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과급·승진체계 달라 내부 부글부글 “준비 없이 합방 서둘러”
KB증권은 올해 과장급 이상 전 직원의 연봉을 동결시킨 대신 위로금과 성과급 명목으로 직원 한 명당 400만 원을 지급했다. 그러나 이 돈은 옛 현대증권 직원들에게만 지급됐다. 그렇잖아도 구 KB투자증권 직원들은 현대증권 직원보다 적은 연봉을 받는데 성과급도 받지 못한 것이다. 또 같은 직급끼리 비교했을 때 현대증권 출신 직원의 연봉이 KB투자증권 출신 직원보다 평균 1500만 원가량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뿐만 아니다. 옛 현대증권 직원들은 지난해 명절 귀성비로 대리급 이상은 60만 원, 사원급 이하는 50만 원을 받았다. KB증권은 현대증권을 인수한 이후 이를 그대로 적용, 지난 설날 같은 액수의 귀성비를 지급했다. 반면 옛 KB투자증권 직원들에게는 일괄적으로 30만 원을 지급했다. 지난해 20만 원 수준의 선물을 받은 것을 감안하면 귀성비가 올랐지만 현대증권 출신 직원들에 비해서는 여전히 적은 액수를 받은 것이다. KB증권 관계자는 “옛 현대증권의 귀성비는 노사협약에 따라 결정된 부분이라 변경할 수 없었다”며 “옛 KB투자증권의 귀성비 역시 내부규정에 따라 지급한 것”이라고 전했다.
KB투자증권 출신 한 직원은 “현대증권에는 노조가 있지만 구 KB투자증권에는 노조가 없는 것이 영향을 미친 것 같다”며 “KB증권 통합 후 노조에 가입하라는 권유가 들어와 가입을 신청했지만 아직 가입대기상태라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 전했다. KB증권 관계자는 “노조와 통합 인사·복지 등에 대해 논의하고 있지만 기존의 틀을 갑자기 현대증권에 맞게 바꿀 수는 없다”며 “노조가 없다는 이유로 KB투자증권 출신 직원들을 차별하는 건 절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KB금융지주는 자기자본 4조 원대 KB증권을 보유하게 됐지만 인사시스템 통합이 이뤄지지 않아 내부에서 불만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합병 이후 인사시스템이 통합되지 않아 갈등이 불거진 금융사는 KB증권만 있는 게 아니다. 2015년 9월 하나은행과 외환은행이 합병해 출범한 KEB하나은행도 내부에서 불만의 목소리가 나온다. 하나은행 출신 직원들은 낮은 연봉에, 외환은행 출신 직원들은 어려운 승진 체계에 불만을 갖고 있다. 외환은행 출신 한 직원은 “옛 외환은행 직원은 과장에서 인사 고과를 잘 받아도 차장대우를 거쳐야 하고 차장이 언제 될지 기약이 없다”며 “옛 하나은행 직원은 만 4년간 과장 직책에 있으면 (차장대우를 거치지 않고) 자동으로 차장이 된다”고 밝혔다.
하나은행은 옛 하나은행과 외환은행에 모두 노조가 있었다. 두 노조 또한 올해 초 통합됐다. 하나은행노조 관계자는 “계급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외환은행 출신 직원의 연봉이 하나은행 출신 직원보다 약 1000만 원 높다”며 “조만간 사측에 인사시스템 통합을 요구할 것”이라고 전했다. 하지만 협상 일정은 정해지지 않았다. 앞의 노조 관계자는 “사측은 통합노조에 노조 간부를 발령해야 하는데 아직까지 발령을 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하나은행 관계자는 “옛 외환은행의 인력구조는 항아리형 구조로 책임자급 이상 직원이 많아 승진이 어렵고 같은 직급이어도 호봉이 높아 연봉이 높은 것처럼 보이는 것이지 연차로 따지면 연봉 차이가 크지 않다”며 “노조와 사측은 노조 간부 숫자를 놓고 협상 중에 있으며 노조가 통합 인사시스템을 요구하면 사측도 협상에 나설 것”이라고 해명했다.
지난해 12월 미래에셋증권과 대우증권이 합병해 출범한 미래에셋대우도 통합 인사시스템에 대해 노사 간 갈등이 있다. 미래에셋대우는 올해 초 신인사제도를 도입하면서 과거 대우증권에 있었던 영업비용 지원제도, 사내 동호회 지원비 등을 폐지해 옛 대우증권 직원들의 항의를 받았다.
서울 을지로 미래에셋센터원 빌딩. 최준필 기자 choijp85@ilyo.co.kr
직급에 대해서도 노사 간 의견이 충돌한다. 미래에셋대우는 직원들의 직급을 기존 사원·대리·과장·차장·부장 5단계에서 매니저·선임·수석 3단계로 줄인다고 발표했다. 통합 전 미래에셋증권은 직원들에게 새로운 직급체제에 동의한다는 서명을 받았지만 대우증권 출신 직원들과는 협상 중이다. 대우증권 출신 직원들은 신인사제도가 추진되면 승진에 따른 임금 상승 기회가 전보다 줄어 불이익을 볼 수 있다는 이유로 반대했다. 이에 미래에셋대우는 진급 연한 단축 및 연봉 인상 등의 협상안을 내놨다.
대우증권 출신 한 직원은 “최근 신인사제도에 대한 잠정 합의안이 공개됐지만 합병위로금은 제시하지 않아 아쉬운 부분이 있다”며 “오는 20일과 21일에 노조에서 투표를 하는데 직원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달라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고 전했다.
일부에서는 자기자본 확충을 위해 간판만 서둘러 통합했다고 보는 사람도 있다. 올해 하반기부터 자기자본 4조 원 이상의 초대형 증권사는 만기 1년 이내 어음 발행, 중개 등 단기 금융 업무까지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KB증권은 전산통합도 이뤄지지 않았다. KB증권 관계자는 “인사와 전산통합 못지않게 중요한 목표·영업방식의 통합은 이뤄진 상태”라며 “장기적 관점에서 보면 언젠가 통합될 부분인데 너무 급하게 바라보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KEB하나은행도 준비 없이 합병됐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2012년 1월 하나금융지주가 외환은행을 인수하면서 5년간 독립경영을 보장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하나금융지주는 약속을 깨고 2015년 9월 하나은행과 외환은행을 합병했다. 하나금융 관계자는 “급변하는 금융 환경 속에서 더 나은 경영을 위해 빠르게 합병한 것”이라며 “은행도 영리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어 우선 경쟁력을 높이고 인사나 직급 체계 등은 차츰차츰 해결해 나가면 되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피인수기업인 현대증권, 외환은행, 대우증권 직원들은 인수기업 출신 직원들보다 높은 연봉을 받는다. 또 현대증권과 대우증권 직원들은 KB증권과 미래에셋대우 노조의 주축을 이루고 있다. 때문에 일부에서는 구조조정을 하면 피인수기업 출신 직원들이 우선 대상이 될 것이라고 보고 있다. 증권사에 대한 전망도 좋지 않아 향후 구조조정이 진행될 가능성은 충분하다. 안성학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연구위원은 “대형 증권사들의 규제 환경이 중소형 증권사에 비해 우호적으로 전환됐다고 하더라도 치열한 경쟁 상황으로 인해 충분한 수익성을 확보할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은 여전하다”며 “특히 국내 기업금융 시장은 다수의 증권사 외에 은행이라는 강력한 경쟁자가 존재하며 최근의 경제 상황도 우호적이지 않다”고 전했다.
KB증권과 미래에셋대우는 구조조정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KB증권 관계자는 “희망퇴직은 이미 합병 전에 끝나 당분간은 구조조정을 진행할 계획이 없다”며 “오히려 KB증권이 대형 증권사로 거듭나면서 앞으로 인력 수요가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미래에셋대우 관계자는 “구조조정은 해당 부서의 인력 변화에 따라 움직이는 것인데 출신으로 따지는 건 어불성설”이라고 전했다.
박형민 기자 god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