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고 은퇴’ 이호준·이승엽 각각 2군생활·팀 꼴찌…임창용은 난조에 빠져
# 박수칠 때 떠나고 싶었던 이호준
이른바 ‘메리트 논란’ 으로 프로야구 선수 협회장직을 내려놓으며 홍역을 치렀던 이호준. 프로야구 선수들의 이익을 대변하기 위해 선수협회장직을 맡았던 이호준은 얻은 것보다 잃은 게 더 많은 시간을 보냈다.
2013년 FA 신분으로 NC 다이노스와 계약을 맺었던 그는 뛰어난 리더십과 성적을 바탕으로 팀의 중추적인 역할을 도맡았다. 이호준은 지난 1월 마산구장에서 열린 시무식 때 “박수칠 때 떠나고 싶다”며 사실상 은퇴선언을 해 팬들을 깜짝 놀라게 만들었다. 당시 그는 “은퇴를 내가 결정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 은퇴 여부를 놓고 구단과 마찰을 빚기보다 먼저 결단을 내려 다행이다”는 소감을 전했었다.
그러나 이호준은 1군 스프링캠프 명단에서 제외되었고, 시즌 개막을 2군에서 맞이했고, 지금까지 2군이 있는 고양 다이노스에서 생활하고 있다. 이호준은 이미 오래전부터 은퇴를 각오했기 때문에 두려울 게 없다고 말한다. 즉 2013년 NC와 계약 맺기 전에 은퇴를 결심한 터라 지금의 예고 은퇴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
“SK 시절 2012년 시즌 초반에 경기에 나가질 못했었다. 대타로 간혹 타석에 들어서다 성적이 좋지 않으니까 2군행을 지시 받았다. 당시 계셨던 이만수 감독님을 찾아가 ‘더 추해지기 전에 여기서 마무리하겠다’고 말씀 드렸더니 감독님이 ‘다시 생각해보라’며 만류하셨고, 다음 날 8번 지명타자로 날 내보내주셨다. 그 이후에는 4번 지명타자로 나가게 되었다. 이미 한 번 은퇴를 결심했기 때문에 NC와서도 언제든지 유니폼 벗을 각오로 야구를 해왔다.”
NC 김경문 감독은 올 시즌을 앞두고 ‘개혁’을 내세웠다. 가장 먼저 뛰는 야구를 부활시키겠다고 천명했다. 더불어 빠른 야구를 할 수 있는 젊은 선수들을 적극 기용하겠다고 밝혔다. 이호준은 김 감독의 구상을 알고 고민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고 말한다.
“감독님이 팀 컬러의 변화를 원하셨다. 주장도 그에 걸맞은 젊은 선수로 가겠다고 하셨고. 나로선 당연히 고민이 될 수밖에 없었다. 감독님의 변화에 내가 따라갈 수 있을까? 내가 계속 이 자리에 머물러 있으면 모든 사람들이 불편해지는 게 아닐까? 후배들에게 기회를 줘야 하는 게 아닐까? 라는 생각들로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난 젊지도, 빠르지도 않은데, 내가 없어도 그 자리를 대신할 후배들이 많다면 내가 물러나는 게 맞는 선택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이호준은 김경문 감독이 자신을 버리는 카드로 쓰는 건 아니라고 생각했다. 물론 스프링캠프에 합류하지 못했던 건 속상했지만 김 감독의 진심을 왜곡하긴 싫다고 말했다.
현재 이호준은 이종욱과 함께 2군 팀인 고양 다이노스에서 숙소 생활을 하며 아름다운 마무리를 위해 절치부심 중이다. 이호준의 올 시즌 연봉은 7억 5000만 원.
# ‘국민타자’의 은퇴, 관심도 부담이다
이승엽은 2015시즌이 끝난 후 삼성과 2년 총액 36억 원에 FA 계약을 맺으며 “2년 후 은퇴하겠다”고 선을 그었고 올 시즌이 그가 유니폼 입고 뛰는 마지막 시즌이다. 당시 이승엽이 예고 은퇴를 한 배경은 다음과 같았다.
그러나 이런 공약에도 불구하고 2016시즌 이승엽은 타율 3할 3리, 27홈런 118타점으로 빼어난 실력을 보여줬다. 전성기에 비해 뒤지지 않는 성적이었다. 팬들은 이승엽의 은퇴를 아쉬워했고, 기자들은 그에게 은퇴 번복 가능성을 여러 차례 물었다. 그럴 때마다 이승엽은 “팬들에게 좋은 모습으로 기억되고 싶고, 팬들 앞에서 한 약속은 반드시 지킬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승엽은 올 시즌을 앞두고 자신의 은퇴에 미디어의 관심이 쏠린 데 대해 현장을 찾는 기자들에게 부담감을 토로했다는 후문이다. 자연스럽게 시즌을 치르고 은퇴하길 바라지만 ‘국민타자’의 마지막 시즌을 향한 시선은 뜨거울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이승엽이 이런 상황에 예민해질 수밖에 없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유종의 미를 거두겠다는 목표로 경기에 임하지만 현재 팀 성적은 물론 개인 성적도 하위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특히 팀 성적이 개막 11경기에서 7연패를 기록하는 등 2승 9패로 꼴찌에 머무르는 최악의 상황에 처했기 때문이다. 구자욱-다린 러프-이승엽으로 이어지는 중심타선도 영 힘을 못 쓰고 있다. 지난 시즌까지 3년 연속 3할의 타율을 올렸던 이승엽의 부진은 더욱 뼈아프다.
그러나 이제 시즌 초반이다. 산전수전 공중전까지 치른 이승엽이라면 유니폼 입고 뛰는 마지막 시즌을 허무하게 흘려보내진 않을 것이다.
# 은퇴는 아니지만…시련의 임창용
이승엽의 부진보다 더 심각한 이가 있다. 이승엽과 동갑내기인 KIA 마무리 투수 임창용이다. 임창용은 시즌 초 세이브 기회에서 ‘불쇼’를 저지르며 방화범으로 내몰렸다. 14일 현재 5경기에 등판해 평균자책점 8.10 3⅓이닝 동안 안타 8개와 볼넷 4개를 내줬다. 빠르게 휘어져 들어가는 임창용의 주무기인 ‘뱀직구’는 실종됐고, 제구도 흔들리면서 마무리 투수에서 ‘잠시’ 내려와 있다.
임창용은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은퇴 시기와 관련 다음과 같은 입장을 나타냈다. “마무리 투수는 상대 타자에게 위압감을 줘야 한다. 스피드가 나지 않으면 위압감을 줄 수 없다. 스피드가 떨어질 때 은퇴해야 할 것이다.”
김기태 감독은 임창용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당분간 7, 8회 승부처에 내보낼 예정이라고 말했지만 임창용을 향한 KIA 팬들의 시선은 썩 좋지만은 않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그러나 선수들에게 나이는 숫자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기도 하다.
이호준은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은퇴를 앞둔 심정에 대해 에둘러 이런 표현을 곁들였다. “야구하면서 여러 선배들의 은퇴 모습을 지켜봤다. 야구에 청춘을 바친 선배들의 은퇴가 좀 더 화려하고 멋지게 보이길 바랐지만 대부분은 안타깝게 유니폼을 벗었다. 어렸을 때부터 야구한 것까지 다 포함해서 30년 넘게 야구를 하고 있는데 마지막은 야구에 대한 예의를 지키고 싶었다. 그게 은퇴였다.”
이호준이 경험한 은퇴 시기는 타인이 아닌 스스로 정해야 한다는 것. 아직 충분히 선수로 뛸 수 있는 사람이 분위기에 휩쓸려 은퇴 수순을 밟다보면 나중에 후회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이영미 스포츠전문기자 riveroflym@ilyo.co.kr
샌디에이고 루키팀 코치연수 홍성흔 “인터뷰는 다음에요” 지난해 11월, 두산 베어스를 통해 은퇴를 발표했던 홍성흔. 부상으로 제 기량을 발휘하지 못하고 주로 2군에 머물렀던 홍성흔은 명예 회복을 벼르다 결국 은퇴 수순을 밟았다. 홍성흔은 기자회견 없이 구단을 통해 은퇴하게 된 자신의 입장을 밝혔다. 그 내용 중 ‘끝까지 야구 잘하는 영웅의 모습으로 은퇴하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해 아쉽다. 2군에서 후배들과 함께 생활하며 후배들에게 자리를 비워주는 게 얼마나 큰 의미가 있는 일인지, 또 얼마나 멋진 은퇴인지를 깨달았다’는 얘기를 전한 바 있다. 이후 홍성흔은 두문불출했다. 기자가 인터뷰 요청을 했지만 “나중에 하겠다”는 말로 정중히 거절 의사를 나타냈었다. 그를 직접 만난 곳은 한국이 아닌 미국 애리조나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훈련장이었다. 그는 은퇴 후 자신이 어떤 일을 할 것인지를 놓고 깊이 고민하다 선수 시절 못다 이룬 메이저리그의 꿈을 지도자로 이뤄보겠다며 샌디에이고의 문을 두드렸다. 홍성흔이 원한 건 단순히 연수 코치가 아니었다. 마이너리그의 루키 팀에서부터 단계를 밟아 코치로 인정받기를 바랐다. 즉 선수단에 들어가 코칭스태프, 선수들과 함께 동고동락하며 지도자 생활을 배우고 싶어 했다. 그러나 아무 연고가 없는 홍성흔에게 샌디에이고 구단에서 그런 기회를 주기는 어려운 일. 이때 홍성흔과 친분이 깊은 박찬호가 나서 홍성흔과 샌디에이고 구단을 연결해주며 ‘해결사’ 역할을 도맡았다. 홍성흔의 바람대로 루키팀에 들어가게 됐고, 홍성흔은 어설픈 영어를 구사하며 가장 밑바닥에서부터 미국 야구를 배우고 익히고 가르치겠다고 다짐했다. 3월 중순 샌디에이고 훈련장 인근의 한식당에서 우연히 마주쳤던 홍성흔. 그는 팀 관계자와 함께 저녁 식사를 하러 나온 중이었다. 홍성흔한테는 통역도 없었는데 그는 짧은 영어였지만 주저 없이 대화를 이끌어나갔다. 햇볕에 까맣게 그을린 얼굴, 선수 때보다 더 날렵해진 몸매, 새벽부터 시작하는 고단한 일상이 힘들 법도 한데 홍성흔의 얼굴에선 미소가 떠나질 않았다. 훈련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가면 밤늦게 까지 영어 공부를 하고, 선수들의 이름을 외우며 나름의 준비를 하고 있다는 홍성흔. 이번에도 인터뷰는 다음으로 미뤘다. 아직은 자신이 보여줄 만한 게 없기 때문이라고. 홍성흔은 은퇴 후 비로소 자신의 꿈을 위해 가족을 떠나 미국으로 향했다. 어쩌면 선수 생활에 대한 아쉬움을 미국 야구를 통해 조금씩 달래고 있는지도 모른다. 홍성흔의 은퇴 후 행보는 선수들에게 새로운 길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홍성흔의 아내 김정임 씨는 최근 자신의 SNS를 통해 남편에 대한 응원의 메시지를 보냈다. ‘선수는 아니지만 평생 야구에 올인하겠다는 남편님. 지금 유니폼도 두산 유니폼과 아주 흡사해서 어색하진 않지만 선수의 조력자 위치에 자리 잡고 있는 사진을 보니 다시 한 번 선수 생활이 끝났음을 인지하게 되네. 밤낮으로 공부하고 계시다는 당신. 원어민 수준의 영어 구사 능력을 보여주시길. 당신의 그 열정이 너무 뜨거워서 데이겠어요. 힘들어도 잘 챙겨 드시고요.’ 김태형 감독은 18년의 프로 생활을 마감하는 홍성흔에게 다음과 같은 속마음을 전한 바 있다. “고심 끝에 홍성흔이 은퇴를 선택한 것으로 안다. 20년 가까이 그라운드를 누비며 뛰어난 업적을 남긴 선수이다. 제2의 야구 인생 설계를 잘했으면 좋겠다. 지도자 길을 택한다면, 차근차근 과정을 잘 밟아나가길 바란다.” [영] |