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초-광역 계급장 떼고 ‘뭉쳐야 산다’
광주시 등 11개 시·군·구가 의기투합한 빛고을생활권행정협의회는 공동장의시설 조성, 다정다감 남도여행, 통합버스정보시스템 구축 등 연계협력사업을 활발히 추진 중이다. 제2회 정기회의 모습. 사진제공=광주시
전남 강진군과 영암군, 장흥군을 흔히 ‘남도(南道) 3군’이라고 한다. 지리적으로 인접한 이들 지자체는 각종 이해관계가 얽히면서 때때로 대립각을 세워 오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한 몸’처럼 움직인다. ‘상생협력정책협의회’를 구성해 농산물 판매, 스포츠대회 유치, 국비 예산 확보 등 다양한 분야에서 긴밀하게 공조하고 있다. 정부 예산을 따내기 위해 세종사무소도 함께 운영한다. 지난해 8월에는 서울시와 도농 상생 협력을 위한 우호교류 협약을 공동으로 체결했다.
남도 3군은 지리적으로 인접해 있다. 음식이나 문화, 기후 등에서 비슷한 점이 많다. 바다와 접한 데다 역사문화와 관광자원도 공유한다. 하지만 남도 3군이 공동 전선을 펴는 진짜 이유는 따로 있다. 세 군의 재정 상황은 하나같이 열악하다. 재정자립도는 각각 10% 안팎에 불과할 정도다. 2015년 기준으로 영암이 13.7%였고, 강진(7.7%), 장흥(6.0%)은 10%에도 미치지 못했다. 전국 기초 지자체 중 최하위권이다. 공무원 인건비도 감당하기 어려운 형편이다.
세 군의 면적은 1809.7㎢로, 서울시 면적(605.2㎢)의 세 배에 달한다. 그러나 인구는 모두 합쳐봐야 14만 명에 불과하다. 생존을 위해선 뭉칠 수밖에 없었다고 입을 모은다. 장흥군 관계자는 “이전까지는 관광객을 각자 지역에 유치하려고 경쟁이 치열했다”며 “그러나 중복 투자 등의 폐해가 계속되면서 공멸할 수 있다는 판단에 따라 상생할 수 있는 방안을 찾기로 했다”고 말했다.
남도 3군은 ‘전국 학교클럽 리그 왕중왕전’을 공동 유치해 적잖은 수익 및 홍보 효과를 거뒀다는 평가를 받았다. 지난해 2월엔 대통령 직속 지역발전위원회가 공모한 ‘지역행복생활권 선도사업’에 최종 선정돼 국비 21억 원을 확보하는 성과를 올렸다. 또 9월에는 대통령직속 지역발전위원회 주관 2016년 지역행복생활권 운영체계 평가에서 우수기관에 선정됐다.
광주시와 인접 시군구 기초자치단체가 의기투합한 빛고을생활권행정협의회도 시선을 끈다. 광주시와 관내 5개 구청, 인접한 나주시, 담양군, 화순군, 함평군, 장성군 등 11개 시·군·구가 참여해 지난 2015년 10월 결성됐다. 기존 협의회와는 사뭇 달랐다. 광역지자체와 기초지자체가 기득권이나 도시의 크고 작음을 떠나 ‘계급장’ 떼고 동등한 자격과 지위로 참여했다. 기초자치단체에 단순한 대도시 배후기능이나 일방적 협력을 강요하지도 않았다.
전국 최초의 행정협의회로 공동장의(葬儀)시설 조성, 다정다감 남도여행, 통합버스정보시스템 구축 등 연계협력사업을 활발히 추진 중이다. 과제발굴을 위한 민간전문가 참여 TF팀 운영 등 다른 생활권협의회의 모범 사례로 벤치마킹도 줄을 잇는다.
광주 남구와 나주, 화순군은 공동으로 로컬푸드 구축을 중심으로 한 한뿌리 생활권 지역경제 순환 증진 프로젝트를 추진, 생산자와 소비자가 공생하는 실마리를 만들었다. 6개 생활권 지자체가 참여하는 취약지 응급협진 시스템 구축사업은 도·농간 의료격차 해소와 농촌지역 응급환자에 대한 신속한 의료서비스를 제공한다.
풍류남도 나들이는 광주와 담양 등 지역의 전통문화자원인 누정문화와 가사문화를 자연생태 관광자원과 연계한 체험형 관광프로그램이다. 광주와 인접 시·군간 광역버스정보시스템 구축, 인접 지자체 주민에게 문을 연 영락공원 내 가족묘 분양 등도 지역간 상생의 결실이다. 광주시는 “빛고을협의회 성과 뒤에는 지역이기주의에 매몰되지 않는 상호 신뢰와 대화, 토론이 뒷받침됐기 때문이다”고 자평했다.
전북 정읍시와 부안·고창군의 상생사업인 서남권 추모공원 개원식 모습. 사진제공=정읍시
전북 전주시와 완주군 역시 화합 차원에서 교량 설치비를 공동 부담키로 합의하고 갈등을 해결했다. 전주시 전미동과 완주군 삼례읍 하리. 만경강을 사이에 두고 전주시와 완주군의 행정경계가 나뉜다. 북쪽으론 호남고속도로 삼례나들목으로 향하고 남쪽으론 전주에코시티 조성지와 연결되는 3.9㎞ 도로로 연결돼 있다. 완주구간 2.6㎞는 왕복 4차선 도로지만 전주 구간 1.3㎞는 도로 폭이 5.5m에 불과해 농로나 다름없다. 전주 북부군 국도대체도로와 연결되는 구간이어서 전주에선 1만 6500명이, 완주에선 8800여 명이 도로를 이용해 매일 행정경계를 넘나든다.
때문에 만경강을 가로질러 이 도로를 연결한 하리교(연장 425m)는 늘 북새통이다. 2차선 다리라고 하지만 갑자기 좁아진 탓에 병목현상으로 사고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주민 불만이 폭증하자 전주시와 완주군은 재가설을 협의해 왔으나 토지보상비와 공사비 등으로 들어갈 240억 원을 ‘누가 내느냐’를 두고 십수 년째 밀당을 벌였다. 전주시는 “관리청이 완주군이므로 공사는 완주군이, 보존은 전주시가 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완주군은 “관리청이 전주시인데 오히려 완주군이 관리를 해 왔다”며 맞서왔다.
서로 자기 책임이 아니라는 핑퐁 끝에 양 지자체가 60억 원씩 부담해 공사비 절반을 충당하고 나머지 120억 원은 정부에서 확보하자고 뜻을 모았다. 지방도로지만 양 지역 산업단지와 신도심 연계를 위한 것이고, 특히 지자체 상생협력 차원의 공동사업이란 점을 내세워 정부를 설득했다. ‘지자체 관리 교량’이라며 난색을 표하던 국토교통부가 동의하면서 결국 기재부가 최근 총사업비 변경 승인을 확정했다. 이에 따라 전주시와 완주군 갈등의 현장이던 하리교는 오는 2018년 폭 21m의 왕복 4차로 교량으로 재가설된다.
전북 서남권에 자리잡은 정읍시와 부안·고창군이 행정구역을 넘어선 ‘상생사업’을 펼쳐 큰 성과를 내고 있다. 정읍 등 3개 시·군은 총사업비 29억 원을 들여 2018년까지 3년간 ‘전북 서남권 광역 응급진료체계 구축사업’을 벌이기로 했다. 응급진료체계가 갖추어지면 종합병원인 정읍아산병원을 거점병원으로 긴박한 의료상황이 발생했을 때 최대한 신속하고 안전한 의료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게 된다. 이 사업은 올 초 대통령 직속 지역발전위원회와 농림축산식품부가 공동으로 추진하는 ‘2016년 지역 행복생활권 선도사업 공모’에 뽑혔다.
상생사업의 백미는 ‘서남권 추모공원’ 조성이다. 이들 3개 시·군은 화장시설이 없어 지역민들이 불편을 겪자 153억 여 원을 들여 정읍시 감곡면에 광역화장장인 ‘서남권 추모공원’을 공동으로 건립하고 지난 2015년 11월 개원했다. 추모공원 협력사업은 보건복지·행정안전부와 국민대통합위원회로부터 지역통합 우수사례로 선정되기도 했다. 이 외에도 이들 시군은 주민편의와 중복투자를 막기 위해 ‘서남권농기계사업소’를 함께 설립하고 인접 시·군 주민이 공동으로 이용할 경로당과 농·특산물 공동판매장도 만들었다.
“이웃사촌인 정읍·부안·고창은 가까운 지자체끼리 함께 가지 않으면 큰 발전을 기대할 수 없다는 공감대가 일찍부터 형성돼 있었습니다. 재정이 열악한 자치단체끼리 지나치게 경쟁하면 동반 추락할 수밖에 없습니다. 중복·과잉 투자를 막기 위해 지자체 간 상생 협력이 절실합니다.”(김생기 정읍시장)
정성환 기자 ilyo66@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