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달부터 시행되는 ‘실리콘밸리식 기업문화’…특검 구속수사 여부 변수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임준선 기자
지난 6일 삼성은 전경련 탈퇴 신청 후 “약속한대로 미래전략실을 해체한다”고 밝혔다. 이어 “특검 수사가 끝나는 대로 조치가 있을 것이며 이미 해체작업을 위한 준비 중”이라고 덧붙였다. 이는 지난해 12월 6일 국회 국정조사 청문회에서 이 부회장이 미전실 해체와 전경련 탈퇴 등을 약속한 것에 따른 조치다. 현재 다양한 방안이 그룹 내부에서 논의되고 있지만, 별도 신설 조직 없이 미래전략실 주요 역할을 삼성전자와 삼성생명, 삼성물산 3개 주요 계열사 내 기존 경영지원조직이 맡게 되는 방안이 유력한 것으로 전해졌다.
미래전략실은 1959년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 시절 비서실로 출발해 오너 일가를 수행하고 계열사 간 관계를 조율하는 역할을 수행했다. 당시 비서실은 조직관리에 뛰어난 일본 기업 미쓰비시를 벤치마킹해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재임 기간 중인 1998년 구조조정본부, 2006년 전략기획실로 각각 이름을 바꾸면서 명맥을 유지하며 삼성그룹 내 권력의 핵심축으로 부상했다.
그러다 2008년 ‘삼성 특검’ 이후 조직 쇄신 차원에서 전략기획실이 해체 됐고, 같은해 사장단협의회가 그룹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맡게 됐다. 이후 2010년 그룹 컨트롤타워는 미래전략실로 다시 부활했다. 현재 미전실은 각 계열사에서 파견된 고참급 사원 200여명이 전략팀, 기획팀, 인사지원팀, 법무팀, 커뮤니케이션팀, 경영진단팀, 금융일류화지원팀 등으로 나뉘어 근무하고 있다.
이병철 창업주 시절 이후 조직 이름과 세부 구성은 조금씩 바뀌어 왔지만 그룹 주요 의사결정을 내린다는 점에선 큰 변화가 없었다. 이 때문에 삼성의 핵심 정책을 총괄하는 미전실은 외부적으론 ‘오너 일가만을 위한 기구’라는 부정적인 평가를 받기도 했다.
미전실이 해체될 경우 소속 임직원들은 자신들의 원래 소속 계열사로 복귀할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다. 이와 관련해 삼성그룹은 최근 미전실 산하 인사팀을 통해 기능과 인력에 대한 선별 작업을 마무리 지은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미전실 해체는 삼성전자 등 계열사 독립 경영 강화로 체제가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계열사간 업무조정, 경영진단, 채용, 인수합병(M&A) 기능은 삼성전자·생명·물산 등 3대 주력 계열사의 경영지원조직으로 분산될 가능성이 높다. 계열사들끼리 업무가 중첩되거나 조율이 필요한 경우 각 계열사의 경영지원조직이 주도적으로 교통정리에 나서는 것이다. 이는 미국 제너럴일렉트릭(GE)의 전사지원조직와 상당 부분 닮아 있다.
그룹 차원의 핵심 결정은 지주회사 GE의 이사회가 내린다. 그리고 여기에 속한 ‘전사지원조직’은 법무·인사·재무·사업개발 등과 관련해 각 계열사가 원하는 업무를 지원한다. GE 관계자는 “전사지원조직은 의사결정에는 관여하지 않고, 각 계열사의 경영활동을 지원하는 업무만 담당한다”고 말했다. 삼성 계열사 관계자도 “이 부회장은 오너에게 그룹의 모든 책임이 집중되는 현 체제에 불만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 때문에 GE와 같은 글로벌 경영스타일로 전환한다는 그림을 그리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구속이 결정될 경우 이재용식 조직 혁신안도 불투명해질 전망이 높다. 사진은 특검에 들어서는 이재용 부회장의 뒷모습
아울러 삼성은 다음달 3월부터 실리콘밸리식 조직 개편안을 본격적으로 시행한다. 이난 삼성이 지난해 6월 발표한 조직문화 개선 프로젝트 ‘스타트업 삼성 컬처혁신’의 일환이다. 권오현 삼성전자 부회장도 지난달 2일 시무식에서 “뛰어난 아이디어가 발현될 수 있도록 창의적 조직 문화를 구축하고 문제점을 즉시 개선할 수 있도록 합리적 시스템을 구축하자”며 조직문화 혁신을 강조하고 나서 이 부회장 조직 개편안에 힘을 실었다.
삼성이 밝힌 개편안의 핵심은 기존 사원(1·2·3), 대리, 과장, 차장, 부장 등 7단계로 나눠진 직급체계를 ‘경력개발 단계(Career Level)’ 1~4단계로 단순화하고 임원과 팀장, 그룹장 등 직책을 제외한 상호 호칭을 ‘~님’으로 통일한다는 것이다. 호칭부터 개선해 서로 평등한 입장에서 자유롭게 아이디어를 나눌 수 있도록 하겠다는 취지다. 현재 이같은 인사개편안은 이미 제일기획과 삼성바이오로직스, 삼성바이오에피스 등 계열사에서 유사한 형태로 도입·시행 중에 있다.
지난 2010년 삼성 그룹 내에서 가장 먼저 직급체계 단순화를 시도한 제일기획 관계자는 “직급 단순화는 권위적인 조직 문화보다는 자유로운 아이디어 교환이 중요한 광고업 특성상 긍정적 효과를 나타내고 있다”고 밝혔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이달부터 이미 시행 중에 있다.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어색한 부분이 많지만 적응하는 단계”라면서도 “부서별 회의 같은 곳에 참석할 때 이제는 이름을 일일이 다 외워야 하는 게 조금 불편한 점”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같은 삼성의 이재용식 혁신안은 특검이 이 부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재청구하면서 제동이 걸렸다. 최악의 시나리오인 이 부회장 및 주요 인사의 동시 구속이 현실이 된다면 개혁과제는 무한정 뒤로 밀릴 수밖에 없다. 지난해 연말 미뤄졌던 사장단 인사 등 삼성의 후속 인사 작업도 마찬가지다. 일단 특검 수사 등 외부 상황변화에 따라 비상경영 형태로 대응하겠지만, 극심하게 변하는 글로벌 경영환경을 고려할 때 근본적인 대응책이 되기는 어렵다.
설사 삼성이 이 부회장의 뜻에 따라 미전실을 해체한다고 밝혔지만 이는 특검 수사가 끝난 뒤의 얘기다. 현실적으로 특검 수사가 마무리되지 않은 상황에서 미전실 해체는 실행에 옮기기 어렵다는 것이 재계 반응이다. 또한 오는 28일 마무리될 예정인 특검 수사가 연장될 가능성도 남아 있어 30일간 연장될 경우 삼성의 미전실 해체 등 후속 작업도 3월 이후로 미뤄질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한편, 지난 14일 특검에 의해 구속영장이 재청구된 이 부회장은 오는 16일 오전 한정석 영장전담 판사 심리로 열리는 영장실질심사 법정에 다시 서게 된다. 이 부회장의 구속여부는 16일 늦은 밤 또는 17일 새벽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이재용 구속수사 결정에 삼성 조직 개편의 운명이 달린 셈이다.
김상훈 기자 ksangh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