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등판 경영권 분쟁 불씨 될 수도…해체 앞둔 ‘미전실’ 도로 파워업 가능성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일요신문 DB
두 번째 영장청구를 앞두고 박영수 특별검사팀은 조직 내 대기업 수사 담당 인력을 교체하고, 삼성의 순환출자 규제 특혜 의혹과 관련해 공정거래위원회를 압수수색하는 등 증거 보강에 열을 올렸다. 이 과정에서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수석이 작성한 ‘제2의 업무수첩’을 우회 입수하고, 청와대가 삼성에 특혜를 제공한 정황을 확인했다. 삼성의 금융지주회사 전환, 순환출자문제 해소 등은 물론 계열사인 삼성바이오로직스 상장에 대한 지시사항이 업무수첩에 담겼던 것으로 전해진다.
특검 수사 책임자인 윤석열 수사팀장과 한동훈 부장검사는 지난 1차 영장청구 때와 달리 직접 법원을 찾아 구속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특검 사정에 정통한 관계자는 “지난 영장청구 때와 비교해 서류더미만 3배가 더 제출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특검으로서는 이 부회장의 구속 여부에 따라 박근혜 대통령의 뇌물죄 수사가 판가름나는 까닭에 ‘배수진’을 칠 수밖에 없던 상황이다. 특검 안팎에선 “두 ‘특수통’이 칼을 갈았다”는 말까지 돌았다.
특검의 ‘승부수’는 정유라 승마 특혜 지원 혐의를 받고 있던 박상진 삼성전자 사장에 대한 구속영장 동시 청구였다. 검사 출신 백혜련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 부회장이 구속된 배경 가운데 하나로 “박상진 사장과 함께 영장을 청구한 것”을 꼽았다. 백 의원은 ‘법원이 이 부회장과 박 사장 모두 영장을 기각하기에는 부담이 컸을 것’이라고 부연했다.
결국 범죄 혐의에 대한 ‘책임’ 측면에서 법원은 이 부회장의 책임이 박 사장보다 더 크다고 판단했다. 법조계 관계자는 “박 사장에 대한 영장이 기각되면서 오히려 이 부회장에 대한 구속 논리가 강해졌다”며 “실무진이 아닌 이 부회장이 직접 일련의 사건을 챙겼을 개연성을 인정한 것”이라고 말했다.
특검은 수사 기간 연장 여부에 따라 이르면 오는 27일 이 부회장을 뇌물공여 등 혐의로 구속기소할 것으로 전해진다. 재판 일정 등을 고려하면 1심에서 무죄 혹은 집행유예가 나오더라도 최소 3개월은 구속이 불가피하다.
이 부회장의 영장 발부 직후 삼성 미래전략실은 입장자료를 통해 “앞으로 재판에서 진실이 밝혀지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삼성은 대통령의 강요에 따라 최순실 일가를 지원했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삼성 사정에 정통한 대기업 정보 담당 관계자는 “미래전략실 임직원이 대략 200명인데 이들 모두 최순실 일가 지원 및 정보수집에 동원됐다는 설은 사실과 다르다”라며 “최순실 일가와 직접 연락이 닿았던 사람은 극소수다. JY도 깊숙하게는 몰랐을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삼성 미래전략실은 입장자료를 통해 “앞으로 재판에서 진실이 밝혀지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삼성은 대통령의 강요에 따라 최순실 일가를 지원했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일요신문 DB
그러나 특검팀이 최근 박상진 삼성전자 사장과 황성수 전무가 지난해 10월 독일 프랑크푸르트로 직접 날아가 최순실을 만나 사건이 확대되는 것을 대비한 ‘회의록’을 입수한 것이 영장 발부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재계 한 인사는 “그동안 삼성이 줄곧 피해자라고 호소해왔지만 임원 이메일을 통해 드러난 회의록으로 삼성의 논리가 무너진 것”이라며 “피해자라면서 왜 직접 나서 입을 맞추고 가해피해 사실을 은폐하려 했냐는 것이 설명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창사 이래 단 한 번도 총수가 구속된 적 없는 삼성은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와병으로 유고 중인 데다 이 부회장마저 기약 없는 수감생활을 하게 되면서 최대 위기에 직면했다. 재계 관계자는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혼란한 정국에서 오너가 구속됐고, 이를 수습할 컨트롤타워마저 부재하다”고 우려했다. 삼성 측은 “절망적”이라며 “현재로선 아무 대응책이 없다”는 입장을 전했다.
그러나 재계 일각에선 벌써 이 부회장의 경영 공백을 누가 메울지 설왕설래가 한창이다. 이 부회장의 동생인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의 그룹 내 비중이 늘어나는 것 아니냐, 이건희 회장 부인 홍라희 삼성미술관 리움 관장이 그룹 경영을 챙기는 것 아니냐는 주장 등이 대표적이다. 이 사장은 오빠인 이 부회장(지분율 17.23%)에 이어 삼성물산 2대 주주이면서 이번 ‘최순실 게이트’에 연루되지 않아 꾸준히 ‘등판’ 가능성이 제기된다.
이 사장의 ‘등판’이 경영권 분쟁의 불씨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이 부회장의 어머니인 홍라희 관장이 막후에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실제 총수 유고를 겪은 CJ그룹도 동생인 이미경 CJ 부회장과 외삼촌인 손경식 CJ 회장이 비상경영체제를 이끈 바 있다.
하지만 앞의 재계 관계자는 “가족이 구속된 상황에서 염치없이 동생과 어머니가 경영 전면에 나서는 게 말이 되겠느냐”라며 “근거 없는 찌라시에 불과하다”고 일축했다. 총수 구속을 경험한 재계 관계자도 “이 부회장이 삼성을 대표해 글로벌 네트워크를 쌓아온 측면이 있다”며 “거래 상대방이 임시 대리인을 신뢰할 수 있겠느냐. 안타까운 것은 이 부회장의 구속 기간이 길어질수록 삼성이 중요 의사결정을 못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재계 또 다른 인사는 “지분율에서 이미 게임이 안된다”며 이 사장이나 홍 관장의 경영 개입설에 고개를 저었다.
반면 삼성 출신 다른 관계자는 “삼성은 이건희 회장 때부터 상호경쟁과 시스템으로 굴러가는 회사였고 이것이 확고해진 상태”라며 “이번 이 부회장 구속으로 경영 환경이 크게 바뀌진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또 이 관계자는 “앞서 이 부회장이 미래전략실 해체를 공언한 바 있는데 컨트롤타워가 부재한 상황에서 미래전략실 권한과 역할은 당분간 강화될 수밖에 없다”며 “미래전략실의 ‘얼굴’이 다른 오너 일가가 될지 현 미래전략실장인 최지성 부회장일지는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했다.
강현석 기자 angeli@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