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대위 구성 두고 후보측 vs 대표측 충돌…문 “통합 걸림돌 치울 것” 기강 잡기
‘슈퍼 위크’ 이후 첫 카드였던 ‘용광로 선거대책위원회’(선대위)는 내상을 입었다. 비문(비문재인)계 핵심 인사들은 선대위 합류를 단칼에 거부했다. ‘김민석 인선’을 놓고는 추미애 민주당 대표와 정면충돌했다. 급기야 문 후보 실세와 추 대표 측 간 ‘알력 다툼설’까지 제기됐다. 문 후보는 아들 취업 특혜 의혹과 지지도 하락, 반전 카드 무력화 등 삼중고에 휩싸였다.
4월 12일 여의도 FKI콘퍼런스 센터에서 열린 2017 동아 비지니스 서밋에 참석한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와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 국회사진기자단
“대세론의 실체적 진실과는 거리가 있는 게 아니냐.”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 후보 지지도가 급상승한 직후 야권 한 관계자가 던진 말이다. ‘문재인 대세론’의 균열은 제2의 이회창 데자뷔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이회창 전 자유선진당 총재는 1990년대 말과 2000년대 초반 ‘여의도 대통령’으로 불렸다. 그는 1997년과 2002년 신한국당과 한나라당 대선후보로 각각 나섰지만, 두 아들의 병역 비리 의혹에 발목을 잡혔다.
특히 2002년 땐 ‘문재인 산성’을 능가하는 ‘이회창 대세론’을 형성했지만, ‘아들 병역비리’ 덫은 대세론보다 폭발성이 강했다. 박지원 국민의당 대표가 아들 병역비리 의혹에 휘말린 박원순 서울시장이 공개적인 신체검사에 응했던 점을 거론하며 “‘이회창의 길’을 갈 것인가, ‘박원순의 길’을 갈 것인가. 기로에 서 있다”고 문 후보를 정면 비판한 것도 이런 맥락이다.
‘문재인 낙관론’에는 당과 후보 측의 전략 판단 미스도 한몫했다. 추미애 대표는 ‘안풍’이 여의도를 뒤흔들 조짐을 보이자, “의도적인 안철수 띄우기”라며 언론에 불만을 드러냈다. 그러자 박 대표는 “뭘 모르는 것 같다. 민심이 띄우는 것”이라고 응수했다. 정치권 안팎에선 ‘민주당의 실책’이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민주당이 ‘반문(반문재인) 프레임’에 의존하던 안 후보를 직접 ‘문재인 대세론’의 위협요소로 인정했다는 것이다.
정치권 한 분석가는 “‘문재인 vs 안철수’ 양자구도는 이때부터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대선 핵심 변수가 됐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사실상 자책골이 아니냐는 말까지 나왔다. 5·9 대선에서 ‘문 vs 반문’ 구도가 고착된 첫 번째 변곡점인 셈이다.
실책은 이뿐만이 아니다. ‘슈퍼 위크’ 이후 안 후보의 우세한 여론조사 결과가 속출했다. 다급해진 문 후보 측은 4월 6일 ‘안철수 검증’ 카드를 빼들었다. 캠프 핵심 관계자는 “안 후보에 대한 본격적인 검증은 이제 시작일 뿐”이라며 선전포고를 했다. 국민의당 광주시당 직능국장의 차떼기 경선 의혹을 비롯해 안 후보의 조폭 연루설, 신천지 신도 집단 당원 가입 의혹, 안랩(안철수연구소) 정치활동 동원, 부인의 교수 특혜 의혹, 딸 재산 문제 등이 쏟아졌다. ‘1일 1사고’에 타격받고 낙마한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에 비견될 정도였다.
문제는 반대되는 전략의 충돌이다. 캠프 내부에는 사실상 네거티브 총동원령이 내려졌다. 반면 문 후보는 중도 확장 정책인 ‘J노믹스’를 비롯해 안보점검회의 개최 등 오른쪽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패권 프레임’에 갇힌 문 후보 측이 네거티브 공세를 강화할수록 중도 확장성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당 선대위·캠프와 후보가 엇박자를 내면서 표 확장성을 스스로 갉아먹고 있다는 얘기다.
문 후보 측근들과 당 지도부의 충돌은 원팀 사수 작전을 걷어찼다. 발단은 당 선거대책위원회 구성에서 시작됐다. 문 후보는 4월 7일 경선 경쟁자였던 안희정 충남지사와 이재명 성남시장을 잇달아 만나 껴안기를 시도했다. 다음 날 최성 고양시장까지 함께하는 호프 회동도 약속했다. 그 사이 여의도에선 추 대표와 최고위원이 선대위 구성을 놓고 충돌했다. 핵심은 김민석 당 특보단장의 선대위 상황본부장 임명이다. 추 대표가 ‘김민석 카드’를 밀어붙이자, 김영주 최고위원이 “이게 무슨 통합이냐”라며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가 주변의 만류로 다시 끌려들어가는 상황이 발생했다.
추 대표는 끝내 물러서지 않았다. 이날 오후 ‘김민석 카드’가 포함된 인선안 발표를 강행했다. 여기엔 경선에서 친노(친노무현 좌장) 이해찬 의원과 안 지사를 도왔던 박영선 의원은 물론, 비문(비문재인)계인 변재일 의원이 포함됐다. 1차 인선안 당시 박 의원과 변 의원의 직책은 공동선대위원장과 방송언론정책위원장이었다. 박 의원 측 한 관계자는 “당의 공식 요청이 없었다”고 불쾌감을 드러냈다. 두 의원은 결국 선대위 합류를 거부했다.
반면 캠프 측에서 상황본부장 카드로 염두엔 둔 강기정 전 의원은 1차 명단에서 빠졌다. 문재인 캠프에서 종합상황실장을 맡았던 강 의원은 당시 선대본부 수석부본부장에 내정돼 있었다. 민주당 복수 관계자의 말을 종합하면, 애초 캠프 내부에서는 대선 정국이 양자구도로 재편된 이후 ‘친문 2선 후퇴안’ 등이 아이디어 차원에서 제기된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2012년 대선 과정에서 문 후보 측은 친노 9인방 사퇴 카드를 정국 반전카드로 활용한 바 있다.
그러나 추 대표 측은 4월 10일 밤 ‘임종석 교체’를 골자로 하는 인선안 발표를 준비했다. 캠프 내부는 발칵 뒤집혔다. 그간 막후에서 후방 지원했던 임 비서실장은 4월 9일 공개적으로 “실무원탁회의를 열자”며 인선안 재조정을 요구한 직후였다. ‘추미애 vs 임종석’ 알력 다툼의 진원지도 이 지점이다.
한 관계자는 “임 비서실장이 캠프의 좌장인데, 핵심 중 핵심을 빼고 선거를 치르는 게 맞느냐”라며 “백지화 수준의 재정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추 대표 측에선 “당 중심으로 선거를 치른다고 하지 않았느냐”라고 반박했다. 추 대표 측 내부에선 문 후보 측 일부 인사들이 ‘추미애 비토’를 하고 있다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대선 경선 직후 후보 측 내부에 “추 대표 대신 안 지사를 상임선대위원장으로 앉혀야 한다”는 말이 흘러나왔다.
‘용광로 선대위’는 온데간데없고 알력설이 당과 캠프 전체를 휘감았다. 양측은 일촉즉발 상황으로 치달았다. 그간 인선 구성에 선을 그었던 문 후보는 하루 만에 직접 나섰다. 그는 4월 11일 첫 선대위회의에 참석, “통합과 화합을 저해하는 걸림돌이 있다면 제가 직접 나서 치우겠다”고 말했다. 사실상 추 대표를 향한 경고성 메시지인 셈이다. 문 후보는 캠프 비서실 인선을 직접 조정하겠다는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또한 문 후보는 본경선 3인방과 중도 사퇴한 박원순 서울시장, 김부겸 의원 측 캠프나 싱크탱크에서 정책 자문했던 인사들을 총망라한 ‘통합 정책포럼’을 띄우기로 했다. 프레임 전략도 수정키로 했다. 기존의 ‘적폐 청산’에서 통합 프레임을 통해 중도 외연 확장에 나서기로 한 것이다. 상도동계 핵심 김덕룡(DR) 김영삼민주센터 이사장과 김종인 전 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 대선 불출마로 갈 곳 잃은 정운찬 동반성장연구소 이사장 영입전에 뛰어든 것도 이 일환이다.
그러면서 문 후보는 정책행보, 검증은 선대위가 각각 맡는 투 트랙 전략으로 남은 20여 일을 돌파하기로 했다. 호남팀은 별도로 꾸린다. ‘후보-민생, 선대위-검증, 호남팀-호남 민심 공략’ 등 3원화 체계인 셈이다. 이는 ▲내부 결속(통합 정책포럼) ▲준비된 후보론(후보의 정책행보) ▲중도 확장(프레임 변경) 등 캠프 내부의 ‘위기 탈출 3대 전략’과 맞물린다.
문 후보 전략이 유효할지는 미지수다. 문 후보 측은 장기간 대세론에 취했다. 캠프 인사들은 샴페인을 일찍 터트렸다. 매머드급 선대위 구성에는 성공했지만, 어젠다 선점에선 여전히 약한 고리를 드러냈다. 적폐 청산 등 선명성 프레임에서 벗어나 통합 구도 짜기에 돌입했지만, 당내 패권주의는 경선 과정은 물론 선대위 구성에서 드러났다. 후보와 선대위 간 엇박자 전략의 미스매치 극복도 난제 중 난제다.
민주당 범주류 한 관계자는 “안 후보 지지율은 최대치다. 지금부터 빠질 일만 남았다”라며 “문 후보는 지금 구도여도 이길 확률이 100%”라고 말했다. 안이한 생각이다. ‘안풍 소멸’은 범보수진영 내 ‘홍준표(자유선진당) 대안론’이 급부상할 때만 가능하다. 불과 보름 전만 해도 ‘대세론 중 대세론’이라던 후보 측이 ‘샤이 보수’ 바람만 기다리는 꼴이다. 선거는 심리다. 시간은 불과 20여 일밖에 남지 않았다. 남은 것은 둘 중 하나다. ‘문재인 대세론’과 ‘문재인 공포증’이다.
윤지상 언론인
문재인-안철수 5년 전 악연…치열한 수싸움 끝 ‘미완의 단일화’로 문재인 후보와 안철수 후보의 악연은 2012년 대선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들은 야권 단일화를 둘러싸고 연일 상대방을 향해 총구를 겨눴다. ‘절충안→수정안→역제안’ 등 치열한 수싸움에 돌입한 이들의 단일화 싸움은 안 후보의 ‘사퇴’로 종결됐다. 아름다운 단일화는커녕 ‘미완의 단일화’에 그친 셈이다. 이들의 악연은 탄핵정국에서 수면 위로 재부상했다. 일찌감치 대선 행보에 나선 문 후보는 지난 1월 대담집 <대한민국이 묻는다>를 통해 안 후보의 미온적 선거운동 의혹과 관련해 “그런 식의 아쉬움들, 이랬더라면 저랬더라면 하는 많은 아쉬움들이 있지만 알 수는 없죠”라고 말했다. 이에 안 후보는 2월 13일 광주에서 가진 광주전남언론포럼 초청 토론회에서 “동물도 고마움을 안다”며 “그런 말을 하는 것은 짐승만도 못한 것”이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5년 전 이들의 단일화는 ‘박근혜 대세론’을 넘기 위한 불가피한 수였다. 박근혜 당시 새누리당 후보는 3자 구도에서도 40% 전후를 기록했고, 부동층 15%가량을 제외한 45%를 두 후보가 분할했다. ‘1강(박근혜)-2중(문재인·안철수)’ 구도는 필패였다. 단일화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문 후보와 안 후보는 그해 6월 17일과 9월 19일 각각 대선 출마를 공식 선언하고 완주 의지를 드러냈다. 문 후보는 60년 전통의 민주당이 후방에 포진했고, 안 후보는 20% 이상의 대중적 지지도에 올라탔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문 후보는 민주당 지지를 상회하지 못했다. 안 후보도 20∼25% 박스권에 갇혔다. 문 후보는 ‘공동정부 구성’, 안 후보는 ‘민주당 혁신’을 고리로 상대를 포위했다. 18대 대선을 불과 40여 일 앞둔 11월 6일 이들은 단독 회동을 통해 ‘단일화’에 합의했다. 협상은 지지부진했다. 문 후보는 즉각적인 룰 협상을 요구한 반면, 안 후보는 ‘새정치 공동선언’을 전제조건으로 내걸었다. 룰 협상은 단일화에 합의한 지 6일이나 지난 뒤 개시됐다. 단일화 방식을 놓고도 견해차를 좁히지 못했다. 문 후보는 ‘여론조사+배심원제+국민경선’을, 안 후보는 ‘여론조사’를 각각 원했다. 이후 여론조사에 합의한 이들은 룰 각론에서 이견차를 보였다. 문 후보 측은 ‘가상대결 50%+적합도 50%’, 안 후보는 ‘가상대결 50%+지지도 50%’를 주장했다. 양측의 언론플레이도 단일화 무산에 한몫했다. 당시 정치권 안팎에서 ‘안철수 양보설’이 흘러나오자, 안 후보 측은 협상 중단을 선언했다. 문 후보는 안 후보에게 두 차례 사과한 뒤 지도부 사퇴 수용 카드를 택했다. 안 후보가 사퇴하기 5일 전인 11월 18일 ‘새정치공동선언문’을 발표한 이들은 이후 절충안과 수정안 등을 내면서 치열한 기 싸움에 들어갔다. 민주당은 시민사회안(적합도 50%+가상 양자대결 50%)과 칵테일안(적합도+지지도+양자대결) 등으로 안 후보를 포위했다. 안 후보도 물러서지 않았다. 팽팽한 줄다리기가 계속됐다. 문 후보 측은 이인영 의원, 안 후보 측은 박선숙 의원이 각각 특사로 나섰다. 양측이 11월 23일 막판 룰 협상에 돌입했지만, 결국 무산됐다. 안 후보는 그날 오후 8시 20분께 대선 후보직을 전격 사퇴했다. [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