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토퍼 리브, 영화 <슈퍼맨>의 주인공이다. 1995년 승마를 하다가 날뛰는 말에서 머리를 땅에 박고 떨어지는 사고를 당했던 바로 그 인물이다. 리브는 이때 목이 부러지면서 척추를 다쳐 사지의 감각이 전혀 없는 전신마비 장애인이 됐다. 뇌와 몸의 신경계가 전혀 연결되지 않아 신체의 일부분도 사용할 수 없게 됐다. 하물며 호흡마저 기계에 의지해야 했다.
부와 명예를 동시에 거머쥐었던 42세의 할리우드 스타였던 그로서는 되돌릴 수 없는, 뼈아픈 사고였다. 자동 휠체어에 모든 것을 의지하게 된 리브는 눈물 겨운 재활훈련에 들어갔다. 무엇보다 대중의 기억 속에 자신의 존재가 사라진다는 것은 참을 수 없었다. 영화제작자로서 새로운 탈출구를 찾아보았으나 여의치 않았다. 4년이라는 각고의 시간은 그렇게 지나갔지만 한가닥 미세한 감각도 찾아오지 않았다. ‘슈퍼맨’ 리브는 그러나 낙담도, 좌절도 하지 않았다. 뜻이 있으면 길이 있다고 했던가. 1999년 리브에게 한줄기 빛이 비추어졌다. 아직은 보편화되지 않은 재활프로그램을 받기 시작한 것이었다.
‘슈퍼맨의 구세주’는 워싱턴대학의 존 맥도널드 박사였다. 그의 재활프로그램은 기존의 것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그는 리브에게 그동안 해 오던 운동과 함께 리브의 몸에 전기충격을 가하는 전혀 새로운 치료법을 적용했다. 리브는 일주일에 세 번씩 다리에 전기 충격을 받았다. 전기 충격은 일반인들에게는 감당할 수 없을 만큼 고통스러운 것이었지만 리브의 다리는 그것을 전혀 느낄 수 없었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존 맥도널드 박사는 차츰 전기충격의 부위를 넓혀 나갔다. 수영장 안에서 몇 가지 운동도 시작했다. 물 위에 떠서 벽을 밀면서 아주 조금씩 다리를 움직여 걷는 동작이었다. 척추신경에도 자극을 주어 끊어진 그 부분을 연결시키는 작업도 함께 했다. 이 모든 방법의 목표는 부분적으로나마 근육의 힘을 찾는 것이었다.
▲ 크리스토퍼 리브 | ||
치료 1년 만인 2000년 11월 리브의 왼쪽 손가락에 아주 가늘고 여린 감각이 찾아왔다. 그리곤 곧 미약하게나마 그것을 움직일 수 있었다. 기적은 매우 느린 속도로 다른 부위로 퍼져 나갔다. 오른쪽 손가락들에도 느낌이 돌아왔다. 비록 제한적인 환경에서지만 팔과 다리 근육도 조금 움직일 수 있게 됐다. 2001년 7월에는 몸의 거의 반이 넘는 부분에 걸쳐 다른 사람의 손가락이 자신에게 닿는 감각을 느낄 수가 있게 됐다. 손목을 구부려서 팔을 들을 수 있게 됐으며 누워서는 양 팔과 양 다리를 비교적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게 됐다. 보다 구체적으로 팔꿈치와 손목, 손가락, 엉덩이와 무릎을 조금씩이나마 움직일 수 있게 됐다.
그리고 지금 몸의 70% 정도가 외부의 자극에 반응을 하기에 이르렀다. 인공호흡기 없이 1시간 넘게 숨을 쉴 수 있게도 됐다. 물 역시 기구에 의지하지 않고 입으로 마실 수 있게 됐다. 사고 당시 12%만이 반응을 하던 것과는 천양지차, 전혀 새로운 사람이 됐다.
그는 처음 감각을 느꼈을 때의 감격을 이렇게 말했다. “처음 내 아들이 나를 만지고 있다고 느꼈을 때 나는 무한한 희열을 느꼈다.” 그러면서 그는 “비록 내 몸이 예전같이 움직이지는 않지만 심장과 마음, 그리고 영혼만은 조금도 움츠러들지 않았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말했다.
리브는 이제 새로운 투쟁에 들어갔다. 전신에 걸쳐 모든 감각을 회복해 휠체어에서 벌떡 일어나 할리우드의 살아 있는 슈퍼맨이 되는 것이다. 그는 언제나처럼 기적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않고 있다 리브의 병상기록들은 지난 9월18일 ABC방송을 통해 방영되었으며 곧 책으로도 다시 이야기될 예정이다.
문암 해외정보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