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윈스턴 처칠(왼쪽)과 막내딸 마리 솜즈의 2차대전 당시 모습 | ||
올해 여든 살이 된 마리 솜즈는 처칠 부부의 1남4녀 중 다섯 번째 자식이다. 처칠의 가정사는 그의 공적 활동만큼 화려하기는커녕, 불우하기까지 했다. 무엇보다 부부사이가 좋지 않았다. 처칠은 사교적이지 못했다. 정치적 이해관계가 맞는 친구들만 주변에 가득해 늘 외로워했다.
처칠의 부인인 클레멘타인 여사는 세계적 거물인 남편의 공무가 가정사에 영향을 끼치는 것을 잘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녀는 유명 귀족의 딸로서 9명의 애인을 두고 평생 도박 등으로 방탕하게 지낸 그런 어머니 밑에서 자랐다. 클레멘타인의 부모는 결국 그녀가 다섯 살 때 이혼했다.
이후 클레멘타인의 삶은 무척 불안했다. 그녀는 부모들로부터 일생동안 지배할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았고 그것은 처칠과 결혼 후 히스테리로 돌출됐다. 클레멘타인은 챠트웰(처칠 가족이 살던 동네)을 무척이나 싫어했다. 거기에는 9명의 하인에 3명의 정원사, 그리고 처칠의 비서들도 있었다.
클레멘타인은 이 모든 것과 자식들을 자신의 짐으로 받아들였다. 자연 자식들은 유모들의 손에 맡겨져 길러졌다. 처칠 부부의 사이를 결정적으로 갈라 놓은 계기는 셋째 딸인 마리골드가 죽으면서 마련됐다.
마리골드는 불과 두 살 때인 1921년 세상을 떠났다. 공식행사가 많았던 처칠 부부는 이 갓난아이를 프랑스계 유모집에 맡겨 그곳에서 자라게 했다. 그러나 부모만한 유모는 그 어디에도 없었다. 부모의 무관심은 마리골드를 병들게 했다. 부모와 유모가 그 사실을 알았을 때 이미 손을 쓸 수 없을 정도가 되어 있었다.
셋째 딸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큰 충격을 받은 클레멘타인은 남편과 아이를 두고 집을 나갔다. 12세의 다이애나와 10세의 랜돌프, 8세의 사라는 엄마 없는 집에 남겨졌다. 갓 태어난 마리는 ‘나나’라는 사촌에게 맡겨졌다.
▲ 마리 솜즈의 최근 모습. | ||
마리는 마치 처칠 가의 유일한 자식인 것처럼 자랐다. 랜돌프와 다이애나는 청소년들이었음에도 중년의 어른인 것처럼 언제나 조용했다. 일곱 살이 많은 언니 사라 정도가 그나마 그녀와 성격이 비슷했지만 기숙학교에 다녀 집에 있지 않았다.
처칠 가의 아이들은 하나같이 자기들만의 ‘드라마’를 만들었다. 그것들은 공교롭게도 한결같이 비극이었다. 사라는 부모가 그렇게 반대하는 유태인 코미디언 빅 올리버와 결혼하려고 미국으로 도망쳤다. 당시 13세이던 마리는 엄마가 너무 분해 엉엉 울고 있고 아버지는 창 밖을 바라보며 시거만 피워대던 그 모습을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처칠 가의 비극은 더욱 참담하게 진행됐다. 다이애나는 1963년에 자살을 했고 이미 이혼을 해 홀몸이 된 사라와 랜돌프는 1968년, 1982년 각각 알코올 중독으로 세상을 떠났다.
마리는 17세 되던 해 전쟁과 맞닥뜨렸다. 그녀는 처칠의 딸답게 가만히 집에만 머물지 않았다. 그녀는 18세 때 지역예비군에 들어갔다. 이후 그녀는 지대공 포병대 혼성전투부대에 입대했다. 그녀는 가장 어린 나이에 여성하사관이 되었다. 그녀는 모든 사람을 평등하게 만드는 군복을 좋아했다. 그러나 배정받는 부대에 가면 “처칠 수상의 딸이 왔다”며 쳐다보는 주변의 시선은 언제나 그녀를 부담스럽게 했다.
전쟁이 끝나자 마리는 제대했다. 그녀 앞에는 새로운 인생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는 엄마를 대신해 아버지와 함께 세계 지도자를 만나야 했다. 1945년 포츠담에서 스탈린과 트루먼, 그리고 아버지에게 줄 저녁 식사를 준비하기도 했다. 히틀러도 만났다.
그녀는 이후 크리스토퍼 솜즈라는 남자와 약혼했다. 상견례도 없이 치른 기습적인 의식이었다. 크리스토퍼는 군대경력을 빼면 완전한 ‘백수’였다. 엄마 클레멘타인의 반대가 심했지만 마리는 밀어붙였다. 처칠은 이들 신혼부부에게 챠트웰 농장의 운영을 맡겼다. 두 사람은 이곳의 이름을 ‘허니문 농장’이라고 짓고 아이들을 낳으면서 행복하게 살았다. 부모들의 냉랭한 관계를 줄곧 지켜보고 자란 마리로서는 그 어떤 여인보다도 남편에게 헌신적으로 대했다.
이후 마리는 아버지 처칠의 비서로 남편을 천거하면서 정계에 입문시켰다. 크리스토퍼는 장인의 후광을 업고 승승장구했다. 프랑스 대사와 로디지아 총독의 자리까지 올랐다. 파리에 머물 때 드골을 언제든지 만날 수 있을 정도로 외교가의 실력자 노릇을 했다. 1987년 남편을 잃은 그녀는 이후 형제들의 그치지 않는 비극을 혼자서 고스란히 지켜보아야 했다. 그리고 이제 생을 마감하기 전 비로소 처칠 가의 비극은 끝이 났다는 사실을 세상에 알리려 하고 있다. 문암 해외정보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