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렵게 쥔 본선 티켓…빙판 위 ‘우생순’ 꿈꾼다
2016 헝가리유로하키챌린지에서 이탈리아와 맞붙는 대한민국 대표팀. 사진출처=대한아이스하키협회 홈페이지
[일요신문] 2018년 2월 9일 개막하는 평창 동계올림픽이 1년여 앞으로 다가왔다. 동계올림픽은 비록 FIFA 월드컵, 하계올림픽에는 밀리는 형국이지만 대규모의 국제대회다. 국내에서도 지난 1999년 강원도에서 동계 아시안게임이 열린 바 있었고 월드컵과 하계올림픽 개최 경험은 있지만 동계올림픽은 처음이다. 그마저도 세 번의 도전 끝에 어렵게 얻어낸 결과다. 국내에서 동계올림픽이라 하면 대다수가 전통의 효자종목인 쇼트트랙과 스피드스케이팅만을 떠올릴 만큼 스키나 썰매 등 다른 동계스포츠 종목은 불모지나 다름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평창올림픽에서 대한민국은 개최국 자격으로 모든 종목에 선수들을 출전시킬 수 있는 자격을 얻었다. 이런 분위기는 거듭 동계올림픽 유치를 시도하는 과정을 다룬 영화 <국가대표>를 통해 소개되기도 했다. 과연 영화가 아닌 실제 상황에선 각 종목의 동계올림픽 준비는 어떻게 진행되고 있을까. <일요신문>에서 각 종목별 대회 준비 과정과 현재 상황을 짚어봤다. 그 첫번째는 아이스하키다.
많은 동계 스포츠가 그렇듯 아이스하키도 국가 간 전력 차이가 극심한 종목이다. 전통적으로 캐나다와 미국, 핀란드, 러시아, 스웨덴 등 일부 북미와 북유럽 국가들이 강세를 보인다. 특히 캐나다는 우리나라 어린이들의 대다수가 태권도장에 다니듯이 아이스하키를 즐길 정도로 종주국으로서의 면모를 과시하고 있다. 캐나다는 평창에서 자신들의 국기 아이스하키에서 3연패를 노리고 있다.
국내에서도 ‘귀족 스포츠’라는 이미지가 강한 남자 아이스하키의 경우 실업팀 단 3팀. 여자는 실업 팀은커녕 학교 팀조차 없을 정도로 대중들에게 익숙하지 않은 종목이다. 50여 개 나라가 집계에 포함되는 세계랭킹에서도 지난 2010년 33위(여자는 34개국 중 28위)를 기록했을 정도로 대한민국은 아이스하키 약소국이다. 반면 아이스하키는 ‘동계올림픽 티켓 수입의 50%에 달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세계적으로는 인기종목이다. ‘동계올림픽의 꽃’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대한민국은 올림픽 본선무대 참가 티켓을 따내는 것조차 힘겨웠다. 개최국에게 자동으로 본선 티켓이 주어지는 FIFA 월드컵과 달리 국제아이스하키연맹(IIHF)은 개최국 한국에 올림픽 자동출전을 허락하지 않았다. 대한아이스하키협회는 다른 무엇보다도 하키 대표팀의 올림픽 참가에 사활을 걸어야 했다. 협회 관계자도 “협회의 평창올림픽 준비는 본선 티켓 확보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고 설명했다.
2011년 남아프리카공화국 더반에서 평창이 올림픽 개최지로 선정됐지만 이때 IIHF는 한국의 대회 참가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 지난 올림픽에서는 2006 토리노 올림픽까지 개최국 자동출전권이 주어졌고 2010년부터 이 제도가 사라졌다. 하지만 이어 올림픽을 개최한 캐나다와 러시아는 아이스하키 초강대국이다.
동계올림픽 개최국이 됐지만 한국은 세계랭킹 30위권에 올림픽 본선 참가 경험이 전무하고 등급별로 나뉘어 치러지는 세계대회 1부 리그(챔피언십 그룹)에서 경기를 치러본 적도 없는 아이스하키 약체였다. 이에 IIHF는 한국에 올림픽 출전권을 선뜻 내주지 않았다. 별다른 입장을 표명하지 않던 그들은 본선 출전의 조건으로 ‘세계랭킹 18위’를 내걸었다. 아이스하키협회 관계자는 당시를 떠올리며 “사실상 참가하지 말라는 의미였다. 그럴 수도 없지만 올림픽 전까지 열리는 모든 대회를 우승한다고 해도 랭킹선정 방식에 따라 18위까지 올라갈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말했다.
이후 협회는 국가대표팀의 전력을 향상시키는 한편 IIHF 설득시키기에 돌입하는 ‘투트랙 전략’에 돌입했다. 안방에서 열리는 올림픽이 남의 나라 잔치로 전락하는 모습을 지켜볼 수 없는 노릇이었다. IIHF에서는 한국 측에 외국인 감독의 선임을 추천하기도 했다. 물망에 올랐던 감독은 “한국이 올림픽에 나가 성적을 올리려면 25명 정도로 구성되는 선수 명단 중 11명을 북미아이스하키리그(NHL)급 선수들을 귀화시켜 채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감독에 선수들까지 외국인 일색으로 올림픽을 치를 수 없다고 생각했던 협회는 그 제안만큼은 받아들일 수 없었다.
올림픽 티켓을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니던 중 2013년 11월에는 이례적으로 협회 관계자 10여 명이 취리히에 본부가 있는 IIHF에 다녀오기도 했다. IIHF가 “한국 대표팀이 올림픽에 참가하려는 의지가 없다고 들었다”며 연맹 관계자를 부른 것. 이에 정몽원 회장 등 연맹 관계자가 직접 IIHF 본부를 찾아 연맹의 플랜 등을 설명하느라 진땀을 흘려야 했다. 당시 취리히행에 함께했다는 연맹 관계자는 “누군가가 IIHF 실무자에게 잘못된 정보를 흘린 것이다. 누구인지 알고 있지만 민감한 부분이라 신원을 밝히기는 어렵다”고 했다.
2014년 4월이 돼서야 IIHF는 한국 대표팀의 올림픽 본선 직행을 발표했다. 이들은 “백지선 감독의 영입, 정몽원 회장의 적극적 지지, 관계자들의 헌신적 노력, 포기하지 않는 한국인 특유의 근성을 보였던 것 등이 올림픽 출전 최종 결정에 영향을 끼쳤다”고 설명했다. 이후 협회는 대표팀의 전력 강화에 모든 역량을 집중할 수 있게 됐다.
NHL 선수 출신이자 국내 무대에서도 활약했던 백지선 감독에게 대표팀 지휘봉을 맡긴 연맹은 2013년부터 외국인 선수의 귀화도 추진했다. 현재 대표팀에는 6명의 귀화선수가 뛰고 있다. 여자 대표팀에도 교포, 해외로 입양됐던 선수들의 국적 취득이 진행 중이다.
팀스포츠인 아이스하키 특성을 고려, 국내 실업팀 소속 선수를 골라 귀화시킨 대표팀. 사진출처=대한아이스하키협회 홈페이지.
연맹에서는 하키대표팀의 귀화선수가 다른 종목과는 차이가 있다고 주장한다. 외국에서 우수선수를 ‘찍어서’ 데려오는 것이 아니라는 것. 연맹 관계자는 “맹목적으로 성적만을 위해 외국에서 선수를 데리고 오지 않는다. 아이스하키는 개인 기록으로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팀 스포츠이기 때문에 분위기와 팀원들의 융화가 중요하다”며 “남자 팀의 경우 국내 무대에서 뛰던 선수들이 의사를 내비치면 귀화를 진행했고 여자 팀은 한국인 핏줄을 타고난 이들을 선택했다. 성적만을 생각했으면 북미나 유럽에서 뛰는 더 높은 몸값의 선수들을 데려왔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일각에서는 남자대표팀에 있는 6명의 귀화 선수에 대해 ‘6명이 뛰는 아이스하키에 귀화 선수 6명만 경기를 뛰는 외국인 대표팀 아니냐’는 지적을 하기도 한다. 이에 그는 “아이스하키는 체력소모가 많아 교체가 수시로 일어나 귀화선수가 경기 전체를 소화하는 게 아니다. 3골 중 2골은 국내선수가 넣었다”고 했다.
그간의 노력에 힘입어 지난해부터는 조금씩 성과도 내고 있다. 지난해 4월 폴란드에서 치러진 세계선수권대회에서는 숙적 일본에 3-0 으로 승리했다. 성인대표팀이 공식경기에서 일본을 상대로 거둔 첫 승리다. 그간 한국 아이스하키는 일본에 1무 19패로 절대 열세를 보여왔다. 11월에는 헝가리에서 열린 유로 아이스하키 챌린지에서는 깜짝 우승을 거두기도 했다.
전력 강화에 열을 올린 대한민국은 2011년 31위, 2012년 28위로 차츰 순위를 올리더니 2016년 23위를 기록했다. 6년 만에 순위를 10계단 끌어올렸다. 여자팀도 2011년 28위에서 지난해 23위로 순위가 올랐다. 힘겹게 랭킹을 올려왔지만 아직 남녀팀 모두 아직 20위권이다. 12개 나라가 참가하는 올림픽 본선에서 1승만 거둬도 성공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남자 대표팀은 캐나다, 체코, 스위스와 함께 A 조에 편성돼 8강 진출을 겨룬다. 세 나라 모두 세계 랭킹 10위 안의 강국이다.
연맹 관계자는 평창올림픽에서 대표팀의 목표에 대해 “현실적으로 8강”이라며 “각 조 2위까지 8강에 직행하는데 3위를 해도 다른 조 3위와 플레이오프를 통해 노려볼 만한 목표”라고 말했다. 하지만 백지선 감독의 생각은 달랐다. 그는 “진다는 생각으로 나가는 대회가 어디 있겠나. 우리는 전승을 거두는 것이 목표다”라고 했다. 이어 “과정에서 후회를 남기지 않고 최선을 다한다면 결과에서 지더라도 승자가 될 수 있다. 현재 더 나은 내일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연맹 관계자도 “백 감독이 자주 사용하는 말 중 하나가 ‘getting better everyday(날이 갈수록 강해지기)’다 라고 덧붙였다.
김상래 기자 scourge@ilyo.co.kr
30대 아이스하키 선수 왜 안보이나 했더니… 세계무대에서 아이스하키팀의 약진에는 상무(국군체육부대)의 창단도 한몫했다. 축구, 농구, 육상 등의 팀을 운영, 동계스포츠에는 관심이 적던 상무가 지난 2013년부터 쇼트트랙, 아이스하키 등 9개 종목을 추가 운영하기로 결정한 바 있다. 상무에서 아이스하키팀을 운영하기 전까지 선수들은 군입대 연기 기한인 만 28세가 되면 입대와 동시에 하키스틱을 놓아야 했다. 기량이 절정에 오른 이들이 군복무로 선수생활을 접어야만 하는 상황이었던 것. 대표팀의 전력유지와 평창 올림픽 성공 개최를 위해 상무 아이스하키팀 창단의 필요성이 대두됐고 이는 2013년이 돼서야 실현됐다. 하지만 상무팀의 창단이 아이스하키계가 마냥 웃을 일은 아니었다. 국방부는 2019년까지 한시적으로 동계스포츠 종목을 상무에서 추가 운영하겠다고 못 박았다. 이후부터는 만 28세의 아이스하키선수들은 다시 은퇴를 해야 하는 상황이 돌아오는 것이다. 대한 아이스하키협회 관계자는 “상무가 생기기 전까지 30대 아이스하키 선수들을 찾아보기 매우 힘들었다”며 “국방부가 입장을 바꾸지 않는다면 절정의 기량에 은퇴해야 하는 선수들이 다시 나오게 생겼다”마 안타까워 했다. [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