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상시에 쓰일 만한 용품들만 취급하는 뉴욕시 의한 가게. 요즘 이곳은 유명인을 비롯한고객의 발길이 급증하는추세라고 한다. | ||
뉴욕 최고의 서바이벌리스트로 불리는 J는 8년째 레스토랑 근처도 가지 않는다. “난 전기도 전화도 TV도 믿지 않는다. 근처 슈퍼마켓에서 음식을 사먹지도 않는다.” 그는 모든 음식을 외국에서 수입한다. 그것도 건조된 상태로. 그는 외출할 때는 항상 하얀 비닐백을 들고 다닌다. 그 안에는 만능칼, 항생제, 붕대, 긴칼이 있다. 최소한의 생존 물품이다. J는 그래도 나은 편에 속한다. 9•11테러 이후 거의 세계종말을 준비하는 사람들과 같은 극렬 무리가 뉴욕에 다수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이렇게 입고 다닌다.
▲ 비상용 담요 | ||
왼쪽 손목에는 15cm 너비의 다용도 밴드가 둘러져 있다. 여기엔 작은 노트북, 방수 다이빙시계, 펜이 들어가 있다. 최소한의 정보와 소통을 위한 것. 이런 ‘준비족’들의 우두머리로 여겨지는 것이 아톤 에드워드다. 지난해 9월11일 아침 뉴욕 세계무역센터가 무너진 시각, 그의 집에는 시끄러운 전화벨 소리가 울려퍼졌다. 대개의 대화는 이랬다. “정말 하신 말씀이 맞았어요.” “제가 말했죠. ‘그라운드 제로’가 생길 거라고요.” 그들의 대화는 섬뜩하게 차분했다.
아톤 에드워드는 6년 전부터 ‘그날’을 준비해오고 있었던 까닭이다. 물론 당시 아무도 믿으려 하지 않았지만. 그는 한편 이런 폭탄 피해를 예상하고 ‘살아남기 방법’도 연구했다. 그래서 89년엔 ‘전쟁대비 준비 네트워크’란 비영리조직을 결성해 전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을 강연할 강사를 교육시켰다. 지난 가을 ‘전쟁대비 준비 네트워크’의 수강신청자는 넘쳐났다. 도저히 다 수용할 수 없을 정도의 기하급수적인 증가세였다. 사람들의 공포가 그의 주장을 공감하게 했다.
테러 이후 그의 말은 뉴스를 비롯한 도처에서 쓰이기 시작했다. 말할 것도 없이 그는 각종 방송에 게스트로 출연했다. 겁에 질린 친구들과 모르는 사람들을 달래기에 정신이 없었다. 주로 어떻게든 이 공포를 이길 확실한 ‘준비’를 하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사실 영화 <패닉룸>의 소재도 미국의 현실과 동떨어진 것이 아니다. 이렇게 손 쓸 방도가 없었다는 회한에 젖은 사람들이 2차 테러를 대비해 자신들만의 패닉룸(안전방)을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 배터리가 필요없는 손전등 | ||
9•11테러로 수입이 짭짤한 다른 곳은 뉴욕 차이나타운 중심부에 있는 캐널스트리트의 ‘트레이더(Trader)’란 가게. 사장인 게리 휴고에 따르면 Y2K 때는 꿈쩍도 않던 매출액이 9•11테러 이후 지금까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고 있다. 방독면, 양말, 바지, 화학전에 오염된 물을 정수하는 정수기는 갖다 놓으면 금세 팔릴 정도라고 한다.
유명인도 자신의 신변보호에 민감하기는 마찬가지. 이 가게 단골로는 배우 윌리엄 대포우, 가수 쿨 J, 조니 캐쉬 등이 있다. 이렇게 뉴요커들은 끔찍한 상황이 다시 재현되더라도 손놓고 있지 않을 거라는 결의가 분명하다.1주년을 앞두고 이런 열기는 한층 후끈해진 상태. 이후에 팔린 서바이벌 용품의 수는 어마어마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