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장 큰 변화 몰고오긴 어려워…시장 반응 시큰둥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 6일 국회에서 열린 국정조사 청문회에 참석해 물을 마시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가장 큰 관심을 모은 약속은 미래전략실 해체다. 비서실, 구조조정본부 등을 거쳐 그룹의 사령탑 역할을 하는 미래전략실을 해체하면 지주사 체제로 가는 게 아니냐는 기대를 낳고 있다. 이에 앞서 삼성전자가 지주회사 전환을 포함한 기업구조를 검토하겠다고 밝힌 것과 일맥상통하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삼성전자의 본질적인 기업가치에 가져올 영향을 따져보면 이 부회장의 ‘미래전략실 해체’ 답변은 현실적으로는 당장 큰 변화를 몰고 오기 어려워 보인다.
현재 삼성의 사업부문은 전자(삼성전자·삼성SDI·삼성전기·삼성SDS), 금융(삼성생명·삼성화재·삼성카드·삼성증권), 건설·중공업(삼성물산·삼성중공업·삼성엔지니어링), 서비스·유통(호텔신라·제일기획·에스원), 이 4개다.
이중 전자 비중이 가장 크다. 금융계열사를 제외하면 거의 모두 삼성전자가 직접 지분을 가진 회사들이다. 이는 삼성전자가 지분을 가진 회사를 관리하는 부서를 두고 사령탑 역할을 할 명분이 있다는 뜻이다. 삼성 미래전략실 임원들은 이미 삼성전자 소속이다. 회사를 옮길 필요도 없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자동차, 철강, 건설, 금융 등을 영위 중인 현대차그룹도 계열사 지분을 가장 많이 갖고 있는 현대차 내 기획총괄본부를 통해 사실상 그룹을 경영하고 있다. 조선업에 특화된 현대중공업도 마찬가지다. 삼성도 전자 비중이 절대적이어서 삼성전자가 이 같은 역할을 충분히 할 수 있다. 게다가 비(非)전자 부문은 삼성물산이 사실상 지배주주다. 기존 미래전략실 기능을 삼성전자와 삼성물산으로 나누면 그룹 전체를 통괄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삼성 사정에 정통한 관계자는 “삼성이 연말 임원인사를 특검 후인 내년 초로 미룰 것이란 관측이 나오고 있다. 특검 결과에 따라 최악의 경우 미래전략실 등 최고위 임원의 거취를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특검 등 외부 변수가 사라진 후에야 인사와 함께 조직개편을 단행하면서 새로운 사령탑을 세울 것으로 예상된다”고 귀띔했다.
삼성도 SK의 ‘수펙스위원회’처럼 상징적인 조직을 만들 수도 있다. 삼성은 지금도 매주 수요일 외부 강의를 듣는 형식으로 사장단 회의를 한다. SK는 각 계열사 대표이사들로 구성된 수펙스위원회에서 의사결정을 하는 형식을 취한다. 하지만 실무조직이 아니다. SK의 실제 사령탑은 최태원 회장이 이끄는 지주사 SK㈜다. 설령 삼성이 ‘위원회’ 형식의 조직을 만든다 해도 별도의 실무조직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 이건희 회장 때 사장단 회의가 있었지만 구조조정본부와 공존했다.
시장에서 가장 기대하는 방법은 지주사 전환이다. 그런데 지주사 전환이 그리 만만치 않다. 삼성전자를 인적분할하고 삼성전자지주회사(가칭)를 설립하기는 쉽다. 하지만 이 부회장이 지배하는 삼성물산과 합병하지 않는다면 단순히 삼성전자를 두 개로 쪼갠 ‘미완성체’에 불과하다.
문제는 삼성전자지주와 삼성물산 합병에 걸림돌이 적지 않다는 점이다. 우선 이 부회장의 지분율 하락을 감수해야 한다. 지분율 하락을 최소화하려면 이건희 회장의 지분을 증여받아야 한다. 이 경우엔 세금이 문제가 된다.
삼성물산이 지금 형태로 삼성전자지주와 합병하면 금산분리 문제가 불거질 수 있다. 삼성물산이 가진 삼성생명 지분과 삼성생명이 가진 삼성전자 지분 때문이다, 공정거래법상 유예기간을 가질 수 있지만 23조 원에 달하는 지분이 움직이는 문제다. 순환출자를 피하고, 금산분리를 지키는 작업은 간단하지 않을 수 있다. 중간금융지주회사나 금산분리 완화 등은 여당이 지리멸렬하고 야당이 득세하는 국회에서 기대가 어렵다. 결국 단기적으로는 미래전략실 조직을 축소하고 이름을 바꾸는 선택을 할 것이 유력해 보인다.
삼성전자가 내놓은 중장기 주주가치 제고 방안도 효과가 크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먼저 글로벌 기업 최고경영자(CEO) 출신 사외이사 선임과 사외이사 전원으로 구성된 지배구조(governance)위원회 구성은 선언적 의미 이상을 갖기 어려워 보인다. 어차피 사외이사 추천 주체가 현재 구조와 같다면 국적만 바뀔 뿐 새로운 경영감시 체제 구축과 거리가 멀다. 현 경영진이 선임한 사외이사로 구성된 지배구조위원회도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삼성 특수관계인이 아닌 외국인 주주들이 선임한 사외이사를 둬야만 뚜렷한 변화를 기대할 수 있다는 뜻이다.
서울 여의도 전경련회관. 이재용 부회장의 ‘탈퇴’ 발언으로 전경련이 어떻게 변화할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고성준 기자
다만 배당총액이 계속 늘어나는 점과 자사주 매입 소각에 따르는 유통주식 수 감소와 이에 따른 주가 탄력 확대는 긍정적 요인이다. 최근 삼성전자 주가가 소폭이나마 사상 최고가를 돌파한 것도 이를 반영한 결과로 볼 수 있다.
한편 이병철 삼성 창업자가 만든 전경련 해체 약속에도 큰 의미를 부여하기 어려워 보인다. 삼성은 일단 이 부회장이 “전경련 회비를 내지 않겠다”고 공언한 만큼 사실상 탈퇴 수순을 밟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다른 기업들 입장은 다르다. SK만 하더라도 “최태원 회장이 전경련의 환골탈태가 필요하다고 했지만, 탈퇴를 약속한 것은 아니다”라며 유보적인 입장이다.
삼성이 전경련에 복귀할 가능성도 있다. 가장 많은 회비를 납부하는 삼성이 탈퇴하고, 구본무 LG 회장도 근본적인 변화를 요구하고 나서면서 전경련은 형태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치명적인 타격을 입은 만큼 획기적인 변화를 주지 않을 수 없다.
재계 관계자는 “기업인 경제단체로 대한상의나 경총 등이 있지만 너무 포괄적이다. 이른바 ‘총수 있는 기업’들을 대변할 단체는 계속 필요하다. 전경련의 형태를 협회에서 해리티지재단 같은 싱크탱크 형태로 바꾸되 기존 역할은 계속 수행하는 방법이 유력하다. ‘전경련’이 간판은 없어지지만 사실상 그 내용은 유지되는 셈이다”라고 내다봤다.
특히 재계 대표단체로서의 위치는 오너 기업인들에게 중요하다. 전경련은 국민연금 기금운용 최고의결기구인 기금운용위원회 위원 20인 가운데 1명을 추천하는 권한을 갖는다. 전경련이 추천권을 잃으면 대한상의가 이를 대신할 가능성이 크다. 국민연금은 주요 대기업 대주주로 이에 대한 접근권은 상당히 중요하다.
한편 전경련은 2010년 4000억 원가량의 예산을 투입해 전경련회관을 새로 지었다. 2014년부터 흑자가 나고 있지만 여전히 3300억 원이 넘는 빚을 안고 있다. 회원사 탈퇴로 회비 수입이 감소하면 빚이 다시 불어날 수 있다. 가장 많은 회비를 내 온 삼성만 탈퇴하더라도 재무적으로 치명적일 수 있다.
최열희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