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은 한번으로 족해…날 간절히 원하는 고향으로”
지난 1월 4일 사이판으로 훈련을 떠나기 전까지만 해도 이대호의 머릿속에는 ‘롯데 복귀’란 단어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다. 그가 가장 가고 싶고, 관심을 보였던 리그는 메이저리그였다. 자존심 회복이란 분명한 이유가 있었다. 다음은 이대호의 최측근이자 사이판 훈련에 동행했던 A 씨가 <일요신문>에 밝힌 내용이다.
이대호는 롯데를 떠난 지 5시즌 만에 고향팀에 금의환향했다. 일요신문DB
여기서 이대호의 고민이 반복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이미 일본의 여러 팀에선 주전은 물론 거액의 몸값을 제시하며 이대호와의 미팅을 희망했다. 메이저리그가 안 된다면 그 다음 수순은 일본행이 맞다. 친정팀 롯데에서 자신을 원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2년 정도는 더 외국에서 생활하고 싶었던 게 솔직한 심정이었으리라.
A 씨는 사이판 훈련 중 이대호의 심경에 변화가 있었다고 말한다.
“지난해에도 가장 늦게 시애틀과 계약을 맺지 않았나. 소속팀 없이 훈련하는 게 정말 힘들었다. 어느 정도 각오는 했지만 소속팀이 결정되고 나서 훈련하는 것과 그렇지 않은 상황은 차이가 큰데 이대호도 그런 면에서 힘들어 했다. 아침 7시부터 시작된 훈련이 오후 5시30분 또는 6시에 마무리됐는데 훈련 외 휴식 시간 동안 이대호는 자신의 미래가 불투명하다는 불안감을 토로하곤 했다. 겉으론 미국, 일본, 한국 복귀라는 세 가지 카드를 갖고 있는 것 같았지만 우리끼린 이러다 모든 걸 놓치고 어려운 상황에 빠지는 게 아니냐는 시각도 있었다. 그런 고민이 충돌할 때 롯데 이윤원 단장이 사이판을 방문한 것이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절묘한 타이밍’이었다고 한다. 이 단장은 첫날 이대호를 만나는 자리에서 4년 150억 원을 제시하며 이 제안이 성사될 때까지 한국으로 돌아가지 않겠다고 배수의 진을 쳤다. 그리고 3일을 기다렸다. 이대호는 며칠만 더 시간을 달라고 했고, 이 단장은 긍정적인 답변을 듣지 않고선 돌아가지 않겠다고 버텼다.
“사실 모기업인 롯데가 현재 복잡한 상황 아닌가. 그런 가운데 구단에서 4년 150억 원을 준비했다는 건 굉장히 큰 모험이었고, 그만큼 이대호를 간절히 원한다는 의미였다. 이대호도 그 점을 잘 알고 있었다. 사이판까지 찾아와 구애 작전을 펼친 롯데 측에 진심으로 고마운 마음을 나타냈다. 이 단장을 만난 이후 어느 순간부터 이대호가 우리들을 설득하고 있었다. 나나 대호 형인 이차호 씨 등은 메이저리그행을 원했기 때문에 롯데가 아무리 거액의 몸값을 준비했다고 해도 받아들이지 않길 바랐다. 야구를 얼마나 오래 할지 알 수 없지만 메이저리그에서 못다 이룬 한을 풀기 원했지만 이대호로선 현실적인 부분에서 고민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조선의 4번 타자’ 이전에 이대호도 한 집안의 가장이고, 지난 시즌 거의 돈을 못 벌었던 상황이라 그에 대한 부담도 컸다고 본다. 롯데 이 단장에게 긍정적인 대답을 들려줬을 때가 1월 21일이었다. 그때 80% 정도 마음이 움직였고, 이틀이란 시간을 기다려달라고 한 다음 남은 20%를 확정지었다. 23일 한국에 있는 변호사와 연락을 주고받으며 계약서를 꼼꼼히 검토했는데 최종적으로 구단에 계약서를 넘긴 이대호의 표정은 만감이 교차한 모습이었다.”
이대호는 이전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줄곧 강조했던 부분이 주전이었다. 그 내용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여전히 난 같은 생각을 한다. 주전으로 뛸 수 있는 팀이라면, 이대호의 가치를 인정해주는 팀이라면 얼마든지 오케이다. 그 상대가 메이저리그라면 더욱 좋겠지만 위의 조건을 충족시키지 않는다면 난 고민에 빠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도전은 한 번이면 족하다. 또 다시 도전을 감행하는 건 야구선수 이전에 한 집안의 가장이자 남편, 아빠로서 무책임한 선택일 수도 있다. 만약 내 나이가 스물다섯 살 정도만 돼도 난 또 다시 도전을 택할 것이다. 메이저리그는 그 이상의 가치가 있는 무대이고 야구만 잘하면 돈과 명예를 모두 거머쥘 수 있는 곳이다. 그러나 나와 비슷한 나이의 선수가 메이저리그에 도전하겠다고 한다면 난 뜯어 말리고 싶다. 그건 미친 짓이기 때문이다. 나도 종종 ‘내가 왜 이런 미친 짓을 하고 있지?’라고 생각한 적이 많았다.”
이대호가 그린 야구 인생의 마지막은 분명 롯데였다. 그는 기자에게 일본의 구로다가 메이저리그에서 친정팀 히로시마로 돌아가 우승을 거둔 일화를 설명했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일본의 구로다가 히로시마에서 우승을 거둔 것처럼 나 또한 롯데 유니폼을 다시 입고 내가 좋아하는 후배들과 우승을 일구는 게 꿈이다. 부산 갈매기를 외치는 롯데 팬들과 다 같이 울면서 우승 헹가래를 받고, 해주고 싶기도 하다. 롯데 자이언츠는 영원한 내 마음의 고향이기 때문이다.”
이대호는 은퇴 후 지도자를 꿈꾸고 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부산 사람’인 이대호로선 롯데에서 지도자 생활을 이어간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그런 부분이 이번 롯데로 복귀하는 데 영향을 미쳤다는 게 A 씨의 귀띔이다.
“이대호는 유독 롯데 후배들에 대한 애정이 많다. 외국에 있을 때도 후배들을 굉장히 잘 챙겼다. 후배들이 어려운 일 있을 때마다 이대호에게 연락했을 만큼 후배들의 정신적인 지주였다. 앞일을 예측하긴 어렵지만 이대호라면 롯데에서 선수 생활을 마치고, 롯데 지도자로 새로운 인생을 꿈꿀 수밖에 없다. 이번에 이윤원 단장이 이대호를 설득하는 과정에서 그런 얘기도 오갔던 것으로 안다.”
이대호는 2001년 2차 1라운드 전체 4순위로 롯데에 입단한 후 2011년까지 11시즌 동안 KBO리그 통산 1150경기에 나서 타율 0.309 225홈런 809타점을 기록했다. 2006년 타격 3관왕으로 MVP에 등극했고, 골든글러브도 4차례 수상했다. 특히 2008년부터 2011년까지 롯데를 4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을 이끌었고, 2010년 KBO리그 사상 첫 타격 7관왕과 세계 최다 9경기 연속 홈런 기록을 달성하는 등 KBO리그 최고의 타자로 활약했다. 롯데가 이대호 영입을 준비하면서 KIA와 100억 원에 계약한 최형우를 훌쩍 뛰어넘는 ‘탄환’을 준비할 수밖에 없는 성적표다. 이대호 영입은 단순히 해외에서 선수 생활을 하고 돌아온 스타플레이어의 귀환이 아닌 부산 야구의 상징과도 같은 선수의 등장이란 점에서 롯데 팬들은 물론 야구 팬들 전체가 환영을 나타내고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한편 이대호의 아내 신혜정 씨는 이대호의 롯데 복귀와 관련 기자에게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보냈다.
“결정하고 나니 무슨 감정인지 모르겠는데 그냥 막 눈물이 났어요. 5년 전 일본으로 넘어갔을 때의 일과 그동안 힘들었던 일, 즐거웠던 일, 고마웠던 사람들에 대한 마음들이 교차합니다. 그동안 신랑이 얼마나 마음고생이 많았는지 몰라요. 당시엔 힘들었지만 지나고 나니 다 아련한 추억들로 남습니다. 아직도 귓가에 시애틀 팬들이 외쳤던 ‘대~~~호’란 소리가 환청처럼 들리는 것 같아요. 이렇게 기뻐하고 좋아하는 한국 팬들에게 더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저도, 또 신랑도 최선을 다해 살겠습니다.”
롯데 자이언츠는 1월 30일 미국 애리조나로 스프링캠프를 떠난다. 지난 시즌 이대호는 친정팀 캠프에서 국가대표팀 유니폼을 입고 훈련에 동참했다. 무적 선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엔 롯데 유니폼을 입고 후배들과 함께 구슬땀을 흘릴 예정이다. 재미있는 건 롯데의 애리조나 캠프가 시애틀 매리너스가 사용하는 스프링캠프지라는 사실. 이대호는 똑같은 장소에 시애틀 선수로, 또 롯데 선수로 참가하는 특별한 경험을 하게 된다.
이영미 스포츠전문기자 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