방증인 셈이다.
이처럼 부산지역에선 엘시티와 관련한 갖은 억측과 우려가 떠돌고 있다. 특히 해당 사건이 현 정권의 블랙홀이 되고 있는 최순실 게이트와 종과 횡으로 교차하면서 의혹은 더욱 증폭되고 있다. 지역민 대다수의 이목이 검찰수사의 향배에 쏠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하용성 기자 ilyo33@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