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억 투입해 명장 리피 영입…슈퍼리그 자국선수 보호로 한국 수비수들 타격
중국에 충격적 패배를 당한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사진=FA phtos
[일요신문] 또 하나의 참사가 벌어졌다.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이 지난 3월 23일 중국 창사에서 열린 중국과의 경기에서 무기력한 경기 끝에 0-1로 패배했다. 중국을 상대로 역대 31경기를 치러 단 한 경기를 제외하면 모두 이기거나 비길 정도로(18승 12무 1패) 강한 모습을 보인 대표팀이다. 중국은 번번이 한국에 패배하며 한국 축구에 대한 두려움에 대해 ‘공한증(恐韓症)’이라는 단어를 만들어낸 바 있다. 하지만 공한증도 이번 경기로 이후로 사라질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이번 대표팀의 패배가 더욱 충격적인 이유는 월드컵으로 가는 마지막 관문인 월드컵 최종예선 경기였기 때문이다. 전술이나 선수 테스트를 위해 가진 친선경기가 아닌 나름의 최정예 멤버를 구성한 중요 대회에서 나온 결과다. 그간 중국을 상대로 한 유일한 패배였던 경기 또한 동아시안컵으로 1.5군 격의 선수들이 참가하고 테스트 성격이 짙은 대회였다. 이번 경기를 앞두고도 패배를 예상한 이들은 많지 않았다. 중국은 역사적으로 한국을 상대로 약한 모습을 보였고 이번 최종예선에서도 1승조차 거두지 못하며 저조한 성적을 내고 있었다.
중국은 이번 경기에서만큼은 주요 장면에서 선수 개인 기량으로 경기를 풀어나가려 했던 한국과 달리 ‘원 팀(one team)’으로서 조직력을 확실히 보여줬다. 중국은 천문학적 금액의 투자로 세계의 시선이 쏠리는 자국리그와 더불어 국가대표팀의 발전도 노리고 있다.
각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전력은 자국 리그 수준과 직결된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1954년 스위스 월드컵에 처음으로 참가한 이후 30여 년간 연이어 예선에서 쓴맛을 봤다. 1983년 최초의 프로리그가 출범한 직후 대회엔 1986 멕시코 월드컵 예선을 통과한 것은 단순한 우연이 아니다.
중국 축구는 최근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아직 국가대표가 눈에 보이는 성과를 보이진 않았지만 중국 슈퍼리그만큼은 막대한 자금이 투입되며 무시하지 못할 존재로 자리 잡았다. 슈퍼리그는 지난 2012년 스타 영입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당시만 해도 디디에 드로그바, 니콜라스 아넬카 등 전성기를 지난 선수들이 잠깐 거쳐 가는 리그 정도로 치부됐다. 최근에는 테베즈(아르헨티나), 하미레스, 헐크, 오스카(브라질) 등 당장 유럽 중심에서 활약해도 이상하지 않을 선수들이 소속돼 있다. 중국은 정상급 선수들과 부딪히며 자국 선수 기량 향상 또한 기대하고 있다.
중국의 투자는 선수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다. 펠리페 스콜라리, 마누엘 페예그리니, 안드레 비아스보아스, 파비오 칸나바로 등 유명 감독도 중국 리그에서 지휘봉을 잡고 있다. 선수 영입으로 단기적 성적만을 끌어올리는 것이 아닌 선진 축구 자체를 중국에 이식해 발전을 도모하고 있다.
국가대표 선수까지 사오는 것이 불가능하기에 대표팀에는 돈이 개입할 여지가 많지 않다. 그럼에도 중국은 최총예선에서 1무 3패로 부진하던 국가대표팀에도 ‘황사머니’를 빼들었다. 중국은 지난해 11월 자국 축구영웅 가오홍보 감독을 내보내고 이탈리아의 세계적 명장 마르셀로 리피를 사령탑에 앉힌 것. 리피는 최초로 유럽 챔피언스리그와 FIFA 월드컵을 모두 석권한 감독이다. 리피의 연봉은 약 242억 원으로 세계 최고 연봉을 자랑하는 영국 프리미어리그 맨체스터의 두 감독인 조제 무리뉴와 펩 과르디올라의 약 200억 원 언저리를 훌쩍 뛰어넘었다.
리피는 4개월여의 시간 동안 중국을 다른 팀으로 만들었다. 중국은 한국을 상대로 역사적인 두 번째 승리를 거둔 경기에서 시작 5분이 되지 않은 시점에 오프사이드 반칙 3회를 기록하며 정돈되지 않은 느낌을 주기도 했다. 그러나 이는 곧 전진한 한국 수비의 뒷공간을 노리기 위한 ‘전략’ 임이 드러났다. 골 장면에서는 훈련으로 다듬어진 세밀함도 엿볼 수 있었다. 감독의 역량으로 팀이 달라진 모습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었다.
중국 축구의 성장은 인접국인 한국에도 영향력을 발휘했다. 슈퍼리그의 공세에 국내 정상급 선수들도 이적을 감행했다. 슈퍼리그는 나름의 ‘절약 방법’으로 공격진은 유럽·남미 출신 선수로 채우고 수비에선 아시아 최고수준 기량을 보유한 한국 선수들을 영입하는 방식을 택했다. 아시아권에서 준수한 활약을 하던 국대급 수비수 김영권, 김주영, 장현수, 김기희 등이 높은 이적료와 연봉을 받고 슈퍼리그로 향했다. 급기야 슈퍼리그는 ‘선수들의 꿈’인 독일 빅리그에서 활약하던 수비수 홍정호도 아시아 무대로 복귀시키기에 이르렀다.
중국전에 나선 대표팀 선수들. 사진=FA phtos
하지만 이번 시즌을 앞두고 슈퍼리그에 변화가 일어났다. 중국축구협회는 계속되는 투자에도 리그의 발전이 대표팀으로 이어지지 않자 ‘자국 선수 보호’를 이유로 리그 경기에 출전 가능한 외국인 선수를 기존 5명에서 3명으로 축소하는 결단을 내린 것. 리그 개막 1개월 반을 앞두고 각 구단에 통보된 매우 급작스러운 변화였다. 이 같은 변화에 한국인 선수들이 피해를 보게 됐다. 4명 이상의 외국인 선수를 보유한 팀은 많은 금액을 투자한 공격수들을 우선적으로 경기에 출전시켰기 때문이다.
이번 대표팀에 선발된 중앙 수비자원 4명 중 홍정호, 김기희, 장현수 3명이 슈퍼리그에 소속돼 있다. 3명 가운데 홍정호를 제외한 김기희와 장현수는 올 시즌 경기에 출전하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말 시즌을 마친 후 공식 경기에 나서지 못해 실전 감각이 우려된다. 23일 경기에 중앙 수비로 선발 출장한 홍정호와 장현수는 단단한 수비를 펼치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중국전 해설을 맡은 김환 jtbc 해설위원은 향후 중국 축구에 대해 “최소한 떨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발전 가능성이 많다”고 내다봤다. 그는 “한국이 15년 전 정도부터 유소년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는데 중국은 유소년 집중투자가 시작된 지 5년이 흘렀다. 우리보다 훌륭하다고 평가할 수 있는 시스템에서 육성된 선수들이 나타나는 시기에는 분명 나아질 것”이라며 “축구 발전에 있어서 지도자의 역할도 중요한데 현재 중국 대표팀과 리그 내에 좋은 지도자가 많고 성과를 내고 있다는 점은 긍정적이다”라고 평가했다.
김상래 기자 scourge@ilyo.co.kr
‘날개 잃은 대표팀’의 불균형 어쩌나 이번 2018 러시아 월드컵 최종예선 경기에 앞서 대표팀 23인 명단을 두고 우려 섞인 목소리가 나왔다. 대표팀 ‘에이스’인 왼쪽 측면 공격수 손흥민이 경고 누적으로 중국전에 나서지 못하는 가운데 오른쪽을 책임지는 이청용마저 명단에서 제외돼 측면 공격수 자리에 공백이 생겼기 때문이다. 중국전에서 왼쪽 윙어로 선발 출장한 남태희 슈틸리케 감독은 측면자원으로 지동원, 남태희, 황희찬 등을 고려했지만 엄밀히 말해 이들은 측면보다 중앙을 편하게 느낄 선수들이다. 지동원은 소속팀 아우크스부르크에서 이번 시즌 대부분을 중앙 공격수로 활약했다. 축구선수 정보를 제공하는 해외 사이트 ‘트랜스퍼마켓’에 따르면 그는 이번 시즌 리그 25경기에서 중앙 공격수로 17회, 왼쪽 윙어로 6회, 오른쪽 윙어로 2회 출전했다. 남태희는 포지션 정보가 공개된 5경기에서 중앙 공격형 미드필더로 5회, 왼쪽 윙어로 1회 나섰다. 이들은 지난 23일 중국전에서 각각 양쪽 윙어로 출전해 측면에서 이렇다 할 장면을 만들어내지 못했다. 중국전에서 후반에 교체 투입돼 측면에서 활약한 황희찬도 소속팀에서는 12월부터 내리 9경기에서 중앙 공격수로 출전한 선수다. 세 선수 모두 ‘멀티플레이어’ 기질을 가지고 있는 선수지만 이청용처럼 전문적으로 측면을 맡아줄 선수가 없다는 것은 아쉬운 부분이었다. 특히 이날 경기에서 대한민국은 중국의 측면 공략에 어려움을 겪었다. 문제점으로 지적되던 측면 수비수 자리에 K리그에서 좋은 폼을 보인 이용과 김진수가 복귀해 기대감을 높였지만 앞선 동료 공격수와 유기적인 움직임을 보이지 못하며 장기인 크로스는 선보이지 못했다. 이는 후반 투입한 장신 공격수 김신욱을 충분히 활용하지 못하는 결과를 낳았다. 또한 남태희의 교체 선수로 투입된 허용준을 놓고도 많은 비판이 이어졌다. 1993년 생 허용준은 이번 경기를 앞두고 대표팀에 처음으로 발탁된 어린 선수다. 평가전이 아닌 중요경기에 0-1로 지고 있는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A매치 출전경험이 없는 신예를 기용한 것은 대표팀 명단을 불균형적으로 한 탓이라는 평가가 이어지고 있다. [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