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식 일정 없이 관저 생활…중도 사임 가능? 의견 엇갈려
정세균 국회의장이 9일 국회 본회의에서 박근혜 대통령 탄핵 소추안 가결을 선포하고 있다. 박은숙 기자
통과된 탄핵안에는 박 대통령이 국민주권주의와 대의민주주의, 직업공무원제 등 모두 14개 항에서 헌법을 위반했고 법률상으로는 뇌물죄와 직권남용, 강요, 공무상 비밀 누설죄 등에 해당하는 범죄를 저질렀다는 내용이 적시됐다. 새누리당 비주류 측이 수정을 요구했던 세월호 참사 대응 논란도 원안에 그대로 담겼다.
대통령의 경우 헌법 84조에 ‘대통령은 내란 또는 외환의 죄를 범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재직 중 형사상의 소추를 받지 아니한다’고 정하고 있다. 헌법재판소(헌재) 판례에 따르면 대통령은 다른 탄핵재판 대상자와는 다르게 중대한 위법사항이 있을 경우만 탄핵할 수 있다.
따라서 검찰이 공소장에 적시한 제3자 뇌물제공죄의 입증 여부가 가장 중요한 쟁점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검찰이 박 대통령을 뇌물죄가 아니라 제3자 뇌물제공죄의 공범으로만 적시한 것은 박 대통령이 재벌총수들로부터 직접 뇌물을 받은 것을 입증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다만 박 대통령이 직접 돈을 받지 않았더라도 부정한 청탁을 받고 제3자인 최순실에게 뇌물을 제공하도록 했다는 점이 입증된다면 탄핵안 인용에 힘이 실릴 것으로 예상된다.
탄핵안 통과 이후에도 박 대통령 조기퇴진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여전히 높다. 전문가들조차 탄핵안 가결 후 대통령의 사퇴가 가능한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현재 대통령이 탄핵심판 도중 사임하지 못하도록 하는 헌법이나 법률 규정은 없지만 이번에 이를 허용할 경우 탄핵 절차를 지켜보다 불리할 경우 중도 사임하는 등 악용될 가능성이 크다는 문제점이 있다.
헌재 판결이 나오기 전까지는 대통령 신분을 박탈당하는 것은 아니다. 대통령이라는 호칭도 그대로 유지된다. 경호와 의전 등 대통령에 대한 예우도 변동이 없다. 관용차와 전용기도 이용할 수 있다. 월급도 그대로 받지만 일부 업무추진비 성격의 급여는 받지 못한다.
탄핵안 가결 이후 박 대통령의 생활은 지난 2004년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례를 통해 추측해 볼 수 있다. 노 전 대통령은 탄핵안이 통과된 이후 관저에서 생활하면서 공식적인 일정은 하지 않았다. 주로 신문과 책을 보거나 기자단과 산행하는 등 비공식적 일정만 가졌으며 정치적 언행도 자제하고 탄핵 심판에 대비했다. 박 대통령도 주로 청와대 관저에서 생활하면서 헌재의 재판 결과를 기다리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게 될 황교안 총리에 대한 예우가 어떻게 달라지게 되는지도 관심의 대상이다. 법률상으로는 총리가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게 되면 대통령에 준하는 의전과 경호를 받을 수 있다. 그러나 황 총리는 청와대 경호실의 경호를 받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지난 2004년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당시에도 청와대 경호실에서 총리실로 파견을 나왔지만 근접 경호는 기존에 하던 대로 총리실에서 담당한 바 있다.
의전 역시 총리실에서 그대로 담당하기로 했다. 박 대통령에 대한 예우 차원에서다. 총리가 대통령 권한을 대신 행사할 경우 그 범위에 관해서는 헌법 등에 구체적인 규정이 없다. 다만 국정마비를 피할 수 있는 범위에서 제한적으로 권한행사를 해야 한다는 것이 대다수 학자들의 견해다. 임명직인 총리가 국민이 직접 선출한 대통령과 같은 권한을 행사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탄핵심판 변론은 구두로 이뤄지며 일반에 공개된다. 다만 국가안보나 질서, 선량한 풍속을 해칠 우려가 있는 경우에는 공개하지 않을 수 있다. 헌재는 변론을 열 때 기일을 정해 당사자와 관계인을 소환한다. 탄핵심판의 경우 피청구인인 박 대통령과 소추위원인 법사위원장이 당사자다. 따라서 박 대통령에 대한 신문도 가능하다. 헌재가 심리를 위해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경우 직권 또는 소추위원 측 신청에 따라 신문할 수 있다. 하지만 박 대통령이 출석하지 않는다고 해서 강요할 수는 없다. 불출석에 대한 처벌 조항이 없기 때문이다.
헌재는 탄핵심판 사건을 접수한 날부터 180일 이내에 탄핵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재판관 9명 가운데 6명 이상의 찬성이 있어야 탄핵이 결정되며, 6명에 미달하면 청구가 기각된다. 선고 과정을 일반에 공개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국가 안전보장 등을 이유로 공개하지 않을 수도 있다. 당사자가 출석하지 않아도 선고가 가능하다.
탄핵 여부를 최종적으로 결정할 헌법재판관들의 정치적 성향과 임기도 주요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현재 헌법재판관 9명 가운데 최소한 6명은 확실한 보수 성향 재판관으로 분류된다. 특히 박한철 헌재소장은 대검 공안부장을 역임한 대표적인 공안통으로 이명박 전 대통령이 추천했고 박 대통령이 임명했다.
헌재 내에서 확실한 진보 성향으로 분류되는 재판관은 김이수 재판관뿐이다. 김이수 재판관은 통합진보당 해산 당시에도 유일하게 기각 의견을 냈었다. 이외에는 강일원 재판관이 여야 합의로 추천됐기 때문에 중도 성향으로 분류되고, 여성 재판관인 이정미 재판관도 중도 내지 진보 성향으로 분류된다.
헌법재판소가 박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인용해 박 대통령이 탄핵된다면 박 대통령은 ‘전직 대통령 예우법’에 따른 혜택을 대부분 받지 못하게 된다. 정상적으로 퇴임할 경우 연금, 비서관·운전기사 지원, 무료진료 등의 예우를 받을 수 있지만 탄핵으로 물러날 경우에는 경호 외 다른 혜택은 박탈된다. 또 전직 대통령에게 지급되는 연금도 받지 못한다. 전직 대통령들은 재직 당시 연봉의 70% 정도의 연금이 매달 지급된다. 박 대통령의 경우 정상적으로 퇴임한다면 매달 1200만~1300만 원 정도의 연금을 지급받을 수 있다.
헌재의 탄핵 심판 결과에 따라 조기 대통령 선거 실시 가능성이 커졌다. 헌재는 탄핵안이 접수된 후 최장 180일 이내에 결론을 내려야 한다. 정치권에서는 이르면 내년 3~4월쯤 결론이 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탄핵안이 기각될 경우 박 대통령은 즉시 업무에 복귀하게 되고 임기를 마저 채울 수 있지만, 탄핵안이 인용되면 박 대통령은 직에서 물러나고 2개월 뒤 대통령 선거를 실시해야 한다. 따라서 내년 6월에서 7월 대선이 가장 유력한 시나리오다.
김명일 기자 mi737@ilyo.co.kr
노무현 때와 다른 점은? 그땐 ‘탄핵 반대’ 촛불시위 2004년 3월 12일 새벽 3시 35분경 당시 열린우리당 의원 약 30명은 국회 본회의장에서 농성을 벌이고 있었다. 사흘 전 새천년민주당과 한나라당 주도로 고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소추안이 발의됐기 때문이다. 민주당과 한나라당 약 20명 의원들은 “와”하는 함성소리와 함께 의장석 기습 점거를 시도했다. 뒤엉킨 수십 명의 의원들이 격렬한 몸싸움을 벌였다. 결국 이날 11시 55분경 재적 271인 중 국회의원 193인 찬성으로 탄핵 소추안이 가결됐다. 그리고 노 전 대통령 직무는 정지됐다. 12년이 흐른 2016년 12월 9일 오후 3시 정세균 국회의장은 박근혜 대통령 탄핵 소추안 가결을 위해 의사봉을 잡았고, 박 대통령 탄핵 소추안이 차분한 분위기 속에 가결됐다. 노 전 대통령과 박 대통령 탄핵 사유는 차이가 있다. 노 전 대통령 탄핵의 주된 사유는 공직선거법 위반, 측근비리, 경제파탄 등이었다. 특히 노 전 대통령의 여당 지지 발언이 탄핵을 촉발했다. 노 전 대통령은 2004년 2월 24일 한국방송기자클럽 초청특별회견에서 “국민들이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을 압도적으로 지지해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중앙선관위는 노 전 대통령이 공직선거법을 위반했다고 지적했다. 이에 청와대는 ‘현행 선거법이 관권선거시대의 유물’이라고 반박했다. 반면 박 대통령 탄핵 사유는 특가법상 뇌물죄, 직권남용과 강요, 공무상비밀누설죄 등이다. 야3당이 공동발의한 탄핵소추안에 따르면 박 대통령이 최순실 등 측근들로 하여금 장·차관 인사에 개입하도록 한 점이 대의민주주의를 위배했다고 쓰여 있다. 또 박 대통령이 재단법인 미르와 K스포츠재단 등을 통해 사기업에 금품 출연을 강요하고 뇌물을 수수했다는 것과 세월호 참사 대응 실패도 탄핵사유에 포함됐다. 여론의 흐름도 달랐다. 2004년 각종 여론조사에서 노 전 대통령 탄핵소추안에 대해 국민들의 상당수는 반대 뜻을 보였다. 당시 KBS가 탄핵소추안 투표를 사흘 앞두고 실시한 여론조사에 의하면 탄핵에 반대한다는 응답은 65%였다. 하지만 최순실 국정 농단 사건이 불거진 뒤 박 대통령 탄핵이나 퇴진에 대한 찬성 여론은 70~80%대였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는 12월 8일 박 대통령의 탄핵 찬성응답률이 78.2%(매우 찬성 63.8%, 찬성하는 편 14.4%)로 집계됐다고 발표했다. 촛불집회의 양상도 판이하게 나타났다. 박 대통령 퇴진을 위한 광화문 촛불집회는 사상 최대 인파가 몰렸다. 10월 29일 1차 촛불집회(2만 명)부터 6차 촛불집회까지 6차례 시위에 참여한 누적인원은 전국 641만 명(서울 503만 명, 지방 138만 명)에 달한다. 6차 촛불집회(232만 명) 이후 야3당과 새누리당 비박계 의원들은 탄핵안 통과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하지만 노 전 대통령 탄핵안 가결 소식이 전해졌던 2004년 3월 20일 광화문 광장엔 약 13만 명이 ‘탄핵 반대’ 피켓을 들고 촛불 시위에 돌입했다. 탄핵 찬성이 주를 이루고 있는 지금과는 사뭇 다른 장면이다. 헌재는 탄핵 소추안을 기각했고 노 전 대통령은 직무에 복귀했다. 열린우리당은 2004년 17대 총선에서 과반수 의석을 차지하는 돌풍을 일으켰다. 한나라당과 새천년민주당 그리고 자유민주연합(자민련)은 탄핵 역풍을 맞아 총선에서 참패했다. 최선재 기자 sun@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