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의 회원 13명 경찰 연행…동구청 비난 여론 폭주에 설치 허용키로
‘미래세대가 세우는 평화의 소녀상 추진위원회’ 회원들이 부산 동구 일본영사관 앞 인도에 소녀상을 세운 뒤 제지하려는 경찰에 맞서 스크럼을 짜고 있다. 사진제공=김비오 더불어민주당 중구영도구지역위원장
지난 28일은 주지하다시피 굴욕적이란 평가가 주를 이루는 한일 위안부 합의가 이뤄진 지 꼭 일 년이 되는 날이다. 이날 오후 ‘미래세대가 세우는 평화의 소녀상 추진위원회(위원회)’ 회원 10여 명은 부산 동구에 위치한 일본영사관 후문 앞 인도에다 소녀상을 설치하려고 시도했다.
하지만 위원회의 뜻대로 일이 마무리되진 않았다. 인도에 소녀상을 옮겨 놓았으나, 곧바로 출동한 경찰과 부산동구청 직원 등에게 제지당했다. 결국 소녀상마저 빼앗겼고, 이를 막아서는 과정에서 위원회 회원 13명이 경찰에 연행됐다.
부산 동구청은 위원회 행동을 막은 표면적인 이유로 도로교통법을 들었다. 하지만 이를 곧이곧대로 보는 이는 없다. 이미 일본 영사관은 최근 동구청에다 ‘소녀상 설치가 절대 불가하다’며 공문을 보냈다. 사실상 일본의 입장을 염려해 설치를 막아선 것으로 읽히는 대목이다. 특히 동구청은 위안부 할머니와 위원회들의 요구를 외면한 것도 모자라 대화마저 거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물리적 충돌은 전파를 타고 생생하게 전해졌다. 그러자 동구청의 이번 조치를 비난하는 여론이 거세게 일었다. 우선 시민들의 분노가 극에 치달았다. 실제 동구청은 28일 오후부터 29일 오후 현재까지 비난전화가 폭주해 업무가 마비됐다.
위원회 한 관계자는 “여기가 일본인지 한국인지 되묻고 싶다. 정말 억장이 무너진다”고 말했다. 같은 공직사회에서도 날선 비판이 나왔다. 전국공무원노조 부산지부는 “박삼석 동구청장은 소녀상 철거에 공무원을 동원하지 말고, 일본의 내정간섭에 맞서 소녀상 건립을 즉각 허가하라”고 말했다.
정치권도 일제히 성토하고 나섰다.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는 28일 오후 자신의 SNS 계정을 통해 “소녀상 설치는 진정한 독립선언이다. 이를 막는 것은 친일행위와 같다”며 동구청을 비판했다. 그러면서 “(소녀상에는) 부끄러운 역사를 딛고 당당한 나라로 나가는 희망이 담겨있다. 부산 동구청에 소녀상 설치 허가를 요구한다”고 말했다.
더불어민주당 부산시당은 28일 성명을 발표하고 “망국적인 한일 위안부 합의 1주년인 오늘 부산 동구청에 의해 또 한 번 있을 수 없는 일이 발생했다”며 “일본의 공식적인 사과와 배상, 소녀상 설치를 요구하는 평화적인 시위를 경찰이 강제진압하고 평화의 소녀상까지 탈취해갔다. 이는 외교부와 부산시가 일본의 눈치를 보며 소녀상 설치 관련 문제를 동구청에 떠넘기고, 동구청이 그 총대를 멘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국민의당도 29일 오후 손금주 수석대변인 명의로 성명을 발표하며 “부산 시민단체가 일본 영사관 앞에 설치한 소녀상을 부산시가 경찰을 동원해 철거했고, 시민단체 회원들과 물리적인 마찰까지 빚었다”면서 “대한민국 정부가 정상적인 정부라면 굴욕적인 위안부 합의를 철회하고 먼저 나서서 소녀상을 설치했을 것이다. 철거된 소녀상은 제자리에 되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난 여론이 거세지자 부산 동구청은 30일 일본영사관 앞 소녀상 설치를 전격 허용하기로 했다.
하용성 기자 ilyo33@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