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판 쿨러닝’ 10년 만에 금메달 넘본다
봅슬레이 2인조의 원윤종-서영우는 세계랭킹 1위를 유지하고 있다. 대표팀 선수들의 봅슬레이 2인승 경기. 사진제공=대한봅슬레이스켈레톤연맹
[일요신문] 우리나라에서 동계 스포츠의 썰매 종목이라 하면 봅슬레이를 소재로 한 TV 프로그램 <무한도전>이나 영화 <쿨러닝>을 떠올린다. 유재석, 박명수, 정준하가 썰매를 타고 자메이카 대표팀 선수들의 이야기가 소개된 지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대중들의 머릿속에 봅슬레이에 대한 이미지는 이 정도가 전부다. 하지만 무관심과 짧은 역사 속에서 한국은 썰매 강국의 반열에 들어섰다. 1년 앞으로 다가온 평창 올림픽에서 봅슬레이, 스켈레톤, 루지 등은 당당히 메달획득을 노리는 종목 중 하나다.
<무한도전>이나 <쿨러닝>의 그들이 그랬듯, 10여 년 전만 해도 한국은 국가대표팀조차 전용 썰매를 보유하지 못했다. 전지훈련이나 대회에 나설 때 다른 나라의 썰매를 빌려 경기에 임해야 했다. 썰매조차 없는 형편에 국내 경기장은 꿈도 꾸지 못했다. 국내 훈련 때는 ‘흉내 낸 수준’에 불과한 모형 썰매를 밀며 훈련했다.
현재의 대한민국 썰매는 10년 전과는 완전히 달라진 위상을 뽐내고 있다. 각종 대회에서 상위권에 이름을 올리며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는 것. 봅슬레이와 스켈레톤에는 세계 랭킹 1, 2위를 다투는 선수들이 포진해 있으며 루지도 엘리트 코스를 밟아온 선수를 귀화시켜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이 과정에서 전용 썰매는 물론 가까이서 훈련이 가능한 ‘홈 경기장’까지 갖게 됐다.
봅슬레이 2인조의 원윤종-서영우는 지난 1월 21일 스위스에서 열린 국제봅슬레이연맹 월드컵에서 8위에 그쳤지만 25일 현재 2위와 11포인트 차이로 세계랭킹 1위를 유지하고 있다. 원윤종은 평범한 대학생 시절, 국가대표 선발 포스터를 보고 지원해 봅슬레이와 인연을 맺게 됐다. 후배 서영우에게도 봅슬레이를 제안했고 둘은 몸을 만들기 위해 하루 8끼를 먹는 등 각고의 노력 끝에 세계 정상의 자리에 올랐다.
대한민국이 10여 년 전까지 썰매와 경기장이 없던 나라에서 이제는 세계랭킹 1위를 배출하는 나라가 된 것이다. 김동현-전정린 조도 9위로 10권내에서 더 높은 곳을 노리고 있다.
스켈레톤 종목에도 세계 랭킹 1위가 있다. 고등학교 3학년 때 체육 교사의 권유로 스켈레톤을 시작한 윤성빈이다. 2012년 스켈레톤에 입문한 그는 빠르게 성과를 냈다. 2015~2016 시즌에 세계 랭킹 6위를 차지하더니 이번 시즌 들어서는 1위에 오르기도 했다. 수년간 ‘썰매계의 볼트’로 불리는 라트비아의 마틴 두쿠르스와 1위 자리를 놓고 다투고 있다. 또한 여자 부문에서도 봅슬레이의 김유란, 이선혜, 스켈레톤의 문라영 등이 두각을 드러내고 있다.
2012년에 스켈레톤에 입문한 윤성빈이 이번 시즌 들어 세계 랭킹 1위에 올랐다. 스켈레톤 경기 장면. 사진제공=대한봅슬레이스켈레톤연맹
대한 봅슬레이스켈레톤 연맹 관계자는 “캐나다에서 시간을 보내다 대표팀 합류를 3일 앞두고 갑작스레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받았다”며 “선수들도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 코치님은 대표팀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았고 선수들의 정신적 지주이기도 했다”고 회상했다. 그의 모바일 메신저 프로필이 로이드 코치를 애도하는 사진으로 설정돼 있을 정도로 코치는 연맹 관계자들로부터 신임 받는 존재였다. 이어 “선수들이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른 상황이라 경기력이 크게 흔들리지는 않았지만 그때는 걱정이 되기는 했다”고 설명했다.
봅슬레이·스켈레톤 대표팀의 승승장구에 이들을 향한 보이지 않는 견제도 시작됐다. 썰매 종목은 코스에 대한 익숙함이 성적에 절대적 영향을 미치는 종목이다. 평창 올림픽이 1년 앞으로 다가온 최근 들어 한국 대표팀의 홈 어드밴티지에 대한 견제가 들어오고 있는 것. 연맹 관계자는 “코스를 익히기 위해 평창 슬라이딩센터에서 연습 기간이나 시간을 국제 연맹에서 제한하려 하고 있다”며 “과거 올림픽에서는 이런 부분에서 큰 제재가 없었다. 일부 국가에 편파적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하는 국제 연맹이기에 우리로선 견제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일이다”라고 주장했다. 이어 “아이스메이커 개인의 습관이나 기술 또한 선수 기록에 큰 영향을 미치는데 여기에도 국제 연맹이 영향력을 행사하려 한다”고 덧붙였다. 아이스메이커는 코스에 깔리는 얼음을 다듬는 제빙 기술자다. 국제 연맹은 이들을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사람으로 배치하려는 것이다.
이 같은 난관 속에서도 봅슬레이·스켈레톤 대표팀은 평창 올림픽 시상대에서의 가장 높은 곳을 노린다. 특히 세계 랭킹 1위를 배출한 봅슬레이 2인승과 남자 스켈레톤에서는 금메달을 놓치지 않겠다는 각오를 가지고 있다.
루지 정상급 선수로 한국 대표팀에 영입된 아일린 프리쉐. 사진제공=대한루지경기연맹
루지는 하체로 미세하게 방향을 조정하기 때문에 어린 시절부터 다져온 기본기가 중요한 종목이다. 루지 대표팀은 그간 김동현, 박진용, 조정명, 최은주 등이 아시아 무대만큼은 석권하기도 했지만 세계 수준에서는 큰 두각을 나타내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이에 독일 사정을 잘 아는 스테판 사터 총 감독이 각급 대표팀을 두루 거친 프리쉐에게 손을 내민 것이다.
이번 귀화를 두고 평창만을 위한 ‘원 포인트 귀화’라며 성적 지상주의라는 일각의 비판도 있다. 하지만 루지 연맹은 프리쉐와 평창 대회 이후에 대해서도 충분한 교감을 나눴다. 그는 다음 대회에도 참가하고 이후로도 대한민국의 유망주 육성을 위해 일할 계획을 갖고 있다. 프리쉐는 1992년생의 젊은 선수이지만 이미 지난 2015년 지도자 자격증을 취득하기도 했다.
주니어월드컵 대회 1위 출신의 선수를 영입한 루지 대표팀은 급격한 전력 상승효과를 봤다. 이에 자신감을 얻은 그들은 평창에서 메달권 진입을 목표로 하고 있다. 세계랭킹 10위권에 있는 여자 싱글이나 더블, 팀릴레이의 경우 홈 이점 등을 잘 살린다면 3위 이내 입상도 가능하다는 판단을 하고 있다.
김상래 기자 scourge@ilyo.co.kr
“봅슬레이·루지 연맹 통합은 탁상행정” 문화체육관광부는 지난 2015년 대한체육회 산하 체육단체 통합을 추진하며 대한봅슬레이스켈레톤경기연맹과 대한루지경기연맹의 통합 계획을 발표했다. 이에 두 연맹은 “통합 추진은 현실을 모르는 탁상행정”이라며 통합 논의 중단을 요청했다. 한 지붕 아래서 살림을 꾸렸던 두 연맹은 행정상 편의를 위해 지난 2008년 분리됐다. 이에 문체부는 두 연맹의 통합 시기를 평창 올림픽 이후인 2018년 3월로 미루기로 했다. 잠시 시기만을 늦췄을 뿐 통합 의지는 그대로인 것. 두 연맹 역시 여전히 통합에 부정적인 견해를 유지하고 있었다. 봅슬레이연맹 관계자는 <일요신문>과 인터뷰에서 “국제 연맹 또한 우리나라와 같은 형태로 분리돼 있다. 다른 나라도 같은 형태이거나 스켈레톤까지 3종목이 모두 분리돼 있는 경우도 있다”며 “올림픽 이후의 통합도 현재로선 반대 입장이다”라고 설명했다. 또한 그는 “행정 이외에도 선수들의 장비나 훈련 방법 등도 세 종목이 각각 다르기 때문에 통합을 강행하면 혼란이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문체부의 체육단체 통합 계획은 생활체육과 엘리트체육의 통합을 위해 추진된 일이다. 축구의 경우 전국의 조기축구 조직과 K리그, 대표팀 등을 한 단체에서 관리하며 유럽 선진국과 같은 하부리그 조직을 만들 수 있는 토대를 갖게 됐다. 하지만 이 같은 통합 논의가 썰매 종목 간의 통합까지 이어지자 일부에서는 의문을 표하기도 했다. 이와 관련해 봅슬레이연맹 관계자는 “대중의 관심이 적은 종목의 연맹을 통합하려는 것 같다. 이것도 비인기 종목의 설움 아니겠나”라고 안타까워했다. [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