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청률 올리려고 의도? 도리어 시청자 등 돌려
기안84의 엄현경에 대한 부적절한 발언과 일방적인 애정공세에 항의하는 시청자들의 글. KBS ‘해피투게더’ 시청자 게시판 캡처.
기안84가 자신만의 일방통행 애정공세를 시작한 것은 지난해 10월 20일 <해피투게더3>의 코너 ‘백문이 불여일짤’의 패널로 첫 출연했을 때부터였다. 그는 같은 해 3월 정식 MC자리에 올라 예능 프로그램에 아직 적응 중인 엄현경에게 눈독을 들였다. 당시 기안84가 엄현경에게 건넨 첫 마디는 “남자 친구 있어요?”였다. “없다”고 대답하자 “그냥 물어본 거예요. 어차피 사귀지도 못할 건데 뭘”이라고 말했다. 이때까지는 어색한 사이에 놓인 이성 MC와 패널 사이에서 말문을 열 때 사용하는 대화법으로 묵인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한 달이 지나자 이번에는 “엄현경에게 밥 한 번 먹자고 했다. 차이면 여기(프로그램) 이제 안 올 거다”라며 노골적으로 들이대기 시작했다. 그 다음 주에는 실제로 엄현경과 밥을 같이 먹었다는 사실을 밝히면서 “별로 나한테 관심이 없고 차갑더라. 인기도 많으니 그냥 오빠 동생 하는 게 좋을 것 같다”며 혼자서 토라진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이어지는 12월분의 방송에서도 기안84가 출연하는 ‘백문이 불여일짤’ 코너에서는 어김없이 기안84와 엄현경을 강제로 밀어 넣는 러브라인이 등장했다. 심지어 올해 초 방송분에서는 ‘엄현경과 기안84가 남매였다면’이라고 가정하자 기안84가 “부적절한 관계가 됐을 것”이라며 도를 넘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KBS ‘해피투게더3’ 캡처
더 큰 문제는 엄현경이 기안84의 애정 공세에 단 한 번도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 적이 없다는 점이다. 오히려 유재석, 박명수 등 동료 MC가 몰아주고 있는 강제 러브라인 때문에 표정관리조차 제대로 되지 않는 모습이 카메라에 잡혀 논란을 낳기도 했다. 제작진은 아예 이들을 ‘목요커플’로 칭하면서 엄현경의 의사를 일축시키기까지 한 상태다.
이제까지 <해피투게더3>의 방송분을 보면 기안84의 도를 넘어선 발언과 행동에 대한 제재나 러브라인 자체를 거부하는 엄현경의 의사는 전혀 반영되지 않은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심지어 기안84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더욱 높아진 것은 지난 1월 5일부터지만 최근까지도 제작진과 출연진 모두 이 문제에 대해서는 함구하고 있는 상태다. 유재석, 박명수 등 동료 MC를 포함한 제작진이 모두 엄현경에게 기안84와의 러브라인을 강요하고 이 방침을 고수하고 있다는 지적이 일고 있는 이유가 여기서 기인한다.
예능프로그램에서 이성이든 동성이든 출연진들끼리 짝을 짓는 것은 고정 시청자 확보를 위한 중요한 장치이기도 하다. 이성의 경우 실제 연애로 발전하지 않더라도 그들이 프로그램에서 보여주는 ‘케미스트리’가 양념 역할을 톡톡히 하기 때문. 예컨대 SBS <런닝맨>에서 개리-지효의 월요커플, 고전 예능이지만 SBS <X맨을 찾아라>에서 김종국-윤은혜 커플이 대표적인 예라고 볼 수 있다. 동성 커플이긴 하지만 MBC <무한도전>의 하와 수(정준하, 박명수) 커플도 두 중년 개그맨들이 함께 아옹다옹하는 모습이 빚어낸 ‘케미’로 시청자들의 많은 애정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인위적인 출연진 간 짝짓기가 시청자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기 위해서는 짝짓기를 당하는 양측이 긍정적인 입장을 취해야 한다는 한계가 있다. 그리고 인위적이더라도 시청자들이 납득할 만한 케미를 만들어내야 한다는 것 역시 간과할 수 없다.
앞선 개리-지효의 커플은 이들만의 CF 출연이 성사될 정도로 방송을 넘어서 큰 인기를 얻었고, 사석에서의 관계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방송 안에서의 케미가 실제 연인처럼 보일 정도로 좋았다는 평을 받았다. 해외의 <런닝맨> 팬들 사이에서는 개리와 지효가 실제 연인사이라고 짐작하는 이들도 다수 있을 정도였다. 김종국-윤은혜 커플은 ‘천하장사 커플’이라는 애칭을 얻었고, 종영 후 1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회자될 정도로 국민적인 사랑을 받았다. 한 회마다 다양한 도전을 보여주는 <무한도전> 내에서의 하와 수 커플 역시 양념처럼 자리 잡아 방송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캐릭터가 됐다.
이런 사례들과 달리 시청자들이 기안84와 엄현경 간의 강제 러브라인에 끼어들 수 없는 것은 애초에 이들 사이에 케미 자체가 만들어지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해피투게더>의 오랜 시청자라고 밝힌 이 아무개 씨(여·27)는 “TV에서 보이는 연예인들의 연애가 주변 사람들이 밀어줘야 성사되는 것이라고 믿는 사람들은 아무도 없다. 하물며 별로 호응도 보이지 않는 여성 연예인과 그를 둘러싼 남성 연예인들의 ‘이만하면 받아줘라’라는 폭력적인 오지랖은 나처럼 오랜 시청자들도 등을 돌리게 할 정도”라고 지적했다.
한 케이블 방송 예능프로그램 제작 관계자는 “예능프로그램 홍보에서 프로그램 그 자체의 홍보도 중요하지만 출연진들에게 어떤 캐릭터를 부여할지도 고정 시청자 확보를 위해서는 중요한 사안”이라며 “이 때문에 보통 캐릭터가 희미한 출연진에게 소위 말하는 ‘몰아주기’식 캐릭터를 구축하도록 하는데, 여기에 이성 출연진이 있다면 그 둘을 붙여서 러브라인을 꾸미는 것이 가장 효과가 좋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이번 기안84와 <해피투게더>의 경우 가장 문제가 됐던 ‘부적절한 남매 관계 발언’까지 러브라인으로 포장해 그대로 방송된 것을 보면 아마 제작진은 시청자 반응보다 유통기한이 긴 출연진의 캐릭터 구축을 우선시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