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각보다는 개발에 방점, 자산재평가 여부도 주목…“외부변수 많아 M&A 등 아직 정해진 계획 없다”
#과거에 비해 개발 여건 좋아져
롯데칠성 부지는 서울 지하철 2호선 강남역과 서초역 사이에 있으며 규모는 4만 2312㎡에 달한다. 1976년에 롯데칠성 공장이 세워졌다가 2000년에 공장이 이전된 뒤 현재 롯데칠성 물류창고와 영업소로 쓰이고 있다. 롯데그룹은 2009년 서울시에 사전협상을 신청하고 2010년과 2015년에 사업 계획안을 제출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사전협상은 민간사업자가 5000㎡ 이상 부지를 개발할 때 시와 토지주가 협상해 용적률과 기부채납비율 등을 정하는 제도다.
롯데칠성 부지 개발 여건은 과거에 비해 좋아졌다. 2022년 6월 서울시는 서초로 지구단위계획구역 및 지구단위계획을 변경 고시하며 토지 소유 현황에 따라 특별계획구역을 나눴다. 기존에 롯데칠성 부지를 포함한 서초로 일대 4만 3438㎡ 규모 토지는 하나의 특별계획구역으로 묶여 있었다. 하지만 고시 변경에 따라 롯데칠성 부지는 ‘특별계획구역3’으로 지정되며 단독 개발이 가능해졌다. 그간 토지 소유주 간 이견도 롯데칠성 부지 개발을 지연시키는 원인이었는데, 롯데칠성의 의지만 있다면 개발에 착수할 수 있게 된 셈이다.
사전협상제도 인센티브도 강화됐다. 기존에 사전협상제도를 통해 주거지역에서 상업지역으로 용도지역을 변경할 때 받을 수 있는 용적률은 도시계획조례에서 정한 상한 용적률인 800%였다. 지난해 서울시는 사전협상제도 용적률 인센티브 기준을 마련했다. 혁신적인 디자인이나 에너지 효율 기능을 갖추거나 관광 숙박 시설일 경우 최대 330%까지 용적률 인센티브를 준다고 밝혔다. 서울시에 따르면 현재 롯데칠성 부지는 제3종일반주거지역이다. 서울시와 사전협상을 통해 일반상업지역으로 용도지역을 변경할 경우 롯데칠성 부지는 용적률을 최대 1130%까지 적용받을 수 있다.
그럼에도 롯데칠성 부지 개발 소식은 진전이 없는 상태다. 주주들 사이에서는 종목토론방을 통해 롯데칠성 부지를 매각해 대규모로 자금을 유입하거나, 개발에 착수해 기업가치를 높여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롯데칠성 주가는 종가 기준 지난해 11월 1일 15만 1500원에서 올해 10월 31일 12만 2000원으로 19% 하락했다. 지난 10월 25일에는 장중 11만 6000원으로 52주 최저가를 찍기도 했다.
일단 롯데칠성은 서초 부지 매각보다는 개발에 방점을 찍었다. 서울시 한 관계자는 “최근 롯데칠성 실무진에게 연락해 보니 롯데칠성이 개발 사업을 해본 이력이 없어 롯데그룹 내에서 개발 전략을 마련하고 한다는 답변을 받았다”고 밝혔다. 서초구청의 ‘민선8기 공약사업 관리카드’ 자료에는 지난해 롯데그룹(롯데물산) 측과 서울시가 사업 계획 수립 관련 협의를 했으며, 올해 롯데그룹 계열사 간 내부 의견을 수렴 중이라고 기재돼 있다. 서초구청은 롯데칠성이 2026년까지 세부 개발 계획을 서울시에 제출할 수 있도록 롯데칠성 측과 협의한다는 방침이다.
롯데칠성은 부지 개발을 서두르지는 않는 분위기다. 앞서의 서울시 관계자는 “건설 경기 상황이 좋지 않아 (롯데칠성이 개발에 대해) 급하게 생각하지 않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핵심 요지의 땅은 몇 년 뒤에는 가격이 더 오를 수 있기 때문에 개발을 서두를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서진형 광운대 부동산법무학과 교수는 “사전협상제도를 활용하면 토지가액의 일정 비율을 공공에 기여해야 한다”며 “당장 개발을 해봤자 수익성에 도움이 안 된다고 판단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해외기업 M&A 가능성 제기
지난 10월 16일 롯데칠성은 밸류업 계획을 발표했다. 2028년까지 매출을 5조 5000억 원대로 높이겠다고 밝혔다. 2028년엔 해외 매출 비중을 45%까지 끌어올려 해외에서만 매출을 2조 4750억 원 내겠다는 계획도 발표했다. 올해 롯데칠성이 예상한 매출액은 4조 2000억 원, 해외 매출 비중은 전체 매출의 36%인 1조 5120억 원 정도다. 2028년에 올해 예상 매출액보다 해외에서만 1조 원 가까운 매출을 더 올려 해외 매출 비중을 9% 높이겠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롯데칠성이 해외기업 M&A(인수합병)에 나설 수 있다는 전망도 제기된다. 롯데칠성은 지난해 9월 필리핀 소재 필리핀펩시(PCPPI·Pepsi-Cola Products Philippines, Inc) 지분 73.58%를 취득하며 경영권 확보를 위한 최종 절차를 완료했다. 필리핀펩시는 롯데칠성 공동기업으로 분류되다 지난해 4분기부터 연결 종속회사로 편입됐다. 필리핀펩시는 1조 원 정도 연 매출을 기록 중이다. 롯데칠성이 필리핀펩시를 연결 종속회사로 편입한 영향으로 롯데칠성의 해외 매출이 전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22년 13%에서 지난해 20%로 뛰었다.
롯데칠성이 필리핀펩시를 연결 종속회사로 편입하기 전 해외 매출 비중은 2020년 10%에서 2022년 13%로 2년 사이 불과 3% 늘어났다. 2022년과 비교해 지난해 롯데칠성 수출은 음료부문은 21% 늘어난 1160억 원, 주류부문은 3% 증가한 741억 원을 기록했지만 규모가 크지는 않다. 이러한 이유로 해외 기업 M&A에 나설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올 초 롯데칠성은 해외 신사업 개발(M&A) 분야를 담당할 인력 채용 공고를 내기도 했다.
M&A를 진행한다면 롯데칠성은 밸류업 공시를 통해 2028년까지 부채비율도 100% 이하로 낮추겠다는 전략이 부담이 될 수 있다. 올해 2분기 기준 롯데칠성 부채비율은 180%다. 롯데칠성의 올해 상반기 별도 기준 현금은 1642억 원이다. 2022년 말(2945억 원) 대비 44% 줄었다. 금융업계 한 관계자는 “부채비율을 낮춘다고 했기 때문에 롯데칠성은 다른 자산 매각에 나설 수 있다”며 “서초 부지 자산재평가도 고려해 볼 수 있는 선택지 중 하나일 수 있다”라고 밝혔다. 증권업계 한 관계자는 “부채비율과 관련된 구체적인 계획이 나오지 않았다. 방안은 좀 더 지켜봐야 할 것 같다”라고 말했다.
올해 2분기 연결 장부가액 기준 롯데칠성 투자부동산 1377억 원, 유형자산은 2조 5000억 원 정도다. 한국기업평가에 따르면 서초 부지 장부가액은 4000억 원 수준이다. 서초 부지 시가는 2조 원을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다만 이은형 연구위원은 “서초 부지 자산재평가를 할 가능성도 있지만 그만큼 세금도 늘어난다. 때문에 롯데칠성은 신중하게 접근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와 관련, 롯데칠성 관계자는 “2028년까지 외부 변수가 많기 때문에 밸류업 공시를 통해 밝힌 계획 외에 현재 구체적인 내용을 말씀드릴 수는 없다”며 “해외 기업 M&A나 서초 부지 활용 계획 등도 아직 결정된 사항이 없다”라고 답했다.
김명선 기자 se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