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슨이 바퀴벌레 빵을?’ 뻔뻔한 기레기 반성도 없었다
1963년 스위스에서 태어난 톰 쿠메르는 독일과 스위스의 여러 매체에 글을 쓰는 프리랜서 저널리스트였다. <데어 슈피겔>을 비롯해 독일의 <쉬도이치 차이퉁> <슈테른>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차이퉁> 등이 그의 글을 실었고, 스위스의 <타게스안차이거> <베르너 차이퉁>도 쿠메르의 일터였다. 전문 분야는 할리우드 스타 인터뷰. 문답식으로 정리된 인터뷰가 아니라, 스타를 만난 느낌과 인상적인 이야기 등을 결합한 프로파일 스타일의 기사였다. 우리 식으로 표현하면 ‘인물 탐구’ 같은 느낌이랄까? 자유로운 형식으로 스타의 있는 모습 그대로를 독자에게 전하는 것이 그의 장기였다.
톰 쿠메르
그의 인터뷰이 라인업은 정말 화려했다. 커트 코베인의 아내이자 록 싱어인 코트니 러브, 헤비급 복서 마이크 타이슨, 힙합 뮤지션 스눕 도기 독, 글래머 아이콘인 패멀라 앤더슨, 도널드 트럼프의 딸이자 모델인 이바나 트럼프, 지금은 고인이 된 소울 디바 휘트니 휴스턴 등등. 특히 샤론 스톤, 브래드 피트, 킴 베이싱어, 크리스티나 리치, 톰 행크스, 리브 타일러, 브루스 윌리스, 로버트 레드포드, 케빈 코스트너, 숀 펜 등 할리우드 A급 스타들 가운데 톰 쿠메르의 펜을 거치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는 매우 생생하게 셀러브리티의 신변잡기와 언행을 전했다. 그의 기사에 의하면, 마이크 타이슨은 감옥에 있을 때 단백질 섭취를 위해 바퀴벌레를 잡아 빵 사이에 끼워 먹었으며, 샤론 스톤에겐 하층민 남자를 성적으로 자극하고 싶은 은밀한 욕망이 있으며, 킴 베이싱어는 남편 알렉 볼드윈에게 시스루 속옷을 선물했다. 코트니 러브에 대한 기사는 제법 놀랍다. “우울하고, 공허하고, 어리석다”며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를 혼잣말처럼 늘어놓았다는 것. “리비에라 해안엔 아이스 진토닉을 홀짝대며 마시는 갈매기가 있다” “미노타우로스는 달의 성기를 먹고 있다” 등등이 쿠메르가 전한 코트니 러브가 한 말들이다.
쿠메르는 브래드 피트가 “언젠가는 내 코에서 어떤 생명체가 나올 것”이라는 말을 했고, 브루스 윌리스가 “우리는 도덕성이 아니라, 불멸성과 사악함과 냉소를 통해 진보한다”고 주장했다고 전했다. 톰 쿠메르는 스타와 함께 유명한 책이나 사상가에 대한 대화를 나누고 그것을 기사에 삽입하는 걸 즐겼다. 쿠메르는 패멀라 앤더슨과는 윌리엄 깁슨의 기념비적 SF 소설 <뉴로맨서>에 대해, 숀 펜과는 실존주의 철학자 키에르케고르에 대해, 마이크 타이슨과는 니체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이런 인터뷰는 이 세상 그 어디에도 없었고, 톰 쿠메르는 승승장구했으며 패션 매거진 <마리 클레르>에선 인터뷰이로서 인터뷰를 하게 될 정도였다. 여기서 그는 자신의 기사에 대한 비밀 하나를 공개하겠다며 “적어도 45분 이상의 시간은 확보한다”는 팁을 말하기도 했다.
다큐멘터리 ‘배드 보이 쿠메르’ 포스터.
이런 구박을 받던 사람들 중 한 명이 독일의 <포커스> 매거진에 글을 쓰던 홀거 회첼이었다. 쿠메르의 코트니 러브에 대한 기사를 보고, 그는 정말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코트니가 괴짜이긴 하지만, 매체 인터뷰는 엄격하게 통제하는 스타일이었다. 결코 저널리스트 앞에서 헛소리를 늘어놓는 스타일은 아니었던 것이다. 회첼은 쿠메르의 기사를 영어로 번역해 코트니 러브의 홍보 담당자에게 보냈다. 이런 인터뷰 한 적이 없다는 답신이 왔다. 다른 배우들의 인터뷰도 보냈다. 대답은 같았다. 톰 쿠메르의 사기극이 만천하에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홀거 회첼의 폭로가 있자, 제보가 이어졌다. <쉬도이치 차이퉁>의 편집장인 크리스티안 카엠메를링은 1999년부터 눈치 챘다는 것이다. 그가 1990년에 기사 조작 때문에 어떤 매체에서 항의 받았던 일도 밝혀졌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런 일이 몇 년 동안 지속적으로 가능했던 걸까? 대답은 간단하다. 할리우드의 저널 시스템과 메커니즘을, 그 밖에 있는 사람은 모르기 때문이다. 변방에 있는 매체 편집장들은 프리랜서 저널리스트가 스타들과 파티에서 만나 칵테일을 즐기고 있는 줄로 알고 있을 뿐, 스타들이 얼마나 접하기 힘든 존재인지에 대해선 별 관심 없었다. 그저 원고가 오면 “이번엔 얼마나 재미있을까?”라며 아무런 검증도 하지 않고 자극적인 요소들을 헤드 카피로 뽑아 싣기에 바빴다. 할리우드 스타 입장에서도, 비영어권의 매체들까지 살필 여력은 없었다. 그리고 1990년대는 요즘처럼 인터넷을 통해 거의 모든 정보가 크로스 체크 되는 시절도 아니었다.
놀라운 건 폭로된 후 톰 쿠메르의 태도다. 그는 전혀 반성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스타일이 ‘몽타주 리포팅’(montage reporting)이라고 했다. 이것은 저널리즘의 경계선에 서서, 오로지 독자의 즐거움을 위해 글을 쓰는 스타일로 사실 자체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궤변이었다. 이때 놀랍게도 쿠메르의 지지자들이 나타났다. 말리부 해안에 있는 스타의 대저택에 갇혀 있던 셀러브리티 인터뷰에 쿠메르가 생명력을 불어넣었다는 지적이었다. 단순히 녹취를 푸는 것이 아닌, 인터뷰어의 ‘작가성’이 반영된 인터뷰라는 격찬도 있었다. 아무튼 톰 쿠메르는 논란에 휩싸였고, 2011년엔 급기야 <배드 보이 쿠메르>라는 다큐멘터리가 나왔다.
김형석 영화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