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에서 부인으로 일관…무너진 콘크리트 지지층 결집 ‘노림수’
3월 31일 오전 박근혜 전 대통령이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검찰청을 나와 서울구치소로 이동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박 전 대통령이 배신감으로 잠을 잘 이루지 못했다.”
한 친박계 원로 인사는 박 전 대통령과 구속되기 전 여러 차례 통화를 했다고 털어놨다. 박 전 대통령은 그에게 “기업이나 재단 쪽 관계자들이 자기 살겠다고 허위 주장을 폈다. 뒤통수를 맞은 느낌”이라는 취지로 말을 했다. 앞서 박 전 대통령은 신년간담회와 인터넷TV 인터뷰 등에서도 “검찰이 엮었다” “특정세력이 기획한 것”이라며 억울해 했다.
특히 박 전 대통령은 검찰의 행태에 대해 상당한 불만을 털어놓은 것으로 전해진다. 원로 인사는 “박 전 대통령은 본인이 임명한 검찰 수뇌부가 이런 식으로 압박하는 것에 대해 배신감을 느꼈다고 했다. 삼성동으로 돌아온 후 검찰 쪽 라인과 접촉하려 했지만 잘 안됐다고 그러더라”면서 “박 전 대통령에게 원래 있던 배신 트라우마가 다시 살아난 것”이라고 했다.
박 전 대통령은 탄핵 정국에서 끊임없는 말 바꾸기와 거짓말로 공분을 샀다. 검찰과 특검 조사에 최대한 협조한다고 천명했지만 받아들이지 않았다. 오히려 조직적인 증거인멸 의혹에 휩싸였다. 파면돼 삼성동 자택에 돌아왔을 때도 “진실은 밝혀질 것”이라며 헌법재판소 판결에 불복하는 듯한 발언으로 논란에 휩싸였다.
또 박 전 대통령은 검찰 소환 조사 당시 부인과 변명으로 일관했다. 불리한 내용에 대해선 “기억이 나지 않는다”라고 했단다. 영장실질심사 때는 무죄추정과 불구속수사 원칙을 적극 내세웠다. 초법적이고 위법적인 국정 운영으로 나라를 뒤흔든 장본인이 정작 구속 위기에 놓이자 법에 기대려했던 셈이다.
물론 이는 향후 법정에서의 다툼을 염두에 둔 행보일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박 전 대통령이 아직도 자신의 잘못을 정확히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도 적지 않다. 박 전 대통령은 탄핵 정국 내내 억울하다고 했고, 파면 결정엔 불복했으며 검찰 조사 땐 모든 혐의를 인정하지 않았다. 법적 문제는 차치하고서라도 나라를 혼란에 빠트린 정치적 책임조차 지려 하지 않았다.
정치권에선 박 전 대통령의 폐쇄적인 정치 스타일에서 그 이유를 찾는다. 한 친박 전직 의원은 “박 전 대통령 주변에서 쓴소리를 하는 사람이 누가 있느냐. 1998년 정치 입문 후 수많은 사람들이 박 전 대통령으로부터 멀어졌는데, 대부분 직언을 했다는 이유였다. 몇몇 친박 인사들이 최태민과 최순실 얘기를 꺼냈다가 박 전 대통령의 레이저 눈빛을 맞고 퇴출된 적이 있다”고 귀띔했다.
이어 그는 “그러다보니 박 전 대통령 주변에 지금 남은 사람들은 제대로 된 말을 하지 못 한다. 이는 청와대에서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귀에 달콤한 말을 하는 특정 비선과만 소통을 했던 것이다. 이는 박 전 대통령에게도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탄핵 정국에서 박 전 대통령에게 적절한 대응책과 정확한 정보를 준 참모가 있을지 궁금하다. 박 전 대통령은 본인이 만든 ‘인의 장막’ 때문에 이렇게 된 것”이라고 덧붙였다.
또 다른 친박 전직 의원 역시 “박 전 대통령이 계속 억울하다고 하는 것을 보면서 ‘진짜 그럴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든 적이 있다. 박 전 대통령은 비선이나 특정 참모에 의존했고, 보고도 그들에게만 받았다. 그런데 이들이 농간을 부리면 박 전 대통령이 어찌 알겠느냐. 철저하게 박 전 대통령 눈과 귀가 가려 있었던 셈이다. 가신그룹의 잘못도 크다. 그렇다하더라도 박 전 대통령에게 면죄부가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박 전 대통령의 정치적 노림수가 담겨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끝까지 ‘버티기 모드’로 일관하면서 무너진 콘크리트 지지층이 결집하기를 기다리고 있다는 얘기다. 이는 폐족 위기에 내몰린 친박계가 박 전 대통령을 중심으로 재기를 모색하는 움직임과도 맞물린다. 일부 친박 의원들은 업무를 나눠 박 전 대통령을 보좌하기로 했다.
앞서의 친박 원로 인사는 “박 전 대통령이 파면되고 구속되는 장면이 계속 나오면 동정여론이 일기 마련이다. 그러면 TK를 중심으로 한 박 전 대통령 지지층이 어느 정도 복원될 수 있고, 친박이라는 정치세력도 살아날 수 있다. 철저하게 지지자들만 바라보고 간다는 전략이다. 박 전 대통령이 후안무치하다는 비난까지 받으며 버티는 것도 그 때문”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박 전 대통령은 촛불에 대해선 일언반구도 하지 않았지만 자신을 지지하는 태극기 집회에 대해선 응원을 보내기도 했다. 박 전 대통령은 인터넷TV 인터뷰에서 “촛불시위의 2배가 넘는 정도로 열성을 갖고 많은 분들이 참여하신다고 듣고 있다. (집회에 참가한) 그분들이 눈 날리고, 추운 날씨에 계속 나오시는가에 대해 생각을 해보면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수호하고 법치를 수호하기 위해 고생을 무릅쓰고 나오는 것 같다. 가슴이 좀 미어지는 심정”이라고 말했다. 국론이 분열돼 있는 상황에서 지지층을 향해서만 고마움을 표현한 것을 두고 거센 비난이 일었다.
이는 박 전 대통령으로선 자충수를 둔 셈이 됐다. 헌법재판소는 탄핵 결정을 인용할 때 박 전 대통령이 검찰과 특검 수사 등에 응하지 않은 것을 예로 들며 “헌법 수호 의지가 없다”고 했고, 검찰은 구속 영장에 “반성하지 않고 있다”는 내용을 담았다. 법원 역시 영장을 발부할 때 ‘증거 인멸’을 주요 사유로 거론했다. 박 전 대통령이 처음부터 다른 스탠스를 취했더라면 과연 지금처럼 구속될 지경에까지 왔겠느냐라는 물음도 여기에서 비롯된다.
전문가들은 박 전 대통령 구속은 우리에게 많은 과제를 남겼다고 입을 모은다. 전계완 정치평론가는 “성역처럼 여겨졌던 대통령의 특수한 지위도 본인의 잘못으로 죄를 지었을 경우 여느 국민과 마찬가지로 검찰에서 조사 받고 법적으로 구속되고 또 옥살이를 통해서 책임을 져야 된다는 것을 보여준 한국 민주주의의 결실”이라면서 “대통령 개인의 일탈 행위로 단순화시킬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 대통령제가 갖고 있는 근원적인 문제로 봐야 한다. 삼권 분립 국가로서 대통령제의 문제, 대통령과 국회 간의 권한과 책임의 불균형 문제 등 전반적으로 되돌아보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했다.
차재원 부산카톨릭대 교수도 “현직 대통령이 잘못한 부분에 대해서 정해진 시스템에 의해서 파면시키고 사법의 단죄 위에 세운다는 것 자체가 한국 민주주의의 놀라운 성숙도를 보여주는 것이다. 물리적 폭력 없이 박 전 대통령의 구속까지 이뤄낸 것에 대해 전 세계가 다 놀라고 있다. 국민 스스로가 자부심을 느껴야 한다”면서 “대선 판도에 큰 영향을 끼치진 않을 것이다. 촛불 정국을 거치면서 70% 가까운 국민들이 박 전 대통령 구속을 찬성했다. 이제 후보가 다 정해진 후 본격적인 대선 정국이 시작되면 박근혜 변수는 그다지 크지 않을 것”이라고 점쳤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
‘보자마자 눈물 펑펑’ 박근혜-박지만 관계 회복되나 박근혜 전 대통령은 영장실질심사를 앞두고 친동생인 박지만 EG 회장, 서향희 변호사 부부와 자택에서 만나 10여 분 정도 이야기를 나눴다. 만남에 동석한 친박계 인사에 따르면 둘은 서로를 보자마자 눈물을 펑펑 흘렸다고 한다. 삼성동 자택을 나온 박 회장 부부는 곧바로 국립서울현충원에 들러 박정희 전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 묘에 참배했다. 박 전 대통령과 박 회장은 서 변호사가 둘째를 출산했던 2014년 1월 이후 3년 2개월 만에 만난 것으로 전해진다. 둘은 한때 사이가 멀어졌지만 박 회장이 서 변호사와 결혼해 조카를 낳은 후 관계가 회복됐었다. 그런데 대선 직후 박 회장이 ‘최순실을 조심해야 한다’고 조언하자 박 전 대통령이 ‘왜 사람을 모함하느냐’라고 질책하면서 다소 관계가 소원해진 것으로 알려졌다. 박 회장은 탄핵 심판 이후 주변에 “이제 누나는 내가 모실 것”이라는 뜻을 밝혔다고 한다. 또 박 회장은 청와대 경호실 측에 ‘누나 뒷바라지는 내가 할 테니 필요한 게 있으면 언제든 연락해 달라’고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박 전 대통령은 여동생인 박근령 전 육영재단 이사장과는 만나지 않았다. 박 전 이사장의 남편인 신동욱 공화당 총재는 <일요신문>과의 통화에서 “아내도 박 전 대통령을 만나고 싶어 하지만 누가 될까봐 집에서 조용히 기도하고 있다”고 했다. 박 전 이사장은 지난 1982년 풍산그룹 창업주의 장남과 결혼하기 전까지 언니인 박 전 대통령의 비서 역할을 맡았었다. 신 총재는 “박 전 이사장이 자리를 비운 사이 최순실 일가가 그 자리를 차지하면서 문제가 생긴 것”이라고 주장했다. 박 회장과 박 전 이사장 남매는 지난 1990년 노태우 전 대통령에게 “박 전 대통령이 최태민에게 속고 있으니 구해 달라”는 내용의 탄원서를 보내기도 했었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삼남매의 관계가 회복될지 관심이 모아진다. 신 총재는 “삼성동 사저에 편지를 전달하러 갔더니 지지자들이 가족사진을 붙여놨더라. 그 사진을 보고 코끝이 찡했다. 이제 박 전 대통령이 최순실 씨와의 관계를 정리하고 다시 형제들과 친하게 지낼 수 있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김명일 기자 mi737@ilyo.co.kr |
[박근혜의 말 말 말] “완전히 엮은 것”…그에겐 증거도 통하지 않았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지난해 10월 25일 1차 대국민 담화에서 “최순실 씨는 과거 어려움을 겪을 때 도와준 인연으로 대선 때 주로 연설이나 홍보 등의 분야에서 개인적인 의견이나 소감을 전달해주는 역할을 했다. 취임 후에도 일정 기간 동안 일부 자료들에 대해 의견을 들은 일은 있지만 청와대 보좌체계가 완비된 이후에는 그만뒀다”고 밝혔다. 그러나 검찰 수사 결과 등에 따르면 박 전 대통령 연설문·국무회의·인사 자료 등이 최 씨에게 대거 유출된 것으로 드러났다. 또 청와대 보좌체계가 완비된 이후에도 박 전 대통령은 최 씨의 도움을 받았다. 박 전 대통령의 1차 담화 내용은 거짓이었던 셈이다. 11월 4일 박 전 대통령은 대국민 2차 담화에서 “국가 경제와 국민의 삶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바람에서 추진된 일이었는데 그 과정에서 특정 개인이 이권을 챙기고 여러 위법 행위까지 저질렀다고 하니 너무나 안타깝고 참담한 심정이다. 필요하다면 저 역시 검찰의 조사에 성실하게 임할 각오이며 특별검사에 의한 수사까지도 수용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박 전 대통령은 검찰은 물론 특검 수사를 거부했다. 더불어민주당을 포함한 야3당은 박 전 대통령 탄핵안 발의를 추진했다. 이에 박 전 대통령은 11월 29일 대국민 3차 담화에서 “단 한순간도 저의 사익을 추구하지 않았고 작은 사심도 품지 않고 살아왔다. 지금 벌어진 여러 문제들 역시 저로서는 국가를 위한 공적인 사업이라고 믿고 추진했던 일들이었고 그 과정에서 어떠한 개인적 이익도 취하지 않았다”고 했다. 국회는 12월 9일 탄핵안을 가결했고 박 전 대통령 직무는 정지됐다. 2017년 1월 1일 청와대 상춘재에서 열린 출입기자단과의 신년 인사회에서 박 전 대통령은 “완전히 엮은 것”이라며 탄핵 사유를 전면 부인했다. 3주가 지난 뒤 박 전 대통령은 정규재TV와의 단독 인터뷰에서 “그동안 진행 과정을 추적해보면 뭔가 오래전부터 기획된 것이 아니냐는 점을 지울 수 없다”고 주장했다. 헌법재판소는 3월 10일 피청구인 박 전 대통령을 대통령직에서 파면시키기로 결정했다. 박 전 대통령은 삼성동 사저로 돌아간 뒤 “제게 주어진 대통령으로서의 소명을 끝까지 마무리하지 못해 죄송스럽게 생각한다. 저를 믿고 성원해주신 국민 여러분께 감사드린다. 모든 결과에 대해서는 제가 모두 안고 가겠다. 시간이 걸리겠지만 진실은 반드시 밝혀진다고 믿고 있다”며 탄핵 불복 논란을 일으켰다. 3월 21일 피의자 신분으로 검찰에 출석한 박 전 대통령은 서초동 서울중앙지검 청사 정문 현관 앞 포토라인에 서서 “국민 여러분께 송구스럽게 생각한다. 성실하게 조사에 임하겠다“고 말한 뒤 청사 안으로 들어갔다. 3월 30일 구속 전 피의자신문(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서울중앙지법에 출석한 박 전 대통령은 아무런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이 터진 10월부터 지금까지 박 전 대통령은 자신의 혐의를 단 한 번도 인정하지 않았다. 최선재 기자 sun@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