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병우 수사 총괄 기획 의혹…합수단 관계자들 승승장구
그럼에도 <일요신문> 확인 결과, 합수단 수사에 참여했던 관계자들은 대부분 승진하거나 요직에 올랐다. 최근 ‘우병우 인사개입’ 의혹을 받은 검찰 출신 방사청 간부부터 현직 군 장성 등이 두루 포함돼 있다. “방산비리는 못 잡고 논공행상만 했다”는 지적에 시선이 모아지는 이유다.
해상작전헬기 와일드캣 도입 과정에서 방산비리 없었다는 사실이 최근 재판을 통해 드러났다. 1조 원대 방산비리를 적발했다고 발표한 합수단의 성과 절반 이상이 부풀려진 셈이다. 사진은 지난 2014년 11월 합수단 출범 모습.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 방산비리는 없었다
합수단은 지난 2015년 5월 해군 해상작전헬기 ‘와일드캣(AW-159)’ 도입 사업 과정에서 비리를 저지른 혐의로 전‧현직 군 관계자 4명 전원을 구속 기소했다. 이들은 당시 해군 전력분석시험평가단 무기시험평가과장, 방위사업청 해상항공기사업팀 사업계획담당, 전력화지원담당 등으로, 와일드캣 도입 사업 실무자들이었다.
합수단의 공소장을 보면, 이 관계자들은 와일드캣의 ‘실물’이 없는 상태에서 육군용 헬기에 모래주머니를 채워 시험 비행을 하는 등 엉터리 평가를 한 뒤, 아무 문제도 없다며 거짓으로 평가결과보고서를 작성하고 업체로부터 뇌물을 받았다. 5890억 원에 달하는 대규모 헬기 도입 사업 초기부터 전방위 비리가 있었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러나 최근 법원은 앞서의 군 관계자들에 대한 합수단의 공소사실을 전부 받아들이지 않았다. <일요신문> 확인 결과 지난 2016년 12월 20일 서울중앙지법은 앞서의 군 관계자 4명에 대해 전원 무죄를 선고했다. 이날 재판부는 “와일드캣은 군이 요구한 성능을 모두 충족하는 헬기로 이미 판명됐다”며 “앞서의 군 관계자들이 허위로 시험평가를 하거나 거짓 평가결과보고서를 작성한 사실이 없으며, 뇌물도 받지 않았다”고 판시했다.
이번 판결로 와일드캣 도입 사업 비리 의혹은 모두 해소됐다. 합수단은 이 사업과 관련해 총 13명의 군 관계자를 비리 혐의로 재판에 넘겼는데, 재판 과정에서 헬기 선정부터 도입까지 이들의 비리는 없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최근 최윤희 전 국군 합동참모본부의장과 백범 김구 선생의 손자인 김양 전 국가보훈처장이 와일드캣 도입 과정에서 뇌물을 받은 혐의로 실형이 선고된 바 있지만, 이는 별건의 개인비리로 와일드캣 도입 사업과는 관련이 없었다는 게 군 관계자들과 법조계의 시각이다.
실제로 지난 2016년 11월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2부도 최 전 합참의장에 대해 “(최 전 의장에 대한) 뇌물 수수 공소사실은 유죄”라며 “와일드캣 도입 과정에서 허위 평과결과서 작성 및 지시‧공모 등은 무죄로 판단한다”고 밝혔다. 최 전 합창의장과 김 전 보훈처장 사건은 오히려 선고 이후 논란의 불씨가 더욱 커졌다(아래 박스).
# 부풀려진 성과
합수단은 지난 2014년 11월 출범했다. 박 대통령이 “방산·군납비리는 이적 행위”라고 강도 높게 지적한 후 한 달이 지나서였다. 사상 최대 규모의 수사 인력(검사 18명 포함 총 117명)이 투입됐고, 2015년 12월 전·현직 장성급 11명 등 77명을 기소하면서 활동을 마쳤다. 당시 합수단이 발표한 방산비리 액수는 9800억 원이었다. 당시 합수단 수사는 군과 방산업계의 고질적, 관행적 비리구조를 깊게 파헤쳤다는 점에서 높게 평가받았다. 1조 원에 가까운 규모의 비리를 적발해 성공한 수사로 비쳐졌다.
방위사업 비리 수사는 박근혜 정부의 MB정권 기획사정인 일명 ‘사자방’(4대강, 자원외교, 방위사업) 수사의 한 갈래로 시작됐다.
하지만 자세히 뜯어보면 합수단의 성과가 상당 부분 부풀려졌다는 게 군 안팎의 중론이다. 과거 감사원 감사나 군 검찰 수사를 거친 사건을 재조사해 살을 붙인 ‘재탕 수사’가 대부분이었던 데다, 재판에서 뒤집어진 사례가 전체 사건의 절반 이상이었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전‧현직 군 장성과 관계자들이 구속돼 무죄 선고가 내려질 때까지 옥살이를 해야 했다.
또한 합수단은 와일드캣 1차 사업비 5890억 원이 ‘방산비리로 증발했다’고 판단해 실적으로 발표했는데, 오히려 이번 ‘무죄’ 판결로 합수단 전체 실적(9800억 원)의 절반 이상이 사라졌다. 법정에서 방산비리가 아닌 합수단의 ‘부실수사’와 ‘무리한 기소’가 드러난 셈이다.
# 승승장구 합수단 관계자들
한편 군 안팎에선 합수단 해체 이후 합수단 관계자들이 승진하거나 요직에 올랐다는 점이 주목 받고 있다. 그동안 정치권 일각에서 합수단 수사를 두고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박 대통령의 신임을 얻기 위해 기획했다”는 주장이 제기되곤 했다. 그리고 합수단 해체 이후 합수단 관계자들의 인사를 두곤 우병우 전 수석의 ‘방위사업청 인사개입’ 의혹이 불거졌다.
합수단 해체 이후 합수단 주요 관계자들이 방사청에 신설한 방위사업감독관실로 자리를 옮겼다. 합수단 검사 세 명이 국장급 직위인 방위사업감독관과 총괄기획, 법률소송담당관에 각각 임명된 것. 특히 방위사업감독관은 전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장검사로, 그는 우 전 수석이 대구지검 특수부장 시절 함께 일하는 등 검찰 내 우병우 라인으로 분류된다.
지난해 12월 22일 국정농단 청문회에 참석한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 사진공동취재단
최근 우 전 수석은 앞서의 검사 세 명을 감독관실에 배치하기 위해 기존의 방사청 차장, 법률소송담당관 등 2명을 강제퇴직시켰다는 의혹까지 받고 있다. 의혹이 불거진 이후 방위사업청도 브리핑을 통해 “당시 방사청장이 민정수석실에 인사 재고를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밝히면서 논란은 더욱 증폭됐다. 최근 일부 방사청 내부 관계자들은 <일요신문>에 “신임 방위산업감독관이 청와대 민정수석실에 직접 보고하러 다녔다”고 밝히기도 했다.
합수단 출신 군 관계자는 ‘장군’으로 진급했다. 군 검찰 출신으로 합수단 당시 대령이던 A 씨는 진급해 현재 준장이다. 합수단 수사 과정을 잘 알고 있는 한 검찰 관계자는 “그가 합수단에 파견되면서 가져온 사건이 ‘정옥근 전 해군총장-STX 방산비리’다. 그가 군 검찰 시절 내사했다가 종료한 사건을 그대로 합수단에 가져갔다. 이 사건으로 합수단 내에서 신임을 얻은 것으로 알고있다”고 귀띔했다.
앞서의 방사청감독관실 관계자들만큼 군 내부에서도 A 준장의 진급에 대해 의심의 시선을 보내고 있다. 합수단 해체 이후 진급한 그는 지난 2009년 음주운전 적발 경력이 있는 데다, 2015년 6월에는 건강상의 심각한 문제가 있어 3개월간 수술과 병원치료를 받았다. 한 군 관계자는 “A 준장이 주요 업무를 담당해오면서 인정받은 건 사실”이라면서도 “음주경력뿐만 아니라, 큰 수술을 받고도 현역적부심 심사에서 ‘일상적 생활이 가능하다’는 평가를 받았다는 건 선뜻 이해하기 힘들다”는 입장을 보였다. 이에 대해 국방부 관계자는 “진급 절차에는 문제가 없었다”고 짧게 대답했다.
김기동 대검찰청 부패범죄특별수사단장(당시 합수단장)도 구설에 올랐다. 김 단장은 ‘합수단 수사 성과’를 인정받아 지난 2015년 12월 합수단 해체 이후 김수남 검찰총장이 강조해 온 대검 부패범죄특별수사단 책임자로 일찌감치 낙점 받았다. 부패범죄특수단은 과거 ‘정치검찰’ 오명을 쓰고 폐지된 ‘대검 중수부(중앙수사부)의 부활’이라며 ‘미니 중수부’라 불리고 곳이다. 현재 부패범죄특수단은 대우조선해양 비리와 송희영 전 조선일보 주필 사건 등을 담당 중이다.
여기에 김 단장은 지난 2015년 12월 22일 ‘최순실 게이트’ 국회 청문회에서 노승일 K스포츠재단 부장이 “차은택의 법적조력자가 김기동, 소개해준 사람이 우병우라는 사실을 고영태한테 들었다”고 말하면서 논란의 중심에 섰다. 김 단장은 즉각 “2016년 3월 말 우연히 만난 게 전부”라며 “공직자의 명예를 심각하게 훼손하는 발언”이라고 강한 유감을 표명했다.
문상현 기자 moon@ilyo.co.kr
“실물평가 못해 문제라면 F-35사업도 수사했어야” 해상작전헬기 도입 사업이 본격 추진된 계기는 2010년 3월 발생한 천안함 사건이다. 이후 1조 3000억 원을 투입해 2차에 걸쳐 총 20대(1차 8대, 2차 12대)를 도입하는 구매계획안이 방위사업추진위원회(방추위)에서 의결됐다. 1차 사업에 대한 입찰 결과 와일드캣과 미국 시콜스키사의 시호크(MH-60R)가 후보 기종으로 선정됐다. 2012년 진행된 구매시험평가에서 두 기종 모두 ‘전투용 적합’ 판정을 받았지만 당시 청와대 정책으로 도입 예산이 삭감됐다. 1차 사업비는 5890억 원으로 배정됐고, 8대 도입 기준을 맞추려면 1대에 1500억 원에 달하는 고가의 시호크를 제외해야 했다. 해군 해상작전헬기 와일드캣은 실물 없이 평가했다는 이유로 합수단 수사 대상에 올랐다. 사진제공=방위사업청 합수단이 문제 삼았던 것은 구매시험평가 과정이다. 와일드캣은 당시 해상작전용으로 개발되지 않은 제품이라 실물평가가 불가능했다. 그런데 합수단 수사 결과에 따르면, 실무자들은 “실물평가 결과 요구성능 전부를 충족했다”며 평가서를 작성했다. 육군용 헬기에 모래주머니를 채우거나 경비행기에 설치된 레이더를 확인하는 방식으로 실물평가를 대신한 것. 합수단은 또 시험평가 자료를 근거로 와일드캣의 성능이 군의 작전요구성능(ROC)에 미치지 못한다고 밝혔다. 최장 체공시간이 짧고, 디핑소나(수중 잠수함 탐지기)를 탑재할 경우 어뢰 한 발밖에 싣지 못하는 등 대잠전 수행에 부적합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국방부와 방사청은 합수단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았다. 국방부는 “국방전력업무 훈령에 따르면 개발 중인 품목에 대한 시험평가는 분석, 검사, 시연 등으로 할 수 있다. 반드시 실물평가를 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방사청도 “규정에 따라 실물이 없는 경우 자료 평가가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헬기 제작사에 따르면 체공시간을 측정하기 위해 모래주머니로 중량을 맞추는 건 세계적으로 흔히 쓰는 방식이다. 즉 체공시간이나 디핑소나 장착 기준 등의 규정을 맞추기 위해 모래주머니를 이용한 것일 뿐, 그 자체가 비리는 아니라는 얘기다. 성능 역시 군이 요구하는 기준에 충족한 것으로 드러났다. 와일드캣은 지난 2016년 6월과 11월 4대씩 두 차례로 나눠 이뤄진 성능검사(수락검사)를 통과해 2017년 중반 작전에 투입될 예정이다. 이에 대해 한 군 관계자는 “실물이 없으면 평가하지 못한다는 논리대로라면, 시뮬레이션 평가에 따라 차기 기종으로 선정된 록히드마틴사의 F-35도 문제가 된다”고 말했다. 실제로 합수단의 기준으로 보면, 국회에서 확정됐던 전투기가 하루아침에 뒤바뀐 데다, 핵심 기술 이전도 거부되고 전투기 가격이 예산을 초과해 계획된 도입 대수를 20대나 줄여야 했던 F-35 사업도 수사했어야 했다. F-35 도입과정에 대해 별도의 검찰 수사는 없었고, 지난 2015년 말 청와대 민정수석실이 자체 진상조사에 나섰으나 2017년 1월 현재까지 별다른 결과를 내놓지 않고 있다. F-35 도입 사업은 최근 ‘최순실 무기 거래 개입’ 의혹을 받기도 했다. 또한 와일드캣이 비리였다면 조사 받아야 할 인물은 따로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방사청 규정에 따르면 3000억 원 이상 사업은 국방부 장관이 주재하는 방추위에서 결정한다. 문제가 됐던 와일드캣 구매계획안은 방추위에서 의결됐다. 와일드캣 도입을 추진할 때 방추위 위원장(국방부 장관)은 F-35 도입 당시 “정무적 판단을 해야했다”고 언급한 김관진 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었다. [문] |
국내 방산업계 후유증…수출 타격·R&D 지연 ‘쑥대밭‘ 합수단 수사는 국내 방산업계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한국 방위산업은 지난 2010년대에 접어들면서 신성장 동력으로 각광받았지만, 2014년 36억 1200만 달러로 방산 수출 사상 최고액을 기록한 뒤, 지난 2015년 34억 9000만 달러로 감소했다. 같은 기간 세계 무기 거래 규모가 650억 달러로 전년 같은 기간과 비교해 11% 증가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이러한 이유에 대해 방산업계 관계자들은 지난 2014년 말부터 본격화한 합수단의 방위사업 비리 수사, 감사원의 방산 비리 감사 등을 핵심 요인으로 꼽는다. 비리의 온상인 것처럼 부각되면서 수출에도 상당한 악영향이 있었다는 지적이다. 특히 업계 관계자들은 2015년 6월 삼성이 자사 방산기업을 한화에 매각한 것도 이와 관련 있다고 입을 모은다. 두 기업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진 결과라 하더라도 삼성의 ‘철수’는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한 방산 업계 관계자는 “‘큰손’ 삼성이 방산에서 손을 뗀 것은 국내 방산업계의 위기를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라며 “업계는 위축되고 있는데 방산비리 업체라는 오명을 쓰면서까지 버틸 이유가 없었던 것”이라고 분석했다. 업계 위축뿐만 아니라 국내 무기 연구‧개발도 지연되고 있다. 한 방위산업 전문가는 “합수단 비리 수사가 전방위로 번지면서 방위산업 관계자들의 ‘핑퐁(업무 떠넘기기)’도 심해졌다. 자칫 책임져야 할 일이 생길까봐 적극적으로 사업을 추진하지 못하는 것”이라며 “현재 ‘대부분’이라는 표현을 사용해도 될 정도로 많은 국내 무기 연구‧개발이 지연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