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빠른 외국자금 쑥 들어왔다 쏙 빠질 수도
주식 차트를 보면 코스피가 2000선을 넘어 본격적인 상승세에 접어든 시점은 지난해 12월 초다. 공교롭게도 최순실 국정농단 청문회와 당시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국회의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시점이다. 올 3월 중순 박 대통령에 대한 헌법재판소 탄핵심판이 인용되고, 뒤이어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의 기준금리 발표 이후 코스피는 2100선을 넘어섰다.
증시 전문가들은 박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 가결과 헌재의 탄핵심판 인용은 불확실성의 제거 차원에서 증시에 호재라는 분석이다. 또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 속도가 예상을 크게 벗어나지 않은 점도 긍정적이다. 이런 가운데 트럼프 대통령의 보호무역 정책이 힘을 받으면서 달러 약세가 나타나고, 원화 강세로 이어지면서 외국인 자금 유입이 활발하다는 풀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후 연일 치솟던 코스피지수가 지난 21일 연중최고치로 마감했다. 연합뉴스
그런데 한 걸음 들어가면 흥미로운 점이 발견된다. 최순실 사태에 따른 반사이익이다. 한대훈 SK증권 연구원은 “삼성전자의 가파른 랠리와 대비되며 부진을 면치 못했던 현대차가 최근 52주 신고가를 경신하며 시총 2위로 복귀한 데는 골드만삭스의 지배구조 개편 보고서 발간과 엘리엇 헤지펀드의 지분 매입 루머가 적지 않은 역할을 했다”고 지적했다. 한 연구원은 “외국인 투자자의 자금 유입이 거센 가운데 엘리엇과 같은 행동주의투자(Activism)의 움직임이 국내에서 활발해지고 있다”면서 “최근 반재벌 정서 확산으로 주주를 무시한 의사결정이 점점 힘들어지면서 외국인들이 배당 확대와 자사주 매입을 요구할 여지가 높아진 셈”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삼성전자의 경우에도 메모리 반도체와 낸드플래시 호황이 가장 큰 주가 상승 재료지만, 이재용 부회장 체제에서 주주 중심 경영이 더욱 강화될 것이라는 기대도 크다. 최근 삼성전자 지주회사 전환 방침이 최고재무책임자(CFO)인 이상훈 사장을 통해 거듭 확인된 이후 주가가 더욱 오른 것은 그 방증이다.
정동휴 신영증권 연구원은 “코스피 상장사의 1분기 영업이익은 43조 원, 순이익은 30조 원으로 예상되는데 이는 사상 최대 영업이익이며 2015년 3분기 이후 최대 순이익으로 기록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국내 기업들의 돈벌이가 나쁘지 않아 환율하락과 지배구조 개편 이슈 등이 행동주의 투자자 등 외국인들을 더욱 자극하고 있는 모습이다.
서정훈 삼성증권 연구원은 “미국의 완화적 금리정책 방향이 공표되면서 환차익을 노린 자금 흐름이 신흥시장 내에서 관찰되고 있다”며 “세계적인 금리인상 기조는 글로벌 경기 회복에 근거하고 있으며, 최근 신흥시장의 상대 우위는 신흥국의 높은 인플레이션 반응으로 설명될 수 있다”고 해석했다. 달러의 상대적 약세가 신흥국 통화의 강세를 유발해 외국인 입장에서는 환차익 기회가 생긴 셈이다.
미국 경제가 강해지면 달러강세-원화약세가 나타나야 하는데 왜 반대 모습을 보일까. 하건형 신한금융투자 연구원은 “미국 연준의 완화적 통화정책 스탠스 유지에 더해 유럽 경기 개선과 정치적 불확실성 완화에 따른 유로화 강세가 달러화 약세로 이어져 신흥국 투자심리가 개선됐다”며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들이 제각기 보호무역 정책을 강구하면서 자국 통화의 약세를 은근히 유도한 점도 또 다른 원인”이라고 해석했다.
그렇다면 과연 현재의 코스피 강세가 계속될 수 있을까. 전문가들은 국내 증시가 다른 신흥국 대비 상대적 저평가 상황이니만큼 2200선을 넘어 당분간 오름세를 보일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국내 증권사 연구원들의 ‘해바라기’ 성향을 감안하면 마냥 오를 것이라고 낙관하기 어려운 요인도 따져야 한다. 익명의 대기업 주식담당 관계자는 “지배구조 개선 기대에 따른 주가 상승은 한계가 있기 마련”이라며 “결국 실적 개선과 이익 성장 모멘텀이 더 중요한데 이는 상품을 보면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삼성전자 갤럭시S8과 현대차그룹 등 주력 수출기업이 내놓을 제품을 눈여겨 봐야 한다는 뜻이다.
원화강세 역시 반대 상황에 대비할 필요가 있다. 하건형 연구원은 “단기적으로 4월 미국 재무부 환율 보고서 발표 경계감에 약 달러 흐름이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며 “다만 연초 이후 주요 통화의 달러화 대비 절상률을 비교하면, 원화는 7.8% 절상돼 비슷한 경제구조를 가진 대만 달러화(5.5%)와 환율조작국으로 공격을 받는 중국 위안화(0.7%) 대비 폭이 과도해 추가 하락 여지가 크지 않아 보인다”고 조언했다.
익명을 요구한 자산운용사의 한 펀드매니저는 “최근 국내에 유입되는 자금을 보면 채권의 경우 단기채권, 주식의 경우 헤지펀드나 미국 등의 스마트 ETF가 주류”라며 “이들은 모두 자금 이동이 신속한 특성을 갖는 만큼 환율 등의 상황이 급변하면 빠르게 이탈할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오름세가 가파른 만큼 골도 깊을 수 있다는 뜻이다.
한편, 삼성전자 쏠림에 대한 우려도 있다. 삼성전자의 코스피(KOSPI) 내 시가총액 비중(우선주 등 포함)은 지난 17일은 21.28%로 치솟아 2004년 5월 이후 13년 만에 최고치에 육박했다. 삼성전자의 시총 비중이 가장 높았던 때는 2004년 4월 23일로 22.98%에 달했다. 시총 2위부터 12위까지인 SK하이닉스, 현대차, 삼성전자우, 한국전력, 네이버(NAVER), 포스코(POSCO), 삼성물산, 현대모비스, 신한지주, 삼성생명, KB금융의 시총 합계(21.55%)와 비슷하다.
삼성전자의 코스피 내 시총 비중과 코스피지수 상승을 비교해보면 역사적으로 비중이 감소하면서 코스피가 오른 적도 있었지만 비중이 높아진 이후 최근 약 5년 간은 코스피와 비중이 동행하는 경향을 보인다. 곽현수 신한금융투자 연구원은 “삼성전자 및 대형주 쏠림의 상승장은 국내 투자자만 한정해서 놓고 보면 썩 좋은 일만은 아니다”라며 “한국 증시의 약점 중 하나인 포트폴리오의 IT 편중이 더 심화되고 있다는 의미여서 이는 분명 부담이다”라고 강조했다.
최열희 언론인
불확실한 후계구도 ‘답’ 찾을까…현대차그룹 지주사 전환설 힘 받는 까닭 최근 후계구도에 대한 주주 동의가 중요해진 것도 변수다. 현대차그룹이 그동안과 다른 방법을 택할 것이라는 분석이 힘을 얻고 있다. 그동안 일반적인 관측은 정의선 부회장이 순환출자의 한 축인 현대모비스나 기아차 지배주주로 등극하면서 그룹 경영권을 완성하는 방식에 중점을 두었다. 하지만 지난해 말 삼성전자의 지주사 전환 방침이 알려지면서부터 상황이 달라졌다. 현대차그룹도 안정적 지배구조와 공식적인 그룹 컨트롤타워를 갖추기 위해서는 지주사 전환의 필요성이 높아졌다. 이른바 순환출자 3대 축인 현대차-기아차-현대모비스가 인적분할하는 모델이다. 골드만삭스는 최근 보고서에서 이 세 회사가 각자 지주사와 사업회사로 인적분할한 후 지주사들이 합병하는 방식의 지배구조를 예상했다. 정 부회장이 이후 보유 중인 현대글로비스와 현대엔지니어링 등의 지분을 통합지주사에 현물출자해 지배력을 갖추는 방식이다. 현대차-기아차-현대모비스가 그룹에서 가장 많은 현금을 보유한 만큼 이를 한데 묶으면 배당 등으로 주주들의 동의를 얻어낼 여력이 크다는 이유다. 재계 관계자는 “골드만삭스의 의견은 관측으로 볼 수도 있지만, 글로벌 투자자들에게 영향력이 큰 세계 1위 투자은행(IB)라는 점에서 현대차그룹에 대한 제안으로도 볼 수 있다”며 “원화강세와 보호무역주의 득세 등 딱히 내세울 만한 실적 모멘텀이 부재한 상황에서 주가가 크게 오른 것은 지배구조에 대한 기대가 그만큼 큰 것”이라고 풀이했다. [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