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사업 손실 만회할 밀약 오갔나
롯데가 중국 당국의 실력행사에도 국방부에 사드 부지를 제공키로 급선회한 배경을 두고 뒷말이 나오고 있다. 사진은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지난해 12월 6일 국정농단 청문회에서 발언하는 모습. 박은숙 기자
올 1월까지만 해도 롯데는 사드 부지 제공에 미온적이었다. 당초 국방부는 2016년 7월 최초 사드 배치 예정지로 경북 성주포대를 선택했다. 그러나 지역사회의 반발에 부딪히자 두 달 뒤인 9월 롯데 소유의 경북 성주골프장을 새 부지로 낙점했다. 당시 롯데는 검찰 수사로 그룹 오너가 구속 위기를 맞은 절체절명의 상황이었다. 재계 한 인사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롯데의 위기는 국방부에 기회였다. 국방부는 롯데와 토지 맞교환에 합의하고 사드 배치에 속도를 냈다. 2016년 11월 토지 감정평가를 의뢰한 데 이어 2017년 1월 “올 9월 내 사드 배치“를 공언했다. 국방부 안팎에선 성주골프장과 교환될 남양주 군용지에 대해 “개발 가치가 높다”는 등 여론전이 병행됐다.
정작 롯데 내부에선 “당시 마지못해 정부 결정을 따라갔다”는 등 ‘만시지탄’이 이어졌다. 사드 부지를 제공하면 중국 시장에서의 타격이 불 보듯 뻔한 데다 국내 비난 여론도 만만치 않아 임원들 간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중국 당국은 노골적으로 롯데를 겨냥한 ‘실력 행사’에 나섰다. 중국 내 롯데 계열사에 대한 세무조사를 시작으로 롯데백화점 현지 영업장의 소방·위생 점검 등이 잇따랐다.
딜레마에 빠진 롯데는 장고에 돌입했다. 올 1월 초 예정된 토지 감정평가 및 부지 맞교환과 관련한 최종 승인이 이뤄질 이사회를 미루면서 시간을 벌었다. 사드 배치에 부정적인 정치권과 접촉해 도움을 구한 것으로도 알려졌다. 대통령 탄핵 정국에서 섣부른 결정은 정권 교체 시 롯데에 부담이 될 수 있었다.
2016년 12월 이미 사드 배치와 관련한 정지작업을 끝낸 국방부가 다급해졌다. 한민구 국방부 장관은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과 면담을 추진했지만 롯데 측의 거부로 무산됐다. 국방부 안팎에선 성주골프장 교환이 어려워질 경우 다시 성주포대에 사드를 배치할 수밖에 없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그런데 설 연휴 이후 롯데의 기류가 달라졌다. 사드 부지를 제공하는 쪽으로 방침을 급선회한 것이다. 2월 28일 롯데는 ‘국익’을 명분으로 롯데스카이힐성주CC(성주골프장)와 남양주 군용지를 맞교환하는 안에 대해 최종 승인했다. 성주골프장 148만㎡에 대한 공시지가는 450억 원이었지만 최종 감정평가액은 890억 원으로 2배 가까이 뛰었다. 반면 남양주 군용지(20만㎡)는 공지지가가 1400억 원이었지만 감정 결과 이보다 낮은 감정액을 받은 것으로 전해진다.
국방부는 남양주 군용지에 대한 감정평가 자료를 외부에 공개하지 않고 있다. 정치권 일각에선 국방부가 성주골프장을 받기 위해 남양주 군용지의 평가액을 낮추고, 성주골프장의 평가액을 높인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한다. 이번 감정평가에는 업계 10~20위권 업체인 S 사가 참여한 것으로 전해진다. 업계 수위권 감정평가 업체를 놔두고 하위권 업체에 용역을 준 것이 이해하기 힘들다는 지적이 나온다.
당초 국방부는 2016년 7월 최초 사드 배치 예정지로 경북 성주포대를 선택했다. 그러나 지역사회의 반발에 부딪히자 두 달 뒤인 9월 롯데 소유의 경북 성주골프장을 새 사드 부지로 낙점했다. 당시 롯데는 검찰 수사로 그룹 오너가 구속 위기를 맞은 절체절명의 상황이었다. 재계 한 인사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은숙 기자
하지만 롯데는 이 같은 주장에 대해 “롯데 정도 되는 기업이 뭐가 아쉬워서 남양주 부지를 노리겠느냐”고 반박한다. 롯데 말처럼 롯데가 남양주 부지를 개발해 얻는 이득과 중국 사업에서 받는 손실은 비교가 되지 않는다.
때문에 롯데가 정부로부터 중국 사업에서의 손실에 대한 일종의 ‘보상’을 약속받고 사드 부지를 제공한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소음 등으로 민원이 발생하고 있는 성남공항 이전 시 롯데가 인근 부지를 매입하면 제2롯데월드와 연계해 개발이익을 얻을 수 있다는 등의 내용이다. 또 최근 신동빈 회장은 ‘최순실 특검’ 수사 종료와 함께 조만간 출국금지 조치가 해제될 것으로 알려졌다. 군 간부를 지낸 국회 국방위 소속 한 의원실 관계자는 “분명 협상 과정에서 뭔가 오고 간 것이 있을 거라고 보지만 국방부는 말이 없고, 롯데는 자신들이 피해자라고 주장해 실체를 파악하기 힘든 상황”이라고 전했다.
롯데 관계자는 “안보 문제로 정부와 협상을 시도한 적이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며 “롯데뿐 아니라 다른 기업이라도 (사드) 부지 제공 요청을 거절하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그는 “정부로부터 보상받기로 한 것은 전혀 없고 국익을 위한 순수한 결정이었다”고 강조했다.
유통업계에선 롯데의 이번 사드 부지 제공이 전화위복의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유통업계 한 고위 관계자는 “롯데로선 울고 싶은데 뺨 때려준 격”이라며 “중국 사업에서 10년 가까이 실적이 좋지 못했는데 (이번 사업 철수로) 적자구조를 단축하고, 망가졌던 이미지를 개선하면 오히려 장기적으로 득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 롯데 전체 매출에서 중국 사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5% 내외로 크지 않은 편이다. 또 롯데의 중국사업은 그간 조 단위 적자가 이어져 지난 경영권 분쟁 시 신동주 전 일본롯데홀딩스 부회장이 공격할 수 있는 빌미가 되기도 했다. 만약 이번 기회에 중국 사업을 축소·재편하면 지난 ‘과오’들을 한꺼번에 정리할 수 있다. 이에 대해 롯데 관계자는 “일각에서 주장하는 중국 사업 철수는 전혀 검토하지 않고 있다”며 “중국에 진출한 지 20년이 넘었고, 당장 눈에 보이는 매출이나 영업이익, 이런 것보다 미래를 위해 투자했다. 이미 투자한 금액도 수조 원이다. 곧 실적을 내고 사업이 본궤도에 오르려 할 때 이런 일이 벌어져 안타깝다”고 했다.
강현석 기자 angeli@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