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석연 ‘헌법은 살아있다’ 표지 사진=와이즈베리 제공
[일요신문] 김재환 기자 = 세계 헌정사상 유례없는 저항권 행사의 모범이 된 ‘촛불집회’가 시작된 지 100여일 지났다. 전국적으로 200만 명 이상의 국민이 이 땅의 진정한 주인이 누구인지 여실히 보여주었다. 이제 주권재민의 헌법 조문은 더 이상 정치적 장식물이 아니라 언제라도 국민이 주인으로서 권리를 행사할 수 있게 하는 살아있는 권한이 되었다.
대통령 탄핵과 개헌 논란으로 인해 헌법이 새삼 주목받고 있는 지금, 우리는 헌법에 대해서 과연 얼마나 알고 있는가? 딱딱한 법률용어로 가득 찬, 나와는 거리가 먼 존재로 여기지는 않았는가?
우리나라 제1호 헌법연구관이자 자타가 인정하는 ‘헌법 등대지기’ 이석연 변호사(전 법제처장)는 헌법이 지배하는 대한민국 사회를 기대하면서 헌법의 정신과 기본 원리를 국민의 눈높이에 맞추어 쉽게 써보려는 오랜 생각의 결실로《헌법은 살아있다(와이즈베리 신간)를 내놓았다.
헌법전문가로서 오랫동안 시민운동에 헌신해온 저자는 이 책에서 헌법이 우리의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존재로서 추상적・선언적 규범이 아닌 재판규범, 또는 생활규범이며, 따라서 헌법은 더 이상 전문가나 지식인, 법조인의 전유물이 아니라 모든 국민이 숙지해야 할 지적 재산이라고 강조하면서 현 시국을 진정한 ‘헌법시대’라고 선언한다.
특히 이 책은 헌법의 본질과 원리를 누구보다 명쾌하게 꿰뚫으면서 대통령 탄핵이나 건국절 논란, 개헌을 둘러싼 쟁점 등 우리 사회의 갖가지 민감한 논란거리를 헌법의 틀에 맞추어 명쾌하게 정리한다. 또한 일반 국민에게 광범위한 영향을 미친 사건들을 중심으로 한국 사회를 바꾼 10대 위헌결정 사례를 해설하면서 헌법이 우리의 삶과 어떻게 밀접한 관련을 맺으면서 기능하고 있는지 생생하게 보여준다.
혼돈의 시대, 저자는 《헌법은 살아있다》를 통해 오로지 ‘해(害)를 막기 위해 눈으로 살펴 마음의 중심을 지키는’ 헌법에 기대어 앞으로 우리가 나아갈 길에 대한 혜안을 제시하고 있다.
개헌, 어떤 방향으로 이루어져야 할까
현행 헌법은 1987년 10월 29일 공포된 이래 30년 가까이 대한민국의 정치권력과 국민생활을 직접 규율하는 생활규범으로서 확고한 자리를 차지해 왔다. 대통령 직선제 및 헌법재판 제도를 도입하여 민주화를 정착시키고 평화적 정권 교체와 헌법소원을 통한 국민 기본권의 절차적 보장을 확립하여 중요한 정치적 이슈마다 헌법이 결정적 역할을 해온 것이다.
그러나 새로운 시대적 흐름과 국민적 여망, 사회적 변화를 담아내기에 현행 헌법이 미흡한 점도 적지 않았다. 개헌은 더 이상 특정 지도자나 정파에 의하여 금기시 되거나 독점되는 정략적 논의의 대상이 아니라 국가 운영의 틀을 바꿈으로써 국가 위기를 극복하고 국민통합을 가져오는 역할을 해야 한다. 장기 독재를 우려한 헌정사적 반성에서 나온 5년 단임의 현행 대통령제도의 권력 구조는 이제 수술대 위에 올려야 한다. 아울러 정당의 헌법적 특권을 폐지하고, 대법관・헌법재판관에 대한 국민심사제 도입하는 방안도 검토되어야 할 것이다.
경제민주화 조항과 자유 시장 외의 관계의 경제에 관한 내용도 분명히 해야 한다. 자본주의 시장경제 체제 하에서 기회의 균등은 반드시 보장되어야 하지만 결과의 불평등은 불가피하다. 하지만 뒤처진 계층을 끌어올려 주고 희망을 포기하지 않도록 배려하는 것이 국가의 역할이다. 앞으로 이루어질 개정 헌법 안에는 반드시 우리 사회의 약자와 소수자, 소외계층의 눈물과 한숨을 제대로 담아내는 법제와 정책이 마련되어야만 한다. 저자는 사회적 약자의 눈물과 한숨을 담아내지 못하는 헌법은 제대로 된 헌법이 아니라고 한다.
‘헌법은 살아있다’ 저자 이석연 변호사 사진=이석연 변호사 제공
헌법은 살아있다 - 한국사회를 바꾼 10대 위헌결정
헌법재판소 출범 이후 헌법소원을 통해 공익 소송의 활성화를 담당했던 이석연 변호사는 그동안 150여 건의 헌법소송을 맡아 30여 건의 위헌결정을 받아냄으로써 위헌적인 법과 제도를 바꾸어왔다. 일례로 저자는 1990년대 후반 자신의 사무실을 찾아온 한 택시기사로부터 부모의 상속된 빚을 ‘단순승인’하여 은행으로부터 소장을 전달받은 사례를 전해 듣고 민법 조항에 문제가 있음을 간파하고는 위헌심판제청을 하여 이를 구제해주었다. 이 책 3장에서는 수백 건의 위헌결정 중에서 헌법의 생생한 기능을 보여주는 한국 사회를 바꾼 10가지 위헌결정을 흥미롭게 소개한다. 이를 통해 헌법이 생활규범으로서 우리의 삶과 얼마나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는지 생생하게 알 수 있다.
▶ 간통죄 위헌결정
▶ 제대군인 가산점 제도 위헌결정
▶ 인터넷 게시판 본인확인제 위헌결정
▶ 수도이전법 위헌결정
▶ 호주제와 동성동본 금혼제도 위헌결정
▶ 과외교습 금지 위헌결정
▶ 태아의 성별고지 금지 위헌결정
▶ 공권력 개입에 의한 국제그룹 해체 위헌결정
▶ 부부의 자산소득 합산과세 제도 위헌결정
▶ 통합진보당 해산, 노무현 대통령 탄핵, 김영란법 기각 등
건국절 논란, 대통령 탄핵 쟁점, 세종시 문제, 모병제 논란, 동성애 문제 등을
헌법적으로 명쾌하게 정리
헌법은 국가 사회의 모든 문제를 빨아들이는 블랙홀이자 이를 해결하는 아리아드네의 실이다. 일견 역사문제처럼 보이는 대한민국 건국 시기를 둘러싼 시비도 헌법에서 실마리를 찾아야 한다.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하고~“ 라고 규정하고 있는 현행 헌법(1987년 10월 29일) 전문에서 알 수 있듯이 대한민국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연장선상임에 있다.
또한 박근혜 대통령 탄핵을 둘러싸고 탄핵심판에서 제기되는 헌법적 쟁점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박근혜 대통령 법위반 사항이 과연 헌법상 탄핵 사유에 해당하는가,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이 정지될 수도 있는가, 탄핵심판 절차는 일반 형사 절차와 같은가, 탄핵 여부 결정까지 얼마나 소요되는가, 탄핵심판 진행 중 대통령이 사임할 수 있는가, 대통령 권한대행의 범위는 어디까지인가 등이다.
헌법은 탄핵 사유를 대통령 등이 직무집행에 있어 헌법, 또는 법률을 위배한 때라고 포괄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헌법재판소는 노무현 대통령 탄핵재판에서 탄핵 사유를 구체화하면서 모든 법 위반이 아닌 공직자의 파면을 정당화할 중대한 법위반의 경우로 한정하였다. 대통령의 법 위반 입증은 형사 사법 당국 확인으로도 충분하다.
또한 탄핵심판은 구두 변론에 의하고 형사소송 절차가 준용된다는 법 규정을 들어 그 심리에 형사재판에서와 같은 많은 시일을 요한다는 견해가 있으나 정치적 성격의 탄핵재판은 일반재판과 같은 반열에서 논할 수는 없다. 대통령 탄핵 제도는 적나라한 사실과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정치 현실을 헌법의 테두리로 끌어들여 신속히 판단함으로써 헌법수호의 기능을 하는 데 있으므로 헌법재판소가 소송법적 시각으로 사건을 다루면서 시간을 끄는 것은 스스로 그 존재 의의를 부정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한편 행정수도 이전법 위헌결정을 받아낸 저자는 현 세종시 탄생의 비화, 세종시의 문제점 등을 자세히 밝히고 있으며, 제대군인 가산점 ․ 모병제 ․ 동성애 논란 등 우리 사회의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문제에 대해서도 헌법적으로 명확히 정리하고 있다.
지금 우리 국민의 헌법 의식은 그 어느 때보다 고양되어 있는 상태다. 헌법을 살아있는 규범으로 만들려는 국민의 ‘헌법에의 의지’가 이제 정치를 비롯한 모든 분야에서 한국 사회를 개혁하고 주도해 나아가야 할 때가 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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