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전긍긍 유일호, 여유만만 임종룡
유일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당초 정치권은 기획재정부 관료 출신인 임 위원장을 신임 경제부총리로 내정하는 안에 대해 전향적인 검토를 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국민의당은 호남 출신인 임 위원장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으며, 더불어민주당 역시 임 위원장의 ‘능력’에 대해선 어느 정도 인정하는 분위기였다고 한다.
그러나 임 위원장이 민간은행의 성과연봉제 도입 문제로 노동권과 갈등을 겪고 있는 점, 대우조선해양에 대한 부실 지원의 빌미가 된 ‘서별관 회의’의 당사자라는 점 등이 임명을 주저하게 된 원인으로 꼽힌다.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은 임 위원장의 경제부총리 내정을 반대한 데 이어 금융위원장직 사퇴를 요구하고 있다.
또 야권으로서는 대선을 앞둔 시점에 섣불리 경제부총리 인사를 주도했다가 경기가 악화되면 역풍을 맞게 될 가능성을 우려한 것으로 보인다.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야3당과 ‘유일호-임종룡’ 체제를 유지하기로 뜻을 모으면서 “경제사령탑 교체는 시장에 잘못된 신호를 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이 탄핵된 다음날인 10일 유 부총리는 기획재정부 간부들을 소집해 긴급회의를 열었다. ‘경제부총리 교체설’이 고개를 들었던 지난 10월 이후 외부 일정을 최대한 자제해 오던 유 부총리는 이날 회의에서 “민생 안정”을 언급하며 관료들이 맡은 바 임무를 성실히 수행할 것을 주문했다고 한다. 이틀 뒤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역시 “유일호 부총리가 책임감을 갖고 경제 현안에 대응해달라”며 ‘유일호 경제팀’ 존치에 힘을 실었다.
임종룡 당시 금융위원장이 지난 10월 18일 국회에서 열린 정무위원회 종합감사에 참석해 자료를 살펴보고 있다. 박은숙 기자
유 부총리는 주한 일본대사 및 영국 재무장관 면담 계획을 잡는 등 전에 없던 ‘광폭 행보’를 보이고 있다. 당장 미국발 금리 인상에 따른 가계부채 문제가 폭발할 가능성이 있어 그 어느 때보다 선제적인 조치가 필요한 상황이다.
그러나 유 부총리의 ‘리더십’이 실제 시장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지에 대해선 회의적인 목소리가 작지 않다. 앞서 유 부총리가 주도한 기업 구조조정은 정부와 재계 간 엇박자가 지속되며 기대했던 성과에 미치지 못했다.
유 부총리의 ‘존재감’ 또한 전임인 최경환 새누리당 의원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부동산 경기 부양 등 주로 단기적인 경기 활성화에 주력하던 ‘최경환 경제팀’의 기조를 비판 없이 답습하고 있는 부분도 문제다.
특히 유 부총리는 경제부총리가 행사할 수 있는 가장 막강한 권한인 ‘정부 예산안’과 관련한 주도권을 국회에 넘길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박근혜 정부가 이미 ‘식물 정부’로 전락한 상황에서 국회와의 힘겨루기는 불가능하다. 이는 유 부총리가 운신할 수 있는 폭이 그만큼 좁다는 것을 의미한다.
반면 경제부총리가 되진 못했지만 임 위원장의 ‘영향력’은 당분간 계속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탄핵 정국에서 경제 현안들과 관련해 ‘자기 목소리’를 내고 있는 유일한 관료는 임 위원장이다. 임 위원장은 ‘최순실-박근혜 게이트’가 터진 상황에서도 “금융개혁을 추진하겠다”며 성과연봉제를 추진하는 한편 서민 지원을 위한 7조 원 규모의 정책자금을 집행하기로 하는 등 금융시장에 대한 장악력을 잃지 않았다.
내년 상반기 최대 화두가 가계부채라는 점 또한 임 위원장에겐 기회로 볼 여지가 있다. 금리 조정 등 거시 금융정책과 관련한 컨트롤타워로서 임 위원장의 결정은 유 부총리보다 시장에 더 큰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 재계가 까다로워하는 산업은행 등 금융기관의 여신 제공 등에도 임 위원장의 ‘입김’이 닿는다. 나아가 임 위원장은 금융감독원과 공조해 증권시장에 대한 적극적인 모니터링에 나서는 등 ‘준 사정기관’의 역할까지 수행하고 있다. 대통령이 탄핵된 ‘권력 공백’ 상태에서 금융위원회를 견제할 세력이 없는 점은 임 위원장에게 호재다.
결과적으로 유 부총리는 실질적인 경제 컨트롤타워인 임 위원장과 경쟁하면서 ‘불편한 동거’를 지속할 수밖에 없다. 임 위원장의 위상이 높다보니 경제 관련 부처 가운데 전통적으로 막강한 힘을 휘둘러오던 기획재정부의 기능이 약화되고 금융위원회가 새로이 부상하는 것 아니냐는 주장까지 나온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한 의원실은 “임종룡에 대한 관료 집단의 신뢰가 상당하다”며 “유일호는 언제든 교체할 수 있지만 임종룡은 아니다. 국회 차원의 비판과 감시에 대해서도 임종룡은 크게 개의치 않는 모습이다. 금융위가 쌓아올린 카르텔은 쉽게 무너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강현석 기자 angeli@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