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린턴이 피자집에서 아동 성매매? 미국판 ‘십알단’ 판친다
힐러리 클린턴을 비롯한 민주당 고위 관계자들이 피자 가게에서 비밀리에 아동 성매매 및 아동 성학대 행위를 즐겼다는 괴담이 대선이 끝난 후에도 걷잡을 수 없이 번져 나가고 있다. 사진은 피자가게 ‘카밋 핑퐁’.
지난 12월 4일, 워싱턴 D.C의 피자 가게인 ‘카밋 핑퐁’에서 난데 없는 총격 사건이 벌어졌다. 한 백인 청년이 가게 안으로 들어오더니 갑자기 직원을 향해 반자동 소총을 쏘기 시작한 것이다. 다행히 사상자는 없었고, 잠시 후 총기 난사범이 가게 밖으로 걸어 나오면서 사건은 싱겁게(?) 끝났다.
에드가 웰치(28)라는 이 청년은 경찰 조사에서 범행 동기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인터넷에서 ‘카밋 핑퐁’ 지하실에 아동 성노예들이 감금되어 있다는 소문을 들었다. 정말 그런지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싶었다.” 요컨대 성노예로 감금된 아이들을 구출하기 위해 피자 가게를 찾아왔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결국 지하실은커녕 의심스런 증거를 찾지 못했던 웰치는 제발로 걸어 나왔고, 그렇게 사건은 종결됐다.
해프닝으로 끝난 이번 사건의 진원지는 다름아닌 SNS를 중심으로 퍼지고 있는 ‘피자게이트’였다. ‘피자게이트’란 클린턴을 비롯한 민주당 고위 관계자들이 피자 가게를 중심으로 소아성애를 즐겨왔다는 의미에서 붙여진 이름으로, 지금까지 주류 언론에서는 ‘가짜 뉴스’로 치부해 이렇다 할 보도를 하지 않았다.
‘피자게이트’가 언제, 어디에서 처음 시작됐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단지 10월 무렵부터인 것으로 추정되고 있을 뿐이다. 당시 트위터에 개설된 여러 익명의 계정에는 클린턴의 이메일 스캔들을 수사하던 FBI가 클린턴의 최측근인 후마 에버딘의 전 남편인 앤서니 위너 전 하원의원의 노트북을 압수했고, 이 과정에서 아동 성학대와 관련된 이메일을 발견했다는 의혹이 소개되어 있었다. 실제 위너는 과거 섹스팅 스캔들에 휘말려 하원의원 직에서 사임한 바 있었다.
이 소문은 SNS를 중심으로 트럼프 지지자들과 음모론자들 사이에서 급속도로 퍼져 나갔다. 눈덩이처럼 불어난 소문은 급기야 클린턴 본인과 클린턴 진영의 선거운동본부장이었던 존 포데스타가 아동성학대와 연루돼 있다는 의혹으로까지 번졌다. 그리고 이런 의혹은 이보다 앞서 제기됐던 포데스타의 수상한 행적과 맞물려 더욱 더 의심을 받았다.
당시 폭로 전문 웹사이트인 ‘위키리크스’가 공개한 포데스타의 이메일에 따르면, 포데스타는 행위 예술가인 마리나 아브라모비치가 주최한 ‘스피릿 쿠킹’ 파티에 초대됐었는데, 바로 이 ‘스피릿 쿠킹’ 파티란 것이 일종의 오컬트 의식이라는 것이었다. ‘위키리크스’는 “악마 숭배주의가 워싱턴 고위층 사이에 침투했는가”라는 글을 통해 이런 의심을 하면서 아브라모비치가 오래 전부터 오컬트와 관련이 있었으며, 그녀가 하는 의식은 악마를 숭배하고, 악마에게 인신공양을 하는 행위를 묘사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가령 포데스타가 참가한 것으로 추정되는 ‘스피릿 쿠킹’에서도 돼지피로 벽에 기괴한 문장을 쓰거나 방 한구석에 세워둔 어린 아이 동상에 돼지피를 끼얹는 등 기괴한 행동들을 했다는 것이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포데스타의 사무실에 걸려 있는 인육을 먹는 것으로 추정되는 사진이 포착되면서 이런 소문은 더욱 빠른 속도로 퍼져 나갔다.
그리고 11월 초, 풍문으로만 떠돌던 괴담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이메일이 한 건 더 발견됐다. ‘위키리크스’가 공개한 한 무더기의 포데스타의 이메일 가운데 한 통이 바로 그것이었다. 포데스타가 평소 친분이 있던 ‘카밋 핑퐁’의 사장인 제임스 알레판티스와 주고받은 이메일에서 불필요하게 ‘피자’ ‘피자 가게’란 단어를 여러 차례 언급했다는 것이었다. ‘피자게이트’를 믿는 음모론자들은 이 이메일이 겉으로는 클린턴의 기금 모금 행사에 대해서 상의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소아성애를 의미한다고 주장했다. 다름 아니라 ‘피자’란 단어가 일종의 소아성애자들이 사용하는 암호라는 것이다. 가령 ‘피자’는 소아성애자들 사이에서 ‘소녀’를, 그리고 ‘핫도그’는 ‘소년’을 뜻한다는 것이다.
이 이메일로 인해 ‘피자게이트’는 이제 실존하는 피자 가게인 ‘카밋 핑퐁’과 결부돼 퍼지기 시작했다. 클린턴과 포데스타 등 민주당 관계자들이 속한 아동 성매매 조직의 비밀 허브 역할을 한 곳이 바로 ‘카밋 핑퐁’이며, 이들이 ‘카밋 핑퐁’의 지하실에 어린이들을 가두고 성학대를 했다는 것이다.
이런 괴담은 극우 성향의 사이트인 ‘4챈’을 중심으로 점점 더 괴이하게 변해갔다. 가령 알레판티스의 인스타그램에 미성년자들을 성적 노리개로 암시하는 어린이 사진들이 가득하다거나, ‘카밋 핑퐁’의 화장실에 포르노 사진이 걸려 있다거나 혹은 ‘카밋 핑퐁’에 가면 지하실로 연결된 비밀 문이 있다는 식이었다. 소문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카밋 핑퐁’의 메뉴에는 소아성애를 암시하는 기호가 인쇄되어 있고, 가게에 전시된 그림들은 성적인 이미지들로 가득하다고도 했다.
이에 ‘피자게이트’의 가장 큰 희생양이 된 ‘카밋 핑퐁’은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는 상태. 알레판티스는 ‘카밋 핑퐁’이 소아성애자들과는 무관할 뿐더러 워싱턴 고위 정치인들의 집합소도 아니라고 주장했다. 실제 10년 전 문을 연 120석 규모의 대형 피자 가게인 ‘카밋 핑퐁’은 이 사건이 있기 전까지만 해도 부모가 아이들과 함께 즐겨 찾는 평범한 레스토랑이었다. 실내에는 가족들이 함께 즐길 수 있도록 탁구대가 놓여 있고, 간혹 지역 밴드들의 공연장으로 이용되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지역의 가수나 화가들에게 장소를 임대해주는 식으로 지역 사회에 공헌하고 있었으며, 덕분에 알레판티스는 지난 2012년 <GQ>가 뽑은 워싱턴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50인 가운데 49위에 선정되기도 했었다.
그렇다면 혹시 정치인들과 어떤 연관이 있는 건 아닐까. 이에 알레판티스는 ‘카밋 핑퐁’의 단골이자 포데스타의 형인 토니 포데스타 등 몇몇 민주당 관계자들과 친분이 있고, 지난 대선에서 클린턴을 지지하긴 했지만 단 한 번도 클린턴을 직접 만난 적은 없다고 말했다. 또한 지금까지 아동 성매매나 아동 성학대 등과 관련된 일로 경찰 조사를 받은 적은 단 한 번도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피자게이트’가 불거진 후 ‘카밋 핑퐁’은 예전과 백팔십도 달라졌다. 알레판티스와 마흔 명의 종업원들은 하루가 멀다 하고 인터넷과 전화를 통해 협박과 인신공격을 당하고 있다. 가령 어떤 누리꾼은 알레판티스가 인스타그램에 올린 양팔에 붕대를 감은 여자 아이 사진을 두고는 “분명 아동학대의 증거다”라고 추궁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에 대해 알레판티스는 “나는 사진 속 여자 아이의 대부다. 그날 여자 아이는 자매들과 함께 장난을 치고 있었던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런가 하면 음식점 후기 사이트에는 근거 없는 악플들이 올라오기 시작했으며, 심지어 가게 안으로 들어와서는 “의혹의 장소에 와있다”면서 실시간 동영상 촬영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 또한 레스토랑 앞에 연일 시위대들이 몰려오자 결국 ‘카밋 핑퐁’은 경호원을 추가 배치하면서 혹시 발생할지 모르는 안전 사고에 대비하고 있다.
알레판티스는 “레스토랑에 불을 질러 다 태워버리겠다” “몰래 죽여주마”와 같은 개인적인 협박을 받는 것도 견디기 힘들지만 그보다는 손님들이 가게 홈페이지에 올린 자녀의 사진들까지 아동 학대의 증거라고 악용하는 것은 더욱 더 참기 힘들다고 말했다. 이에 많은 피해자들은 음모론자들을 상대로 법적 대응을 할 것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알레판티스는 음모론자들에 대해 “그들은 기본적인 진실을 무시하고 있다. 가령 음모론자들은 가게에 비밀 지하실이 있다고 주장하는데 사실 우리 가게에는 지하실이 아예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실제 ‘피자게이트’는 팩트체크 전문웹사이트인 ‘스놉스닷컴’과 <뉴욕타임스> 등을 통해 이미 거짓으로 판명난 상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문은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아무 것도 사실로 확인되지 않았는데도 ‘피자게이트’는 마치 진실인 양 트위터, 레디트, 페이스북, 구글 등을 통해 걷잡을 수 없이 퍼져 나가고 있다.
‘피자게이트’의 심각성은 지난 대선 결과에 적지않은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진 ‘가짜 뉴스’의 심각성과도 연관이 있다. 대선 기간 동안 주요 언론사의 ‘진짜 뉴스’보다 사람들의 더 많은 관심을 끌었던 ‘가짜 뉴스’는 주로 정체 불명의 웹사이트나 SNS를 통해 퍼졌으며, 그 내용은 대개 자극적이거나 선동적이었다. 가령 가장 많은 관심을 끌었던 ‘가짜 뉴스’ 가운데 하나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트럼프 지지를 선언했다’는 것이었다. 물론 이것은 거짓이었다. 이밖에 ‘클린턴이 IS에 무기를 판매했다’는 헛소문도 마치 진실인 양 SNS에 퍼진 바 있었다.
사정이 이러니 대선 직후 ‘페이스북’을 비롯한 SNS 사이트들은 검증되지 않은 ‘가짜 뉴스’가 마구 퍼지도록 내버려뒀다는 비판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마크 저커버그 CEO는 이런 비판에 대해 “페이스북에 올라오는 뉴스 가운데 가짜는 1%도 되지 않는다. 그것으로 선거 결과가 바뀌지는 않는다”고 일축한 바 있다.
김민주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