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러리 로댐 클린턴 뉴욕주 상원의원(56)의 회고록 <살아있는 역사(Living History)>의 제목은 이 마지막 문장의 두 단어에서 따온 것이다.
출간 전부터 화제가 되었던 힐러리의 회고록은 논픽션 저서로는 드물게 현재 미국 전역에서 날개 돋친 듯이 팔려 나가면서 ‘힐러리 신드롬’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출판사인 ‘사이먼 앤 슈스터’사는 곧 초판 1백만 부가 모두 팔릴 것으로 내다보고 있으며, 30만 부를 추가로 제작중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녀가 책에서 가장 비중을 둔 부분은 물론 여성으로서의 정치적 성공이나 활약상 등 ‘여성의 성공담’이지만 실제로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있는 것은 ‘르윈스키 스캔들’을 바라보는 그녀의 시각이다. 또한 출간 직전까지 출판사측과 클린턴의 ‘섹스 스캔들’에 관한 부분을 자세하게 싣느냐 안 싣느냐로 실랑이를 벌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는 힐러리는 결국 기대했던 것과 달리 제니퍼 플라워스, 폴라 존스 등의 ‘부적절한 관계’에 관해서는 자세한 내용을 언급하지 않아 많은 아쉬움을 남겼다.
현재 회고록을 접한 미국 독자들의 대부분은 그녀가 솔직하지 못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럴싸하게 포장된 ‘이미지 개선용’ 또는 ‘2008년 대선용’에 불과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이다. 과연 그녀는 이 책에서 얼마만큼 솔직하게 자신에 대해서 털어 놓은 것일까.
[르윈스키도 딱한 여자]
이미 많은 언론에서 발췌, 인용되었던 르윈스키 스캔들에 관한 부분에 대해서도 이러쿵저러쿵 말이 많다. 과연 힐러리는 “르윈스키와 얘기만 했을 뿐”이란 클린턴의 거짓말을 믿고 있었을까 하는 부분에서 많은 사람들이 이의를 제기하고 있는 것. 힐러리는 책에서 “98년 8월 빌이 모니카 르윈스키와의 부적절한 관계를 공개적으로 시인하기 직전까지 나는 그를 철저히 믿고 있었다”고 고백하며, “남편은 결점을 가지고 있는 인간임에는 분명하다. 하지만 나한테 거짓말은 절대 안 한다”라고 확신에 차 있었다고 밝혔다.
또한 힐러리는 다음과 같이 비교적 자세하게 클린턴으로부터 처음 ‘고백’을 들었을 때를 묘사하면서 자신이 얼마나 격분했었는가를 나타냈다. “대배심 증언날 아침 남편이 나를 깨우더니 침대 옆을 왔다갔다했다. 그는 처음으로 상황이 그가 전에 알았던 것보다 훨씬 심각하다고 말했다.
그는 부적절한 친밀함이 있었다는 것을 증언해야 한다는 것을 그때서야 깨달았다. 그는 르윈스키와의 사이에 있었던 일을 요약해서 드문드문 나에게 얘기했다.… 나는 거의 숨을 쉴 수 없었다. 숨을 들이마시고 울음을 터뜨리면서 그에게 소리를 질렀다. ‘무슨 뜻이죠? 뭐라고 말하는 거예요? 왜 거짓말을 했어요?’ 나는 분노에 사로잡혔고 거짓말을 했다는 것 때문에 더 화가 났다.
▲ 1975년 10월11일 아칸소의 붉은 벽돌집에서 결혼한 힐러 리와 클린턴. 아래 사진은 93년 대통령 취임식 후의 무도회. | ||
이렇게 사랑 때문에 남편을 용서했다고 밝힌 힐러리는 “빌보다 나를 더 잘 이해하는 사람은 없으며, 또 빌보다 나를 더 웃게 만들어 주는 사람은 없다”고 말했다. 또한 “이런 시련의 시간이 지난 후에도 남편은 여전히 내가 만난 사람 중에 가장 흥미롭고 활력이 넘치는 남자”라고 덧붙였다. 이어 그녀는 “남편이 어떤 일을 했던 간에 어떠한 사람도 그처럼 모욕적인 대접을 받을 이유는 없다. 그의 프라이버시, 나의 프라이버시, 모니카 르윈스키의 프라이버시, 그리고 우리 가족의 프라이버시는 잔인하고 쓸데없이 공격당했다”고 말했다.
힐러리는 얼마 전 회고록 발간 후 가진 한 인터뷰에서 “르윈스키에 대해 동정심을 갖고 있다”고 밝혀 주의를 끌었다. 힐러리는 “당시의 잔인하고 당파적 성향이 강했던 수사에 연관된 모든 사람들을 딱하게 여긴다”고 말하면서 “르윈스키에 대해서도요?”라는 사회자의 질문에 “물론이지요”라고 대답했다.
하지만 힐러리는 “내 인생의 가장 어려운 결정은 빌과의 결혼생활을 그대로 유지하기로 한 것과 상원의원에 출마하기로 한 것이다”고 말해 아내로서 부정을 저지른 남편을 용서하기가 얼마나 힘들었는지를 나타냈다.
[내사랑 빌 클린턴]
예일대 법대에서 만난 캠퍼스 커플이었던 클린턴과 힐러리는 클린턴의 적극적인 구애 작전으로 결혼에 골인했다. 힐러리는 클린턴과 처음 이야기를 나누었을 때의 모습을 다음과 같이 회상했다. “내가 도서관에서 공부하고 있을 때였는데 빌이 지나칠 정도로 나를 흘끔거렸다. 내가 그에게 다가가 말했다. ‘네가 그렇게 쳐다보면 나도 계속 쳐다볼 거야. 통성명이나 하자. 나는 힐러리 로댐이라고 해.’”
또한 “다음 학기 수강신청을 하러 교무과에 가는데 빌이 자기도 수강신청을 하러 교무과에 가던 참이라며 따라왔다. 창구 앞에서 기다리는데 담당 직원이 빌을 보며 말했다. ‘여긴 웬일이죠, 빌? 이미 등록했잖아요’라고 말했다. 우리의 첫 데이트는 그렇게 시작됐다.”
힐러리는 예일대 시절의 클린턴을 가리켜 “땀구멍에서 활력을 발산해내는 듯 생기 가득했다”고 묘사했다. 또한 “지금도 나는 자신의 생각을 말로 풀어내면서 그것을 노래처럼 들리게 하는 그의 능력에 감탄하곤 한다”면서 대학 시절 클린턴이 얼마나 매력적이었는지 털어 놓았다.
▲ 클린턴이 모니카 르윈스키와 포옹하는 장면. 힐러리는 남 편의 목을 비틀어 죽이고 싶었다고 회고했다. | ||
몇 주 후 공항으로 나를 마중나온 빌이 말했다. ‘당신이 좋다고 말했던 그 집 기억해? 그 집 샀어. 그러니 결혼하자. 나 혼자는 그 집에서 살 수 없으니까.’” 그로부터 2년 반 후 힐러리는 아칸소의 붉은 벽돌집 거실에서 클린턴과 결혼식을 올렸다.
[당찬 소녀 힐러리 로댐]
‘대통령의 아내’에서 미국 최초의 ‘여성 대통령’을 꿈꾸는 힐러리는 유년 시절부터 부모로부터 “나가서 맞서 싸워라”라고 배웠다. 여성 정치가로서 홀로서기에 성공한 그녀는 청소년 시절과 대학 시절 이미 정치에 눈을 뜬 ‘당찬’ 소녀였으며, 스스로 공화당에서 민주당으로 전향할 만큼 정치적 색깔이 분명했다.
“고등학교 3학년 때 학생회장 선거에 출마했지만 떨어졌다. 상대 후보는 ‘여학생들이 학생회장으로 뽑힐 수 있다고 믿는다면 바보’라고 헐뜯었다. 우리 반에는 민주당 지지자가 단 한 명이었다. 선생님은 1964년 대통령 후보 모의 토론회 시간에 그 친구에게 공화당 의원 역할을, 그리고 나에게는 민주당 출신의 존슨 대통령 역할을 맡겼다. 나는 심한 모욕감을 느꼈지만 도서관에서 민주당 강령과 백악관 성명 등을 독파하며 진정한 열정으로 민주당의 정책을 지지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힐러리가 여성 운동가로서의 면모를 나타내고 있는 부분도 적지 않다. “열세 살 이후 지금까지 백악관에서 보낸 8년을 빼고는 늘 직업 여성이었기에 나는 ‘누구의 아내’로만 불리는 것이 어색했다. 결혼 후에도 난 내 성 ‘로댐’을 계속 사용했다.”
또한 웰즐리여대 시절을 회고한 부분에서는 그녀가 얼마나 여장부다웠는지를 곳곳에서 느낄 수 있다. “매들린 올브라이트가 다닐 때(10년 앞섬)만 해도 웰즐리여대생들은 신랑감을 찾는 데에만 열중했다. 그러나 학생운동이 한창이던 60년대는 자신의 삶을 스스로 결정하고 능력을 마음껏 발휘할 기회를 갖는 것이 여대생들의 주된 관심거리였다. …1학년 때 ‘공화청년회’ 회장으로 뽑히긴 했지만 민권과 베트남 전쟁에 관한 회의가 커졌다.”
“웰즐리여대 졸업식에서 졸업생이 연설을 하는 것은 전례가 없던 일이었다. 우리는 이를 반대하는 학장에게 ‘비공식적인 졸업식을 따로 갖겠다’고 으름장을 놓아, 결국 우리 뜻을 관철할 수 있었다. 학생회장으로 연단에 선 나는 ‘이 대학에서, 그리고 사회에서 한 세대에 만연한 정서를 전달하기가 얼마나 어려운가’를 말하고, ‘두려움은 늘 우리와 함께 있지만 우리는 두려워 할 시간이 없다’고 연설을 마쳤다.”
이렇게 시카고의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난 ‘똑똑했던’ 평범한 소녀는 결국 백악관의 안주인을 거쳐 뉴욕주 상원의원으로 홀로서기에 성공했다.
[유머러스 & 여성스러움]
회고록의 몇몇 에피소드를 통해 힐러리가 얼마나 재치 넘치고 여성스러운지도 알 수 있다. “‘너 제정신이니?’ 내가 미래가 보장되는 워싱턴에서의 변호사 경력을 포기하고 빌을 따라 촌구석인 아칸소로 간다는 말에 친구인 사라 에만이 말했다. ‘도대체 왜 네 미래를 내팽개치는거야?’ 나의 대답은 간단했다.
‘나, 빌을 사랑해.’”
또한 클린턴이 재선에 성공한 후 두 번째 임기를 시작했을 때 힐러리는 “나는 더 이상 (첫 대통령 취임식인) 1993년 푸른색 드레스를 입고 있던 그 여성과 동일 인물이 아니다. 백악관에서 4년을 지내고 나니 더 이상 드레스는 몸에 맞지 않았다. 그리고 그동안 나이만 먹은 게 아니라 금발도 더 짙어졌다.”
또한 힐러리는 한때 ‘파파라치를 위한 연출’이란 의혹을 불러 일으켰던 수영복 차림의 클린턴과 해변에서 춤을 추는 사진에 대해서 “그 사진을 보고는 내 뒷모습이 저렇게 생겼다는 걸 알고 매우 당황했다”는 말로 재치를 발휘하기도 했다. 김미영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