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안위, 항소 뜻 밝혀…큰 고비 넘겼지만, 아직도 ‘첩첩산중’
지난 7일 환경단체들이 법원의 원전 수명연장 취소 판결 직후 서울행정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사진제공=환경운동연합
지난 7일 서울행정법원 지하2층 대법정에서는 함성 소리가 터져 나왔다. 판사가 “월성 원자력발전소 1호기 계속 운전을 위한 운영변경허가처분을 취소한다’는 주문을 읽자마자 여기저기서 환호 소리가 연달아 들렸다. 일부는 기쁨의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반면 원자력안전위원회(원안위) 관계자들은 굳은 표정을 지은 채 성급히 법정을 떠났다. 원안위 측은 “계속운전 허가에 문제가 없었다는 것이 원안위 판단”이라며 항소의 뜻을 밝혔다. 원안위가 항소를 제기할 것이기 때문에 원전이 곧바로 가동 중단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또 원안위가 법원의 판결로 위법이 드러난 점을 보완해 연장을 추진할 수 있다는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판결 이후 환경단체는 “재판부가 그동안 있었던 12번의 재판에서 확인된 월성1호기 수명연장 무효와 취소 사유를 대부분 인정한 것을 환영하는 바이다”라면서도 “판결 이후에도 여전히 가동 중인 원전 중단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이들은 판결 이후 서울행정법원에 ‘월성1호기 운영변경허가처분 효력(집행) 정지’ 신청서를 제출했다.
월성 1호기는 지난 1983년 상업운전을 시작해 30년째인 2012년에야 설계수명이 종료됐다. 원안위는 2015년 2월 27일 월성 1호기를 2022년까지 수명연장(계속운전)하기로 결정했다. 연장 결정이 난 지 세 달 만에 월성원전 인근 주민들과 환경단체 등 2167명이 국민소송원고단을 구성했고 월성원전 수명연장 결정 무효소송을 제기했다. 무효소송의 첫 재판은 지난해 10월 2일 시작됐다. 선고 공판에서 재판부는 원전 수명연장 허가 결정이 절차적으로 위법한 점, 수명연장을 허가한 원안위 구성에 하자가 있는 점, 안전성 평가 기준이 미흡한 점 등을 ‘취소’ 판결의 근거로 제시했다.
앞서 원고 대리인단은 “원안위가 수명연장 허가를 위한 심의 당시 원자력안전법에 의거한 대로 운영기술지침서, 최종안전성분석보고서, 운전에 관한 품질보증서 등을 제출해야 하지만 원안위는 시행령에 따른 계속 운전을 위한 주기적 안전성평가보고서만을 제출했다”며 “제출한 평가에 대해서도 이를 충족하는 심의와 의결이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며 위법을 주장했다. 이에 재판부에서는 원고 측의 입장을 받아들여 위법을 인정했다. 또 원고 측은 “원안위의 위원장을 포함한 위원 두 명이 과거 한국수력원자력에 소속돼 활동했었다”며 “최근 3년 이내 원자력이용자로부터 연구개발과제를 수행하는 등 원자력이용자가 수행하는 사업에 관여하면 위원이 될 수 없다는 원자력안전위원회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에 어긋나기 때문에 당시 의결과 처분도 무효”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서도 재판부는 위법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또 원고 측은 “월성 원전의 계속운전을 위한 안전성 평가는 원자력안전법 시행령에 따라 최신 운전경험 및 연구결과 등을 반영한 기술기준을 활용해 평가하고, 방사선환경영향에 대해서도 최신 기술기준을 활용해 평가하도록 규정돼 있다”면서 “그러나 피고 측은 이를 수행하지 않았고, 지진이나 지반 침하에 취약하다는 사실을 엄격하게 평가하지 않았다”며 위법을 주장했다. 이에 재판부는 “최신 기술기준을 활용해 평가하라는 취지는 원전의 안전성을 신규 수준에 버금가는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것”이라며 “대부분 설계수명기간이 만료돼 계속 운전을 앞두고 있는 원전은 신규 원전보다 높은 안전성을 확보하기 어렵기 때문에 원자력안전법령을 최대한 보수적으로 엄격하게 해석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원고 측이 “월성 1호기를 계속 운영하는 것은 경제적으로 손실을 가져오기 때문에 계속운전을 허가하지 않는 것이 타당하다”는 주장 등에 대해서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의 당사자라고 볼 수 있는 경주시민들은 이날 재판에 나오지 않았다. 이들은 “그동안 많은 언론과 환경단체가 도움을 주려고 했고 많은 시도들이 있었지만 변한 것은 없다. 여전히 우리는 원전 근처에서 보호받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다”며 “재판 이외에도 해야 할 일이 많다”고 말했다. 원전 근처에서 거주하고 있는 황 아무개 씨는 “재판 다음날 국회에 가서 해야 할 일이 있었기 때문에 재판 소식은 재판이 끝나고 전해들었다”며 “이주대책 법안 개정을 위해 국회를 하루종일 뛰어다녔다”고 말했다. 황 씨를 포함한 경주시민들은 ‘월성원전 인접지역 이주대책위원회’를 구성해 재판이 시작되기 전부터 천막 농성을 하며 원전 중단 및 주민 이주를 요구해 왔다.
지난해 11월 22일 발전소주변지역 지원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을 김수민 의원이 대표발의했고, 개정안은 원자력발전소 인근 주민들의 이주대책지원사업 마련을 골자로 하고 있다. 황 씨는 “원자력발전소 인근 주민들이 방사능 등에 노출돼 위협을 받고 있음에도 집값이 떨어져 다른 곳으로 갈 수가 없어 위험을 감수하고 살아가고 있다. 한수원에 항의를 해도 돌아오는 것은 관련 법이 없어 어쩔 수 없다는 것이다. 이번 개정안을 통해 주민들의 이주대책지원사업이 마련돼야 한다”며 “다음 주 소위원회에서 좋은 소식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경주 시민들은 1977년에 월성 1호기가 처음 설계돼 만들어질 때만 해도 원자력의 위험성을 알 수 없었기에 반대하지 못했다고 전했다. 이들은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난 후에야 위험성을 느껴 원전 중단을 외쳤다. 방사능 노출은 이들의 건강 상태를 통해 확인됐다. 황 씨를 포함한 주민 일부는 갑상선암이 진행돼 수술을 받았다. 이들은 원전의 영향이라고 생각하고 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이들은 “고리원전 인근 주민들이 갑상선암을 진단받아 소송을 했고 승소를 했었는데 우리도 이와 같은 상황”이라며 “원자력 발전소에서 914m 지역은 위험지역이라 접근이 금지되는데 914m 바로 옆은 위험지역에 해당하지 않기 때문에 안전하다고 말하는 게 한수원과 원안위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원자력안전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해온 김익중 동국대의대 교수는 “이곳에서 생산되는 전기가 서울 등 전국에서 편리하게 쓰이고 있지만, 나아리 주민 40여 명의 소변 검사결과 삼중수소가 높게 검출됐고 특히 5세 아동과 8명의 청소년의 몸에서도 삼중수소가 높게 나왔다”며 “나아리 주민들이 고스란히 생명의 위협을 받고 있다”고 위험성을 경고했다.
고리 1호기의 경우 수명연장을 한 번 한 뒤 폐로 결정이 나왔다. 월성 1호기도 2022년에는 법원의 결정과 관계없이 폐로 절차를 밟게 될 가능성이 높지만 앞으로 어떤 절차를 밟게 될지 귀추가 주목된다.
최영지 기자 yjchoi@ilyo.co.kr
37년간 엉터리 검사, 과징금은 고작 7억 원전을 관리하는 한국수력원자력이 37년 동안 안전검사를 제대로 하지 않아 위험을 방치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그럼에도 원자력안전법 위반에 대한 처벌은 겨우 7억 원의 과징금이 전부였다. 지난 10일 원자력안전위원회(원안위)는 제65회 전체회의에서 한수원이 원전 안전에 큰 위협이 되는 위반 행위를 저질러 이에 대해 7억 4000만 원의 과징금을 부과하기로 했다. 한수원은 지난 37년 동안 16대의 원전의 원자로 용기와 제어봉 구동장치에서 안전성 검사를 해야 할 부분이 아닌 엉뚱한 곳을 검사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 원전은 고리 1~4호기, 한빛 1~6호기, 한울 1~6호기 등이다. 원자로 용기와 제어봉 구동장치는 원전 안전을 위해 안정성을 점검해야 하는 부위인데 한수원은 이 위치를 정확하게 특정하지 않고 잘못 잡은 위치를 37년 동안 반복적으로 검사했다. 원안위는 이를 원자력안전법 위반으로 판단했으나, 지난 2014년과 2015년에 각각 원안위에 보고됐음에도 2년 만에야 행정처분이 결정한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